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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괴물
작가 : 사열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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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화상 자국, 가슴에 깊은 상처를 지닌 장현성.
험악한 외모 때문에 늘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아 온 그가 이종격투기의 신성으로 떠오른다.
링네임 "괴물"
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을 피하기만 했던 ""괴물""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로 파이터 "괴물"로 비상한다.

 
제 18 화
작성일 : 16-07-15 14:36     조회 : 590     추천 : 0     분량 : 10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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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다가도 나쁜 게 세상의 이치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 게 아닌가?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 현성이 연이어 줄담배를 태웠다.

 일희일비라는 말처럼 너무 쉽게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꼴이 비참하고 우습기만 했다.

 빤히 보이는 수준 낮은 도발이라는 걸 알면서도 걸려들고야 마는 것은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이유들을 모르겠다 생각한 현성이 산뜻한 기분으로 구매했던 담배를 내리 피우며 으득, 이를 갈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도 열 받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상한 녀석이 자기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인 것처럼 조롱하고 비꼬고 이렇게 기분을 거슬리게 만들다니.

 과거 어린 시절이라면 참지 못하고 날아갔을 주먹도 현실의 참혹한 벽을 느끼고 나선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 했지만 마냥 참기만 해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갑갑함.

 도대체 그 빌어먹을 자식이 뭣 때문에 자신을 이렇게 건드리고 힘들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와는 달리 못난 구석 하나 찾아보기 힘든 놈이 갑자기 튀어나와 속을 긁고 열불을 나게 만드는 것이 이해되지도 않고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좋은 시작을 망쳐 버린 그 빌어먹을 놈을 하루 종일 씹어 죽여도 시원찮으나 현실적으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생각에 현성은 애꿎은 담배만 연달아 피고 말았다.

 ‘도대체 왜 세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걸까?’

 원망 담은 물음을 던지며 계속해서 담배만 태우는 그에게 별다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참아야 한다는 결론밖에는…….

 연달아 네 개비의 담배를 태우는 현성의 속이 열은 열대로 받으면서 타들어갔다.

 담배 연기 때문에 몽롱함을 느끼며 그는 체념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열을 올려봤자 멍청한 짓일 것이다.

 “하아…….”

 그 빌어먹을 놈이 왜 그를 찾아와서 그러는 것인지 이유는 몰라도 거기에 낚이면 바보가 되는 건 자신뿐일 것이다.

 그저 잘나신 부잣집 도련님의 여흥거리 취급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게 세상의 이치이고, 진리였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동안 벽에 등을 붙인 채 눈을 감고서 마음을 정리하던 그에게 ‘뭔 담배를 들이붓노?’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갑갑하던 가슴이 쿵쿵 울렸다. 깜짝 놀라 눈을 뜬 그에게 어제와 같은 얼굴에… 하지만 어제와 다른 야한 홀복을 입고서 담배를 피러 나온 혜주가 모습을 보였다.

 “…왔십니까.”

 그 어색한 인사에 혜주가 ‘왜 또 기분이 꿀꿀한데?’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자 현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매번 보여주는 꼬락서니가 이런 모양이라니……. 왠지 모르게 무거운 마음에 다시 한 번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주가 ‘흐음…’ 하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기분 안 좋나?”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무어라 이야기하면 좋을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건 무척이나 바보 같고 어리숙해 보일 것이란 생각에 현성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그냥 미친개에게 물렸다 치고 오늘 하루를 넘겨야겠다는 다짐하며 그가 ‘그냥요’ 하고 이야기하자 혜주가 별다른 물음은 던지지 않았다.

 “내가 니 어제 밥도 사 먹이고 옷도 사줬는데 아직도 그라나? 혹시 일부러?”

 새침한 그 목소리에 그나마 현성은 기분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아니에요, 누나’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자기 마음을 표현해 본 일도 거의 없고 여자와의 대화도 아직 어색해 그저 머리만 긁적였다.

 그 모습에 혜주가 더 괴롭히고 싶진 않다는 듯 ‘흥!’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담배를 꺼내 들어 ‘불’ 하고 이제는 습관처럼 입에 담배를 물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현성이 웃음과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러면서도 그 갑갑하고 분한 마음이 녹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에 빨간 붙이 붙자 혜주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자연스럽게 후,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연기를 내뿜는 그 모습은 마치 팜므파탈처럼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요염하기도 하고 퇴폐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동시에 어쩐지 슬퍼 보이기도 하고.

 “…누나도 무슨 일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혜주가 ‘나? 아니’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새초롬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니 때문에 그런다, 왜?!’ 하고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현성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할 말을 잊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 짓고 말았다.

 “니는 내한테 맨날 돈 줘야 된다. 내 보고 맨날 웃잖아. 맨날 울상 짓다가도.”

 도도한 얼굴로 혜주가 손바닥을 내밀자 현성이 어색한 모습으로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라도 정말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그 눈빛에 괜히 혜주가 기분이 좋아져 치,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녀에게 사온 머리 끈이라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던 현성이 ‘안 주면 따로 쓸 일도 없을 테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건네주자. 머릿속으로 연습했던 것처럼 해야겠다’ 생각하며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잘 전해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일까? 고작해야 이천 원짜리 머리 끈인데 말이다.

 이내 그가 ‘저기…’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거… 오다 주웠심다.”

 어색한 얼굴로 혜주의 손바닥 위에 머리 끈 묶음을 올리고 도망치듯이 현성이 걸음을 옮기자 그녀가 ‘응?’ 하고 손바닥 위를 바라보다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나던 현성이 그 웃음소리에 ‘주지 말 걸 그랬나’ 하고 우울한 기분에 우울함이 더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찰나…

 “내한테 지금 주워온 거 주는 거가?! 바보야!”

 기분 좋은 혜주의 목소리에 그가 ‘예? 그런 건 아닌데…’ 하고 걸음을 멈췄다.

 어정쩡하게 멈춰 서서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에 혜주가 자꾸만 입꼬리가 쭉 올라가는 걸 꾹 참으며 도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니… 이런 걸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라. 알겠제?”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가 이야기하자 현성이 빨개진 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록달록하게 사왔네.”

 자꾸만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그냥… 어제 필요한 거 같아서…’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의외로 세심한 그 모습에 혜주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쓰께.”

 그 말에 현성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럼… 지는 범수 형 좀 도우러 가보께예’ 하고 수줍은 듯 자리를 떴다.

 혜주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계속 웃음 지었다.

 “하여튼 경상도 므시마들… 맨날 다 주워왔다 칸다. 그카면 좋아하는 줄 아나.”

 쯧, 하고 고개를 흔들며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그게 화려한 언변이나 다른 말들보단 훨씬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혜주가 후후, 웃으며 아직 반이나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열 개의 머리 끈 중 가장 좋아하는 빨간색 끈을 꺼내서 손목에 끼우곤 걸음을 옮겼다.

 값비싼 선물들은 많이 받아왔지만 정말로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 선물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았다.

 대부분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게 아니면 그녀와 조금 더 원활한 잠자리를 가지기 위해 환심을 사려 하는 것일 뿐.

 그들과는 다른 순박한 그의 선물에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빨간색 팔찌 같은 머리 끈을 바라봤다. 그러곤 자신도 순수해질 것 같단 생각에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옛날 생각나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로 인해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것을… 그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른 봄이 찾아온 것처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 덕분일까?

 혜주가 문득 현성 역시 기분이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앞으론 그도 이렇게 매일매일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에겐 전혀 티 내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혜주의 팔에 끼워진 빨간 머리 끈을 본 순간 현성이 범수와 함께 테이블을 정리하다 말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녀를 보면 행복해졌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이야기 하나 나누지 않아도 말이다.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몰라도 어렴풋이 남들이 말하는 첫사랑이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가슴을 두드린 순간 현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그는 그저 같이 일하는 동생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텐데 그런 마음을 품게 된다면… 아마 멀어지게 될 테고 지금처럼 지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도 그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너무 앞서가는 생각일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쓰라린 생각들은 대체로 현실성 있는 것들이었다.

 현성이 그저 담담한 웃음과 함께 ‘더는 오버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동안 범수가 ‘갑자기 왜 그래 웃노?’ 하고 물음을 던졌다.

 “닌 맨날 혜주 누나 지나가면 좋아하드라.”

 “예, 예? 아니라예, 그냥… 웃긴 게 생각나서…….”

 깜짝 놀라 고개를 흔드는 그를 보며 범수가 ‘그게 뭔데?’ 하고 연이어 물음을 던졌다.

 그 말에 현성이 ‘아무것도 아닙니더!’ 하고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옆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 거짓말 못 한다.”

 그 모습에 범수가 후후, 웃음 지었다. 그러곤 이내 아가씨에게 마음을 품은 웨이터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단 사실을 떠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혜주가 성격 좋은 누님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그녀는 결코 잘될 수 없는 사이였다.

 스무 살도 아니고 스물일곱 살이나 된 아가씨가 그를 선택할 리는 없으니까.

 “누나가 잘… 하겠지?”

 아마 그녀 역시 현성을 그렇게 싫어하진 않으니 마무리를 잘해줄 거라 생각하며 범수가 오픈을 준비했다.

 그동안 슬슬 웨이터들이 와서 오픈을 돕기 시작했고 곧 아가씨들도 속속들이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연말 기운이 빠진 주점은 오픈을 하고도 무척이나 한산했다. 범수와 현성뿐 아니라 다른 웨이터들도 오늘은 들어올 생각을 안 하네,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가게 안으로 누군가가 걸음을 내딛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눈치 빠른 덕기가 재빨리 걸음을 옮겨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동안 현성은 자연스럽게 주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주방에서 일하는 이모들이 그의 등장에 ‘손님 왔어?’ 하고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김 사장님이라도 오셨나?”

 이모들도 일이 없다가 손님이 들어오자 반가운 듯 물음을 던졌다.

 그 말에 현성이 ‘누군지는 안 보고 왔어요’ 하고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자 이모들이 ‘하기사…’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그를 무서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현성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덕기가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향해 다가왔다.

 “현성아.”

 그저 인사만 하고 지내는 사이일 뿐, 그렇게 가깝지 않은 또 다른 동갑내기 덕기의 부름에 현성이 ‘왜?’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덕기가 참 이상한 일 다 보겠다는 듯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이 니 찾는데?”

 그 순간 현성이 움찔하고 멈춰 섰다.

 “…혹시 금마, 키 내만 하고 잘생기고… 서울말 쓰더나?”

 그의 말에 덕기가 ‘아는 놈이가?’ 하고 물음을 던졌다.

 이내 현성이 입술을 잘끈 깨물고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긴 몰라도 미친놈일 거라.”

 그리고 그 미친놈이 여기는 왜 와서, 왜 자신을 찾는지 그 이유는 몰라도 그게 오늘 아주 좋은 일만은 아닐 것 같았다.

 매일이 고행처럼 힘들었지만 오늘은 경험해 본 나날들 중 가장 더럽고, 치졸한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단 불안감이 현성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자신이 무얼 잘못했기에 이다지도 신경을 긁어내리는 것인지 알 수도 없어 갑갑하단 생각에 현성이 막막한 한숨을 내쉬며 민욱이 손님으로 들어온 2번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 고개를 숙인 채 그를 향해 ‘안녕, 친구야!’ 하고 얄미운 얼굴로 그가 인사를 건넸다.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리는 음성이 짜증을 불러일으켰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천천히 현성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내가 서울에서만 쭉 살다 보니까 여긴 친구가 없잖아. 그래서 술친구나 좀 해 달라고 너 불렀지. 괜찮지? 내가 팁 잘 줄게. 내가 집도 잘 살거든!”

 그의 곁에 빨간색 머리 끈을 팔찌처럼 낀 혜주가 보였다.

 그 순간 뭐라 해야 할지 모를 더러운 기분이 그의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녀를 이끌고 밖으로 나서고 싶단 알 수 없는 충동이 물밀 듯이 밀려왔으나… 참는 게 이기는 것, 그것이 그들의 업이었다.

 결국 참고 지나가면 아무리 민욱이 그를 괴롭히고 싶어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잔뜩 굳은 얼굴로 현성이 ‘일하는 중이라서요’ 하고 고개를 흔들자 민욱이 ‘진짜 서운하게 하네!’ 하고 혜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꿈틀하고 움직이는 그의 눈썹에 민욱이 ‘어?’ 하고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뭔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그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현성의 모습이 이상하단 생각에 걱정 가득한 눈빛을 한 혜주가 ‘왜 저러지?’ 하고 그와 민욱을 번갈아 바라보는 동안 민욱이 그녀를 바라보며 끈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면 나는 이 예쁜 대구 누나랑 같이 술 좀 마셔야겠네. 누나, 나 이제 스무 살 먹은 영계니까 예쁘게 봐줘요.”

 잘생긴 외모에, 애교 가득한 목소리가 나오자 다른 아가씨들이 ‘서울말, 닭살~’ 하고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좋아했다.

 “…영계 같이는 안 보이는데.”

 그러는 와중에 혜주가 불편한 기색의 현성을 힐끔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자 민욱이 ‘나랑 쟤랑 동갑이에요’ 하고 씩, 웃으며 다정하게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다음 보란 듯이 자신을 힐끔 바라보는 민욱의 눈빛에 현성이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이야기했다.

 “시키실 거 없으면 가볼게예.”

 그 목소리에 민욱이 ‘어~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를게, 친구야!’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람 속 뒤집는 방법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그의 말에 현성은 알 수 없는 화가 자꾸만 치밀어 올라 차갑게 뒤돌아서서 룸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또다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혜주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 눈빛이 더욱더 그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왠지 모르게 숨이 막힐 듯,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성이 순간 걸음을 멈춰 섰다.

 그게 보잘것없는 질투심이란 것을 깨달아도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힘없는 한숨을 내쉬며 현성이 천천히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애당초 출발선이 다른 인간이었다. 키 크고, 잘생기고, 머리 좋고, 집안까지도 완벽한.

 아마 그런 사람이 혜주 같은 사람에겐 더 잘 어울릴 거란 생각에 그가 ‘당연한 걸…’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뭘 바라는데, 빙신 새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자격지심과 자괴감에 그가 한숨을 내쉬며 우울하게 벽에 기대섰다.

 헛된 기대는 사람을 괴롭게 할 뿐이다.

 현성은 맘을 다잡으며 그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억지로 웃음 짓고, 괜찮은 듯… 참아가며 근무 시간을 보냈다.

 ‘참는다. 참고 또 참는다. 그게 인생이란 것이다…’

 그 말을 되뇌며 움직이던 현성이 다시 정체가 찾아온 가게에서 더는 할 일이 없자 멍하니 벽에 기대섰다.

 ‘차라리 일이라도 많아가 몸이라도 많이 움직이면 좋을 텐데…….’

 민욱이 손님으로 온 방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덕기가 팁 장난 아니게 받았다 자랑하는 모습조차도 보기가 싫었다.

 “내 담배 좀 피고 올게요.”

 딱히 일거리도 없었고 현성이 기분도 좋아 보이지 않자 범수가 ‘그래, 그래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몰라도 2번 방 손님과 안 좋은 사이인 것 같단 대답을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도 개운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느긋하게 펴도 되겠다, 현성아.”

 그의 맘을 헤아린 형님의 말에 현성이 ‘고맙심다, 행님’ 하고 꾸벅 고개를 숙이곤 늘상 담배 피우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품에 넣어둔 담배를 꺼내보니 어느샌가 반절이 넘게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좋았던 기분이 이렇게나 망가질 수 있을까, 씁쓸함을 머금은 현성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마음을 연다는 건 사람을 참 나약하게 만드는 짓이다. 다신 그러지 말자.’

 스스로를 다그치며 현성이 깊이 담배 연기를 들이켰다.

 그러곤 유일한 친구가 바로 이것이란 생각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론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지 말자.

 특히 혜주에게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 사람에게 초라한 모습밖엔 보일 것이 없을 테니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미처 꺼내보기도 전에 현실을 실감한 현성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왜 이런 불쾌한 기분을 느끼고, 왜 이렇게… 주제넘게 그녀의 일에 간섭하려 하는 건지!

 그런 생각들을 말자, 하고 현성이 다시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현성아! 야! 2번 방으로 좀 와 봐! 혜주 누나랑 또 시비 붙었어!”

 다급한 덕기의 목소리에 현성이 크게 움찔하며 ‘뭐?’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던지고 재빨리 2번 방을 향해 달려갔다.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혜주가 그 자식과 왜 또 시비가 붙었나?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놈이 ‘일부러’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주먹에 꾸욱, 하고 힘이 들어갔다.

 덜컥!

 현성이 문을 열자 처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곳에는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부어오른 뺨을 하고 민욱을 노려보는 혜주와 두 팔을 걷어붙인 채 ‘뭘 꼬라봐?’ 하고 그녀를 내리깔아 보는 민욱이 보였다.

 “어, 친구야. 왔어? 니네 동네 장사 마인드가 완전 개판이다. 어디 건방지게 술집 년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대로 안 하고 자꾸 뻐팅기는지. 강남 가면 변두리나 전전해야 할 것 같은 쌍판 들고 잘난 척하네. 진짜 노는 것도 수준 떨어져서.”

 취기가 오른 듯 불그스름한 얼굴로 보란 듯이 민욱이 현성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 눈빛!

 그것은 분명히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는 눈빛이었다.

 “…니 격투기 선수라 안 캤나?”

 충격이 큰 듯 아가씨들 사이에서 부축을 받고 있는 혜주가 평소와 달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분한 듯 민욱을 노려보고만 있자 현성이 굳은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끓어오르던 화가 드디어 한계점까지 도달한 듯 그가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민욱이 씩, 웃음 지었다.

 “왜? 쳐 보려고? 친구야, 너 아직 육 개월은 조용히 지내야 한다면서? 아니, 이제 오 개월이지. 너랑 나랑 주먹 놀음하려면 장소가 딱 하나밖에 없겠다. 그렇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고야 만다. 그게 물건이 아니라, 형태가 없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이기심이 철철 묻어나는 말에 현성이 으드득, 이를 갈기 시작했다.

 “야! 경찰 불러라! 뭐, 저딴 새끼가 다 있노! 잘생겼다 잘생겼다 해줬더니 미친놈 아이가! 어떻게 여자 얼굴을!”

 혜주와 같이 민욱을 상대하던 아가씨들도 분개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당찬 혜주가 조용한 게 이상해 보였다만 그 큰 덩치가 그녀의 몸이 날아갈 정도로 세게 뺨을 때렸으니 충격이 오죽 크겠는가?

 폭도들처럼 성이 난 아가씨들의 외침에 민욱이 ‘그러시던가? 난 변호사도 있거든’ 하고 실실,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오만한 얼굴로 내리깔아 보았다.

 그 눈빛 하나하나가 현성의 몸에 흐르는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존재보다도 더 거슬리는 것은…

 “누나.”

 현성이 혜주의 곁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자 ‘괜찮다, 경찰 불러라’ 하고 억지로 눈물을 참는 듯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도 뭔가 이상하단 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자꾸만 현성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고, 그와 어떤 사이인지 꼬치꼬치 캐묻다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요구하며 손찌검까지 한 것은… 충분히 이상한 일이 틀림없다.

 평소와 다르게 힘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그의 마음에 큰불을 당기고 말았다.

 그 가녀린 체구가, 프로 선수라는 놈에게 손찌검을 당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크겠는가?

 그것도 ‘일부러’ 그랬다는 게 더 큰 화를 불러왔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그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경찰 부르지 마라.”

 그리고 천천히 민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민욱이 씩, 웃음 지었다.

 아가씨들과 덕기가 경찰을 부르려다 현성의 목소리에 ‘니, 니… 자 여서 때릴라고?!’ 하고 그건 안 된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런 그들의 말에 현성이 여기서는 그러지 않겠다는 듯 차가운 눈으로 민욱을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경찰 부르면… 점마 방송 못 나온다.”

 현성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꺼내자 덕기가 ‘그게 뭔 소리고?’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그 말을 알아들은 혜주가 ‘내 괜찮다! 그냥 경찰 부르면 된다!’ 하고 소리쳤지만 현성은 단호했다.

 방송이든, 뭐든… 자꾸만 이렇게 툭툭 치고 건드려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못살게 군다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안 됩니다.”

 그가 온몸에 뜨겁게 차오른 분노를 아낌없이 내비치며 살기등등한 눈으로 민욱을 바라보았다.

 “그카면 내가 점마 못 죽인다 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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