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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검명무명
작가 : 자우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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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강호에 발을 디뎠을 때, 세인들을 그를 검광이라 했다.
그가 무명검으로 독보천하 할 때, 세인들은 그를 검귀라 불렀다.
그가 홀연히 강호를 떠날 때, 세인들은 그를 검신, 진정한 천하제일인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흘렀다.

 
24 화
작성일 : 16-07-14 16:01     조회 : 794     추천 : 0     분량 : 9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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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귀로(歸路)(4)

 

 

 

 남궁가의 무사들은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멀쩡히 서 있는 자는 다섯도 채 되지 않았다.

 “헉, 허억, 허억.”

 양운정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들을 다만 고요한 신색으로 바라보았다. 입가에 떠오른 한 줄기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무심한 얼굴과 눈길은 남궁가의 무사들에게 더욱 큰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양운정의 내심이야 어떻든 그의 시선에 남궁가의 무사들은 점점 더 비참해지는 자신들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위력적인 초식도, 현란한 초식도 무용했다. 양운정은 그들의 검세를 타고 흐르며 코앞까지 접근해 공격했다.

 그의 간결하면서도 힘찬 몸놀림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양운정의 움직임을 살펴보자면 중간과정이 전부 생략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저 한 발자국을 내딛으려 한 것처럼 보일 뿐인데, 어느 틈에 검세를 헤집으며 코앞에 접근해 있었다.

 그들은 양운정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일류니 절정이니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고수가 아니었다. 그들의 눈이 양운정의 손으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맨손이었다.

 “자네는 도대체 누구인가?”

 “북로군 백호, 양 모라는 사람이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총관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검이 아닌 한 자루의 유엽도였다. 유려한 도신을 그리는 그의 도는 양운정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군부의 백호가 이 정도 무위라면, 천호나 대장군은 무신이겠군.”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입과는 달리 그의 두 눈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보이는 양운정의 무위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피가 끓어오르게 하였다.

 “그 수법은 무엇이라 하는가?”

 “도검탄비(盜劍彈飛).”

 “도검탄비…”

 총관은 양운정의 말을 낮게 읊조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낯선 무공이었다.

 강호상에 이런 무공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었다. 맨손으로 도검을 제압하는 공수탈백인(空手奪白刃)류의 무공은 여럿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격해 들어오는 도검(刀劍)을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양운정의 도검탄비는 이름 그대로 검까지 빼앗아 바로 날려 공세를 취하니 가히 공방 일체의 수라 할 수 있었다.

 양운정의 빈손을 노려보며 총관은 천천히 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모두 물러서라.”

 “총관!”

 “물러서라….”

 총관의 고요했던 기세가 폭발적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무사들은 총관의 낮은 목소리에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총관은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강했다.

 총관의 직을 수행하고 있으나, 그는 남궁세가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총관은 한순간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일도(一刀)다.”

 “좋을 대로.”

 양운정은 그저 무심한 얼굴로 가볍게 대꾸했다. 그런 양운정의 모습에도 총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양운정의 무위가 생각보다 훨씬 높은 것은 인정했지만, 그는 그보다도 자신의 도를 더욱 믿었다. 그의 나이 사십하고도 일곱. 어린 나이에 도를 잡아, 물경 사십여 년에 세월을 바쳐 연마한 도였다. 그는 자신의 일도를 믿었고, 그 일도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십 년 전의 그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혈세도(血洗刀) 장천(張擅).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지금은 잊힌 이름. 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일도에 아직도 악몽을 꿈꾼다.

 오로지 도법지로(刀法之路).

 그 한 가지만을 바라보며 내달린 수행자가 혈세도 장천이었다. 자신의 도법을 완성하기 위해 무수한 사투를 벌였고, 무수한 피를 보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혈세도라는 결코 영예롭지 않은 별호와 사마외도라는 질시였다. 급기야, 그에게 원한을 품거나, 그를 통해 명성을 얻으려는 자들에 의해 생사의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빈사지경의 그를 구한 것은 현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장충이었다. 그 에게 구함을 받고 자신을 낮추어 그의 밑으로 자처하여 들어간 지 어느덧 이십 년 세월이다.

 장천은 서서히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꼈다. 하루라도 연무를 게을리 한 적은 없었지만, 무려 이십 년 만의 실전이었다. 지금 그의 무위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지만, 그것이 그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높게 치켜든 도에서 낮은 울림이 토해졌다. 장천의 혼신의 내력이 그의 유엽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우웅...

 칼이 울었다.

 

 머리 높이 치켜든 그의 도세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은 다른 무사들의 기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사들은 장천의 몸이 한 순간 커져 버린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정작 장천 당사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거대한 산이 되었다면, 양운정은 형체 없는 바람이라도 되어버린 듯했다.

 분명 눈앞에 버티고 서 있건만, 당장에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장천의 투쟁심을 제압했다.

 “끼야아압!”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장천은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힘차게 일도를 내리그었다. 대기가 갈라졌다.

 장천의 유엽도의 경력에 갈라진 대기가 향한 곳에 양운정이 태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격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이장이 넘는 거리를 날아 순식간에 양운정을 노렸다. 무표정하던 양운정의 입가에 마치 가면이 깨어지듯이 한줄기 미소가 드러났다. 그대로 갈라질 듯한 양운정의 모습이 홀연 사라졌다. 그것을 목격한 장천을 비롯한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경악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불꽃이 바람에 흩날려 꺼져버리듯이.

 그들의 시야 어디에도 양운정은 없었다.

 

 장천은 등 뒤에 닿아있는 양운정의 검결지를 느꼈다. 굳어진 그의 몸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장천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건 도대체가…?”

 “괜찮은 한 수였소.”

 “사, 사술인가?”

 “사술이라니 서운한 말을 하는군.”

 “사술이 아니라면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저 빠르게 움직인 것뿐이오.”

 “빠, 빠르게?”

 양운정은 가볍게 짚은 손가락을 밀어냈다. 장천은 온 몸에서 힘이 빠진 듯 그저 앞으로 풀썩 넘어졌다.

 “초, 총관!”

 장천은 쓰러진 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고개를 돌려 양운정을 바라보았다.

 “단천, 단천도(斷天刀)는 가주님조차 피할 수는 없었는데.”

 띄엄띄엄 말을 잇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양운정의 얼굴에는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그는 다만 장천의 얼굴을 바라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장천은 극도의 심력을 소비하고, 자신의 비장의 절초가 허무하게 깨어진 충격으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가.”

 장천은 그저 멍한 눈으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양운정은 그런 총관을 무심하게 일별하고 곧 남은 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의 일은 기억하고 있겠다.”

 양운정은 나직이 통보하듯이 말했다. 묘한 힘이 실린 그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장천은 당황한 눈으로 양운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수였다. 그런데 검이 없는 그를 남궁가의 정예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가슴 속을 가득 메운 것은 절망이고 후회였다. 자신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셈이었다.

 남궁세가에서 은인을 핍박했다는 이야기가 새어나간다면 남궁세가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힘이 없었다. 오연히 우뚝 선 양운정이 그들 하나하나를 눈 속에 담아두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제는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무력한 남궁세가의 총관과 무사들을 남겨두고 양운정은 홀로 숙소로 돌아갔다. 남겨진 그들은 분루를 삼키며 장내를 정리했다.

 “으으윽….”

 “아아….”

 고통의 신음성이 울렸지만, 다행히 목숨을 잃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해 있는 동료를 수습하여 치료하는 그들의 어깨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장천은 허탈함과 좌절감에 그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양운정은 적어도, 적어도 십년 전의 남궁가주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녔다.

 세가에 지금의 상황들을 알려야 했다. 더 이상 장천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의 생각으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죄를 청하고 자비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한 사람의 명예보다 세가의 명예가 더 중요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그들은 길을 재촉했다. 양운정의 앞에는 철란이 앉아 있었다. 흩날리는 바람에 아이의 삼단 같은 검은 머리가 휘날렸다. 머리카락 끝이 코끝을 간지럽혔지만, 양운정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 역시 오랜만에 탄 말이라 그런지 즐거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마차 안에 홀로 남겨진 남궁아현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녀를 호위하는 무사 중 반 수 이상이 얼굴을 붕대로 동여 맨 상태였으나, 그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란 행렬에서 자신만이 내쳐진 듯한, 버림받은 듯한 기분이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탁한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라고는 없었다. 원래 무심했던 얼굴이지만, 지금은 아예 사람의 얼굴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치 인형의 얼굴처럼 생기 없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챙겨 줄 사람도 없었다. 호위무사들과 총관 역시, 전 날 양운정으로부터 받은 충격으로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고, 란이는 양운정이 보란 듯이 데리고 가버린 것이었다.

 그저 손에 든 장검을 꼭 움켜쥘 따름이었다.

 

 철란은 양운정의 품속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주변에서 말을 달리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다수가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는 그들은 아이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기에 급급했다. 그들의 붕대 속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황급히 눈을 돌리자, 철란은 뚱한 얼굴이 되어서 양운정을 올려다보았다.

 “아저씨가 그랬죠.”

 “응? 뭐가?”

 “저기 아저씨들이오.”

 “음, 자기들이 먼저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

 “정말이에요?”

 철란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양운정을 추궁했지만, 양운정은 그저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런데 남궁언니는 왜 그러지? 아저씨 언니한테 뭐라고 했어요?”

 “...응?”

 “아까, 마차에 타려고 할 때, 아저씨가 말에 태웠잖아요. 그때 남궁 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단 말이에요. 언니한테 뭐라고 했지요? 그쵸?”

 “응.”

 “뭐라고 했는데요?”

 철란은 정말 궁금한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바싹 내밀었다. 그 시선이 자못 부담스러웠는지, 양운정은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지나가듯이 입을 열었다.

 “란이야, 아저씨는 남궁 소저가……. 그러니까 싫단다.”

 “예?”

 느닷없는 양운정의 말을 아무것도 모르는 란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란이는 남궁언니가 좋은 걸요.”

 “어디가?”

 “멋있고, 예쁘고, 똑똑하고…….”

 예쁘다는 말에 양운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것만큼은 그 로서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 예쁘긴 참 예쁘지.”

 “게다가 마음도 얼마나 착하고, 따뜻한데요.”

 따뜻하다는 표현에 양운정은 빤히 아이의 두 눈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어디가?'라고 묻고 있는 듯했다.

 “에이, 참. 언니가 매우 서툴러서 그래요. 하지만 가슴이 참 따뜻하고, 착한 언니예요!”

 철란은 단정 짓듯이 못을 박았다.

 “아저씨는 자기 부인이었다면서, 그런 것도 몰랐어요? 나는 아저씨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숨길 생각이에요?”

 철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양운정을 몰아세웠다.

 양운정은 난처한 미소를 흘리며 계속해서 아이의 시선을 피하느라, 이리 저리 고개를 돌렸다.

 “조만간에 밝혀야겠지.”

 양운정은 꽤나 심각한 철란의 추궁에도 그저 시선을 피하며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대꾸했다.

 “그리고 언니는 아저씨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

 “응?”

 양운정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저 하고 있을 때, 얼마나 이것저것 캐물었는데요. 아저씨 이름 빼고는 상관없죠?”

 “뭐……. 그렇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양운정의 얼굴은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양운정의 표정이나 속내가 어떻든 아이의 미소는 그보다 강력했다.

 “남궁 소저가 그리 좋으니?”

 “예.”

 “알았다. 하지만 너무 가까워지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저씨도 참. 그나저나 진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

 양운정은 철란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두 눈을 감을 따름이었다.

 

 잠시 말을 쉬게 할 참에, 철란은 다시 남궁아현의 마차로 돌아갔다. 남궁아현은 그제야 멍한 기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가 돌아오자, 그나마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언니, 괜찮아요? 어제 아저씨가 너무했다고 대신 사과해 달라고 했어요.”

 양운정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건만, 아이의 한마디에 남궁아현의 얼굴에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눈치 채지 못 했을 미미한 변화였지만, 예리한 철란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부터는 줄곧 극히 미비하게 움직이는 남궁아현의 표정을 관찰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눠온 터였다.

 가족들조차 쉬이 읽어내지 못하는 남궁아현의 냉면(冷面)을 겨우 며칠로 란이가 읽어낼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이번의 변화는 그만큼 극적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표시도 나지 않을 만큼 미약했지만, 목소리의 떨림까지도 냉큼 눈치 챘다. 곧 철란은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아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의 두 사람의 대화는 주로 철란이 떠들고 남궁아현이 무뚝뚝한 얼굴로 맞장구를 쳐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은 않고, 음충맞은 미소를 띠고 있다. 남궁아현은 그런 철란의 모습에 잠시 어깨를 들썩였다. 어째 오한이 이는 듯했다.

 “흠흠. 근데 언니는 우리 아저씨 어디가 좋아요?”

 직설적이다 못해 후벼 파는 질문이었다.

 “무, 무슨 소리야. 누, 누가.”

 이제는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남궁아현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녀의 귓불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 그럼 싫어하는구나.”

 “아니야!”

 저도 모르게 외친 남궁아현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남궁아현은 빠르게 좌우를 둘러보았다. 마차는 완벽하게 방음이 되게 설계되어 있어 바깥의 무사들이나 양운정에게 들릴 리 없었다.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기분에 남궁아현의 얼굴이 완전히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흐으음, 그렇구나.”

 “마, 말하지 마. 란아.”

 “예.”

 놀리듯이 빙글빙글 웃는 모습에 남궁아현은 당황하며 재차 강조했다.

 “마, 말하면 절대 안 돼!”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진짜 우리 아저씨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게 자, 잘 모르겠어.”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도란도란 끝날 줄을 몰랐다.

 

 달빛이 비치는 작은 정원이었다. 거대한 대장군의 규모에 비하자면 정말로 작은 규모였다.

 파르라한 달빛이 물들인 정원의 한 거석에는 두 사내가 나란히 걸터앉아있었다. 힘든 일이 있었던 듯이 지친 얼굴의 그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양가쌍호(楊家雙虎), 비록 무림에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곳 북경의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호랑이는 간곳없고 그저 막막함에 한숨짓는 나약한 두 사내가 앉아있을 뿐이었다.

 “정말 어찌하면 좋을지…. 부모님도 걱정이지만, 제수씨의 얼굴은 또 어떻게 봐야 할지….”

 양한정의 한숨짓는 말에 양무정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한숨밖에는 나올 것이 없었다.

 “운정, 그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무리와 어울렸을까. 형님, 그 제천회란 무리에 대한 조사는 어찌 되었습니까?”

 “알 수가 없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다. 개방이나 하오문도들에게까지 손을 넣어보았지만….”

 무겁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답답함이 가득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선에 손을 써보았건만, 돌아온 것은 알 수 없다는 전문뿐이었다.

 6년 전 양운정은 결혼 이후, 외부생활을 모두 끊었다. 일체의 외출이 없었던 양운정이었다. 그리고 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불과 몇 십일, 도대체 언제 제천회와 같은 무리와 접촉할 수 있었단 말인가.

 저물어가는 달을 바라보며, 두 형제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제수씨가 처가에서 출발한 지 십 수일, 얼마 후면 도착하겠더구나.”

 먼저 정적을 깬 것은 양한정이었다. 그의 말에 양무정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 벌어지고 바로 다음날 출발했다지. 무슨 뜻이겠느냐?”

 “남궁세가에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입니다. 부모님께서 충격이 크시겠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말끝을 흐리며 두 형제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새삼 양운정이 원망스러웠다. 무엇이 그 아이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이 또 얼마나 충격을 받으실지, 어쩌면 대장군부의 이름을 내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령아에게서도 전서가 왔습니다. 며칠 전 무림맹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 아이도 많이 힘들어하겠구나.”

 “어린 시절 주로 령아와 놀아준 것은 운정이었으니까요.”

 “그랬지. 그랬었지.”

 어린 시절을 추억이라도 하려는 듯이 잠시간 정적이 두 형제 사이에서 흘렀다.

 “잠깐, 그러고 보니. 운정 그 녀석이 어떻게 사돈어른을 암습 할 수 있었던 걸까? 사돈어른을 암습 할 정도라면 적어도 우리 이상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냐?”

 양한정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껏 양운정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에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어떻게 양운정이 남궁장충과 같은 절세고수에게 암격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양무정 역시 깜짝 놀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양운정이 무공에 관하여 익힌 것이라고는 어린 시절 건강을 위해 배운 바 있는 기초 운기법뿐이었다.

 양운정은 그 외에 양가의 양가창법(楊家槍法)이나, 연운십팔타(連運十八打)와 같은 무공을 익힌 바가 없었다. 군문에서 백호장이라는 위치에까지 올랐으니, 적어도 몇 가지 기본적인 무기나, 권각술 정도야 익혔겠지만, 어디 그런 것으로 남궁장충을 암습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도 제천회란 무리와 연관이 있겠지요, 운정이가 집에서 익힌 것이라고는 선생의 운기토납법 하나 뿐인 것을요. 아마도, 그들에게 어떤 강호의 기학을 전수받았다면….”

 “그렇다는 얘기는 군에 있을 때에 이미 제천회와 접촉했다고밖에 볼 수 없겠군…….”

 “북로군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겠습니다만, 당장은 무리입니다.”

 지금처럼 어수선한 이때에 섣불리 북로군을 조사한다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북로군은 군내에서도 입김이 거센 곳으로 유명했다. 아무리 대장군부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손은 써보아야겠지….”

 “그 일은 직접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일은 타인의 손을 빌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럼?”

 “제수씨가 돌아오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주겠느냐?”

 “예.”

 양무정은 선뜻 나섰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북로군이었다. 북로군을 조사한다는 것은 대명군부 내부의 일이었다. 군문의 공무로서 조사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이것은 대장군부라고 하기 보다는 한 가문인 양가로서 행하는 조사였다. 이런 일에 외인에 손을 빌리거나, 공권으로 행할 수는 없었다.

 양한정은 양무정의 얼굴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일찍부터 뛰어난 무재(武材)로 양가제일창이란 이름을 얻은 양무정이었다. 하지만 본래 다툼을 싫어하고 세류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하기에 무(武)보다는 문(文)으로 입신한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을 풍진강호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다른 방책이 보이지 않았다. 시름만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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