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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검명무명
작가 : 자우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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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강호에 발을 디뎠을 때, 세인들을 그를 검광이라 했다.
그가 무명검으로 독보천하 할 때, 세인들은 그를 검귀라 불렀다.
그가 홀연히 강호를 떠날 때, 세인들은 그를 검신, 진정한 천하제일인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흘렀다.

 
20 화
작성일 : 16-07-14 15:59     조회 : 565     추천 : 0     분량 : 9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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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남궁세가, 그리고 분노.(2)

 

 

 

 남궁장충은 편치 않은 심정으로 천천히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두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의 모습에 그는 곧 불편한 심정을 떨쳐버렸다. 그들은 기쁜 얼굴로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다가왔다.

 남궁장충은 그들의 모습에 잠시나마 마음을 놓고,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며, 손에 든 진천검을 남궁창에게 맡겼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손에서 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나의 싸늘한 예기가 그의 복부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다급히 허리를 비틀어 피하려 했지만, 섬뜩한 울림과 더불어서 극통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크윽!”

 하지만 상처보다 더 시급한 것은 바로 독이었다. 찰나임에도 독기가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위의 독수는 그로써 끝나지는 않았다. 독비를 남궁장충의 허리에 찔러 넣기가 무섭게 남궁아현의 목 줄기를 움켜쥔 것이었다.

 남궁아현 역시 여중제일고수로 손꼽히는 몸이었다. 그런 그녀라도 눈앞에서 부친이 독수를 당한 사태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공이라고는 전혀 몰랐던 그녀의 남편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일이 전혀 안중에도 없던 인물의 손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암수는 일류고수에 버금갔다. 그녀 또한 경황 중에도 손을 쓰려 했지만, 그의 손이 더 빨랐다.

 “컥!”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움켜쥔 가짜 양운정은 냉큼 비무대 위로 몸을 날렸다.

 비무대 위에 있던 백무대원들이 일제히 양운정과 남궁아현을 감쌌다.

 “후하하하!”

 가짜 양운정은 호탕하게 웃으며 한쪽 손을 번쩍 들자, 관중들 사이에서 장포로 모습을 숨긴 자들, 수백이 달려나왔다. 그들은 걸친 장포를 벗어던지며 비무대와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포위했다. 백무대와 다를 것 없는 백의에 백면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붉은 글씨로 살(殺)자가 그려져 있었다.

 

 남궁장현의 눈 속 깊은 곳에서 한줄기 광채가 지나갔다. 그가 교로부터 지원받은 백살대(白殺隊)였다.

 일회주에게는 흑살대가 있듯이 그에게는 백살대가 있었다. 살기 넘치는 백살대의 등장으로 관중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그들은 아직 검을 뽑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들이 풍기는 기세는 이곳에 모인 어중이떠중이들이 함부로 설쳐댈 수준이 아니었다.

 

 “이, 이놈들이!”

 남궁장충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이 비틀거리며 남궁창에게서 진천검을 움켜쥐었다.

 “아버님! 안됩니다!”

 남궁창과 승은 급하게 남궁장충을 만류했다. 이대로라면 남궁장충은 검을 펼쳐 보이기도 전에 독기가 퍼져 죽음에 이를지도 몰랐다.

 “형님을 뒤로 모셔라!”

 “장현아!”

 “형님! 아현이는 제가 구해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독기를 몰아내십시오!”

 '쉽지는 않을 테지만 말입니다. 크흐흣!'

 결연한 표정으로 남궁장충을 설득하는 남궁장현은 속으로는 음흉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으음, 부, 부탁한다.”

 파리하진 안색으로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뒤로 물러선 남궁장충은 지체할 사이 없이 바로 운공에 들어가 내력으로 독기를 억제하기 시작했다.

 남궁창과 승은 전혀 의외의 사태에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평소 매형인 양운정에 대한 가족들의 대우가 어떠했는지 그들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매형이 이런 식으로 흉적들과 결탁하여 처가에 흉계를 펼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세가에서 팽소옥이 달려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소옥아, 승이와 함께 아버님의 호법을 부탁한다!”

 “아, 알았어!”

 남궁승은 남궁창을 따르고 싶었지만, 단호한 형의 얼굴에 군말 없이 남궁장충의 호법을 섰다.

 남궁창은 앞으로 나아가 숙부인 남궁장현의 옆에 섰다. 남궁장현이 흘깃거렸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남궁아현은 자신의 목을 움켜쥔 가짜 양운정의 얼굴을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눈에서 살기가 폭출 했지만, 맥문을 제압당하여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내 지금껏 네년을 가까이 두고도 독수공방하느라 아주 힘들었단다. 클클클...”

 가짜는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그녀를 희롱했다.

 그녀의 얼굴은 수치심과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당장에라도 이놈을 쳐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심정은 고스란히 살기가 되어 뿌려졌지만, 가짜는 그저 징그러운 음소를 흘리며 그녀를 희롱할 따름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남궁세가의 모든 사람은 분노를 키웠지만, 정작 그 분노를 터뜨린 것은 그들로서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양운정이 아차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일련의 사건이 끝난 다음이었다. 그는 가짜에 제압당해 맥없이 비무대 위로 끌려 올라가는 남궁아현의 모습을 보았다.

 “윽!”

 가슴 한쪽을 울리는 통증에 양운정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건….”

 느닷없는 통증에 잠시 당황한 양운정이었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만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양운정은 한번 숨을 몰아쉬고는 빠르게 장내를 살폈다.

 남궁가주는 뒤로 물러나 운공에 들어갔고, 어디선가 등장한 또 다른 백의인들이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양운정은 비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 위에는 수십 인의 백무대원에게 둘러싸인 남궁아현과 가짜의 모습을 포착했다.

 가짜는 남궁아현의 차갑지만, 고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벼대며 희롱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도한 양운정은 순간 휩싸이는 낯선 살심을 확연히 느꼈다.

 그것은 어딘가 남겨져 있던 양운정의 감정 중 가장 커다란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로 남궁아현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정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양운정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좋아, 늦기 전에 나서주지.”

 중얼거림이 흩어질 새, 양운정은 가볍게 움직였다. 혼란한 인파 사이에 몸을 감춘 양운정은 찰나의 순간 백의인들을 타고 넘으며 한순간에 비무대로 몸을 날렸다. 풍운비와 천둔보가 동시에 펼쳐진 것이었다.

 이것은 본래 몸의 주인인 양운정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철검이 일점을 관통했다.

 

 “크억!”

 가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목덜미를 파고든 한 자루의 검. 교묘하게 핏줄과 성대의 사이를 휘저으며 목을 꿰뚫었다.

 “허, 허허….”

 온몸이 떨려오며 죽음이라는 것이 선명하게 눈앞에 다가왔다. 순식간에 관중 사이에서 튀어나온 한 사내. 흑의를 걸친 그는 백무, 백살대 살귀들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을 꽂은 것이다.

 신출귀몰, 딱 그대로였다.

 남궁아현은 돌연 그녀의 맥문을 움켜잡았던 가짜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빠르게 빠져나왔다.

 “헉!”

 등을 돌린 그녀가 본 것은 새파랗게 죽어있는 가짜의 얼굴과 그 목에 한 자루 검을 꽂은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가짜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검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흑의를 걸친 사내였다. 꽤 준수한 얼굴이었다. 전체적으로 남자치고는 선이 얇은 편이었지만, 한쪽 눈가에 그어진 검상은 그를 강인하고 냉철한 인상으로 만들어주었다. 사내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남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내는 어딘가 낯이 익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지금의 남궁아현은 기억을 더듬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차합!”

 남궁아현은 돌연 힘차게 손을 뻗어 장력을 뿜었다. 눈앞의 이자를 당장에 쳐 죽이지 않고서는 타오르는 살심을 달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천풍장(天風掌)이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가짜는 도리 없이 거센 장력에 휩쓸렸다.

 “커헉!”

 장력에 밀려나며 가짜의 목덜미는 참혹하게 뜯기고 말았다. 남궁아현의 천풍장에 나동그라진 가짜 양운정은 목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며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양운정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할 말이 없었다. 살심은 이해했지만, 가짜에게 듣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분노에 달아오른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양운정은 그것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녀의 모습에 가슴 한켠이 아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다. 양운정은 아울러 불편한 심정에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가짜 양운정이 죽음을 맞이하고 장내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어디선가 훌쩍 나타난 흑의 인과 지금도 피를 토해내며 쓰러져 있는 흉수.

 하지만 이 정적은 남궁장현의 우렁찬 목소리에 깨어졌다.

 “지금이다! 쳐라!”

 용기백배한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용맹스럽게 검을 뽑고 백의인들 백무대와 백살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궁장현의 얼굴은 이제 숨길 수 없는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속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백의인들에게 저만큼 분노하고 있었구나 했겠지만, 실상 그의 분노는 저 비무대 위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정체불명의 흑의인에게 가 닿았다.

 '도대체, 뭐냐 저놈은! 앞으로 단 일보에 불과 했거늘!'

 타오르는 분노로 남궁장현은 이성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백의인들을 전부 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죽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복잡한 계산 와중에 그에 눈에 들어온 것은 그를 더욱 미치게 하였다.

 

 양운정은 백의인들의 도주로를 완벽히 차단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의 검으로 벌어진 하나의 살인에 착잡한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여기 백의인들을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양운정은 십보검을 펼치며 백의인들을 하나하나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남궁창이 힘차게 검을 펼쳐 백의인들을 격살하며 다가왔다.

 “양 백호님!”

 “아, 남궁공자.”

 “또다시 대은을 입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감동으로 뒤덮여 있었다. 양운정은 그런 남궁창의 모습에 실소하며 말했다.

 “그런 말은 나중에 합시다.”

 “예!”

 양운정의 말에 남궁창은 힘차게 대답하고는 그만큼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으드득!”

 남궁장현은 이를 부득 갈았다. 저 망할 놈의 흑의인이 양 백호란 놈이었단 말인가, 이제는 대사까지 망치다니….

 남궁장현은 가까스로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참아내며 신경질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양 백호라는 놈 때문에 백의인들은 도주도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가짜 양운정으로 하여금, 형님인 남궁장충을 암습하고 질녀인 남궁아현을 제압하여 인질로 하면, 자신은 분루(憤淚)를 삼키며, 세가를 위해 조카 중 가장 아끼는 질녀를 포기하는 불쌍한 숙부를 적당히 연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백의인들은 적당히 싸우는 척하다가 도주를 하고, 자신은 형님이 위독하다는 핑계로 추적을 미루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시가주직에 올라 세가를 장악하고, 아울러 사위가 장인인 형님을 암습했다는 것을 핑계로 대장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남궁장충이 당한 독은 일반적인 독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로부터 건네받은 특별한 독이었다.

 주독(呪毒)이라 불리는 이 독은 설사 독의 조종이라는 사천당가로서 해독할 수 없는 독이었다. 수백 종의 독초와 독물들로부터 채취한 독을 사이한 주술로써 가공한 독으로 해독이란 존재하지도 않았다. 용케 남궁장충이 독기를 몰아낸다 하여도 독에 걸린 저주는 남궁장충의 몸을 갈아먹을 터였다. 그리고 자신은 정식으로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고, 제천회와 교와 함께 천하를 논할 터였다. 하지만……. 대계는 위천이계는 깨어졌다.

 

 “크아악!”

 남궁장현의 검은 수십 인의 피를 먹어가며 요요로운 혈광을 내뿜었다. 이미 백의이대의 활용가치는 떨어졌다.

 잠시 잠깐의 머뭇거림으로 백의이대가 입은 타격은 너무나 컸다.

 그래도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버티어 낼 줄은 알았건만, 분노한 남궁가의 검은 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이미 상당수가 죽임을 당하거나 전투불능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아직 격렬히 반항하며 도주를 시도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남궁장현에게 그들은 더 이상 활용할 수 있는 패가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그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는 위험요소였다.

 그들의 입을 자칫 잘못 놀리면, 그가 지금껏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몰랐다.

 “다! 다 죽여 버려라! 남궁세가의 분노를 보여주어라! 포로 따위는 필요 없다!”

 제압당해 무릎을 꿇은 백의인을 비롯해 물경 삼백에 가까운 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의 잔혹한 행사로 남궁세가는 과연 천하제일세가라는 인식과 더불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세가라는 인식을 강호인들의 뇌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것은?”

 양운정의 손에 들린 것은 한 장의 인피면구였다. 널브러져 있던 가짜의 얼굴에서 벗겨 낸 가면이었다. 흡사 자신의 얼굴에서 벗겨 낸 것처럼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가면을 벗은 자의 얼굴은 양운정으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의 곁으로 남궁창과 남궁아현이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 올라있었는데, 격전의 흥분이 아직 남아있는 듯했다.

 “양 백호님!”

 “아, 남궁 공자.”

 “정말, 또다시 크나큰 대은을 입었습니다. 누님, 이분이 전날 저희를 도와주셨던 양 백호님이십니다.”

 “동생에 이어, 저까지…. 구명지은의 대은에 감사드립니다.”

 남궁아현은 정중히 머리 숙여 양운정에게 인사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에 양운정은 슬며시 그녀의 인사를 피하며 말을 돌렸다.

 “그보다도, 이자가 누군지 아시오?”

 양운정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가짜의 시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손에 들린 인피면구를 본 남궁아현과 남궁창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혀가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양운정은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표정의 변화가 드물었던 남궁아현의 얼굴이 달라질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양운정은 문득 이들이 어찌 처신할지가 궁금했다. 순간, 그의 입가에 새겨진 작은 미소는 왠지 음흉해 보이기까지 했다.

 

 양운정은 남궁세가의 한 객방에서 철란을 돌보고 있었다. 꽤나 신경을 쓴 듯이 넓은 실내에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보기 좋게 배열되어 있었다. 양운정은 침상 위에 걸터앉아 이제야 지쳐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마냥 바라보았다.

 철란의 머리맡에는 정신적인 안정을 돕는다는 향을 피워놓았다. 남궁창의 세심한 배려였다.

 철란에 대한 걱정으로 바로 객잔으로 돌아가려던 양운정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 남궁형제들이었다. 아무리 세가에 큰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은인을 이리 대할 수 없다며 그를 잡은 것이었다.

 양운정이 미처 거절할 새도 없이 남궁창과 남궁승이 나서서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남궁승이 직접 객잔으로 가서 철란을 데려오고, 남궁창은 양운정을 간절할 정도로 붙잡고 있었다.

 양운정은 순식간에 철란을 데려오고, 방을 준비하는 남궁형제의 발 빠른 모습에 도리없이 남궁세가 머물렀다.

 

 혼절에서 깨어나 있던 철란은 양운정의 부재에 공포에 떨며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객잔의 주인과 점원들이 그녀를 달래고 있는 와중에 남궁승이 그녀를 데리러 왔으니, 그들은 한숨을 돌릴 따름이었다.

 남궁승은 또한 철란을 설득하여 데려가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겪어야 했다.

 겨우겨우 달래어 손을 잡고 남궁세가로 향하자, 아이는 양운정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울음을 터뜨리며 품으로 달려들었다. 양운정은 그런 철란의 모습에 난감하여서, 그저 머리만 쓰다듬어 주며, 달래고 또 달랠 뿐이었다.

 양운정은 아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해는 이미 저물었고, 커다란 달이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양운정은 발걸음을 옮겼다. 의기천세라 쓰인 커다란 편액이 눈에 띄는 커다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양운정이 가까이 다가가니,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듯,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그들의 우환거리 중 하나 정도는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건물 가까이 다가갔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 행세를 하던 자가 가짜임을 알게 되었으니, 자신에 대한 그들의 우환이 적지 않을 듯했다. 굳이, 처가가 되는 곳에서까지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마음에 의사청에 다가갔다.

 남궁형제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배려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고민하건 말건 개의치 않았을 터였다. 그때, 의사청에서 들려온 큰 목소리가 그의 움직임을 붙잡았다.

 

 “그럼, 이대로 양운정이가 가짜였다고 대장군부에 통보를 하자는 말이오? 지금!”

 남궁장현은 탁자를 내려치며 거칠게 외쳤다. 흥분한 듯이 붉어진 얼굴을 한 남궁장현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태파악이 아니 되오? 진짜 사위는 보나 마나 저 제천회의 무리에게 화를 입은 것이 분명하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 남궁세가 때문일 터, 대장군부에서 조용히 넘어갈 것 같소! 본가의 책임을 피하지 못한다, 이 말이외다!”

 남궁장현의 말에 남궁세가의 중진들은 할 말을 잃었다.

 “허면, 어쩌자는 말씀입니까.”

 “어차피 마음에 차지도 않던 사위 아니었소. 아현이에게도, 세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생각합시다.”

 남궁장현은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시체가 진짜 사위가 되면 될 일이오.”

 “!”

 

 남궁세가의 회의 중 남궁아현과 양운정에 관한 일은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남궁아현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엿볼 수가 없었다. 죽은 가짜 양운정을 가짜라고 알리지 않고, 오히려 당신의 아들 손에 가주가 피습을 당했다며, 파혼과 피해를 보상하라고 한다니, 이것이 천하제일가라는 곳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세가의 가훈으로 쓰여 있는 의검천세(義劍千歲)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가주가 부상으로 쓰러져, 임시가주를 맡고 있던 남궁장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맙소사,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말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그나마 남궁아현 마저 한마디 말조차 없었으니, 이는 대장군부를 상대로 사기를 치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들은 누군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누군가가 절대로 이 말을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리라.

 

 회의가 끝나고 남궁아현만이 마지막까지 의사청의 한 곳에 앉아있었다.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의 얼굴은 변함없으되 눈빛만은 수시로 변하고 있었다.

 남궁아현은 양가장에 있을 시부모님이나 시댁 식구들의 생각에 잠시 눈빛이 흐려졌지만, 곧 제 색을 회복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 했던 결혼이었다. 물론, 태중혼약이라는 약정에 묶여 있긴 했어도, 그보다는 가문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이 그 무엇보다 컸던 남궁아현이었다.

 항상 그녀를 안쓰럽게 여기는 식구들의 눈은 익히 깨닫고 있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가문에는 이득이 될 것이고, 자신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기회가 될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 자신을 구했던 검사를 떠올렸다. 그의 듬직한 팔과 아름답기까지 한 검세를….

 '내가 무슨 생각을….'

 그녀는 곧 상념을 떨쳐버리고 의사청을 나섰다. 왠지 얼굴이 붉어짐을 느낀 그녀였지만, 실상 보기에는 변화가 없었다.

 

 양운정은 회의 벌어지고 있는 남궁세가의 의사청의 뒤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더럽다.”

 불쾌감에 더 이상, 남궁세가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날이 밝는 대로 길을 떠나리라.

 강호의 일개 무림세가가 아무리 위세를 떨친다고 해도 어디 감히 일국(一國)의 대장군부를 상대로 저렇듯 무례한 말을 한단 말인가!

 그는 특히 말이 없는 남궁아현의 태도 더더욱 분노를 느꼈다. 아무리 양운정이란 존재가 하찮다고 해도, 어찌 이런 일에 한마디 말조차 없단 말인가. 그녀에게 양운정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대장군 부부의 존재조차 부정한단 말인가!

 “좋다. 어디 두고 보자. 이 망할 남궁씨들….”

 양운정은 한차례 남궁세가의 의사청을 노려보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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