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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사심과 추행의 관점
작성일 : 24-04-18 13:33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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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사심과 추행의 관점.

 

  고분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잘 닦은 오솔길을 내가 앞장서고 유우가 양손에 유물을 들고 뒤따라왔다. 3분의 2쯤 내려왔을 때 교수들과 조사원들이 유우가 걱정됐는지 각자 손에 랜턴을 앞세우고 마중을 나왔다. 실질적 한일 공동발굴단의 리더인 도쿄국립대학 고고학과 교수며 고대 유적유물사(遺跡遺物史)의 권위자인 유우의 외삼촌 세키노 니(関野 日) 교수가 이시하라 유우의 두 손에 생명처럼 간직한 직호 무늬 토기 조각과 부뚜막 토기를 건네받았다. 유우가 삼촌에게 귓속말했다. 유우 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해 유물을 받아 든 손을 떨었다. 그리고 찬찬히 유물을 살펴보았다. 빗물만 아니라면 눈물을 흘린다고 했을 것이다.

 

 저게 그렇게 대단한가, 만일 내가 유우 비옷 주머니에 찔러준 유물이 진짜 ‘직호문녹각제도장구’ 라면 통곡을 하겠군, 그 생각하니 일본인들의 집요하고 허황된 야심에 소름이 돋았다.

 반갑게 유우를 맞이한 그들은 유우의 제청으로 사진을 찍었다.

 유우는 돌발행동했다.

 심히 나는 당황스러웠다.

 왼손으로 갑자기 내 목을 감싸며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이놈 꼬치는 절구공이 만 하다고 좋아했는데 혹시 알고 있는 거 아닐까? 혼자서 속으로 킥킥거렸다. 그러나 착각도 자유였다.

 

 - 넌, 날 추행했어...

 

 속삭이듯 말했다.

 섬뜩했다. 얘가 뒤끝이 있네 싶었다.

 

 - 죽일 거야...

 - 직호문녹각제도장구...

 

 또렷하게 말하였지만, 빗소리에 다른 사람은 들을 수가 없었다.

 일종의 도박이었다. 벼랑 끝에 선 자의 히든카드였다. 만일 그 유물이 석곽 뚜껑돌을

 받친 나무 구조물(構造物)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난 유우를 두 번 유린(蹂躪)한 것일 거다. 그러면 진짜로 죽일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 눈을 봐라, 내 말을 듣고 놀라 동그랗게 뜬 그 큰 눈이 얼굴 전체를 덮었다.

 이미 내가 찔러준 유물의 존재가 별 볼 일 없는 걸로 확인한 것에서 오는 모멸감인지 아니면 직호문녹각제도장구라는 말의 육중한 무게감인지 부르르 몸서리치는 게 내 몸에 온전히 전해졌다.

 

 남들은 비에 젖은 몸이 냉기에 떠는 줄 알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던지고 먼저 총총히 시크하게 내려갔다.

 둘만 알 수 있는 제스처로 비옷 주머니 속을 뒤집어 꺼내 물을 털어냈다.

 이 정도면 미모와 지성을 겸비했다는 총명한 이시하라 유우는 눈치챘겠지.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마 내 뒤 옷에 벌겋게 묻은 황토를 보고 웃은 것일 거다.

 아무리 비가 바람을 머금고 억수 같이 퍼부어도 내 뒤에 버캐처럼 덕지덕지

 붙은 황토는 다 털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니까...

 민교가 그랬다.

 

 - 선배, 뒤로 발라당 넘어졌어요?! 황토방 만들어도 되겠다!

 

 민교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그 넓은 고분단지 전체가 울렸다.

 그 울림만큼 그 목소리에 질투심이 깔렸다.

 니 둘 뭐 했냐 이거겠지, 알아서 뭐 할래? 니가 왜?

 

 - 카톡...

 

 그렇지 않아도 하체에 힘이 빠져 후들거렸는데 의외로 크게 들린

 카톡 소리에 놀라 그만 발이 미끄러져 벌러덩 넘어졌다.

 유우가 보낸 카톡인가 해서다.

 둘 사인 목적은 다르지만, 직호문녹각제도장구가 초미의 관심사니까...

 넘어진 상태로 핸드폰을 꺼냈다.

 

 - 내일 3시에 만나요, 거기서...

 

 후배 민교의 카톡이었다.

 

 - 우하하하하! 낄낄낄!

 

 모두, 내가 넘어지는 걸 보고 과도하게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

 넘어지면 쉬어간다고 대자로 넘어진 채로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봤다.

 그제야 은근한 아쉬움 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미수에 그쳐 더 안타까운 억울함이랄까,

 잇달아 압박감, 중압감, 현실감이 확 밀려왔다. 만일 유우가 만인들 앞에서 나를 파렴치범이라고 손가락질하면 나는 영락없이 개차반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장소에 두 사람밖에 없지 않았는가? 내가 성불구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이상 극구 부인 한들 누가 믿어 주겠는가? 사회 인식이 그렇지 않은가? 이시하라 유우의 미모를 보고도 사심이 없다는 말 자체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기에 그렇다.

 유우가 추행이라고 말을 했을 때 일말의 흑심만 없었다면 화를 벌컥, 내련만 이미 흑심 때문에 그건 물 건너간 거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지...

 내가 정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은 것이 아닐까? 더 최악은 민교까지 허연 엉덩이 문제를 폭로하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사학계에서는 영원히 퇴출당하고 발에 전자발찌를 차고 산에서 움막치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일본어 잘하니까 일본 가서 살면 되잖아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본에 갈 수가 없다. 갈 수가 없는 나라다. 스에마쓰 아야코가 불현듯 떠올랐다.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 에이 몰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제발, 유우에게 몰래 찔러주고 큰소리친 그 유물이 유우와 일본 측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직호문녹각제도장구’이어야 할텐데, 하나님 부탁합니다, 제발,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복 받으실 겁니다...

 

 만일 ‘직호문녹각제도장구’가 아니고 석곽묘를 받친 구조물 나무 쪼가리로 판명이 된다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진부한 장면처럼 어느 낡은 창고에서 사시미 뜨일 줄도 모른다. 아니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냐, 그리고 사실 너무 이쁜 것도 있고... 예, 솔직히 흑심은 약간 있은 건 맞습니다만, 잘못했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야쿠자님... 이런 상상을 하니 몸이 옹송그려지고 털끝이 쭈뼛해질 정도로 소름이 확 끼쳤다.

 

 - 따르르릉~ 따르르릉~

 - 네...

 - 선배 어디세요?

 - 거기.

 - 거기 어디 창녕 고분?

 - 거긴 왜? 고물수집소...

 - 참 나 선배도...

 - 거기서 보자고 톡 보냈잖아?

 - 알았어요, 알았어, 저 지금 일본 가요.

 - 뭐?

 - 내가 실업계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필요하대요, 캐드를 할 줄 안다고...

 - 누가?

 - 교수님이...

 - 조달호 교수가?

 - 네, 얘기 못 들었어요?

 - 뭔 얘기?

 - 세미나 연기됐잖아요?

 - 뭐? 조교인 나한텐 말도 안 하고 저거끼리...

 - 아이고, 대단한 인물이다, 쉬쉬하면서 급하게 처리할 게 있는가 봐요, 갔다 올

  게요, 약속 장소에 못 나갈 거 같아서 폰 때린 거예요.

 

 후배 민교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잇달아 조달호 교수로부터 카톡이 왔다.

 자기 없는 동안 학과를 잘 부탁한다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열 세미나 잘 준비하고

 그동안 출토됐던 유물들 리스트 정리하라는 등등...

 

 - 잘 다녀오십시오, 일본어 잘하시잖습니까, ㅋㅋ...

 - 죽는다.

 - 죽을 건데 세미나고 뭐고...

 - 알아서 임마, 찹쌀 모찌 사가지고 갈게...

 - 감사합니다, 충성!

 

 고물 수집소는 ‘고분 유물수습 집합소’ 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우리는 줄여서 그렇게 불렀다. 나 참, 거기서 만나자는 게 창녕 고분이라니, 화왕산 기슭에 있는 고분에 내가 왜 가냐, 이게 또 허연 엉덩이 문제를 꺼내려고 그러는가 본데...

 

 남자들은 생리 문제가 생기면 작은 거는 고분 부근 적당한 곳에 서서 해결하면 되었다. 근데 여자들은 사실 불편한 게 많았다. 작은 거든 큰 거든 무조건 엉덩이를 까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분 발굴이나 고분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적당한 장소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수풀이 우거지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볼일을 본다는 건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뱀이나 꿩, 고라니, 진짜 멧돼지 같은 것이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워서 볼일을 봐도 혹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언덕에서 굴러떨어지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런 불상사도 가끔 생겨 낭패를 겪기에 그랬다. 내 여자 동기 중 하나는 고라니가 튀어나오자 놀라 자기가 싼 똥에 주저앉은 적이 있었다. 나에게 SOS를 쳐 생수와 휴지와 넝쿨 이파리로 구해 준 적도 있었다. 그게 고맙다고 사귀자고 해서 사귀었는데 금방 헤어졌다. 둘이 죽이 맞아 담요 깔아 놓고 키스를 하려다가 몸에서 똥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똥 무더기에 주저앉은 모습이 자꾸 떠올라 하는 듯 마는 듯 데면데면하다가 그 후의 일도 치르지 못하고 헤어졌던 슬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 여자들은 배설할 때 언제 어디서 예상치 못한 난감한 일들이 벌어질지 몰라 바짝 촉각을 세워야 했다. 물론 한 곳에서 오랫동안 발굴 작업하면 간이 화장실을 만들기도 하고 이동화장실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경비 문제나 현실적인 문제로 쉽지 않았고 이용률도 낮았다.

 

 그 사건도 서민교가 최대한 엄폐 은폐해서 볼일을 봤는데 내가 그만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가 예기치 않게 봤던 것이었다. 유난히 엉덩이 부분이 발달한 민교의 신체적 특징 때문인 것도 한몫했다.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라도 보긴 봤기 때문에 조목조목 따져 들면 나는 영락없이 파렴치한 되기에 십상이었다. 아 골치 아프네, 왜 그래 엉덩이가 크냐, 바위도 모자라 삐져나와서 말이야, 서양인 피가 섞였나?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민교의 의도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애인 하나로는 성인 안 차나? 내가 좋으면 좋다고 하든지, 아니면 만인들 앞에서 떠들어 나를 망신을 주든지, 뭐냐?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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