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허헉.”
죽을 것 같다. 심장은 뛰다 못해 곧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숨을 쉴 수 없는 것 보면 폐도 심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임이 분명했다. 그나마 아침을 많이 먹지 않아 토는 안 했다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미 토하기 직전이었다. 이대로 계속 달리면 속이 다 뒤집혀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걸어가는 길마다 토로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많이 힘드니?”
“....헉.”
팀의 부장이라는 역할답게 처음 출발할 때부터 내 옆에 딱 붙어서 속도를 맞춰 함께 달리던 정완이 나의 등을 두드리며 다정스럽게 물어왔다. 그러나 이미 육체적인 한계에 도달한 내 신체는 다정스러운 그 물음에도 절로 신경이 곤두섰다.
‘보면 몰라? 아니 가볍게 뛴다며 가볍게 너넨 1km가 가볍게냐?’
마라톤 선수들도 아침부터 이렇게는 안 뛰겠다. 서도담이 가볍게 1km라는 개소리를 시전할 때부터 미쳤냐며 못한다고 드러누웠어야 했는데.
“물은 마실 수 있겠어?”“…. 헉.”
차오르는 숨으로 인해 입에서 나오는 건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다였다. 남은 힘을 최대한 짜내 한 손을 양옆으로 휘저으며 거절의 표시를 내비치자 어느새 저 멀리 멀어져간 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지금 여기서 나가떨어진 건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심지어 내 옆에서 나랑 함께 달리던 이놈도 멀쩡한 상태였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신체 구조지? 지난 삶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이었다. 이 애들은 영웅이 아니라 운동을 시켰어야 했다. 하다못해 그냥 평범하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어도 분명 운동부 선생님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좀 괜찮아?”
“…. 네 괜찮아...습니다.”
그래도 좀 쉬니 대답은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말하는 사이사이 약간의 텀이 있어야 겨우 말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정완은 이런 내 상태로 달리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나 보았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그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팀원들에게 한 팔을 높이 들어 양쪽으로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일시 중단이라는 표시였다.
‘왜…. 뭐? 뭘 봐!’
코앞에 선 서도담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정정하겠다. 그것보다는 이해가 안 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째 말을 꺼내기 전인데도 얘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벌써 힘든가?”
그것 봐라.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하도 들어서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그 말이 서도담의 입을 통해서 이번 생에도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네.”
마음 같아선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라며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예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오래 뛰면 당연히 그렇지 않나요.”
“…. 그럼, 속도를 조절하면서 달린다면 달릴 수 있겠나?”
“….”
아무 말 없이 빤히 내려다보는 눈빛이 꼭 이 정도까지 하는데 못한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즉 닥치고 일단 해보라는 소리였다.
“…. 네. 해보도록 하죠.”
“좋아. 지금부터 딱 3분 후에 다시 움직이도록 한다.”
“…. 네.”
참고로 이제 막 쉰 지 2분밖에 안 되었던 참이었다. 후…. 진짜 빡세네. 어제 체력 평가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이렇게 될 것 같다고 예상하긴 했지만, 신입이라 봐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그럼 그렇지. 초반부터 아주 엄청나게 굴려대는구나.
그래 까짓것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래도 지난 삶 동안 내내 받아왔던 훈련인데 이걸 못할까? 너무 오랜만에 뛰어보는 고강도 운동에 몸이 아직 적응을 아직 못해 이러는 거지 몇 바퀴 더 뛰고 나면 금방 예전만큼 뛸 수 있을 것이다.
“출발하지.”
“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팀원들이 하는 훈련에 맞춰 함께 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낙오되고 또 낙오되고 반복적으로 대열에서 나가떨어지기에 바빴다. 물론 그때마다 이런 내 상황을 눈치챈 다른 팀원들이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는 대장을 멈춰 세우고 기다려주거나 원래 달리던 속도보다 더 느린 템포로 달려주고는 했지만 다 부질없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훈련해 온 이들과 달리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내 몸뚱이는 이들에 비해 체력이 월등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내 체력이 쓰레기란 소리였다.
결국 5번이 넘는 낙오 끝에 완전히 바닥난 나의 체력을 확인한 서도담은 그제야 나를 완전히 제외해 주었다. 다른 팀원들이 남은 거리를 다 뛸 동안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나를 주워가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나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음은 근력 평가였다. 참고로 근력운동은 내가 체력 평가보다 훨씬 못하는 운동이었다. 고로 이번 시간도 망했다는 뜻이다. 반면, 이 사실을 모르는 이라온과 한서리는첫 번째 훈련을 마무리한 그 순간부터 내 양옆으로 딱 붙어 연신 응원의 말을 건네는 중이었다. 대충 이다음 걸 더 잘하면 되니 기죽지 말라는 말이었는데 미안하지만 난 낙오되었다고 해서 기가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는데. 사실 왜 이제야 낙오시켜 주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슬슬 시작하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서도담이 저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만 좀 쳐다봐라. 내 얼굴에 구멍 뚫리겠다. 어딘지 모르게 진지해져 있는 그의 시선에 기대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아마 자기 딴에는 이번에서만큼은 내가 아까의 그 허접한 체력과 달리 뭔가를 보여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그 기대를 완벽하게 부숴놓았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를 시켜도 1개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버리는 내 꼴에 서도담은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
거 참 너무하네. 사람이 좀 못할 수도 있지.
“…. 와~ 우리 막내 정말 마법이랑 공부만 잘했던 거구나 와~”
“그, 그러게, 하하.”
당연하지. 이 세상 사는데 그 두 개만 잘해도 미래는 보장된다. 내가 진짜 나이만 안 어렸어도 다시 이 짓 안하고 다른 일 하면서 잘 살 수 있었는데.
“내가 실례하는 게 아니라면 혹시 너의 키와 몸무게를 좀 봐도 되나?”
“그러시죠.”
한참을 심각한 얼굴로 있던 것 치고 영 삼삼한 질문이길래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박하가…. 키에 비해서 몸무게가 심각하게 저체중이구나.”
“어쩐지…. 딱 봐도 뼈밖에 없더라니.”
바닥에 내려놓은 패드로 나의 인적 사항을 확인한 이들이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익숙한 반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말랐다는 이야기 한 두 번 듣고 자란 게 아니었으니까.
“혹시 하루 식사량이 어떻게 되지? 하루 6끼를 먹고 있나?”
“?”
하루 3끼 아니고?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도 방금 그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의문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과연 치킨을 시키면 반드시 1인 1닭을 해야 하는 대식가들다운 반응이었다.
“보통 아침 1끼만 먹고 점심이나 저녁은 먹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요.”
“…. 진짜?”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왜 안 되니? 눈앞에 8번 회귀한 애도 있는데 그거에 비하면 하루 1끼는 아무것도 아니야. 경악하는 이들 가운데 홀로 조용히 있던 서도담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말아라. 아마 저 머릿속에서 내 몸무게를 증량시키기 위해 원대한 계획이 만들어대는 것 같은데 심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세 번째 시간은 호신술 시간이었다. 서도담은 내 쓰레기 같은 몸이 자신의 모든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리는 행보를 보이자 이제야 상식적인 태도를 취해주었다. 이게 사람인지 운동선수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 직전 한 동작 한 동작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라온을 시범 모형으로 세워놓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방법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서도담을 보며 난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품었다.
흠…. 아무래도 여기에선 본의 아니게 못 하는 척 연기를 좀 해야겠구먼.
앞에 그 처참한 실력과 달리 이걸 잘하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뜩이나 눈치가 개코 수준인 애였다. 괜한 의심은 안 사는 게 편할 것이었다.
“자 한번 해보도록 하지. 방금 해준 설명처럼 나를 넘겨보도록.”
“네.”
선선히 대답한 난 오른다리를 서도담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고 한 팔을 뻗어 그의 도복을 잡고 힘을 주어 옆으로 메쳤다.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 하는 거지? 힘을 주어야 내가 넘어간다.”
“…. 다 준건데요?”
“…?”
“…??”
서도 담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안한데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게…. 왜 안 되지? 웬만한 실력자 아니면 일반 남성 하나쯤은 거뜬하게 제압할 수 있는 나였다. 근데 지금은 왜…? 아…! 그렇구나. 그 시절의 난 이 아이들이랑 같이 어린 시절부터 몸을 쓰는 훈련을 해왔기에 사람 하나쯤은 쉽게 넘기는 게 가능했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난 그냥 평범하게 자라온 15살 어린애에 불과해해.
이번 생에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마법을 쓸 수 있어 그만 잊고 말았다. 과거의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다음 생에 리셋되는 일은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뭐야 그러면 연기할 필요도 없었던 거네. 아쉽게 됐습니다. 서도담씨 저는 이번에도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겠네요.
“그렇군. 거기부터 가르쳐야 하는 거군.”
“네?”
“걱정하지 마라. 지금부터 열심히 배우면 오늘 안에 나를 넘어뜨릴 수 있을 거다.”
얘가 지금 뭐래? 아니 너 나랑 몸무게 족히 4배는 차이 나지 않아? 등치로만 보면 난 치와와고 넌 도베르만인데 그걸 넘기라니 양심이 있어? 그리고 넌 유단자잖아! 태권도부터 유도 검도 안 해본 거 없이 다 따본 주제에 난 힘 없는 일반인이라고!
그러나 서도담은 정말 진심이었다. 내가 아무리 항의하고 못 하겠다고 수없이 말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있는 힘 없는 힘을 짜내 그가 휘청거릴만한 힘을 간신히 짜내고 나서야 겨우 나를 놓아주었다. 물론 이마저도 서도담은 만족하지 않았지만.
그 무렵이었다. 바깥은 팀 단화에 새롭게 합류하게 될 바람 술사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넷이 시끌시끌했다. 정식적인 공표를 하기까지 3일이 남은 시점에 일어난 새로운 돌풍의 예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