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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허심탄회 속에 비친 묘한 기류
작성일 : 24-03-27 23:12     조회 : 20     추천 : 0     분량 : 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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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화

 허심탄회 속에 비친 묘한 기류.

 

  - 응, 좋아해.

 - 사랑해?

 - 아니,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 한 눈 안 팔 거지?

 - 팔 눈도 없어, 이미 눈이 멀었으니까, 내 사랑에...

 

 쥰페이가 눈을 덮을 만큼 입가를 한껏 올렸다.

 

 - 미나미, 몽 좋아해?

 - 응...

 - 사랑해?

 - 아니 그냥 좋아해...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 누군데?

 - 비밀...

 - 몽만 아니면 돼.

 - 노코멘트.

 - 피 튀기며 싸우는 일 없도록 하자.

 - 유치하게 왜 싸워, 내 사랑은 고귀해.

 - 아 얄미워...

 

 아야코가 입을 삐죽였다.

 미나미는 그런 아야코를 모른 척 휘파람 불며 놀렸다.

 우리는 그 둘을 보고 파랗게 웃었다.

 

 - 쥰페이 너도 몽 좋아해?

 - 아니, 난 사랑해.

 - 어떤 사랑, 나랑 같은 사랑?

 - 아니, 내 사랑은 색깔이 좀 달라.

 - 우정?

 - 우정보다 깊은 사랑.

 - 다이히토는?

 - 나도 몽 좋아해... 몽을 나 혼자 일방적으로 짝사랑이야, 그래서 안타까워, 헤...

 

 말 없는 다이히토가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그래서 평상시와 달리 말을 길게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다이히토 머리를 헝클리고 어깨를 안았다. 자식, 고맙다, 다이히토... 나 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온갖 허점투성이고 밴댕이 소갈머리에 덜떨어진 인간인데... 황위 계승 7위 나가 뭐가 아쉽다고 나를 짝사랑식이나, 나도 너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게, 다이히토...

 

 - 비록 정한수를 떠 놓지는 않았지만 몽과 나는 이제 부부 연을 맺은 거다. 내가 니 들 보는 앞에서 저쪽 방에서 둘이 나오더라도, 니들 보는 앞에서 딥키스를 하든, 노천탕에서 몽에게 안기든 암튼, 몽과 과도한 스킨십이나 신체 접촉을 하더라도 그러려니 해라, 당연한 거니까... 고깝게 생각하지 마라, 부부니까... 쥰페이, 유리나 니들이 괜찮다면 같은 날 같은 예식장에서 식을 올려도 좋다, 단 호실은 다르게...

 -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주라...

 

 쥰페이가 유리나 눈치를 보며 아야코와 나에게 응원을 청했다.

 

 - 쥰페이, 함부로 단언하지 마, 사람 일이란 몰라, 단, 내가 너보다 더 너를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 저 치명적인 눈을 가진 미나미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들어...

 - 유리나 너도 나와 같은 느낌이구나, 내 가 이렇게 서두르는 것도 미나미의 저 거역할 수 없는 치명적인 눈길이야, 그래서 난 불안해.

 

 유리나가 시무룩해 있는 미나미를 건드렸고 아야코가 한술 더 떴다. 미나미가 유리나와 아야코를 향해 그 치명적인 눈을 흘겼다. 아야코나 유리나는 미나미가 걸렸던 거였다. 무심한 듯 관심 없는 듯 직수굿(다소곳)하지만 저건 찜부럭(=짜증)이었다. 그냥, 다이히토랑 잘 어울리면 환상적인 세 쌍의 조합인데, 그러면 세상 무서울 게 없을 거 같은데... 아야코와 유리나는 안타까웠다. 미나미의 마음을 훔쳐 간 사람은 누굴까? 아야코와 유리나는 쥰페이를 쳐다보고 은근슬쩍 나와 다이히토를 흘겨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픽, 하고 웃었다.

 

 - 고등학생답지 않아, 열여덟이면 어디 덧나?

 

 울 듯이 미나미가 말했다. 말속에 떨림이 있었다. 꿈 많고 호기심 가득한, 그냥 풋풋한 청춘이고 싶은가 보다. 마니미야 나도 그렇다. 나는 뭔지 모르겠지만 죄를 지는 거 같아 미나미에게 미안해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의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감히, 라는 말을 쓸 만큼 파격이었다. 그 전엔 무조건 아야코의 의사에 따랐고 그게 맞는 거라서 불만은 없었다. 아야코는 약간 미미하지만 심기가 불편했고 복잡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거라 미나미의 불만에 대해선 따지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열여덟에 그러는 게 미나미의 불만인지, 아니면 나 아야코가 몽과 부부의 연을 맺는 게 불만인지 그걸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럴 땐 들떠야 하는데 이상하게끔 분위기가 착잡했다.

 우리는 점심 겸 저녁으로 컵라면과 충무 김밥을 먹은 뒤 노천탕에서 목욕했다.

 나와 쥰페이, 다이히토 우리 셋은 안에 수영복을 입고 타올을 걸쳤다.

 미녀 삼총사도 상하가 붙은 아주 레트로한 수영복을 입고 가운(gown)을 걸치고 탕에 들어왔다. 나는 발끝을 물에 대보고 너무 뜨거워 안 들어가려고 하는데 쥰페이가 갑자기 밀어 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뜨겁다고 조라치고 방정을 떨다가 조금씩 적응이 돼 눌러앉았다. 물에 젖은 타올을 벗었다. 내 몸을 보고 아야코가 휘파람을 불었다. 쥰페이와 다이히토도 타올을 던지고 아무렇지 않은 듯 탕에 들어왔다. 내가 그 둘의 미끈한 근육질 몸매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속옷 광고하는 모델 같았다. 유리나는 얼굴을 붉혔고 미나미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었다. 아야코는 장난친다고 내가 셋 중에 더 낫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온천물이 피부를 파고들었고 폐부(肺腑)를 찔렀다. 눈을 감았다. 여기 오기 전까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대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거도 아니고 장난인지 팩튼지 모르겠지만 졸지에 유부남이 된 현실이 코미디 같아서 실소가 나왔다. 나야 밑져야 본전이지만 아야코는 손해가 막심할 텐데, 오늘이 4월 1일 만우절이면 해프닝으로 자연스럽게 끝내기에 딱 좋은데...

 

 - 으악, 뭐고?

 - 킥 킥...

 - 자슥, 미나민 줄 알았잖아? 좋았다가 말았네, 헤...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 경상도 말이 나왔다. 쥰페이가 살짝 잠이 든 내 입술에 뽀뽀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난 또 아야코가 그런 줄 알고 얼마나 놀랐냐? 십년감수했다. 애들도 낄낄대며 웃었다.

 

 - 위장 결혼이고, 위장 연애 아냐? 소도므뜨들 지긋지긋하다...

 - 소도므뜨가 뭐냐?

 - 남자 동성애자...

 

 미나미의 시니컬한 억지 부렁에 내가 소도므뜨 뜻을 몰라 물었고 다이히토가 답을 했다. 쥰페이와 나는 히죽대며 서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나는 우리 엄마 아버지를 닮지 않은 것 같다. 엄마 아버지는 집 안에서는 장소 불문 시간 불문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애정 표현을 하는데 나는 왜 그게 닭살이 돋는지 도저히 남 부끄러워서 실행에 옮기기가 힘들었다.

 

 - 가까이 다가가도 되겠소, 물기 다 빠진 나무 낭자?

 

  미나미가 내게 눈을 흘기며 손바닥으로 내게 마구 물을 뿌렸다. 장난을 받아주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자기 때문에 살짝 분위기가 이상해질 거 같아 미나미가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 번지를 잘못 찾았소, 총각, 그대의 낭자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우릴 노려보고 있소...

 

 아니나 다를까 아야코가 실눈을 뜨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 나와 미나미를 노려봤다.

 애들이 킥킥댔다. 지금껏 미나미 때문에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는데 미나미가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줘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미나미, 니가 마음이 아프면 나도 아파...

 미나미도 까닭 없이 원망하는 지청구를 부린다는 게 어색하고 튀어 보이는 게 걸리는 것 같았다. 원래대로 무심한 듯 무채색으로 일관하기로 마음을 다잡은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나로 인해 미녀 삼총사의 14~5년의 우정이 무너지기를 진정으로 바라지 않을 뿐이다. 내가 뭣이라고... 미나미 내가 잘할게. 우리 절친이잖아, 처제라 해도 좋고 처형이라 해도 좋고... 원하는 대로 불러 줄게...

 

 - 목말 태워서 수건 뺏기 할래?

 - 싫어, 임마, 120키로를 태워서 내 양쪽 어깨 다 나갔어...

 

 쥰페이 제안에 나는 엄살을 떨며 싫다고 했다.

 아야코와 미나미가 과도하게 놀라며 내게 손바닥으로 물을 뿌렸다. 나도 두 미녀에게물을 뿌렸다. 미나미가 신경이 쓰였다. 재밌겠지만 두 팀이든 세팀이든 탕 속에 넘어지고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질 거 같아서다. 우리 두 쌍은 괜찮지만 미나미와 다이히토가 걸렸다.

 나는 탕에서 나가 수건을 짜서 닦았다. 그리고 머슬마니아 대회 보디빌더처럼 다양한 포즈로 근육 자랑을 했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등 광배근, 복근, 둔근(엉덩이)에 힘을 주다가 참았다. 방귀가 나올 거 같아서... 애들이 천진난만하게 까르르대며 웃었다.

 쥰페이와 다이히토도 나오려고 했다. 내가 발로 차는 흉내를 내며 탕에 밀어 넣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무조건 3등이니까...

 

 나는 그 자리서 뒤로 공중회전을 돌아 탕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물속에 들어가서 숨을 참고 나오지 않았다. 애들이 내가 물 밖으로 나오지 않자 걱정이 돼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 내가 솟아오르며 심하게 손과 발로 물장구를 쳤다. 물세례를 받은 친구들도 내게 물을 뿌렸고 그러다가 결국 아야코는 나와 한편이 되어 친구들과 물싸움을 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따로 없었다. 서로 피부가 닿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안기기도 하고 안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나는 순수했다.

 늑대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장난을 치다가 나는 서둘러 나왔다.

 늑대가 일어나서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는 거 같았다.

 

 

 

 - 어디 가?!

 - 화장실!

 

 쥰페이가 물었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 야, 선조치 후보고 아냐?!

 - 아냐, 아직 조금 남았어!

 

 으악! 하며 친구들이 튀듯이 밖으로 나왔다.

 

 - 깔깔깔,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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