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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스노우 모빌를 타고 설국을 누비다
작성일 : 24-03-22 21:32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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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83화)

 스노우 모빌를 타고 설국을 누비다.

 

  - 내가 운전하면 내 뒤에 누가 탈 건데?

 - 미나미...

 - 안 돼, 미나미도 운전해야 돼.

 - 다이히토가 하면 되잖아?

 - 여긴 평지가 아니야 가파른 계곡이야. 미나미는 스노우 모빌 선수야 그것도 A급...

 - 그래? 그럼 니가 미나미 뒤에 타.

 

 아야코야 나도 네 생각대로 네 뒤에 타고 싶어, 그런데 미나미가 남자라면 경기(驚氣)를 일으키잖아, 알면서 그러네... 나는 속으로 아야코를 달랬다.

 

 - 아야코는 세계 챔피언급이야.

 

 미나미가 무심하게 말했다. 아야코,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그런 생각 들다가 하긴 네가 못하는 게 있으면 안 되지 그런 결론에 이르려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난감했다. 이 난제(難題)를 어떻게 풀지? 고민하는데 쉽게 풀렸다.

 

 - 미나미 뒤에는 짐을 싣고 다이히토는 내 뒤에 타고 가면 되지...

 

 쥰페이도 나처럼 어느 정도 미나미의 성향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멋있는 쥰페이 자식, 185cm가 넘는 키에 조각 같은 얼굴이 오늘따라

 더 모델 같았고 멜로 영화 주인공 뺨쳤다. 아 그리고 저 눈 봐, 언제나

 촉촉하게 젖어 있는 눈, 남자인 나도 반하는데 혼다 유리나가

 안 반하고 배기겠어?... 내가 속으로 짜식하며 손바닥을 펴서 들었다.

 쥰페이가 하이 파이브 했다.

 

 - 묘기 부리면 멀미한다, 난 멀미하면 바로 오바이트 해, 알아서 해라.

 - 벌써 겁먹었나 봐?

 - 겁먹게 할 거 같아서 미리 엄포를 놓는 거야, 큭...

 -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인가요?

 

 아야코 뒤에 타며 내가 지레 겁을 먹고 엄포를 놓자 아야코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노랑 스노우 모빌은 유리나가 운전하고 쥰페이, 다이히토가 뒤에 탔다. 나는 빨강 스노우 모빌을 운전하는 아야코 뒤에 탔다. 파랑 스노우 모빌은 우리가 들고 온 짐을 싣고 미나미가 운전을 했다. 우리 모두는 잠수경 같은 고글을 썼다. 맨 선두는 스노우 모빌의 끝판왕 혼다 유리나가 섰다. 우리는 앞서 가는 유리나 뒤를 따라갔다.

 다테야마 휴게소에서 출발해 얼마 가지 않아 바로 길에서 벗어나

 가파른 계곡으로 내달렸다.

 

 - 내우해?

 

 아야코가 스노우 모빌을 세웠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아야코 몸에 손을 대지 않으려고

 스노우 모빌 의자 옆을 잡았다.

 그게 문제였던 거였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라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였다.

 앞이 뻥 뚫린 천지는 온통 눈 속에 파묻혀 구름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 무슨 말이야?

 - 우리 결혼 이야기 오가는 사이 아냐?

 - 맞아...

 - 꼭 둘이 틀어지면 나는 손도 대지 않았다, 결백을 주장하려고 그래?

 - 솔로몬보다 현명하고 삼손보다 강인하며 욥보다 인내심이 강한 여신의 영역에 쪽발을 들이미는 건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이라 조심스러워서 그래.

 - 죽을래? 빨리 잡아. 나랑 결혼 안 하려면 잡지 말고?!

 - 해야지, 그럼... 음... 엉덩이 만져도 돼?

 - 안 돼!

 - 결혼할 사이라며?

 - 엉덩이를 만지는 건 탐(貪)이야, 오로지 내 몸을 탐하겠다는 욕심...

 - 그럼, 허리 잡는 건 왜 되지?

 - 그건 애정이잖아, 이 상황에서 허리를 잡아야 자연스러운 거잖아, 애정의 허그...

 - 알았어... 그럼, 어디서 어디까지를 정해 주라...

 - 옆구리... 가슴 아래부터 엉덩이 시작하는 부분까지 허리, 두 손으로 꽉 잡거나 안아도 좋아.

 - 가다가 흔들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을 만질 수도 있는데, 그땐?

 -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알아서 해, 첫날 밤에 나한테 교육을 받고 초야(初夜)를 치를래?

 - 그땐 정신없겠지, 헤...

 - 웃지 마, 뭘 상상해? 아우 징그러워... 안 되겠다, 내려.

 - 왜? 싫어...

 - 정신 좀 차리게.

 - 정신 차렸어.

 - 아냐, 팔굽혀펴기 10회...

 

 나는 내려서 팔굽혀펴기를 10회 했다. 아야코는 하얗게 웃었다.

 팔굽혀펴기할 때마다 얼굴이 눈 속에 파묻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도 100% 순수한 백설(白雪)을 빙수 먹듯 한가득 입 안에 넣었다.

 뽀뽀할래? 하는 눈치라 얼른 입속에 든 눈을 뱉어내며 사레 든 것처럼 켁켁댔다.

 

 - 안 타?

 

 나는 얼른 스노우 모빌에 올라타 냅다 아야코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흠칫하며 아야코가 움찔했다. 옹골찼다고 해야 하나? 암튼 느낌이 그랬다.

 

 - 가... 애들 벌써 숙소에 도착했겠다...

 - 꽉 잡아?

 - 기대면 따뜻하겠다.

 - 헬멧 썼는데 어떻게 느껴?

 - 아 그렇네, 헬멧 벗을까?

 - 마음대로 해.

 

 나는 헬멧을 벗어 스노우 모빌 수납함(Glove box)에 넣었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한 번 두 번... 아야코가 웃음을 참는지 가늘게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저지르고 보자 싶어 한 줌도 안 되는 아야코 허리를 살포시 안고 쭉 곧은 등짝에 뺨을 갖다 댔다. 아야코의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천하의 아야코 너도 여자구나, 심쿵 심쿵 아야코 심장이 뛰었다. 내 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두 손에 쏙 들어온 허리는 단단하다 못해 탱글탱글했다. 작은 체구가 아닌데 이렇게 허리가 가늘었나? 부러지도록 안고 부르르 몸서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조심해야지, 이 아래는 잘 익은 호박만 한 엉덩이가 있으니까, 탐(貪)으로 오인(誤認)하면 천지가 눈으로 덮인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내버려 두고 갈지 모른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야코 몸에서 내가 좋아하는 로즈마리 향기와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아 따뜻해, 엄마의 품처럼 포근했다. 자도 될까?

 시동을 걸자마자 아야코는 그 자리서 스노우 모빌을 낭떠러지 아래로 몰았다. 거의 90도 직각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했다. 스노우 모빌이 허공 상태에서 심연(深淵) 깊숙이 내려가자 말초의 신경삭(神經索)이 쫄깃쫄깃해져 묘한 공포감과 쾌감을 동반했다. 느낌은 천 길 낭떠러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거송(巨松)의 나뭇가지 위에 덮인 눈 위에 사뿐 앉자마자 충격을 줄이고 반석(盤石) 위 눈더미에 스노우 모빌이 스무스하게 떨어져 브레이크를 잡아 한 바퀴 돌면서 안착했다.

 

 -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살았다 싶었다.

 산 위를 쳐다보니 거의 일직선으로 내려왔다.

 첩경(捷徑).

 지름길로 온 모양새라 금방 애들을 따라잡았다. 유리나가 운전하고 쥰페이와 다이히토가 탄 노랑 스노우 모빌이 눈을 머금은 거목 사이를 헤집고, 눈 덮인 바위를 뛰어넘으며 밑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뒤따라 짐을 실은 미나미가 운전하는 파랑 스노우 모빌이 달려 내려갔다. 나를 뒤에 실은 아야코가 운전하는 빨강 스노우 모빌이 번개처럼 나타나 노랑과 파랑 스노우 모빌 사이를 곡예 하듯 지그재그로 스쳐 지나갔다. 내가 손을 흔들었다.

 

 - 애들아?!

 - 그래, 여기! 어디 갔었어?!

 

 내가 목청껏 부르자 애들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쥰페이도 뭐라고 했는데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우리 빨강 스노우 모빌이 노랑 스노우 모빌을 순식간에 옆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 나중에 봐?!

 

 소리를 쳤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울렸다. 거침없이 내닫는 아야코의 스노우 모빌은 친구들을 뒤로한 채 또 다른 계곡으로 달려갔다. 작은 구릉을 수없이 넘고 가을이 되면 붉은 단풍으로 장관을 이루는 아름드리나무 숲을 고난도 서커스 하듯 빠져나갔다. 세로로 세워진 설벽(雪壁)을 서핑하듯 가로로 탔다. 파도가 포물선(抛物線)을 그리며 휘어지면 그 속을 타는 서퍼처럼 설벽을 탔다. 짜릿해 말초를 바늘로 콕 콕 콕 찌르는 것 같았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팬티에 오줌을, 자기도 모르게 지렸을 것이다.

 나는 거의 경악(驚愕)에 반쯤 세미코마 상태에 빠졌다. 꼭 꼬리에 불붙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거 같아 넋을 놓았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오직 하나 아야코 허리를 잡은 내 팔이 위치를 벗어나서 위든 아래든 옮겨 다니지만 않기를 빌었다. 그 하나만 정신을 집중했다. 탐(貪)으로 오해해 이미지 구기면 안되니까... 근데 왜 별장에 도착했을 때 아야코가 나보고 바보라고 톡 쏘았을까? 탐(貪)이라며 주의 줄 때는 언제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언덕바지에 별장이 있었다. 허공에 매단 것처럼 별장은 도출되어 있었다. 언덕과 별장의 지붕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야코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눈으로 덮인 언덕을 달려갔다. 여기서 이 초 스피드로

 내려가면 분명 별장의 지붕을 가볍게 뛰어넘어 끝 모를 계곡으로 떨어질 것이다. 난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상태지만 기분은 환희에 젖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생을 마감하는 거만큼 괜찮은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래, 죽자, 후회도 없다, 나처럼 행복한 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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