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데.”

　“그러게.”

　 그들이 보는 화면엔 바람을 방패막 삼아 토네이도를 건너가는 박하가 있었다. 팀원들은 저마다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패드에 무언가를 적어나가며 평가를 이어나갔다.

　‘잘한다.’

　 이것이 1단계를 통과한 그녀의 마법 실력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옆 화면 속 학생들이 안절부절 못하며 그냥 바라보기만 할 때 그녀는 남들보다 월등하게 빠른 속도로 1단계를 통과했다. 재빠른 상황판단과 머뭇거리지 않는 행동력이 압권이었다.

　 이는 다음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마법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 그리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마치 정해진 루틴이라도 있는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맞추어 마법을 실행시켰다.

　 잘한다. 그 의견엔 서도담도 공감하는 바였다. 아니 그것 말고는 다른 평가가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능력에는 강한 한방이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활용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상대는 자연재해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재해의 힘 앞에서 현재 그녀의 능력은 바로 실전에 투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이대로 라면 그녀를 새로운 팀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서도담은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재해의 기세가 점점 더 심상치 않아지고 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바람술사의 공석을 뼈가 시리도록 절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더는 그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었다. 이번에야 말로 우리에겐 새로운 힘이 보충이 필요했다.

　‘그런데 결과가 이 꼴이라니.’

　 같이 시험을 보고 있는 다른 두 녀석은 화면은 이미 꺼지고 남은 건 오직 그녀의 모니터 화면 뿐이었다. 즉 지금 이 시험에서 그녀만큼 뛰어난 실력자는 없다는 소리였다. 아마 다음시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서도담은 보지 않아도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해야만 할텐데.

　 하지만 그녀는 시험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었다. 시종일관 평온한 그녀의 얼굴은 본인인 원한다면 얼마든지 기권을 외칠 기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서 불길을 피해 무사히 몸을 숨긴 그녀가 지친 얼굴로 드론을 찾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끝인가.’

　 만약 자신의 추리대로 그녀가 정말 능력을 감추고 있는 게 맞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팀에 들어올 수 있는 실력자일 것이다. 헌데 이를 스스로 거부하다니. 세계가 어떻게 되든 본인은 관심이 없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의 가치관으로썬 이 부분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서도담은 마음 같아선 그녀를 어떻게든 자신의 팀에 넣고 싶었다. 허나 이는 그의 독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보이는 것만 믿는 어리석은 윗사람들은 그녀의 능력을 어림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그녀 스스로 직접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주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 의욕 없는 아이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건지. 서도담이 남은 시간동안 빠르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놀라서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로 정완이 책상 위에 놓인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네. 여기 제1평가실인데요. 지금 한창 시험 중인 박하 학생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치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죠? 네. 네네.”

　“어 나왔다!”

　“네. 이제 보이기 시작하네요. 네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시 연락드릴게요.”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넨 정완은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뭐야? 왜 그런거래?”

　“박하 후배님이 걸어갔던 곳이 드론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어서 화면에 비치지 않은거래.”

　“아하...!”

　 짧은 감탄사를 끝으로 진하나는 다시 모니터 화면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어쨌든 다시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으니 사라진 이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 모니터를 보고 있는 사람들 중 어째서 그녀가 사라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어쩐지 너무 야박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반 배치고사가 시작되고 난 후 처음으로 4단계까지 진입한 학생이었다. 이대로만 가준다면 오랫동안 공석인 자리의 주인을 찾게 될 수도 있었다. 설렘과 기대로 몹시 흥분한 이들에게 지금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그 사람 중 서도담은 예외었다. 그는 그녀가 다시 모니터 화면 속으로 얼굴을 비추자마자 바로 그녀의 모습을 샅샅이 살피었다. 아까와 뭔가 다른 게 없는지. 혹여나 어디 부상을 입은 건 아닌지. 이상한 점은 곧 그녀의 목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는 벗은 점퍼를 묶어 깁스 보호대처럼 만들어 목에 걸고 있었다.

　 서도담은 예리한 눈빛으로 점퍼를 살폈다. 저 점퍼 안에 뭔가 있는 건가. 그는 패드를 이용해 모니터 화면을 더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화면을 더 확대하고 이리저리 각도를 움직여 그녀의 머리 위로 막 고정해놨을 즈음이었다.

　“아...!”

　“안돼! 제발... 제발 그러지마!”

　 팀원들이 저마다 탄식하며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평가실 안을 가득 채웠다. 모니터 속 그녀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기권한다는 표시였다.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아아아~ 거의 다 됐는데... 앞으로 두 번만 더 힘내주면 우리랑 같은 팀 할 수 있는데.”

　 복사와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똑같이 머리를 쥐어뜯는 한서리와 이라온은 꼭 내기를 잊어버린 사람들 같이 보였다. 그렇게 큰 판돈을 걸어놓았으면서 본인들이 잃게 될 돈보다는 또 다시 잃게 될 바람 술사의 자리가 그들에게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그리고 이는 다른 두 팀원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호들갑을 떨지 않을 뿐.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게 두 사람의 표정을 통해서 여과 없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화의 팀원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본인이 기권하겠다는데 뭘 어떡하겠어. 아마 팀장도 자기들과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시험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

　“저... 도담아?”

　 정완은 조심스레 그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서도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까와 다를 바 없이 모니터 속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시험을 중단하기 위한 생각이 아예 없어 보였다. 그런 그를 팀원들과 다른 팀 학생들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 저래.’

　‘몰라.’

　 오직 모니터에만 고정되어 있는 그의 태도가 말해주고 있었다. 기권 없이 시험은 이대로 진행하겠다고. 정말 그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너무 안타까워서 미치기라도 한 건가. 단화의 팀원들이 자기들끼리 열심히 대화를 나누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서도담이 들으라고 하는 행동이었다.

　 서도담은 그런 팀원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꼬고 앉은 그의 다리가 일정한 박자에 맞춰 까딱 까딱 움직였다. 그 모습이 꼭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어린아이 같아 정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엥 멩.”

　“어 그래. 그래. 이제 괜찮아.”

　 나는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는 밤이를 황급히 품에 안고 놀란 아이를 달래주었다. 많이 무서웠던지 밤이는 겁에 질린 듯 몸을 달달 떨며 계속해서 내 품안을 파고들었다.

　“아니 밤아. 너 도대체 여기에 왜 있는 거야? 왜 항상 있던 장소에 있지 않고.”

　“메엥.”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밤이는 지금으로부터 2주전 아침 일찍 숲을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사슴새끼였다. 과연 여기가 한국이 맞나 의문이 들 정도로 넓은 들판과 자연으로 이루어진 학교 주변이니만큼 숲속을 산책하다 동물을 만나는 일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 몇 번이야 학생들도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기 바빴지 비슷한 일이 여러번 반복되자 이젠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밤이도 그런 경우에 속했다. 정말 귀엽고 깜찍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이 아이에게 신경을 쓸 이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었다. 밤이의 부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밤이는 다리에 상처를 입어 걷는 것이 많이 불편해 보였었다. 아마 이 부상 때문에 본인의 무리랑 떨어지게 된 것 같은데 문제는 그 부상 때문에 먹이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었다. 며칠을 굶은 건지 처음 봤을 때 밤이는 뼈가 훤히 보일정도로 야위어있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듯 애처롭게 우는 밤이를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어 김윤호와 스찬이의 도움을 받아 부상도 봐주고 먹이와 잠자리도 봐주며 2주간 알뜰살뜰 봐온 밤이였다. 그런데 그런 애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건지 그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도 밤이는 안락한 경비실에서 내가 챙겨준 사과를 배부르게 먹는 게 다였다. 이 아이 혼자 어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부상을 입은 채로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우리가 없을 땐 항상 경비아저씨가 밤이를 봐주셨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밤이를 여기에 옮겨놨다는 게 제일 가능성이 높은데.

　 오자마자 살펴본 밤이의 몸엔 불에 그으른 흔적은 없었다. 만약 밤이가 정말 본인 혼자서 이곳까지 온 거라면 빠르게 달리지 못하니 분명 저 불을 피하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군가가 이 애를 여기다가 옮겨 놨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밤이의 존재를 아는 건 우리 셋과 경비 아저씨 두 분 뿐이었다. 시험 때문에 한창 정신이 없었던 우리 셋을 재외하면 남은 사람은 경비아저씨이지만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가정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시험장소다. 즉 일반인인 경비아저씨 두 분이 이곳에 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아니 그러면 대체 누가...

　‘잠시만...!’

　 불현듯이 머릿속에서 오늘 아침에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막 경비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뛰어가던 김일중의 뒷모습을. 자기 딴에는 내가 못 봤다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달리기가 하도 느려서 도저히 못 알아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냥 단순하게 ‘쟤 또 나 뒤따라왔네.’ 생각하고 넘겼지만 김일중이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필시 창문을 통해서 밤이의 존재를 확인했었을 것이다.

　“아... 그래서 방금 전에도!”

　 하도 기분 나쁘게 쪼개길래 왜 저러나 했더니만 알고보니 다 이유가 있었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기는 개뿔!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헝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벌인 김일중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동안 난 김일중이 내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강하게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럴 가치도 없을뿐더러 내가 쟤 부모도 아닌데 굳이 나서서 김일중이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좀 귀찮긴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김일중이 스찬이를 약점 삼아 길길이 날뛰어도 언제나 적당히 상대해주며 봐줬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을 넘어버리면 말이 달라지지.

　 생각해보면 김일중은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본인이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악랄한 짓이든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했다. 그런 김일중의 악랄함에 크게 당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난데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놈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니. 내 자신의 안일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아내었다. 진정하자. 내가 아무리 여기서 화를 내봤자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 왜냐하면 김일중은 이곳이 아닌 밖에 있으니까. 그러니 뭐가 되었든 일단 이곳을 탈출해야 하는게 먼저였다. 혹시 모를 밤이의 부상도 확인해 봐야하고 또 그래야 김일중을 패든 날려버리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