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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궁귀검신
작가 : 조돈형
작품등록일 : 20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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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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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더보기 첫회보기

활이라는 것은 가능한 한 멀리 눈에 보이는 거리를 뛰어넘어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생명까지 지배하는 병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기가 생명을 노린다고 가정을 해 보거라.
이보다 두려운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느냐?
악덕 조부와의 고난에 찬 수련행.
정혼녀를 찾아 떠난 즐거운 중원행.
어지러운 무림을 바로잡는 영웅행.
이기어검과 이기어도를 능가하는 이기어시의 신선한 등장!
내일을 향해 쏘아 볼까나?!

 
제 24 화
작성일 : 16-07-14 15:04     조회 : 581     추천 : 0     분량 : 1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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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이 야우커우 족을 떠난 때는 그가 북경에 도착한 오늘로부터 정확하게 백하고도 이 일 전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야우커우 족을 떠난 소문은 마을 주민의 고난과 모사드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무공을 익혀 여태까지 잔병치레 한 번 안 한 소문이지만 심적으로 타격을 받고 또다시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덜컥 병이 나고 말았다.

 심한 열(熱)과 함께 구토(嘔吐)와 복통(腹痛)이 이어지고 온몸이 나른하여 좀처럼 움직일 기운이 나지 않았다.

 소문은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야타우라는 조그만 마을에 치료차 머물게 되었다.

 지난 몇 개월을 여진족과 지내면서 그들의 말과 문화를 제법 익힌 소문은 의사 소통엔 큰 어려움이 없어서 쉽게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이 너무 작고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서 의원이라고는 찾을 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소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집의 노인이 해주는 민간 요법(民間療法)대로 치료를 받는 것뿐이었다.

 노인은 집 근처의 야산(野山)에서 잎은 네 개고 뿌리의 길이가 두 치 반인 약초(藥草)를 캐왔는데, 마치 조선의 산삼(山蔘)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었다.

 노인은 캐온 약초와 집 주변의 잡풀(소문이 보기엔 풀이었다)과 말의 소변을 한데 뒤섞더니 탕약을 만들었다.

 소문도 과거에 할아버지가 캐온 약초를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약초에 대한 식견이 제법 있었지만 이 노인이 만드는 약이 무슨 약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약에 말의 소변이 들어간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지만 자신이 모르는 치료법도 있는 법.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 없이 노인이 해주는 약을 받아 마셨다.

 소문의 불안감과는 달리 그 약의 효능은 상상외로 뛰어나서 소문은 약을 먹은 지 하루 만에 그렇게 높았던 열이 떨어져 몸을 제법 추스를 수 있었다.

 노부인은 그런 소문을 위해 보리로 만든 미음(米飮)을 준비했다.

 “에그… 환자에게는 흰죽을 쑤어줘야 하는데 죽을 만들 것이라고는 보리밖에 없으니… 그래도 이거라도 좀 드시구려.”

 “아닙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런 험한 곳까지 젊은 청년이 뭐 하러 오셨나? 보아하니 우리 여진족 사람은 아니고… 중원 사람도 아닌 듯한데?”

 “어허! 환자에게 쓸데없는 말 시키지 말고 입 다물고 물러나 있어!”

 소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던 노부인은 노인의 불호령에 찔끔하더니 방 한 켠으로 물러섰다.

 “하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조선에서 왔습니다.”

 “조선? 조선에서 무엇 하러 이곳까지?”

 “흥, 영감도 물어보시는구랴?”

 조선에서 왔다는 소문의 말에 노인이 흥미를 보이자 방금 전에 한소리 들었던 노부인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기세 좋게 쏘아주었다.

 “하하! 두 분, 그만 하십시오. 싸우시겠습니다.”

 “싸우기는… 늘 이런 걸…….”

 노인은 말리는 소문을 보면 허허 웃었다.

 “중원에 제 아내 되는 사람을 맞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한데 길을 가다 그만 이리 병에 걸린 것이지요.”

 “중원? 아니, 조선 여자는 놔두고 어찌 그 먼 중원에서 부인을 얻는단 말인가? 그것 참…….”

 소문의 말에 노부부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찌하다 보니 그리 됐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집안 어른들께서 미리 약조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태연히 말하면서도 억울한 건 여전한 소문이었다.

 “그럼 빨리 가야 할 텐데 몸이 이래서야……. 쯧쯧쯧!!”

 노부인이 그런 소문이 영 불쌍해 보였는지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두 분만 사시나요?”

 소문이 화제를 바꿨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미는 일이라 더 이상 생각하다가는 병이 더 악화될 것만 같았다.

 “웬걸. 큰 아들놈은 제 마누라가 병에 걸려 일찍 죽자 돈이 없어 죽었다며 돈 벌겠다고 도시로 떠났고, 둘째 놈과 늦게 얻은 막내 놈은 전쟁이 터져서 병사로 끌려갔어…….”

 “이 할망구가 울긴 왜 울어? 누가 죽었다고 그러나? 부정 타게 시리.”

 소문의 말에 어느새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노부인이 말을 하자 노인은 대뜸 큰 소리로 노부인을 나무랐다.

 하지만 노인도 적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소문은 노부인의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했다.

 “전쟁이라니요?”

 “이번에 저 북쪽에서 여진족이 쳐들어 와서 이 근처의 장정들은 다 군대에 끌려갔어. 우리 둘째와 막내도 함께.”

 “그럼 할아버지 아드님들은 야우커우 족의 병사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나도 여기 마누라도 다 예서 태어나 자랐으니 당연히 야우커우 족이지.”

 소문은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번 전쟁에서는 야우커우 족이 이겼다 들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허허, 이겼구먼. 다행이야.”

 “그런데 둘째와 막내는 왜 안 돌아오지요? 혹시…….”

 “예끼! 아까부터 재수없는 소리만 하고 있어. 곧 돌아올 게야. 암…….”

 노인은 확신이라도 하는 듯 호통을 쳤다. 소문은 그런 노인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제법 많은 병사들이 죽었기 때문인데 이 노부부의 자식들이 거기에 끼지 않았다는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실망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예. 전쟁이 끝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 겁니다. 아마 곧 돌아오겠지요.”

 “그러면야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노부인은 여전히 안색을 흐리며 말을 줄였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5일 정도가 지나자 소문은 제법 건강을 회복했다.

 몸이 어느 정도 추슬러지자 소문은 이제 이곳을 떠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노부부 또한 소문이 곧 떠날 것임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식을 기다리는 노부부가 걱정도 되고 오랜만에 가족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그 무엇인가가 소문을 붙잡고 있었기에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날 때였다. 결국 소문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일이 찾아왔다.

 “어머니!!”

 오늘도 어김없이 밭에서 일하고 있는 노부부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같이 일하던 소문이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리자 두 명의 남자가 밭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고! 왔구나! 내 새끼들이 왔구나!”

 “그래… 살아서 왔구나!”

 어느새 노부인은 들고 있던 호미를 집어던지고 살아 돌아온 자식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노인 또한 일손을 멈추고 하늘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 하였다.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던 노부인과 두 아들들은 천천히 밭으로 걸어왔다. 노부인은 그런 자식들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버님, 저희 왔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지요?”

 “그래. 고생했다. 몸은 괜찮은 거냐?”

 인사를 받는 노인의 시선은 어느새 막내의 팔을 감고 있는 붕대로 향했다.

 “예. 그냥 조금 스쳤을 뿐입니다.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이 정도면 멀쩡한 것이지요.”

 “그래. 하늘이 도왔구나! 할멈, 애들 배고프겠소.”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잠시만 기다리거라!”

 “하하! 어머니,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무슨 소릴 하는 게야! 그동안 고생만 하다 왔을 것을, 이제 집에 왔으니 어미가 해주는 밥을 먹어야지.”

 노부인은 말리는 자식들의 손을 뿌리치고 허겁지겁 집으로 뛰어갔다. 노인과 두 아들은 그런 노부인을 보며 정답게 웃고 있었다.

 ‘나도 집에 가면 이런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 흠, 과연? 하하……!’

 자신의 생각에 혼자 웃고 마는 소문이었다. 자신이 약해지긴 약해진 모양이라고… 그런 소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아버님, 저 청년은 누구지요?”

 “아, 며칠 전에 병을 얻어 우리 집에 치료차 잠시 기거하는 젊은이다. 조선인인데 중원으로 간다고 하는구나.”

 “그래요…….”

 둘째 아들은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만 해도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동생도 그리 느끼는 모양이었다.

 “형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형님은 안 그러세요?”

 “흠, 글쎄다. 나도 그렇기는 한데…….”

 두 형제가 소문을 두고 이렇게 미심쩍어 하고 있을 때 소문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머리에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있던 소문은 그 천을 벗으며 노인에게 말을 했다.

 “다행입니다. 아드님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축하드립니다.”

 “허허! 고맙네.”

 소문이 이렇게 노인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화를 지며보던 두 형제의 눈은 놀람으로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호, 혹시, 을지 공자님 아니십니까?”

 “…….”

 “맞으시군요. 저는 구유크님 밑에서 전령을 맡던 퉁밍가이고 이쪽은 제 아우 우디거입니다. 먼발치에서 공자님을 몇 번 뵈온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모른 체하려 했던 소문도 둘째라는 사람이 구유크까지 들먹이자 어쩔 수 없이 아는 체를 했다.

 “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오. 두 분이 몹시 걱정을 하셨는데…….”

 “그게 다 공자님 덕분이지요. 그때 공자님의 활 솜씨가 아니었으면 저희는 다 죽었을 것입니다.”

 “하하! 무슨 말을 내가 한 게 무엇이 있겠소.”

 한참을 그리 서서 전쟁에 대해 얘기했다. 보병(步兵)이 어찌 싸웠고 기병(騎兵)이 어찌했다는 둥,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소문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에 대해서 두 아들은 노인을 붙잡고 떠벌렸다.

 그러나 소문은 이런 자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두 아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노인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대뜸 바뀌는 것이 아닌가? 소문은 그런 게 정말 싫었다.

 오랜만에 가정의 편안함을 느꼈는데 이젠 정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은 길었지만 결정은 빨랐다.

 “이제는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떠나시다니요? 조금 더 쉬다 가시지요?”

 소문을 만류하는 노인의 말투는 어느새 존대로 바뀌어 있었다.

 “아닙니다. 이곳에서 너무 많이 지체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지체하다간 제 신부가 기다리다 못해 처녀 귀신이 돼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럼 전 이만, 건강하십시오!”

 소문은 계속해서 만류하는 부자들의 손을 뿌리치고 천천히 마을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형님은 그때 거기 계시지 않았으니 몰랐지요… 이만주 장군이 저분을 잡으라고 명령했을 때 저분에게 다가가다가 바로 죽는 줄 알았어요.”

 “그 정도였냐?”

 “만약 그때 구유크님이 와서 말리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 있던 장수와 병사들은 다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잡아왔던 주민들을 다 풀어준 것이었구나.”

 “그렇다니까요.”

 “그동안 이곳에 있을 땐 그리 무섭지 않아 보였는데…….”

 “에그, 영감. 그건 병이 들었으니까 그렇지요.”

 “그런가……?”

 소문이 떠나온 노부부의 집에선 한참 동안 소문의 얘기로 정신이 없었다. 마을을 벗어나는 소문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너무 부러웠다. 전쟁터에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살아서 오는 아들들… 소문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제길!!”

 소문은 처음으로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문득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비록 허구한 날 자신과 티격태격 했지만 끌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장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소문의 이런 울적한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파란 하늘에서 하나의 점이 보이더니 그 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소문이 이상해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그 점이 점점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하나의 물체로 화(化)하는 것이었다. 소문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면피야!!”

 소문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오던 점, 아니, 철면피는 소문의 머리 바로 위에서 우아하게 회전을 한번 한 뒤 자신을 반기는 주인의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니, 이게 어찌 된 거야? 니가 어떻게 여기까지 나를 쫓아왔어?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소문은 오랜만에 보는 철면피가 몹시 반가웠지만 틀림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철면피가 자신에게 온 것이 왠지 수상쩍었다.

 해서 급하게 물어본 것인데 대답할 리가 없었다. 철면피는 그저 소문의 볼에 부리를 비비고 있을 뿐이었다.

 소문은 그런 면피를 걱정스레 쳐다보다가 문득 다리에 매여 있는 하얀 천을 볼 수 있었다.

 재빨리 천을 풀어 읽어가는 소문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처음엔 불안감이, 다음엔 반가움이, 그리고 황당함이… 마지막에는 아예 천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분위기… 가자, 면피야!”

 소문은 아직도 볼을 부비고 있는 면피를 바로 돌려세우더니 멈추었던 걸음을 재촉했다.

 소문이 집어 던진 천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천에 쓰여진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면피가 네가 떠난 뒤에 영 기운이 없어 보여 네놈에게 보낸다. 그리고 중간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다녀오너라. 혼자 밥해 먹기 귀찮다. 어서 와서 밥해라!

 할아버지가.

 

 소문이 집어 던질 만했다.

 

 마을을 떠난 소문과 면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원의 실질적인 시작점인 산해관(山海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해관은 하북성(河北省) 북동단에 있는 교통, 군사상의 요지로 북서로는 연산산맥(燕山山脈), 동쪽으로는 발해만(渤海灣)에 접해 있었다.

 산해관은 명대 초(明代初)에 성을 쌓고 산해위(山海衛)를 설치하여 군대를 주둔시킨 데서 유래되었으며,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관(關)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산해관 동쪽의 만리장성(萬里長城) 동문 성루(東門城樓)에는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쓰여진 현판(懸板)이 걸려 있으며 이곳을 지나야 비로소 중원에 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소문은 지금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동문의 입구에 서 있었다.

 “이야! 멋진데…….”

 어떤 글이 잘 쓴 것이고 못 쓴 것인지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소문이지만 현판에 걸린 글이 주는 느낌은 알 수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이 생동감이 넘치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모습이었다.

 과연 천하제일관문이란 칭호에 어울리는 현판이었다. 하지만 이리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소문은 중원으로 가기 위해 동문을 지나야 했다.

 중원으로 가는 초입(初入)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진족 사람들도 보였고 장사를 하러 온 조선의 상단도 보였다. 저마다 부푼 꿈을 가지고 중원에 들어가는 듯 상기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한데 뒤섞여 있을려니 소문 또한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소문이 서 있는 곳의 사람들이 산해관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뭘 하는 거야? 말 안 들리나?”

 아무런 생각 없이 문을 지나던 소문은 갑자기 자신을 잡는 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지! 귀먹었나?”

 “…….”

 “흠, 좋아. 아무려면 어때. 통행 증명서(通行證明書)를 내놓아라!”

 “…….”

 ‘통행 증명서? 그런 게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젠장, 내가 그런 게 있는지 알게 뭐야?’

 소문이 꿀 먹은 벙어리인냥 대답을 안 하고 서 있자 병사들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그들은 소문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려는 것이냐? 복장도 그러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첩자(諜者)인 것이 분명하구나!”

 ‘첩자? 내가? 아니, 저것들이 사람을 어찌 보고…….’

 “아니, 어디를 보아 나는 첩자가 맞소!”

 소문이 흥분을 해서 말하자 병사들의 반응은 바로 날아왔다. 하지만 소문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역시, 네놈 스스로가 첩자라고 밝히다니 대담하구나. 어서 무릎을 꿇고 오라를 받아라! 그럼 목숨만은 건지게 될 것이다.”

 병사들은 들고 있던 창과 칼로 소문을 위협했다.

 ‘지미, 첩자라니 이게 어찌 된 거냐?’

 “아니오. 나는 첩자가 맞소. 진정이오!”

 “미친놈 아닌가? 그래, 너 첩자인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어서 무릎을 꿇고 순순히 항복해라!”

 소문은 미치고 팔짝 뛰는 심정이었다.

 저들이 하는 말이 귀에 제법 잘 들어 오길래 그동안의 자신의 공부가 헛되지 않았다고 의기양양한 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서툴지만 자신도 중원어로 말을 한 것인데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보시오. 잠시 말 좀 잡아주시오. 나는 첩자가 아닌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려는 것이오.”

 “허허, 점점… 말을 잡으라니? 네놈이 정녕 우리를 우롱할 참이구나. 긴말할 것 없다. 잡아라!”

 수문장(守門將)인 듯한 사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했다.

 병사들이 일제히 소문을 향해 병장기(兵仗器)를 들이댔다.

 “이것들 보시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이보시오.”

 “그 입 닥치거라!”

 소문이 처음으로 제대로 말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병사들의 공세는 점점 거세어졌다.

 피하기만 하던 소문도 슬슬 화가 치밀었다.

 “그래. 나 중원 말 못한다. 어쩔래?”

 소문은 어깨에 메고 있던 철궁(鐵弓)을 들고 자신을 공격하는 병사들을 냅다 후려쳤다.

 소문이 비록 공력(功力)을 싣지 않았지만 그 힘을 무공도 모르는 일반 병사가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순식간에 두어 명의 관병이 땅에 뒹굴었다.

 “저, 저! 뭣들 하느냐? 쏴라! 화살을 날려라!”

 수문장은 성벽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소문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이크! 저놈들이 날 아주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 이 정도에 죽을 나였음 이곳에 아예 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더 머물러서 좋을 것은 없으니…….’

 소문은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도 여유롭게 움직이며 뒤로 몸을 빼기 시작했다. 그런 소문을 보는 수문장의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저놈이 도망가지 않느냐? 쏴라, 어서 쏴라. 그리고 병사들은 나를 따르라!”

 수문장은 성안에 있던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자 직접 말을 몰아 소문을 쫓기 시작했다.

 그 뒤를 병사 수십이 허겁지겁 쫓아오고 있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여유 있게 피하며 뒷걸음치던 소문은 그 모양을 보고는 날아오는 화살을 하나 잡아채더니 자신의 철궁에 재었다.

 “선물이다!”

 소문은 자신에게 맹렬하게 달려오는 수문장에게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퍽!

 수문장이 어찌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쓰고 있던 모자를 꿰뚫은 화살은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성문으로 날아가 천하제일관이라 쓴 현판에 꽂혔다.

 소문이 약간의 내공을 실은지라 화살에 맞은 현판은 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머, 멈춰라……!”

 수문장은 소문을 따라간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뒤를 따라온 병사들을 멈춰 세운 그는 그저 멍하니 성을 벗어나는 소문의 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통행증이 뭔지 알게 뭐야. 그나저나 어쩐다. 그리 사고를 쳤으니 이제 통행증을 얻는다고 들여보내 줄 것 같지도 않은데… 에라 모르겠다. 꼭 문으로 들어가라는 법도 없고!”

 산해관의 현판을 박살낸 소문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산에 누워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했다.

 밤이 되자 소문은 다시 산해관의 동문으로 몰래 다가갔다.

 밤이라 그런지, 아니면 낮에 있던 소문의 문제로 인한 것인지 성의 경계는 한층 더 강화되어 있었다.

 소문은 동편의 성벽을 따라 한참을 북상했다.

 그리곤 높이가 삼 장에 이르는 성벽을 한 번의 도약(跳躍)으로 가볍게 뛰어넘었다. 소문이 중원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소문이 힘들게(?) 중원으로 들어왔지만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선 자신의 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치명타였다.

 자신은 상대방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나름대로 잘 말한 것 같은데 듣는 사람은 영 다르게 알아들으니 큰 문제였다.

 그런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문이 객점(客店)에 가서 음식을 시키면 엉뚱한 음식이 나오기 일쑤였고, 아니, 음식이라도 나오면 다행이고 점원(店員)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나, 관군을 부르질 않나, 주루에 가서 술을 시켰더니 기생을 불러오는 등 도무지 여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소문은 벙어리라는 길을 택했다.

 이후 말은 하지 않고 손짓 발짓을 써가며 대화를 하니 상대방이 오히려 그 뜻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듯했다.

 간혹 문법에도 안 맞는 글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일러주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용케도 알아들었다.

 물론 이 방법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소문이 말을 못한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고 경멸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작대기를 들고 두들겨 패기까지 했는데, 처음에는 화도 내고 혼도 내주면서 자신의 분을 삭였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거의 매일같이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아예 그러려니 하고 욕을 하면 먹고, 두들기면 맞으면서(맞아도 전혀 느낌이 오지 않았지만) 여행을 했다.

 게다가 배고픔엔 장사 없다고 지니고 있던 돈마저 떨어지자 온갖 무시를 당하면서 구걸까지 하게 됐다.

 소문은 항상 실실대고 웃었다.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던 모사드의 당부도 있고 해서 의식적으로 그래봤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화날 때 웃으며 분을 삭이고, 구걸을 하려면 웃음이 최대의 무기라는 것을 깨닫자 이제는 그런 웃음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자존심과 고집 빼고는 시체였던 소문에겐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산해관을 벗어나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통상 산해관에서 북경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스무 날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도중에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도 하고 이런 저런 문제와 부딪치다 보니 소문이 북경성 밖에 도착한 것은 구유크와 헤어진 지 백 일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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