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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빛이 들지 않는 땅의 등불
작가 : 솜덩어리
작품등록일 : 2022.7.13

혼돈의 세력에게 위협받고 있는 세계. 다양한 힘을 가진 종족들 사이에서 아무런 무기를 갖추지 못한 인간들은 신이 내려주신 마법의 노래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중에는 신의 자비로운 빛이 닿지 못한 자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벙어리라 불리었다.

 
04 - Ep. 멍청이 고블린(4)
작성일 : 22-07-13 10:11     조회 : 147     추천 : 0     분량 : 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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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04.

 

  볕이 들지 않는 땅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심연중의 심연이라 부르기에 적합한 어두컴컴한 동굴속에는 항상 고막을 찢을 듯한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천둥과도 같이 몰아치는 소음에도, 그 어느 마수도 이 소리를 다물게 할 수 없었다.

  거대한 몸둥이, 잿빛 두꺼운 피부와 핏빛 눈알. 마수들의 뼈로 산을 쌓아두고 그 옆에서 잠을 청하는 외눈박이 거인. 워낙 위험한 녀석들이 많은 숲이라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녀석이 치명적인 포식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외눈 거인은 오늘도 한껏 그 뒤룩뒤룩 살찐 배의 속을 잔뜩 채우고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다른 마수들이 오늘은 습격당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잠자리에 누울때, 공포로 이 부근을 지배하는 녀석한테 경계심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녀석의 목에 비수가 스며드는 순간에도, 거인은 자신이 사냥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파란색 피를 한껏 흩뿌린다. 한밤중의 소나기와도 같이, 흙을 푸르게 적신다. 고통을 느낀 것은 단검의 칼날이 끝까지 동맥에 파묻혔을 때 즈음이었다. 목 부근을 뜨겁게 불태우는 오랜만의 통증에, 녀석은 힘껏 울부짖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틀어막으며 분한듯이 콧김을 내쉰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커다란 주먹으로 부수어가며 그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고 동굴을 반쯤 허물었을 때에서야 시야에 고블린이 들어왔다. 양손으로 단검을 붙잡고 바들바들 몸을 떠는 나약한 고블린 한마리가.

  거인은 재빨리 도망치는 고블린을 쫓는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산사태와도 같이 숲을 으스러트리며 목표물을 향해 질주했다. 사냥감을 쫓을 때에도 이리 열심히 달리지는 않았을텐데, 무엇이 이 녀석의 다리를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단순히 눈앞의 하찮은 생물체가 겁도없이 자신의 목숨을 노려서? 아니다. 외눈 거인이 분노한 이유는 그저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죽음을 앞에 두고 생겨난 공포에, 굴욕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분노에 몸을 맡기고 다른 것에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짐승처럼 마구 굴렀다. 그리고 멍청이 고블린 또한 잡힌다면, 아니 녀석이 근접하기만 한다면 그 순간 고블린에서 그저 바닥의 핏빛 자국으로 변할 것임이 틀림 없었기에 목숨을 걸고서 달렸다.

  그렇게 호수를 지나고, 산을 지나 이제는 멍청이 고블린의 은신처 근처까지 오게되었다. 고블린은 습관 때문인지 자연스레 이곳으로 발을 옮기게 되었고,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녀석이 이곳에 화풀이라도 한다면 메이르에게 불똥이 튈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발바닥이 다 까질정도로 바닥을 박차고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뇌를 두들긴다. 작은 머리 안의 도서관에서 저 악몽을 무찌를 방법을 모색한다. 언제나와 같이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 터였다. 그는 그만큼 책을 믿고 있었다.

  허나 마땅한 녀석은 떠오르지 않았다. 갈수록 둘의 거리는 좁혀져오고 있었고, 거인이 때때로 던지는 나무의 파편에 온몸이 긁혀 녹색 피부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밤이 어두워 질 수록, 고블린의 시야도 검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피로와 출혈로 인한 신체능력의 저하는 피할 수 없었고, 그것은 거인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목숨을 건 추격전은 다소 느긋해져버렸다.

  그럼에도 외눈박이는 특유의 큰 몸집으로 빠르게 쫓아갔고,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어 멍청이 고블린을 손에 넣게 되었다. 거인의 두툼하고 거대한 손에 붙잡힌 고블린은 온몸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꼈다.

  술래잡기에서 이긴 거인은 피를 많이 잃어 머리가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승리의 웃음을 잊지 않았고, 녀석의 희열과 허탈함이 섞인 울음은 온 숲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허우적거림인지 비틀대는 것인지 모를 춤까지 추며 기쁨을 표현했다.

  물론 멍청이 고블린은 계속해서 쥐어짜내지며 뼈가 부서져내렸지만, 거인이 천천히 죽이는 것을 택했기에 목숨만은 붙어있어 연신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자그마한 두 눈으로 계속해서 외눈 거인을 바라봤다.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양 발을 땅에 두들기며 신명나게 춤을 추던 거인은, 순간 알수없는 이유로 시야가 휘청하고 흔들렸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머리를 잘못 부딪히면 죽을 것이었기에,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외눈 거인은 간신히 균형을 잡아 한쪽 팔로 몸을 지탱해 넘어지는 것을 막았다. 몸이 쓰러지는 순간 힘이 빠져 고블린을 놓치고 말았지만,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니 다시 붙잡으면 될 터였다.

  그러나 녀석은 팔을 뻗지 못했다. 혹은 뻗을 수 없었다. 땅바닥이 거대한 두 손을 잡아먹으며, 녀석을 더욱 더 깊은 심연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런 영문 모를 상황에 거인은 당황해하며 난동을 피웠지만, 고블린은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부러진 단검과 유리조각을 바라 볼 뿐이었다. 한때는 혹시 몰라 챙겨두었던 마비독이 들어있던 병이었던 유리 조각들을.

  어둠은 걷히고, 달빛이 땅을 비췄다. 마른 풀로 가득찬 들판은 짙은 황녹색 빛을 띄었지만 거인이 서있는 땅은 한밤중의 하늘과도 같이 검었다. 붉은빛 외눈의 빛마저 삼켜버릴 듯이, 그저 검었다.

  거인은 울부짖었다. 이번엔 확실하게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찬 울음을. 죽음의 문턱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에게 먹혀지는 절망의 소리를. 한번 경험해 본 덕에 더욱 더 생생해진 단말마를. 한때 최악이라고 불리었던 마수가 한낱 어린아이와도 같은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갔다.

  볕이 들지 않는 땅에서도 가장 어두운, 심연중의 심연인 검은 늪이라는 나락속으로 몸을 감췄다.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밝았다. 먹구름이 한껏 세상을 뒤덮어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맴돌았던 여행길과는 달리, 랜턴이 산산조각 났음에도 은신처로 향하는 길은 뚜렷하게 보였다. 푸른 피를 쟁여둔 수통을 허리에 묶어 걸을때마다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한걸음 내딛을 때 마다 진흙이 철퍽거리며 그의 오른 다리를 붙잡았고, 어느새 물줄기에서 방울이 되어버린 붉은 피가 그의 왼 다리를 끌어당긴다. 금방이라도 지면에 부딪힐 듯한 몸을 이끌고 멍청이 고블린은 메이르에게 향했다.

  마침내 그와 그녀의 은신처에 도달했고, 다시 한번 짙푸른 머리칼을 가진 소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붉은 발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먹여두었던 약초가 쓸모없진 않았는지 거셌던 숨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고블린은 메이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해 하마터면 다리가 풀릴 뻔 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입에 허리에 묶어둔 수통을 가져다댄다. 마실 생각을 하지 않는 주둥이에 목숨을 걸고 가져온 푸른 피를 흘려넣는다.

  역한 냄새에 마시지 않으려 뱉어내는 것을 녹색 더러운 손으로 막아 저지한다. 억지로 먹인 덕에 연신 기침을 하는 입을 틀어막으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방실방실 웃던 눈이 젖어드는 것을 보며 함께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기침이 잦아들었고, 쏟아지던 소나기도 언젠가 그쳐있었다. 메이르는 여전히 고통에 뒤척이며 괴로워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몸의 핏빛 저주가 가시기 시작했다.

  그녀의 성숙해진 몸에서 땀을 계속해서 닦아주던 고블린도 그것을 깨닫고는 아주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물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외눈 거인의 피를 먹였다지만, 아직 인간의 아이인 메이르가 붉은 안개를 이겨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애초에 거인이 자유롭게 이 숲을 활보할 수 있는 이유가 녀석의 피 덕분인지도 확실치 않다. 불안해 할 요소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고블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더이상 없었다. 멍청한 고블린인 그에게는, 더이상 쥐어짜낼 지혜도, 지능도, 그리고 방법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양손을 모았다.

  푸른 거인의 피. 치열한 전투의 증거인 말라붙은 핏자국들과 온갖 상처로 가득한 고블린의 추하고도 보잘것없는 녹색 손. 그는 그것들을 한데 모아 깍지를 끼고 한껏 쥐어짰다.

  맑게 개인 하늘의 영롱한 달빛을 향해 몸을 돌리고서 무릎을 꿇었다. 고블린의 얄팍한 육체와 더러운 심장으로 살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이 대지를 버리고 메이르를 내친 증오스러운 여신에게 기도한다.

  아둔한 짓이다. 이곳이 볕이 들지 않는 땅 인 이유는 그 어떤 신성한 존재의 시야도 이곳에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보이게 된다 하여도 신에게 사랑받는 인간들. 더욱 더 나아가 사람조차 아닌 어둠의 세력이 기도한들 마법이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고블린도 충분히 알고있었다. 그 또한 자신의 운명을 알고있고, 이미 받아들인지 오래다. 그는 마법에 대한 책을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배우는 일을 포기했다. 메이르와 함께 햇빛이 드는 따스한 땅으로 나아가는 것도 이뤄질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메이르를 살려달라고, 신님께 비참하게 빈다. 그는 이 숲에서 제일가는 멍청이니까.

  누가 보아도 하찮은 마물이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신을 누구보다 저주해야할 혼돈에서 태어난 생명이 지고한 신들께 목숨을 구걸하는 어리석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욕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분명 추한 모습일 터인데도 알수없는 고귀함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안개를 피해 이곳저곳에 숨어있던 동물들이 의문의 분위기에 이끌려 고블린이 있는 동굴로 향한다. 녀석들은 그 중심에서 마물을 보았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조용히 바라본다.

  모두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블린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한 고블린은 한마디를 폐에서, 목에서 쥐어짜내듯 내뱉고 쓰러진다.

  "제발, 신이시여. 저 아이를 살려주세요."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몸이 바닥에 뉘여진다. 피로와 불안감이 그의 눈꺼풀을 잡아당겼고,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진 암흑이 찾아왔다.

  멍청이 고블린은 오랜만에 자신이 아직 고블린이었을 적의 꿈을 꾸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겠는 서적을 하루종일 바라보고, 아무 죄책감도 없이 인간을 죽이던 나날들을.

  그리고 메이르를 떠올렸다. 그녀가 한줌의 고깃덩이였던 시절부터 가장 최근의 것 까지. 마물임을 잊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는 오랜만에 행복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든 것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고블린을 둘러싸고 있던 얼마 남지 않은 야생 동물들도. 하늘을 밝게 비추던 외로운 달도. 메이르의 몸을 잠식하던 붉은 저주도 하룻밤의 꿈처럼 전부 사라졌다.

  고블린은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후 무기를 챙겨 은신처 바깥으로 향했다. 그녀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고기를 찾으러 떠났다.

  그가 만든 수많은 모험가들의 묘 사이를 지나, 그는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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