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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빛이 들지 않는 땅의 등불
작가 : 솜덩어리
작품등록일 : 2022.7.13

혼돈의 세력에게 위협받고 있는 세계. 다양한 힘을 가진 종족들 사이에서 아무런 무기를 갖추지 못한 인간들은 신이 내려주신 마법의 노래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중에는 신의 자비로운 빛이 닿지 못한 자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벙어리라 불리었다.

 
03 - Ep. 멍청이 고블린(3)
작성일 : 22-07-13 10:11     조회 : 146     추천 : 0     분량 : 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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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녀석과 지낸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고블린이 인간의 아이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고 나서 또 몇년인가 시간이 흘렀다. 짜리몽땅하고 삐쩍 말랐던 팔다리는 나름대로 살이 붙어 봐줄만 하게 변했고, 간신히 귀에 닿던 검푸른 머리칼은 이제 턱을 넘어 어깨에 닿는다. 젖살이 올라 동글동글하던 얼굴도 이제는 수려하게 변했다.

  단순히 외모만 본다면 어느 귀족들의 사교회에서 드레스를 차려입고 담소를 나눌 것만 같은 고귀한 모습이 된 녀석은, 훌륭한 소녀로 자라났다.

  이 녀석이 단순히 지난 세월동안 몸만 큰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도 성실한 노력가임에는 변함이 없는지, 쥐토끼 사냥에 실패하고 나서는 마물에 대한 지식량도 넓히고 근육을 기르는 일도 쉬지 않았다. 덕분에 이제 이 볕이 들지 않는 땅 깊숙한 곳의 주민들과는 여전히 견줄 수 없지만, 그래도 작은 마물들은 가뿐히 사냥하는 수준이 되었다.

  정말 진흙 속의 장미라는 건 이런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여전히 천진난만한 얼굴로 잡아온 사냥감을 자랑하는 그녀를 보며, 진흙에 파묻힌 고블린은 그리 생각했다.

  녀석이 사냥을 도와주는 덕분에 요즘은 다소 비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차피 덫을 놓는 장소는 한정되어있고, 굳이 두명이서 확인하러 다닐 필요는 없으니 그녀에게 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멍청이 고블린은 바위 위에서 다소 쓰잘떼기 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서 읽고 있었다간 자신 만큼이나 서적에 빠져있는 인간에게 야단을 맞곤 한다.

  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의 고블린은 책 때문에 약간 곤란한 생활을 겪고있었다.

  인간은 각종 영웅담이나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어딘가의 서적에서 읽은 기억이 남는다. 녀석도 작아도 인간인지, 매일 잠들기 전 마다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말썽이다.

  몇번이고 읽은 이야기를 굳이 괴상한 고블린 목소리로 듣고싶을까. 의문이 들지만 어리광을 부리면 어쩔 수 없이 해주고 마는 그가 있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지식밖에 없어서 그럴까, 잘은 모르겠지만 고블린 또한 이 시간을 나름대로 즐겼다.

  다만 좀 성가신 것은 자꾸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질문을 해온다는 점일까. 어느날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또 다른 날엔 극중 주인공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설명해달라며 성화다. 자세히 쓰여져 있는 것도 아니기에 최대한 얼버무리려 하지만 묘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피곤하다. 인간의 문화에 흥미를 가지게 된 일은 기뻤지만서도 말이다.

  오늘도 꿈나라로 가기 전의 이야기 시간을 마친 후, 고블린은 소녀가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는다. 마물의 앞에서 이리 편하게도 잠든다는 것은 자신을 신뢰해 준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나중에는 꼭 최소한의 경계는 해줬으면 좋겠다. 여러모로의 의미로.

  금새 깊게 잠이 든 녀석의 머리칼을 초록색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옛날에는 이 머리가 한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는데, 이제는 거의 자신과 비슷한 크기, 비슷한 신장이다.

  매번 흙에 나뒹굴지만 다소 먼지만 묻을 뿐 투명하고 새하얀 피부를 보고 있자니, 이 숲과는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이런 어두컴컴하고 사악한 대륙의 변두리와는 맞지 않는, 상냥한 심성에 빼어난 외모를 가진 아이다. 아마 좀 더 자란다면 바깥으로 내보내도 좋겠지. 바깥에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곳보단 나을 것이라 믿는다. 그곳은 볕이 드는 땅이니까.

  헤어지는 것은 아쉬울 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녀석은 인간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어딘가에 이 소녀에게 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줄 마법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정 힘들다면 자신이 모습을 숨기고 따라가도록 할까. 다소 이상하긴 하지만 인간의 말도 할 줄 아니 쉽게 들키지는 않으리라 본다.

  고블린은 그런 걱정을 하며 녀석의 머리를 연신 헝크러트리지만, 그에게는 너무 먼 시간의 이야기라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곧 있으면 스무살이 다 되어가는 고블린에게 아마 5년 정도 후의 이야기란, 인간에게 강산이 바뀌는 것과 같았다.

  숲을 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아직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대충 괜찮은 것으로 고르라고 말을 해뒀었지만, 부모가 골라주는 것이라며 억지를 피우는 바람에 아직까지 정하지 못했다. 나는 부모가 아닌데, 하고 고블린은 작게 중얼거린다.

  언제까지 녀석이라 부를 수도 없으니 자그마한 뇌를 짜내 어울리는 이름을 떠올려 낸다. 여자아이지만 왠지 꽃의 이름은 어울리지 않고, 그렇다고 사내같은 이름을 지어주기엔 좀 미안하다.

  이름 붙힐 것을 찾아 주위를 한참 돌아보던 중, 책을 읽어주기 위해 걸어둔 랜턴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에 모험가에게서 빌려온 물건인데 녀석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 부터 상당히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럼 녀석의 이름은 메이르 라고 할까. 사람의 말로 랜턴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모험가들이 항상 내뱉던 말이기도 하고, 고블린들이 유일하게 알고있는 사람의 말이기도 하다. 불빛만 보이면 달려드는 녀석들,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말이었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은 선택인가 싶었지만, 마땅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녀석의 존재와 잘 어울렸기에.

  볕이 들기는 커녕 있는 작은 불씨조차 앗아가는 이 저주받은 땅에 빛을 비추는 녀석은, 그에게는 등불과도 같았다.

 

 

  있는 것이라곤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 땅에, 하나의 불빛이 일렁이며 돌아다닌다. 무언가를 급박하게 찾는듯한 녀석은 숲 이리저리를 샅샅히 돌아보며, 초조하게 흔들린다.

  랜턴을 든 멍청이 고블린은 쉬지도 않고 하늘까지 뻗어있는 나무 사이사이를 뛰어다녔다. 입에서는 게거품을 물듯이 흥분의 분비물을 질질 흘려가며, 발바닥이 거뭇거뭇해지는 것을 넘어 붉게 물들 때 까지.

  거대한 마수에게라도 쫓기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그런 일이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이 주변 마물에 대해 나름대로 지식을 갖춘 그에게 도망치는 것은 쉬운 일의 범주였을 테니. 허나 이번에는 그것의 반대였다. 쫓는 것은 그였다.

  메이르가 붉은 안개에 쓰러진지 반나절이 지났다.

  이 일의 시작은 정말 잠깐의 방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동안 그녀의 무기를 만드는 데에 집중해 은신처에 틀어박혔던 고블린을 두고, 메이르는 언제나와 같이 사냥을 떠났다. 그녀도 이 일에 익숙해 졌으니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손을 흔들어 주고 마는 정도에 그쳤다.

  모험가의 도끼와 칼을 두들겨 만든 둔기를 흡족스럽게 바라보며, 멍청이 고블린은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바깥으로 기어나왔다. 살짝 지면이 축축한게 비가 오겠구나, 하고 있을 때. 그는 그제서야 이변을 알아챘다.

  다행히 이곳의 비는 유일하게 저주받지 않은 하늘의 은혜라, 비가 온다면 곤충들은 물론이고 마물들 마저 신이 나 돌아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허나 오늘은 너무나도 조용하다고, 고블린은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모험가들은 물론이고 마물들까지 잡아먹는 이 땅의 가장 위험한 시련. 피의 원한이 실처럼 촘촘하게 짜인 듯한 붉은 안개의 징조였다.

  한발 늦게 뛰쳐나간 그는 소녀가 매일 다니던 길을 따라 나무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부디 안개에 닿지 않았기를 바라며, 폐를 쥐어짜내듯 온 힘을 다해 사방을 굴러다녔다. 자신의 헐떡거림만이 들리는 공허속에서, 고블린은 발버둥을 치듯이 달려나갔다.

  마지막으로 들린 사냥터. 그리고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풀숲 안에서 익숙한 검푸른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아직 꿈틀꿈틀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소녀에게 다가갔고,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바닥을 향해 푹 숙인채로 쪼그려 앉아 가끔씩 몸을 떨 뿐이었다. 그녀를 찾았다는 생각에 안심했던 심장을, 불안감이라는 독이 좀먹기 시작했다. 제발 아니어라 라는 심정으로 어깨를 잡아당겼을 때, 고블린은 절망했다.

  상반신에 퍼진 붉은 색 거미줄 무늬. 대상을 천천히 목졸라 죽인다는, 이 숲만의 붉은 안개에 당한 자국이 아주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독에 당한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가녀린 숨을 불규칙 적으로 내뱉으며 몸을 떨고 있었다. 다행히 손을 내밀었을 때 움켜쥔 모습으로 보아선 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듯 보였고, 의식도 있었다.

  그는 곧장 그녀를 등에 업고 은신처를 향해 내달렸다. 등에서는 사람이 아닌듯한 차가운 체온이 느껴져, 고블린의 얼굴을 꾸겨지게 만들었다.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른다 라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채로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소녀를 푹신한 장소에 눕힌 후 그는 창고에서 모든 약초를 꺼내와 분류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병같은 것에 걸린 적은 있었지만,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약사가 이 안개의 독에 대해 '이러면 낫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해놓은 책 한권에 모든 것을 걸고, 그녀를 열심히 간호했다.

  수십개의 풀떼기를 찧고, 달이고, 끓여서 그녀의 목에 흘려넣는다. 처음에는 자꾸만 밀어내려 해 다소 과격하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먹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소 몸을 떠는 증세는 사라졌지만 새파란 안색은 여전했다. 이젠 그도 남은 약재가 없었고, 책에서도 더이상의 치료법은 나와있지 않았다. 고블린의 얼굴 또한 새파랗게 질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머리를 두들겨 작은 두개골 안의 작은 뇌를 깨우려 했다. 계속해서 지식을 짜내기 위해 힘껏 두들기며, 방법을 갈구했다. 그리고 그런 혼미한 상태에서 나온 하나의 무모한 가능성.

  그는 모닥불 근처에서 이 험난한 숲에서의 고난을 함께 헤쳐나온 오랜 친구, 작은 단검을 손에 쥐었다. 근처의 액체가 든 병도 주운 후, 마음을 다잡는다. 상처투성이인 녹색 손에서는 새벽의 단비가 나뭇잎을 적신 것 마냥 땀으로 흥건했고, 양 다리는 갓 태어난 새끼 사슴과도 같이 바들거렸다. 그것은 머리의 충격에서 오는 흔들림이었을까.

  고블린은 그것이 공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있었다. 그는 멍청이인 동시에 겁쟁이었기에, 그리고 그 초라한 두려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존재였기에. 그럼에도 다리를 옮긴다. 흔들리는 녹빛 발바닥으로 습한 땅을 밟아가며, 이동한다. 향하는 곳은 핏빛 독을 낫게 해주는 약이 있는 곳.

  그는 여전히 멍청이지만, 더이상 겁쟁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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