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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몬스터헌터: 괴물의 시선
작가 : 유툽작성TV
작품등록일 : 2021.12.27

인간, 엘프, 드워프, 오크 등 여러 종족과 마법이 공존하는 정통 판타지.

용병을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현실 판타지.

 
5.2 최초의 약탈자
작성일 : 22-03-07 16:24     조회 : 164     추천 : 0     분량 : 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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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검이 가볍게 진동했고 검을 때린 배틀엑스는 물리학이 무색하게 튕겨 나갔다. 쟈크는 놓친 호흡 그대로 마른침을 삼켰다. 딸꾹질이 날 뻔하고, 오싹해진 등골은 여전했지만 한숨을 넘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곁눈질 한 검 자루 가드 부분에 박힌 마나석은 빛을 잃은 채였다. 다행히 마나가 남아있었구나.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만약을 염두에 둘 수 없게 됐다. 마나가 회복될 시간보다 눈앞의 시간이 더 모자를 터였다.

 

 바우쉬가 들고 있던 배틀엑스였고 그는 쟈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에 닿는 오크의 무기를 빼앗아 들었다.

 

 “흥. 너는 오늘 죽는다.”

 

 ‘망할 놈의 오크 새끼.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그게 네가 될 거란 생각은 해볼 생각 없냐?”

 

 쟈크는 검을 고쳐 쥐었다. 날아오는 배틀엑스는 막아냈지만 벌렸던 거리를 잃었다. 지금부턴 함부로 등을 보일 수가 없었다.

 

 “히카락! 두 냐샥크!”

 

 바우쉬는 그 뒤로 괴상한 오크어를 몇 마디 더 질렀다. 인간 말을 잘하던 그가 모국어까지 쓰는 모습에 더 이상 멍청한 오크로 보이지 않았다. 앞뒤가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뭐가 중할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낯익은 분위기가 이해를 도왔다. 죽일 듯 노려보던 오크들이 퇴로를 막았고 대치하는 상대는 바우쉬뿐이었다.

 

 살아나갈 수 있을까. 살아나갈 수 없겠구나. 용병으로서 검을 잡고 살면서 숱하게 들었던 생각들. 그 과거들을 돌이켜 볼 때면 여태 살아있는 건 그저 운이 좋아서였구나 하는 결과에 도달하곤 했다.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불변의 결과. 괜한 생각을 진지하게 되짚어 보는 날이 올 때마다 그 마지막엔 그저 다행이란 한마디로 한숨을 쓸어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 달랐다. 눈앞의 오크 놈을 대면하고 있자니 운이 실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이 닥칠 때면 변함없이 찾아왔던 절망적인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을 앞에 둔 게 아닌, 죽음이 예견된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처음 느껴보는 것만 같은 홀가분함이 숱한 경험을 겪어온 그에게 불안을 만들었다.

 

 홀가분한 감정에서 불안이 싹트는 건 또 무슨 경험인 거야. 로넬들의 모험담에서 나왔던 모순적인 상황과 감정들. 그러나 오늘에서는 그들에게 들었던 경험을 깨닫는 게 아닌 스스로가 느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살아남고 싶은 이유가 늘었다. 순전히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아니라 초인적인 힘이 발휘될 것만 같은 어떤 능동적인 이유.

 

 간혹 찾아오는 성장이 느껴지는 이상한 하루가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바우쉬.”

 

 “흥. 인간들, 죽기 전에 유언 남긴다. 흥, 이상한 의식이다. 흥, 할 말 있는가.”

 

 쟈크는 새어 나오는 실소를 이해하지 못했다. 눈앞의 오크 놈 이름을 불러야겠다는 생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간들이 하는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내 모가지 가져가는 놈이 누군지 정도는 알고 죽어야지 않겠냐고. 오크에게 죽는다는 생각은 해보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데. 상대방에게 예우를 갖춘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이상하게 웃음이 나는군.”

 

 그래서 나온 실소일까. 오크에게 예우를 갖추는 상황이 어이없어서? 글쎄.

 

 “재밌는 관습이다. 흥, 빨간 머리 쟈크. 바우쉬에게 죽는다.”

 

 “너도 재밌는 새끼다. 오크야. 넌 할 말 없냐?”

 

 “유언, 인간들 거다. 이상한 의식, 필요 없다. 다만, 흥.”

 

 뭘 하고 있는 거냐며 질책하듯 보이는 오크들을 무시하고 정적을 만들어내는 바우쉬였다.

 

 “내 행동, 네 행동. 닭이 먼저, 알이 먼저다.”

 

 “현자 납셨다. 새끼야. 그래서 뭐, 깨달음이라도 주려고?”

 

 “인간들, 오크들 말 듣지 않는다. 드워프, 엘프, 모든 사람들, 오크들 말 안 듣는다. 니들이 정답이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

 

 “닭이 먼저, 알이 먼저. 알고 죽어라.”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 눈빛에 한순간 숨 막히는 긴장이 몸을 타고 들어왔다.

 

 근력의 차이, 크기의 차이, 조건의 차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 원초적인 두려움이 아닌 어떤 두려움을 몬스터에게서 느낀 적이 있었던가.

 

 드래곤과 같은 초월적인 것들은 만나본 적 없어 모르겠고, 최소한 코볼트, 고블린, 오크 같은 놈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껴볼 거라곤 생각에도 없었다. 마치 숱한 전쟁을 겪어온 노장을 대적하는 기분이 들었다. 전의가 사라지고 사기가 저하되는 기분. 이길 수 있을까.

 

 사람에게서나 느꼈을 어떤 두려움. 쟈크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부여잡았다.

 

 “혀가 길다. 오크야. 인간들 농담에, 혀가 길면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거든.”

 

 받아치는 말 또한 형편없었다.

 

 “흥, 오크 말에는, 농담 없다.”

 

 그의 마지막 말보다 그가 들고 있던 글레이브가 먼저 날아왔다. 침을 삼킬 새도 없이 반 박자 늦게 막아든 빈틈으로 바우쉬가 몸을 던져 밀쳤다.

 

 쟈크의 검은 방어 면에선 훌륭한 편이었지만 사각과 시야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자신의 검을 다루는 데에 익숙해진 그였지만 서도 타이밍을 놓친 사각까지는 대비하지 못했다.

 

 “큭!”

 

 쓰러지는 순간에도 정신을 부여잡고, 거꾸로 쥐고 방어했던 검을 바로 고쳐 쥔 채 대비했던 그는 사선으로 내리찍어 들어오는 바위쉬의 글레이브를 막았다. 몸을 굴려 일어날 준비를 하는 동시에 바로 쥔 손목을 돌려 쥐면서 검을 등 뒤에 댔다.

 

 캉! 몸을 지지대로 삼은 검 등에 글레이브가 막혔다. 쟈크는 자세를 회복하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우측으로 돌아나가며 등 뒤에 둔 검을 머리 위를 시작으로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후웅!

 

 바우쉬는 아예 옆으로 굴러 피했다. 뒤로 피하기엔 거리가 허락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막아서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제아무리 우르크라 한들 본인 몸집만 한 검이었고, 그 이전에 막아내는 무기가 버티지 못할 터였다.

 

 쟈크는 허공을 가른 채 땅에 분풀이하는 검 끝을 발로 걷어차며 곧바로 찔러 들어갔다. 일어날 시간을 벌지 못한 바우쉬는 다시 한번 몸을 굴렸다. 또 한 번 허공에 무게를 날린 검을 쟈크는 한 번의 심호흡 뒤에 등 뒤로 휘둘러 찍었다. 쿵!

 

 그러나 바우쉬를 맞추지 못했고, 바우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어나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 그대로 글레이브를 짧게 휘둘렀다. 행동을 예측한 쟈크는 검을 끌어당기는 반발력으로 몸을 끌어와 빠르게 검 뒤로 몸을 숨겼다. 챙!

 

 오크들의 고함이 들렸지만 심장 박동을 느끼는 머릿속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엄연히 보이는 배경들이 사라지고 대치하는 둘만이 남겨진 기분이었다. 후우.

 

 그러나 현실에선 숨을 돌릴 시간 따윈 없었다. 검에 가려져 시야가 확보 되지 않은 근접 대치 상태. 대검을 휘두르기엔 거리가 너무 밀접했다. 쟈크는 검 끝을 땅에서 떨어뜨리고 검 등에 몸을 날렸다.

 

 검 바로 뒤에, 글레이브를 회수하지 못한 바우쉬를 검과 함께 날리면서 검 밖으로 보이는 무기 쥔 그의 팔을 붙잡고 넘어뜨렸다.

 

 바우쉬는 검과 쟈크에게 깔렸고, 쟈크는 오른쪽 무릎으로 검 등을 찍어 누른 채 바우쉬의 오른팔을 낚아채 와 두 팔로 껴안고 꺾어 들었다.

 

 “크아아악!”

 

 바우쉬는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우르크를 상대해 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몸을 부대끼며 대치해본 적은 처음인 쟈크였다.

 

 필사적으로 팔에 힘을 주고 왼편으로 몸을 돌리는 바우쉬의 근력 앞에 잠깐이지만 몸이 들린 쟈크는 서둘러 채 뜨지 않은 오른발로 검 등을 다시 한 번 내리눌렀다. 그러나 이미 중심을 잡은 바우쉬였고, 쟈크는 그의 팔을 포기한 채 서둘러 검을 주워들고 거리를 벌렸다.

 

 “펙토!”

 

 안전을 위해 거리를 벌렸지만 바우쉬는 아직 자세를 회복하지 못했고 팔을 제압당하면서 글레이브를 놓친 상태였다. 쟈크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들어가 놓친 글레이브를 줍지 못하게 아래서 위로 올려쳤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은 마나에 주문은 발동하지 않았고, 그의 검은 무거웠다. 목 대신 팔이라도 가져가려 했던 검의 궤도는 쟈크만큼이나 힘이 빠진 바우쉬라도 간신히 피할 수 있을 정도로는 둔했다.

 

 후우, 검을 포기하고 거리를 벌린 바우쉬. 검을 거꾸로 세운 채 내심 검에 기대 호흡을 회복하는 쟈크. 둘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이 2차전을 예고하는 하프타임이겠지만 주변은 녹록치 않았다. 극에 달한 오크들의 아우성이 그제야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제 그만하라는 건가. 지루해서 저들도 참여하겠다는 건가. 한껏 물올랐으니 다시 붙으라는 건가. 검투장에 놀러라도 갔었다면 저 군중의 심리를 알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저 놈들 표정을 어찌 읽어. 말도 못 알아듣겠고.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저들의 행동거지가 어떻게 되든 더 이상 타개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마나는 바닥났고, 그 전에 체력 또한 빛을 잃은 마나석 꼴이었다.

 

 “쿠아락!”

 

 노려보던 바우쉬의 고함에 쟈크는 긴장이 곤두섰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러나 바우쉬가 다시 뭐라 말을 더했고 곧 그에게 무기가 쥐어졌다.

 

 상황을 짐작컨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기가 쥐어졌다는 건 일단은 다행인 건가.

 

 바라보는 바우쉬의 눈빛이 진중하게 다가왔다. 쟈크는 마지막 숨을 골랐다. 먼저 친다. 다만 아쉬운 건 거리. 엇박으로.

 

 쟈크가 먼저 움직였다. 몸을 먼저 보내고 뒤쳐져 딸려오는 검을 휘두르는 척 어깨를 올린 그는 반응하는 바우쉬의 경로를 예측해 반 박자 늦게 휘둘렀다.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대검을 휘두르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검을 쓴다면 언제고 생겨날 빈틈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혹여 상대가 파고들 것까지 염두에 두었지만 애초에도 있었던 거리라 섣불리 들어오진 못했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기에도 애매한 거리. 궤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막는 것밖엔 방법이 없을 터다. 몸을 굴리기에도 검의 궤도가 허락지 않았다.

 

 짐작대로 바우쉬는 막을 수밖에 없었고 대검이 주는 충격은 그가 가진 조악한 무기가 버티지 못했다.

 

 “크악!”

 

 휘두른 검은 부서진 무기를 지나 그대로 바우쉬의 흉부를 긁었다. 카악! 무너지는 바우쉬가 멀어지기엔 검의 궤도가 충분했다.

 

 ‘들어갔다.’

 

 쟈크는 궤도가 다하는 지점까지 힘을 실었다. 그가 입은 갑주가 패이며 보랏빛 선혈이 튀었다. 그러나 쟈크는 무너진 바우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기도 전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온다...!’

 

 바우쉬가 채 쓰러지기도 전, 주변에 있던 오크들의 살기가 가까워졌다. 어떻게 막아야 하지. 자세를 회복한다 해도 사방에서 달려드는 오크를 막기에 다음을 준비할 수가 없었다.

 

 바우쉬를 볼 새도 없이 몸을 세운 쟈크에게 들어오는 시야는 눈앞의 오크들뿐. 그저 앞을 방어하다면 나머지 방향에서 들어오는 날붙이들을 막을 수가 없다.

 

 몸을 숙이고 머리를 보호하기엔 스스로 퇴로를 끊은 채 짓밟히는 외통수. 마나가 없는 지금, 저들을 날릴 정도의 힘을 구사할 수조차 없었다.

 

 두려움에 몸이 굳기보다 전술적 외통수 앞에 패배를 직감하고, 목을 치러 오는 적장을 묵묵히 바라보는 장군처럼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추듯 짧은 반경 안에서 긴 기다림을 느낀다.

 

 그냥 잠깐의 꿈이었음을 희망하는 지금이 주마등에 다다른 무의식일까. 싶을 때 달려오던 오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졌다. 정말 꿈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듯.

 

 이미 꼬치구이가 됐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뒤에도 그는 단 하나의 날붙이도 맞지 않은 채 생채기 없이 서 있었다. 그 주변에 있는 오크들이 무너지고 그들의 시선이 엉뚱한 곳으로 길을 잃는다.

 

 흐랴압! 챙. 퍽. 케아악!

 

 “쟈크!”

 

 이해 못 할 혼돈 속에서 조용히 묻힐 것만 같은 목소리 하나가 정신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개를 돌린 곳엔 네이즈가 있었다. 그가 왜? 갑자기 없던 군대라도 만들어 온 건가.

 

 다시 돌아가는 머릿속 생각이 전부 틀리지는 않았다.

 

 “정신 차려요!”

 

 초점을 되찾은 쟈크의 주변으로 익숙한 실루엣들이 스쳤다. 용병들이었다.

 

 정신을 차린 쟈크는 재빨리 검을 고쳐 쥐고 생겨난 퇴로에 몸을 옮겼다. 산길이 아니라 분지 안쪽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찾은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한 무리로 보이지 않는 재각기의 용병들이 오크들을 해치고 있었다. 외부의 침입을 짐작 못 한 오크들은 이리저리 분산 돼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그들의 검을 받는 중이었다.

 

 일단 돕자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신이 들고 상황이 파악되어도 그걸 받쳐줄 체력이 없었다. 아비규환의 바깥에 선 그는 네이즈와의 재회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눈앞의 광경을 담았다.

 

 위치에서 밀린 오크들은 점차 후퇴하며 분지 안쪽으로 진형을 옮겼다. 그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쟈크도 다시 발길을 옮겼다. 뒤로 빠지지 말고 빈틈을 만들어 산길로 간다.

 

 잠깐 사이 이승과 저승을 오간 기분. 가뜩이나 지친 몸이 더위와 중력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는 눈앞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호흡에 집중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그렇게 집중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기엔 무심해 보였다.

 

 증원 온 용병의 수는 어림잡아 열댓쯤 되는 듯했고, 여전히 오크의 수가 많았다. 노인의 말로는 칠팔십이라 했으니 살펴보지 못한 동굴에도 절반에 가까운 머릿수가 있을 터였다.

 

 “카윽샤르카!”

 

 뒤로 물러나다 쟈크를 발견한 오크 한 마리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쟈크는 호흡을 정리하며 오크가 달려오기까지도 무심하게 걸었다.

 

 부웅. 그리고 거리가 충족됐을 때 단 한 번 힘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지쳤다곤 하나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잔챙이쯤이야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근력, 크기, 그 밖의 외부조건. 그런 최소한의 생각도 없이 달려드는 잔챙이는 여태 알던 그저 그런 허접한 몬스터였다. 지능보다 본능이 앞서는 갈루마보다도 위협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헌데 왜.

 

 오크라는 하나의 종족 안에 이렇듯 다른 지능의 차이라니. 일개 몬스터로만 치부했던 놈들인데 사람에게서나 느낄 법한 공포라니. 사람과 다름없는, 아니 어쩌면 사람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가치관과 생각들이라니.

 

 쟈크는 중간중간 무리를 이탈해 달려오는 잔챙이들을 베어 나가며 네이즈가 있는 산길로 향하는 중에도 저 멀리 혼잡한 무리 안에 쓰러져 있을 바우쉬를 찾으려 했다.

 

 그 행동 자체는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대로 끝맺지 못한다면, 무언가를 놓친 기분으로 산길을 내려간다면 평생은 아니어도 오래간 앙금이 돼 남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둘러보는 시야로는 어지러운 잔혹함만 있을 뿐, 찾는 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분지 안쪽으로 다가오는 무리들 뒤쪽으로 낯익은 형체가 보였다. 검이 제대로 들어가 이미 쓰러진 줄 알았던 바우쉬가 혼란스러운 틈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안 보였군.

 

 그의 손에는 날아갔던 배틀엑스가 쥐어져있었다. 간혹 뒤를 잡히지 않기 위해 그를 공격하는 용병들이 있었지만 바우쉬의 신경은 오롯이 쟈크를 향하고 있었다.

 

 오는 공격에 대응할 뿐 용병들 틈으로 파고들지 않은 그는 어느 덧 용병들이 견제하는 사정거리에서도 멀어져 싸움의 중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쟈크 역시 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이번엔 자신이 먼저 대화를 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분위기상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말없이 가까워진 그들은 서로가 먼저랄 것 없이 무기를 고쳐 쥐었다. 쟈크는 그 짧은 긴장의 끈 중간을 한순간 낚아챘다.

 

 “더 할 수 있겠냐. 다 끝났다. 바우쉬.”

 

 “흥, 이래도. 흥, 오크만이 인간 수탈하는가.”

 

 “이건 수탈이 아니야. 저들이 왜 왔는지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아마 여기 납치된 사람들을 구하러 왔을 터다. 네놈들이 사람들을 납치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어.”

 

 “흥, 인간 납치하지 않았어도. 흥, 우리 터전 발견했다면 언제고 있을 일이었다. 여기가 사람 터전이었다면, 네놈들은 대화 먼저 했을 거다. 근데 네놈들은, 흥, 봐라. 무기 먼저 들이밀었다.”

 

 “그거야―”

 

 “흥, 네놈을 죽이고 있어서? 그럼 지금은, 흥. 왜 너 안 돕고, 우리와 싸우고 있는가.”

 

 “그거야...사람들을 구하려고 왔을 테니까.”

 

 “인간들, 흥. 인간 노예 사고판다. 흥, 그런데 왜 우리한텐 안 그러고 약탈하는가.”

 

 지금 대화가 재밌어서 웃긴 걸까. 아침과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래. 네 똥 굵다. 그럼 하나만 묻자. 만약 여기서 나머지라도 살아나갈 수 있다면, 인간들을 건들지 않고 살 수 있겠냐.”

 

 “흥, 쟈크, 바보다. 멍청이다. 흥, 우리가 안 건들면, 니들도 안 건드릴 건가? 누가 약속하는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네놈들이 먼저 건든다.”

 

 이번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어떤 질문에도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온 적이 없었다.

 

 “흥, 이 세상 어딜 가든 인간들 땅이다. 다들 자기 땅이란다. 나머지는 드워프, 엘프 땅이다. 여긴 우리 살고 있는데, 왜 우리 땅이 아닌가. 이 세상 땅은 거기 살고 있는 생물들 땅이다. 모든 동물들 사는 곳, 다 그네 땅이다. 근데 인간들은 왜 그런 땅 모두 자기 땅인가. 동물들 살고 있어도 자기 땅이다. 자기 땅이라 그 동물들 죽이고 사냥한다. 자기 땅 아니어도 죽이고 사냥하고 자기 땅이다. 최초의 약탈자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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