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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증명할 나이
작가 : 계춘
작품등록일 : 2022.2.14

세명의 중년 여성의 서로 다른 삶을 적은 글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안타까움보다 해결할 것들에 대한 여자들의 압박감에 대해 썼습니다.

 
증명할 나이
작성일 : 22-02-28 22:30     조회 : 170     추천 : 0     분량 : 7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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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뒤,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대회의실에서 새 디자인 설명회 겸 워크숍이 있었다. 오세정은 직급이 높아서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직원들 격려차 잠깐 들렀었다. 하지만 따분하기만 해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담배도 한 대 피고 싶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싶었다.

 

  그 곳은 젊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오세정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도로에 있는 흡연구역으로 갔다. 한국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울 수 없다. 특히 강남은 담배피우는 구역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그곳이 아니면 과태료를 물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조금 없는 자리로 들어가서 등을 돌리고 담배를 꺼냈다. 그 순간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 역시 등을 돌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힘들다는 듯 담배연기를 뿜고 있었다. 옆 사람이 누군지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그런 것 같다.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하면 고개만 끄덕인다. 사람은 대하는 것이 조금 서툴렀다.

 

  오세정이 계속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그녀 또한 고개를 돌렸다. 김지향이었다. 김지향은 고등학교 때 늘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잊고 살았다.

 

  김지향은 살이 조금 붙은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끔찍한 사건이 있은 후, 지원이만 잃은 게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의 추억과 행복도 모두 잃어버렸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친구들을 잃고도 서로 연락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다시 찾는다. 지금처럼 연락이 쉽게 되었더라면 친구들은 오세정을 천하의 나쁜 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김지향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아본 것도 신기하고, 이름이 생각난 것도 신기했다. 그냥 점심시간을 때우는 고등학생들의 낮선 만남 같았다.

 

  오세정은 김지향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야, 지향아, 나 세정이야, 오세정.”

 

  “어? 오세정? 미술했던 오세정?”

 

  김지향은 의아하면서도 반가워서 오세정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대뜸 와락 안았다. 연락을 하고 살았어야 하는 친한 사이었다. 하지만 김지향도 오세정도 서로의 삶이 무거워서 그러지 못했다. 시간을 끊은 사람은 오세정이었다. 하지만 김지향도 그다지 오세정을 원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반가움에 두 눈을 끔뻑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눈이 빨갛게 되면서 코 옆으로 눈물이 흘렀다. 반가움보다 더 큰 어떤 감정이었던 것 같다.

 

  “세정아, 우리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지? 지금은 너나 나나 모두 바쁜 것 같으니까, 이번 주 내로 만나자. 나 너에게 물을 것이 너무 많아. 일단 네 번호 여기에 찍어.”

 

  김지향과 오세정은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때는 시간이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꼭 약속을 하지 않아도 만나야 되는 사이라는 것을 서로 알았다.

 

  오세정의 소식을 들은 윤단은 보고 싶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 예날 친구들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세정의 한국은 더 풍요로워졌다. 김지향 덕분에 윤단도 다시 만났고, 그들의 삶 속에서 같이 걸어갈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오세정의 한국이 또 있는 이유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정수리를 누르는 것도 있다. 어떤 삶에 발을 들이냐에 따라 인생 또한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그 날 오세정의 새로운 삶은 김지향과 윤단이었다.

 

 

 3. 김지향

 

  윤단은 세정이의 전화를 받았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낸 친구인데 지금까지 연락한번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게 슬프기도 했다. 사람들의 삶이 거의 그렇겠지만, 윤단은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살고 싶었다. 오세정의 사정을 모르는 윤단은 연락을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꼭 본인 탓인 것 같아서 미안했다.

 

  “단아, 나 세정이야. 지향이에게 들었지?”

 

  “응, 세정아. 지향이 가끔 만나. 너희 둘 드라마처럼 만났다고 그러더라. 멋있다. 나는 아줌마로 이렇게 사는데, 부럽다.”

 

  “결혼도 안하고 사는 사람들은 너처럼 아이들하고 아웅다웅 사는 사람들 부러워하거든. 그런 말 하지 말고, 보고 싶다. 우리 만나야지. 지향이한테 들어보니까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데.”

 

  “그래야지. 나도 나이 드니까 옛날 친구들이 그렇게 보고 싶더라. 할 말이 너무 많다. 세정아. 너 시간 될 때 꼭 전화 줘. 나는 시간이 많으니까.”

 

  -

 

  김지향은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버스 기사를 하셨고 엄마는 작은 가게들을 이것저것 많이 하셔서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시켜 주셨다.

 

  그 시기에는 학원이라는 것도 재수하기 위한 것 밖에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종로까지 가야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김지향은 다니고 싶은 학원은 모두 갈 수 있어서 학력고사 성적이 좋았다.

 

  학력고사는 선시험, 후지원에 선택할 수 있는 학교와 과는 단 하나여서 공부를 잘해도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김지향은 운도 좋아서 떡하니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한 김지향은 바로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하지만 마켓팅 부서에서 일은 그렇게 쉬운게 아니었다. 그에 관한 일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몇 년 동안 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복사를 하고, 상사들의 커피를 타고,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예약하는 정도였다. 회의에도 테이블 곁에 있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아닌, 벽에 붙어 있는 긴 의자에 따로 앉아 선배들이 하는 말들을 녹음해서 회의 후 대화형식으로 스크립트를 적어야했다. 김지향의 일은 그게 전부였다.

 

  그런 회사 생활에서 활력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바로 위 선배였다. 아직 대리도 달지 못하고 사원이기는 하지만 지향이보다 많은 일을 하는 분이었다. 회의에도 당당히 참석을 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 회의 자료도 직접 만들어서 보고하는 위치였다. 부러웠다.

 

  어느 날, 그 회사 선배는 지향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지향씨, 오늘 점심은 따로 먹을까요? 아침에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싸 주셨는데 혼자 먹기는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할 얘기도 있고, 어때요?”

 

  김지향은 좋았다. 이런 상막한 회사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외모도 성품도 너무 훌륭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래도 될까요? 다른 분들께서 뭐라고 하지 않으실까요?”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 말아요.”

 

  점심시간이 되어서 김지향은 그 선배를 바라보았다. 다른 상사들의 점심메뉴를 고를 필요도 예약할 필요도 없는 날이어서 좋았다. 그 선배는 손에 도시락 통을 들고 나가면서 작은 쪽지를 책상 위에 놓고 갔다. 근처에 있는 아파트 관리소 앞 놀이터에서 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장소가 의아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그 장소를 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파트 외진 곳에 있는 관리소는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없다. 그리고 그 앞 놀이터는 점심시간인지라 아이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조용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딱 좋은 장소였다.

 

  “지향씨, 여기 와서 앉아요. 내가 따뜻한 캔 커피도 사서 왔어요.”

 

  놀이터 한 구석에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있는 엄마들을 위한 야외용 테이블도 있었다. 꼭 소풍을 온 것 같았다. 도시락을 여는 순간 김지향은 너무 놀랐다. 엄마가 그냥 싸준 도시락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밥이나 김밥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는 고급호텔에서 나오는 귀빈용 도시락 같았다.

 

  “와, 무슨 도시락이 이렇게 좋아요? 어머니께서 싸신 거 맞아요?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하나씩 물어봐요. 사실은 제가 일주일 전부터 어머니께 부탁을 했어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같이 점심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이렇게 싸 주셨어요. 이런 시간을 가지면 지향씨가 제게 호감을 가질 것 같아서요.”

 

  김지향은 놀라기도 했지만 너무 행복했다. 대학교 때 같은 과 선배와 사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적극적이고 세심한 사람은 없었다. 그냥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과제를 같이하는 선배일 뿐이었다.

 

  외모도 훌륭하고, 성격도 훌륭한 그 선배가 좋았다.

 

  김지향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사내 연애를 하며 2년을 보냈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면서 두 사람은 같이 일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선배는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외국 회사에 이직을 선택했다. 그 때는 그 서로 선택이 최선인줄 알았다.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고, 틈틈이 사랑을 확인하고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긴 사랑을 한 두 사람은 3년 만에 결혼을 하였고, 바로 아이도 가졌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이 지나는 것 같았다.

 

 -

  “지향아, 나 오늘 사직서 내고 왔어. 일도 너무 힘들고 더구나 사람들이 너무 짜증나서 같이 일하기가 쉽지 않네.”

 

  “뭐라고? 나에게 먼저 상의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일을 그렇게 쉽게 그만 두면 어떡해? 준서는 곧 학교에 들어 갈 건데. 나 혼자 벌어서 어떻게 애를 키워?”

 

  “너에게 계속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잖아.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너는 왜 알려고 하지 않아? 내가 얼마나 힘 들었으면 이렇게 하겠어?”

 

  준서가 7살 때, 그 일이 처음이었다. 김지향의 남편은 이직을 하고 그 회사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 젊었을 때는 몇 달을 쉬고 이직을 하는 것이 쉬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직은 쉽지 않았다. 일과 육아 그리고 집안일들은 모두 김지향의 몫이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기를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김지향은 더 이상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학원비도 비싸고, 물가는 오르고 본인의 자리도 언제 없어질지 몰랐다. 그 때까지 집 한 채도 없이 전세살이를 계속해야만 했다. 그 마저도 전세가 너무 올라서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준서 아빠, 이제 회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잖아. 차라리 택시기사 면허증이나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은 어때? 나 혼자 힘들어서 그래. 준서 혼자살 수 있을 때 까지는 우리가 도와줘야 하잖아.”

 

  김지향의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다. 단지 능력이 없을 뿐이다. 본인도 김지향의 말을 무시 할 수는 없었는지 택시기사 자격증을 신청해서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하기는 싫었는지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며칠은 택배 회사에서 물건 승하차를 하는 일을 하였다고 일주일 분 주급을 받아왔다. 이렇게 푼돈을 벌어 오는 것은 가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허리가 아프다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은 비용이 더 든 것 같았다.

 

  “준서아빠, 차라리 집안일을 전담해서 하는 게 어때? 그렇게 해 주면 내가 바깥일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우리 회사도 인사이동이 있을 것 같아, 다른 지역 지사로 발령이 나면 이번에는 피할 수 없을 것 같거든. 회사에서도 싫으면 나가라는 입장이야, 요즘. 좀 생각해볼래?”

 

  그 날부터 남편은 집안일을 하고 김지향은 돈만 벌었다. 적성에 맞았는지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분리수거도 너무 꼼꼼하게 하고, 청소도 먼지하나 보이지 않게 깔끔하게 했다. 어느 날은 출근할 때 도시락을 싸주기도 했지만, 김지향은 힘들었다. 혼자 버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어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화가 났다. 더욱이 남편이 더 이상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 김지향을 힘들게 했다.

 

  “엄마, 나 우리학교 내신 4과목 관리하는 학원 다닐 수 있어요?”

 

  “엄마가 지원 할 수 있는 건 딱 200만원까지야. 더 이상은 할 수 없어. 너도 알잖아. 우리 지금 형편이 좋지 않은 거.”

 

  “그럼 나 공부 못해도 뭐라고 하지 마세요. 다른 애들은 모두 내신학원 다니면서 공부하는데, 혼자 어떻게 해요?”

 

  김지향은 답답했다. 상황에 따라 가족들은 서로 도와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오직 김지향만 걱정할 뿐 짐을 나눠 질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면 안 되지만 혼자서도 얼마든지 열심히 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렇다고 이런 비교를 하면서 아이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날 이후로 김지향의 고민은 하나 더 늘었다. 날카로운 대화에 지치고 무심한 남편에 지쳤다. 그렇게 시간은 무겁게 흘러갔다.

 

  김지향의 아이는 첫 번째 대입에서 실패를 했다

 

  “엄마, 나 재수하면 더 좋은 학교 갈 수 있어요. 해 볼게요.”

 

  그 다음 해, 두 번째 대입에서는 원하는 학교는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하나 남은 학교는 아이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 나 학원에만 다녀서는 공부를 잘 할 수 없어요. 기숙학원에 보내 주세요. 이런 학교는 싫어요.”

 

  준서는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삼수를 하겠다고 했다.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졸로 만들 수는 없었다.

 

  “여보, 준서가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삼수를 한다고 하는데 어떡해? 기숙학원은 매달 350만원은 내야 할 거야. 내 월급으로는 할 수가 없는 데 어떡하면 좋겠어?”

 

  남편은 어떤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게. 큰일이네.”

 

  이 한 마디뿐이었다. 그 다음은 늘 없었다. 실업자 신세라서 신용대출도 할 수 없었고, 집도 전세라서 담보 대출도 힘들었다. 시댁은 본인들 살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서 돈 얘기를 할 수도 없었다.

 

  김지향은 준서를 고졸로 둘 수도 없었고, 적극적인 지원도 힘들었다. 답은 은행에서 일단 신용대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자가 싸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원금 이외 이자만 갚는 것을 목표로 3000만원을 대출했다. 이 돈은 마지막으로 아이를 위해서 쓸 예정이었다.

 

  남편에게 대출 받은 것에 대해 얘기 했다. 반응은 역시 같았다. 1월 신정이 끝나고 아이는 기숙학원 입사를 하게 되었다. 힘들게 투자하는 돈이니까 알차게 쓸 수 있도록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 할 마음이 걱정되어서 꾹 참았다.

 

  “이제 집에 아무도 없는데 이렇게 집에 있을 거야? 대출이자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뭐라도 해봐. 제발.”

 

  김지향은 단호하게 얘기 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았다는 끄덕임만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 왔지만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눈치가 보였는지 대리 운전을 시작했다. 택시를 시작하면 계속 해야 할 것 같았는지 쉽게 시작하지 않았다. 그것도 꾸준히 하지도 않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는 빠지는 날이 더 많았다. 저녁에 잠깐 다녀오면 3만원은 벌었지만, 그건 남편의 용돈 정도였다. 나이가 있어서 학생들이 하는 알바는 할 수도 없었고,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오늘 벌어서 오늘 사는 것처럼 살았다. 간간히 윤단을 만나면서 신세한탄을 할 뿐 어떤 돌파구도 없었다.

 

  김지향의 인생은 그랬다.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착한 남편을 버릴 수 없어서, 이혼도 할 수 없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앞가림을 하면 좋아지겠지 하는 희망고문으로 20년을 넘게 살고 있다.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김지향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남은 평온함을 깨고 싶지도 않았다.

 

  김지향은 바보다. 책임감이 강한 바보다.

 

  잘 발효된 녹차처럼 물을 만나서 더 향기로워 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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