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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가이아 프로젝트 (수레바퀴 : Great Reset)
작가 : 태풍
작품등록일 : 2022.2.28

각기 다른 세계의 두 남자가 가족을 잃으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 두 세계는 지구의 지상도시와 지하도시다.
두 남자의 여정 중 멸망의 전조와 신의 전말이 점차 드러난다.
세계는 다시 만들기 위하여 부숴야만 한다.

 
8. 시작점 (Genesis) - 完
작성일 : 22-02-28 20:57     조회 : 172     추천 : 0     분량 : 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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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시작점 (Genesis)

 

  레오는 불길이 솟아있는 공무 센터의 광장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페투가 검은 칼을 손에 괴고 계단에 앉아있었다. 그가 레오의 기척을 느끼고 올려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 주위로 마치 영혼 없이 육신만 남아 있는 것처럼 붉은 빛내며 흐느적대는 사람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족히 이십 명이 넘어 보였다. 그들의 옷차림으로 보아 이오플의 직원들과 의원들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점차 적대적인 눈을 하며 뼈를 삐걱거리며 레오의 주위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는 페투를 의식하며 권총을 장전했다. 페투는 움직임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허리춤의 다른 권총을 꺼내 양손으로 권총 두 자루를 교차하여 잡고 자세를 낮췄다.

  일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시뻘건 눈을 치켜뜨는 지민들이 짐승처럼 손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냈다. 그들이 한꺼번에 레오에게 달려들었다.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괴성들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레오는 뒤로 물러서며 양손의 권총을 그들에게 쉴 새 없이 쏘았다. 그들은 총탄에 맞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그에게 팔을 험악하게 휘둘렀다. 그들이 강렬하게 휘두르는 손톱이 그의 피부를 긁으며 지나갔다. 아스라이 아릿한 고통이 신경을 자극했다.

  레오는 그들을 피해 뒤로 구르며 다시 총을 연사했다. 탕 탕 탕 탕 탕. 총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낸 이의 얼굴을 팔꿈치로 세차게 가격했다. 그의 이빨이 터져나갔다.

  두 자루의 탄약이 모두 떨어지자 레오는 총을 내던져 버리고 날아오르며 그들을 걷어찼다. 그 반동으로 다시 몸을 돌리며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그들은 송장처럼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아 버둥거리는 이를 쓰러트려 눕혔다. 레오는 그의 목을 조르며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괴물처럼 이글거리는 그의 얼굴을 때려눕혔다. 얼굴이 뭉개졌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윽고 그의 얼굴이 피떡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제서야 레오의 주먹질도 멈췄다. 레오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 탄창을 바꿔 끼웠다.

  레오는 여전히 미동도 하고 있지 않은 페투에게 바로 조준하여 권총을 연달아 발사했다. 그러자 페투가 바람 같은 속도로 검은 칼을 앞으로 내밀었다. 휘두르는 칼은 총탄을 모두 막아냈다. 레오는 굴하지 않고 끊이지 않고 쏘았다. 그가 붉은 잔상을 남기며 레오에게 달려들었다. 실상 거의 보이지 않았다. 레오는 순간적으로 그의 움직임을 놓쳤다.

  그가 바로 레오의 옆에서 다가서서 칼을 그었다. 레오는 간신히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칼에 아슬아슬하게 베이지 않았다. 레오는 권총의 자루로 그의 관자놀이를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그의 목이 돌아갈 만큼 치고 나서야 그와 몸이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짐도 잠시 그의 머리가 레오의 이마를 강타했다. 높이 추락하다 머리부터 떨어진 것처럼 강렬한 고통이 뇌를 휘감았다. 할로겐 불빛이 눈에 번쩍이듯 시야가 흐려졌다. 하지만 그에게 거리를 내어줄 수 없었다.

  레오는 어지러운 머리를 털어내며 눈을 반쯤 감은 채 그를 팔로 감싸 안 듯 달려들었다. 그의 몸이 땅바닥에 내려 꽂혔다. 레오의 머리도 함께 바닥에 부딪히며 콘크리트의 충격이 전해졌다. 부딪친 바닥에서 먼지가 크게 원형으로 일었다.

  둘은 서로 무기를 놓은 채 진흙탕에서 뒹굴 듯 개싸움을 벌였다. 서로 주먹을 쉴 새 없이 오갔다. 레오가 내려치면 페투가 올려쳤다. 페투가 발끝으로 빗겨 치면 레오가 주먹을 찍었다. 페투의 팔꿈치에 레오의 광대뼈가 부숴졌다. 어금니가 덜렁거렸다. 신경계가 저릿저릿 끊어졌다. 힘줄을 타고 뒷머리가 어질했다.

  레오는는 누운 채로 그를 위로 걷어 올려 차서 넘겨버렸다. 반동으로 곧장 일어섰다. 레오는 팔목을 얼굴 앞에 올리며 자세를 낮췄다. 페투는 용수철처럼 날아가던 몸을 바닥에서 튕기며 일어섰다. 그는 레오를 향해 번개 같은 속도로 다시 달려들었다. 왼쪽, 오른쪽, 불규칙하게 주먹이 얼굴과 복부로 날아들었다.

  레오는 주먹을 구태여 피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기회를 엿보았다. 그의 발끝이 옆구리에 날아들자 윽, 하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레오의 팔목을 붙잡듯이 잡아채며 복부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주먹은 힘과 가속이 붙으며 순식간에 레오의 복부에 수십 대를 퍼부었다.

  레오는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참으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는 페투의 날아오는 팔을 붙잡았다. 붙잡힌 팔을 비틀어 거꾸로 그의 주먹을 낚아챘다. 레오는 그의 관자놀이와 눈가에 오른손 주먹을 횡으로 빗겨 치며 강타했다. 퍽 소리가 울리며 그의 눈이 찢어졌다. 레오는 그의 팔을 풀고 왼손 주먹으로 그의 턱을 올려쳤다. 그가 휘청였다. 레오는 오른손 주먹으로 콧잔등에 결정타를 먹였다. 페투가 균형을 잃으며 쓰러졌다.

  레오는 그가 일어서기 전에 권총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발끝으로 권총을 튕기듯이 올렸다. 공중에 낮게 튀어 오른 총을 잡아채며 그를 향해 조준했다. 하지만 어느새 벌써 칼을 들고 달려온 그의 칼끝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행운이 레오의 편인 것처럼 페투의 칼이 그를 향해 조준한 총구에 막혔다. 둘은 덩달아 함께 쓰러졌다. 레오는 쓰러지며 총을 놓쳤다. 그의 칼을 비틀어 칼날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레오는 붙잡은 칼로 그의 목을 향해 힘차게 눌렀다. 둘은 잠시 칼을 가운데에 놓고 힘을 겨뤘다. 서로 칼날을 붙잡고 밀어냈다. 손가락과 손바닥에서 살갗이 칼날에 박히며 피가 배어 나왔다. 레오는 이가 부서질 듯 힘을 주며 근육을 눌렀다.

  쿡! 하는 허망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그는 검은 칼에 목이 파였다. 그는 목이 반쯤 파인 채 힘을 잃었다. 레오는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 너덜너덜해진 손바닥을 부여잡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혼이 파랗게 불타오르듯 찢어지며 레오에게 들어왔다. 그의 기억이 들어왔다. 그가 죽인 이들의 기억이 들어왔다. 그가 죽인 이오플 직원들의 기억의 편린까지 함께 뒤섞여 들어왔다.

  레오는 문득 어지러움을 동반한 구토가 일어났다. 그는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뭘 먹기는 했던가. 이걸로 된 걸까. 그는 왠지 만사가 귀찮아졌다. 총을 주워들고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바닥, 흥건한 피, 검은 하늘, 회색 불빛, 붉게 칠해 물들인 손아귀.

  레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무릎을 꿇고 그의 관자놀이에 권총 끝을 갖다 대었다. 지글지글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총구가 아릿하게 피부와 핏줄을 태워 버릴 듯 뜨듯하다. 아아, 이대로 끝나고 앞으로 고꾸라지겠지. 당기면 쿵. 안녕이다.

  찰칵찰칵.

  탄약이 없어 노리쇠가 공이를 헛방망이질을 하는 쇳소리가 머리를 타고 귓등을 울린다. 빈 탄창을 느끼지 못할 만큼, 숫자도 세지 못할 만큼 멍청해졌다고 자조했다. 그는 팔을 힘없이 축 떨어트리며 키식 키식 웃어버린다. 기껏 마음을 먹었는데 이런 식이면 의지가 박약 되어 버린다. 다 마음 같을 수는 없다.

  앞에 힘없이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을, 5분 전까지 숨을 쉬는 사람이었던,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벌겋게 물들여진 몸뚱이들을 바라보자니 꿈을 꾸듯 현실감이 없어졌다. 차라리 꿈이면 좋을까 싶어 괜히 뺨을 찰싹 내려쳐 본다. 입안 가득 어금니에 전해져오는 아득한 통증은 되려 뇌를 어질어질하게 한다. 어지럽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들의 약조를 기억해내 본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뭘 해야 했지. 레오는 주위를 둘러보다 허망함이 짙어졌다. 불타오르는 도시와 피로 흩뿌려진 시체들. 나타는 내가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 했다. 그는 대체 뭘 원하는 것일까. 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일종의 사고 같은 거지. 재난이랄까.”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올려다보자 그야말로 괴이한 생명체가 있었다. 격자무늬로 망막이 커다란 자주색의 두 눈이 얼굴보다 커서 덮다시피 하고 있다. 매끈한 껍질로 이루어진 갑각이 몸을 뒤덮고 있었다. 관절이 이리저리 뒤틀려있는 팔다리가 6개였고 그중 2개로 발을 딛고 서 있었다. 그 등 뒤로 6개의 날개가 펄럭였다. 흡사 거대한 파리의 모습이었다. 입이라고 할 수 없는 옆으로 찢어진 파리의 주둥이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주다가 일을 잘 완수했더군. 그 덕에 일어날 수 있었다.”

  레오는 몸에 힘을 잃고 올려다보았다. 저항할 체력이나 의지가 더 이상 남지 않았다. 파리는 인자하게 주둥이를 씰룩인다. 그의 양팔에 뱀의 머리와 늑대의 머리가 들려있었다. 뱀과 늑대의 머리를 기억했다. 나타와 라브의 머리다.

  “넌... 또... 누구지?”

  “난 레피크다. 그래, 많은 일이 있었겠지. 가지. 보여줄 게 있다.”

  파리는 뱀과 늑대의 머리를 귀찮다는 듯 멀리 던져버리고는 레오의 목덜미를 붙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투명하고 반짝이는 날갯짓은 기묘한 우아함을 뿜었다. 파리는 지부의 통로 이곳저곳을 다니다 지상으로 날아올랐다. 파리는 레오를 끌고 한참을 날았다. 이윽고 지상까지 빠르게 올랐다. 파리와 레오는 지상에서 또 하늘까지 연이어 날아올랐다. 레오는 태어나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 지상을 바라보았다. 지평선과 원형으로 펼쳐진 지구의 푸른 모습은 경이로웠다.

  “어떤가.”

  파리는 수평으로 하늘을 날아가며 말했다. 레오는 답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높은 산에서 크고 작은 새들이 지나니고 바다에서 파도가 출렁였다.

  “주다에게 큰일을 맡겼지. 그는 강단이 있었어. 실로 가이아의 주체라 할만 했다. 그의 혼을 우주에 잃어버린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그도 어차피 가이아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니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이지. 주다는 이미 갔고, 네가 눈에 띄었다. 넌 지금 이미 하나의 가이아가 아니더군. 나타와 라브가 재밌는 짓을 해놓았어. 한데 조그맣게 모여진 가이아의 부분 합이라니. 배은망덕한 놈들. 하지만 그래도 너는 눈여겨 볼 만 했다. 들어볼 준비가 됐는가.”

  레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에게 선택을 줄까 한다. 주다는 충성스럽고 정의로웠지. 편협하긴 했지만 누구나 장점만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임무와 약조를 잊지않고 이겨내고 완수해낸 훌륭한 혼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라졌지. 어찌 보면 많은 가이아가 혼합해서 뒤섞이고 많은 일을 겪은 그대에게 선택을 주는 것도 합리적으로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대는 안타깝게도 평범한 가이아지. 그렇지만 그래서 더 적임이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조차 이러한 제안조차 실은 강요에 가까운 거라고도 볼 수 있지만 말이야.”

  레오는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기업 직원들의 기억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해가 갈 듯 말 듯 아리송해졌다.

  “나타와 라브는 어떻게 된 겁니까?”

  레오의 말에 파리는 무심하게 답했다.

  “없앴다. 이제 그들의 이름은 우주의 규칙에서 지워졌다. 감히 내가 잠든 시기에 협약을 깨고 시크를 도발하고 가이아를 먹어 치우다니. 그 당돌함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가이아를 먹고 힘을 갖추면 지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가. 뭐 그 덕에 지구 재생 계획(Gaia Project)을 앞당길 수 있었어. 비록 주다를 잃었지만 무엇이든 희생이 있어야 얻는 것이 있고,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는 법이지.”

  “가이아가 뭐지?”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그건 상대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건 무엇을 하고 있냐는 거지. 가이아, 즉 자네는 본래 하나다. 열두 황도 규칙은 변화한다. 변화하는 것이 우주의 기본 규칙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전갈자리 은하가 우주의 중심점으로 삼아지는 날 우주의 창조주가 이곳에 은하를 창조했다. 무한한 공간 속에서 대지는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 빛과 물과 생명이 있으나 공간에 잠식되어 존재하나 그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창조주가 빛이 있으라고 하자 빛이 생겼다. 창조주가 보기에 구조가 좋았다. 원자가 생명의 형태로 한데 뭉쳐 충직한 뜻을 이루었다. 창조주는 나를 보내어 그 뜻이 영원토록 이어지도록 관리토록 했다. 전갈자리의 은하점이 지나고 궁수자리의 은하점이 중심이 되었다. 열두 황도 규칙이 변하며 이 은하의 힘이 왕성해질 때 너희가 독립을 원했다. 외부에서 창조할 수 없으니 스스로를 나누어 창조하고 싶어 했다. 실로 모독 스러운 일이었으나 놀랍게도 창조주가 허락했다. 너희는 신이 나 스스로를 끝없이 분열하며 수많은 생명을 탄생시켰다. 너희의 분자가 분열하고 복사하며 자가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그걸 흥미롭게 여겼다. 분열과 창조를 반복하던 너희는 우연 끝에 돌연변이가 탄생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창조주를 닮은 인류를 스스로 만들었다. 창조주는 기특해하며 기뻐했다. 우리는 너희를 지켜보고 보존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놀라운 일이 또 발생했다. 스스로 생명을 복사하기 시작한 거야.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고. 끊임없는 복사. 막을 수 없는 팽창이었다. 우린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제동 없는 끝없는 팽창은 모든 걸 집어삼키니까. 그래서 우린 너희의 종을 쪼개고 분류하고 사슬을 만들었다. 스스로 팽창한 만큼 스스로 없애는 균형점을 만들었다. 너희는 분열하여 창조만 할 줄 알지 어떻게 이어나가야할 지를 알지 못했다. 분열해도 영원히 지속할 줄 알았겠지. 하지만 영원히 분열하며 팽창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너희는 그만큼 궁수자리의 힘을 등에 업고 무한한 원자 분열을 이루었다. 욕심이 끝이 없는 족속들이었다. 우리의 제약으로 너희의 분할된 생명은 짧은 수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도 모르고 극도로 끝없이 나눈 너희는 각자의 생명력이 약해졌다. 나는 창조주의 편애를 받는 너희가 이대로 없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약한 생명력을 각자 이어나갈 수 있도록 그 생명을 순환시켜 주었다. 수레바퀴(Gaia Wheel)를 만들어 영원히 돌고 돌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게 감사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상당히 흥미로웠다. 우린 너희를 지켜보고 관리하는 것이 즐거웠다. 너희는 창조주를 모방했는데 모독스러울 만큼 인류라는 종은 포악하고 잔인하고 나약했다. 우린 인류가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다른 생명체로 분열될 줄 알았다. 그런 종은 수도 없이 많았거든. 나는 너희를 뒤에서 도와주며 관찰하고 실험했다. 인류는 수차례씩 번성하고 멸망하고를 반복했다. 인류만 망하면 되는 것인데 인류는 곧잘 지구를 통째로 망가트렸다. 가이아 중에서도 정말 파멸적인 종족이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지구를 억지로 재생하면서 불가피하게 종과 가이아를 재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라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너희는 우리의 생각보다 불안정하고 너무나도 나약했다. 시크라는 침입자가 속삭이는 기만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고 힘을 빌려줄 줄은 몰랐다. 각자가 분리되어 영생을 포기하고 창조를 택한 너희들이 영생을 하기 위해 신의 힘을 빌리는 것이 매우 우스운 모순이었다. 우린 시크를 물리칠 수 없었다. 시크는 비열하고 강대한 침입자였다. 우리는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인류는 없던 기계문명을 발달시키면서 자연을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더군. 그래서 계획을 세웠지. 인류를 축소시키고 가이아를 직접적으로 통제해야겠다고. 하지만 인류는 바퀴벌레처럼 쉽사리 사라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은혜도 모르고 반역했다. 너희는 충성을 잊어버렸다. 시크를 신처럼 모시면서. 너희와 침입자는 끊임없이 우리를 악으로 몰아세우며 배척했다. 하지만 다행히 주다의 희생으로 가이아를 온전히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주의 규칙은 지금에라도 가이아를 없애거나 통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난 입장이 여전히 다르다. 어쩌면 너희를 관찰하고 지켜보며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회를 한 번 더 주려고 한다.”

  그는 말을 마치며 어느 커다랗게 패인 곳에 레오를 내려주었다. 패인 곳의 중심에는 파랗게 빛나는 칼이 꽂혀 있었다. 레오는 마치 이끌리듯이 칼에게 다가갔다.

  “그곳에 절반의 가이아와 기폭장치가 있다. 나는 네가 가이아를 모두 먹어 치우든 전처럼 자유롭게 풀어주든 아무 관여도 하지 않을 거다. 어느 쪽이 되었든 흥미로울 테니까. 시크가 없는 마당에 더 이상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 물론 또 다른 침입자가 올 수도 있다. 그때는 내가 직접 너희를 통제할 것이다.”

  레피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레오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 기폭장치는 이 지구를 사멸하고 새로 땅을 덮을 것이다. 이제는 세지도 못할 정도의 수차례 실행되었던 지구 재생 계획, 가이아 프로젝트다. 우리도 못할 것을 주다가 이런 것을 만들어냈지. 아쉬운 녀석이다. 네가 그걸 작동시키면 이곳 가이아 역사상 최대의 초기화를 거쳐 태초로 돌아가는 재생을 거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중에 모든 생명체 또한 죽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야 하니까. 그때까지의 내 수고로움은 이해해주도록 하지. 그러니 선택지를 주겠다. 이대로 살 것인지. 초기화를 할 것인지.”

  “이대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만이 수레바퀴를 돌 것이다. 물론 전과는 다르게 모든 동식물이 공평하게 순환을 돌 것이다. 그것이 태초의 원형이다. 지부에서의 제한된 개량 수레바퀴는 주다의 제안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이제 의미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해주고 싶지 않다. 인류는 더 이상 다른 가이아들과 달리 특별한 취급을 받을 자격이 없다.”

  레오는 칼에 다가가 자루를 쥔 채로 맥없이 묻는다.

  “마리아는?”

  “네가 누굴 이야기하든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아라. 어디가 꿈일지. 어디가 현실일지. 가이아는 인류가 다가 아니다. 식물도 가이아고, 바다도 가이아고, 동물도 가이아고, 사람도 가이아다. 그중에서도 창조주를 닮은 그 육신은 감옥과도 같다. 순환의 수레바퀴에서 식물로 태어나 식물로 죽어가고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가이아도 숱하게 많다. 하지만 그중 유독 너희 인류만이 그 몸을 고집한다. 무엇이 그토록 집착을 낳는지 나로서는 모르겠으나 인류는 가이아 중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종족인 것은 사실이다. 그 끊임없는 집착과 탐욕이 너희가 그렇게 발전하도록 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자루만 쥐고 백년이고 이백년이고 기다려도 되지만, 그래도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 어떻게 하겠는가.”

  “초기화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완전한 처음이다. 위대한 초기화(Great Reset)는 지구의 모든 가이아를 하나로 합칠 것이다. 지금의 너도, 네가 말한 마리아도, 네가 원한을 가졌던 적도, 모두 하나가 된다.”

  레오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 실은 생각은 하고 있지도 않았다. 쉬고 싶었다.

  “약조를 했습니다.”

  “말해라.”

  “죽게 해주겠다고. 날 쉬게 해주겠다고.”

  “나타가 그러던가? 널 먹어치울 생각이었겠지. 간악한 녀석들. 그래, 쉬게 해주겠다.”

  “그럼 쉬게 해주십시오. 위대한 초기화.”

  “선택은 한 번 뿐이다. 네가 누르면 된다.”

  레오는 주저 없이 칼자루의 스위치를 당겼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커다란 지진이 일었다. 그가 맥없이 레피크를 뒤돌아 쳐다보자 그는 마치 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날갯짓을 퍼덕였다.

  “그럼 좋은 시간 되라고. 마지막이니까, 이번엔 실망시키지 말고. 또 보자. 가이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천지가 뒤흔들리며 지구의 지하에서부터 곧고 뾰족하게 뻗은 산맥이 지구의 사방에서 수백 개씩 솟아났다. 지하의 산맥은 지상의 피부를 찢고 나오듯이 대지를 갈랐다. 지상에 있던 땅들은 뜯어지고 부서지며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우주에서도 보일만큼 높게 솟아오른 지하의 산맥은 뿌리까지 올라오자 산맥 끝 봉우리를 사방으로 펼치며 기존의 땅과 바다를 뒤엎었다. 지하는 지상이 되었고, 지상이 지하가 되었다. 바다는 지하수가 되었고, 지하수가 바다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 육신이 죽음을 당하며 그 모든 가이아의 영혼이 지구의 내핵으로 몰려들었다. 즉, 수레바퀴의 실체화다.

  가이아가 수레바퀴로 한데 모였다. 새로운 땅이 일궈질 때까지 레피크는 풀어주지 않았다. 일백년 가까이 흐르자 지구의 최소 분자로 이루어지는 녹지와 바다와 하늘이 풍성하게 이루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레피크는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피크가 레오에게 구태여 하지 않은 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우주의 규칙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냈다. 창조주가 이를 허락했다. 그는 모든 인류와 새로운 동식물을 빚어내는 데 있어 남성 여섯, 여성 여섯으로 제한하여 그들이 죽지 않고 불사하여 번식을 하지 못하도록 유전자의 배열을 조정하여 종을 빚어냈다. 레피크는 가이아의 유전 배열과 원자 분열을 적극적으로 철저하게 통제했다.

  레피크는 새로운 세상에 각기 다른 장소에 동식물과 인류를 풀어놓았다. 그는 그중 가장 애착 있게 빚은 남성을 아담과 레오라고 부르고, 여성을 이브와 마리아라고 불렀다. 레오와 마리아는 낙원에서 눈을 뜨고 서로를 바라보다 손을 맞잡았다. 레오와 마리아는 손을 잡은 채 낙원을 걷고 열매를 먹고 사랑을 하고 잠을 잤다. 그들은 레피크의 편애를 받았다.

  열두 명의 인류와 백이십 마리의 동물과 천이백 그루의 식물은 열 번째 재생된 지구에서 영생을 살아가고 있다. 곧 우주의 열두 황도 규칙이 바뀌며 물병자리 은하가 중심점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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