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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가이아 프로젝트 (수레바퀴 : Great Reset)
작가 : 태풍
작품등록일 : 2022.2.28

각기 다른 세계의 두 남자가 가족을 잃으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 두 세계는 지구의 지상도시와 지하도시다.
두 남자의 여정 중 멸망의 전조와 신의 전말이 점차 드러난다.
세계는 다시 만들기 위하여 부숴야만 한다.

 
6. 매정 (Nomercy)
작성일 : 22-02-28 20:54     조회 : 166     추천 : 0     분량 : 1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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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매정 (Nomercy)

 

  늑대들이 이빨을 드러내자 레오는 뒤도 보지 않고 황급히 성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급하게 요동치는 긴장감이 혈액을 타고 심장을 망치질했다. 쿵쾅대는 소리가 가슴뼈를 때렸다.

  “찾아!”

  레오는 정원의 수풀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흩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선 사람의 허리까지 올라올 만큼 높고 넓이가 꽤 긴 화단은 웅크려 숨기에 적합했다. 시간이 잠시 흐르자 그들은 늑대에서 내려 각지로 뿔뿔이 나누어졌다. 그들 중 몇몇은 정원 쪽으로 왔다. 그들은 성채의 병사들과 달리 천 옷을 가볍게 입고 칼과 활만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사냥꾼의 무리로 보였다.

  병사들은 각기 허벅지에 달린 화살통에서 살을 꺼내 활에 꼬나 잡아 사주를 경계하며 돌았다. 그들은 안채로, 서고로, 문으로 다가섰다. 레오는 무릎 옆에 거슬리는 아무렇게나 모난 돌멩이를 집어 들어 수풀 밖으로 던졌다. 텅 소리가 울렸다. 안채로 들어서던 병사가 소리가 난 방향을 보며 어깨를 움츠러 틀었다.

  레오는 병사를 보며 발목과 종아리의 근육을 뒤틀며 발끝으로 달려 나갔다. 돌아선 병사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움켜잡았다. 움켜잡은 손으로 뒤로 끌며 노출된 그의 목을 단검으로 베었다. 병사는 레오의 손바닥에 쿨럭쿨럭 기침을 쏟아내며 팔다리에 힘이 빠지며 몸이 늘어졌다. 기침 소리가 일렁이자 그가 있는 쪽을 향해 다른 병사가 돌아섰다. 레오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어깨가 삐걱 일 정도로 있는 힘껏 던졌다. 단검은 칼자루의 무게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그의 이마에 칼끝을 꽂았다. 머리뼈가 둔탁하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쳤다. 레오는 병사가 쓰러지기도 전에 재빨리 서고로 들어서는 다른 병사에게 달려 나갔다.

  팟 소리와 함께 그 병사가 돌아섰다. 급하게 시위를 놓은 화살이 날아왔다. 레오는 본능적으로 무릎이 꺾이며 달려 나가는 방향을 틀었다. 화살이 귓불 살을 찢으며 스쳐 지나갔다.

  레오는 발바닥에서부터 뛰어올라 무릎을 쳐들어 그의 턱을 부쉈다. 방비 없이 급하게 닫히는 그의 치아가 서로 부딪쳤다. 부딪친 치아는 서로 산산이 조각이 나며 씹힌 혀끝이 이 사이에 눌려 찢어졌다. 충격에 휘청이는 그의 관자놀이를 레오가 주먹으로 내려치자 병사가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목을 짓밟았다. 한번, 두 번, 세 번, 콰직 소리가 정원을 울렸다. 병사는 목뼈가 부러지며 탁한 눈이 허공을 응시했다.

  레오는 멀리 쓰러져있던 자의 이마에서 자신의 단검을 빼어냈다. 이제는 익숙해진 혼의 느낌이 전달되었다. 기억의 조각이 머리에 스며들었다. 적의 총 명수가 얼추 읽혀졌다. 레오는 성채 벽을 짚고 올라 자리를 떴다. 지붕에 오르자 각기 지역을 수색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몸을 낮추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레오는 찰칵이는 소음이 나지 않도록 천천히 아주 조심히 탄창을 확인했다. 6발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라브가 더 보충을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기대가 많으면 절망하기 쉽고, 포기가 빠르면 편한 법이었다. 그는 다시 조용히 권총에 탄창을 끼며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아무튼 빠져나가고 볼 일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 살육이 그의 짓으로 보일 것이었다. 실상 지민들이 한 것이 분명하기에 구태여 그가 아니라고 해명할 이유도 없거니와, 솔직히 그들이 아니어도 그가 했을 것이기에 이리 치나 저리 치나 매한가지라고 여겼다.

  레오는 먼저 그가 있는 벽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병사의 머리 위로 뛰어들었다. 단검을 치켜 내리며 그를 향해 찍었다. 칼날이 그의 눈에 박혔다. 병사는 고통의 신음을 내며 손으로 눈과 칼을 움켜잡았다. 레오는 손에 쥔 칼자루를 놓아버리고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의 허벅지에 달린 통에서 화살을 꺼내 두 손으로 잡고 그의 갈비뼈를 향해 밀어 넣었다.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것처럼 스륵 하며 부드럽게 들어갔다. 폐에 구멍이 난 그는 침을 흘리며 입을 벌려도 바람 빠진 소리만 나며 음성이 나오지 않았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덩달아 대문에 풀어져 있던 늑대들도 컹컹 거리며 달려오며 소리 없는 기척을 냈다. 흙먼지가 날렸다. 레오는 재빨리 쓰러진 자의 화살통을 풀어내 끈을 대강 어깨와 허리에 둘러매고 등에 얹어 활을 뺏어 들었다.

  늑대들이 먼저 머리로 문을 들이받아 열며 그에게 달려왔다. 레오는 활이 수평으로 오도록 고쳐 잡고 화살을 놓아 시위를 당겼다. 날아간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는 늑대의 벌어진 주둥이를 타고 목구멍을 관통했다. 늑대는 입에 화살을 꽂은 채 머리를 바닥에 쥐어박으며 고꾸라졌다.

  레오는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하나둘씩 달려오는 병사들과 늑대들을 향해 조준하여 화살들을 쏘았다. 핑 핑 날아가는 경쾌한 소리가 파동을 내며 벽에 박히고 바닥에 박히고 어쩌다 몇 번씩 그들의 몸에 박혔다. 내게도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요행을 바라며 달리고 바닥을 구르며 피했다. 지부에서 복권을 사면 당장에라도 6 6 6 트리플이 떠서 당첨이라도 될 것만 같은 행운이 따르며 날아오는 화살들이 몸 주위를 스칠 뿐 몸에 박히지 않았다.

  레오는 벽을 따라 정원을 몇 바퀴씩 돌며 구르고 쏘고, 구르고 쏘는 것을 반복했다. 돌다보니 그의 단검이 아직 얼굴에 꽂혀있는 시체가 발에 채였다. 화살이 떨어진 화살통과 활을 벗어 던져버리고 단검을 허리춤에 챙기고 시체의 장검을 뺏어 들어 달려 나갔다.

  그의 앞에 남아 있는 세 명의 병사 중 두 명은 그와 마찬가지로 칼을 빼 들어 달려왔다. 다른 한 명은 그에게 활을 조준했다. 그가 활시위를 놓자 레오는 엉덩방아를 찧어 넘어지며 바닥을 긁었다. 달려 나가는 가속도는 흙먼지를 냈다. 레오는 여전히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몸을 앞으로 끌어나갔다. 속도가 줄어들며 그와 병사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레오는 무릎을 접고 일어서며 칼로 그의 배를 갈랐다. 배가 잘린 그가 고개를 숙였다. 레오는 곧장 일어서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머리가 잘렸다. 칼날과 뼈가 부딪치며 칼날의 이빨이 금이 가며 상했다. 칼에 세차게 부딪힌 근육들이 산산이 찢어졌다. 새빨간 피가 뿜으며 머리와 목을 분리했다.

  레오의 앞으로 연달아 두 개의 칼날이 날아왔다. 그는 좌우로 칼을 흔들며 그들의 칼을 막아냈다. 각기 찌르고 베는 그들의 공격이 매우 거셌다. 계속 막아내고는 있지만 쉽사리 반격할 기회가 나지 않았다. 레오는 막는 칼을 흘리듯이 내리며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꺼낸 권총으로 그들에게 각각 한 발씩의 총탄을 발사했다. 탕 탕 소리가 안채를 울렸다. 한 병사는 가슴을 맞고 쓰러졌지만 다른 병사는 어깨를 맞고 휘청이며 벽에 기대 쓰러졌다. 그는 쓰러진 병사의 이마에 근거리에서 총을 쏘고 잠시 숨을 골랐다.

  뒤쪽에서 흙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레오는 몸을 숙여 뒤로 돌며 곧바로 총을 쐈다. 탕, 허공으로 날아갔다. 탕, 늑대를 탄 병사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말고도 다른 늑대를 탄 중후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매우 공허해 보이는 회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을 보는 것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시선이 탁했다.

  레오는 지체 없이 방아쇠를 눌렀다. 탕, 탕, 철컥. 빈 탄약이 노리쇠를 헛방망이질하는 소리가 공이를 울렸다. 그러나 늑대에 올라타 있던 남자는 어느새 내려 레오를 향해 활을 당기고 있었다. 총에서 날아간 두 발은 그가 타고 있던 늑대를 맞춘 듯 짐승이 이미 쓰러져 있었다. 사내는 쓰러진 짐승 위에서 활을 날렸다.

  핑그르르 하는 경쾌음을 타고 화살이 레오에게 날아왔다. 화살의 잔상이 보일 정도로 기괴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잔상은 검은 빛을 내며 천천히 꼬리를 남겼다. 화살은 레오의 손바닥을 관통하며 벽에 박혔다. 깡! 덩달아 그의 손도 벽에 찰싹 붙으며 박혔다. 화살을 빼내려 몸부림쳤다.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화살을 움켜잡았다. 깡! 움켜잡던 손의 어깨에 다시 검은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레오는 양팔이 벽에 박혔다. 그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레오의 앞으로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천사가 아뢰니 악을 멸할지어다. 레오.”

  레오는 화들짝 놀라며 눈이 커졌다.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그는 탁한 눈으로 공허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신의 사자는 모두 알고 있다. 영광의 첫 시위로 첫 악마를 사냥하노라. 너의 주인을 말하라.”

  레오는 고통과 당황스러움에 이를 바득 갈았다. 비틀거릴 때마다 손과 어깨의 고통이 점차 뇌를 자극하며 현실화되었다.

  “그딴 거 없어. 난 그저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을 뿐이야. 이 더러운 종자들.”

  “땅 밑에서 사는 더러운 쥐새끼가 선량한 인간에게 더럽다고 하다니 역설적이다.”

  그가 다시 무심하게 활시위를 쏘자 레오의 발등에 화살이 박혔다.

  “쥐새끼가 복수라도 하고 싶은 겐가?”

  레오는 시야가 떨리며 이성이 흔들렸다.

  “너 뭐야! 그래, 네놈들이 지부에 숨어들어 더러운 짓을 일삼다가 결국 폭동까지 일으키며 그 때문에 내 여자가 죽게 만들었지. 나는 네놈들을 머리부터 뼈까지 모조리 씹어 먹을 거다. 죽일 테면 죽여라. 다음 생에도 살아난다면 그 때도 잘근잘근 박멸해주마.”

  그의 탁한 눈이 갸우뚱해졌다.

  “죽여? 내가 널? 그건 아무 의미 없다. 나타든 라브든 악마의 손길을 받은 자라면 당연히 시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제 넌 우리 것이다. 얌전히 힘을 넘겨라.”

  그는 활로 레오의 다른 발까지 화살로 쏘았다. 레오의 사지가 모두 박혔다. 그는 만족한 듯 활을 등 뒤에 집어넣으며 레오에게 다가왔다. 그는 돌연 흐음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레오의 얼굴을 매만졌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왜 악마의 손길이 없지?”

  레오는 침을 튀기며 욕설을 퍼부었다. 손가락이라도 물어뜯으려 이를 딱딱거렸지만 잽싸게 피하는 그의 손에 허공만이 씹혔다.

  “알 게 뭐냐, 이 자식아. 그냥 죽여라.”

  “흐음.”

  그가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짚자 무언가 빨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동공이 커지며 침이 흘러나왔다.

  “그럼 하찮은 가이아라도 내놓아라. 시크의 것이다.”

  “그놈의 가이아.”

  일순간 사내의 등 뒤에서 커다란 발톱이 나타나 그의 뒤통수를 찢어발겼다. 피가 바닥을 향해 터져나가며 그의 몸이 휘청였다. 그리고 발톱의 주인인 흰 늑대가 쓰러진 그의 머리를 커다란 입으로 물고 이빨로 짓눌러 몸을 이리저리 내동댕이치자 머리뼈가 부수어지고 목이 찢어진 그의 머리가 분리되었다.

  늑대는 파란 눈을 빛내며 입에 피를 머금고 레오에게 다가왔다. 레오는 머리가 뜨끈해졌다. 뇌가 소용돌이쳤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늑대를 쳐다보았다. 짐승은 어느새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늑대가 그르릉 거렸다. 짐승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커다란 이빨과 혀를 따라 발음이 부정확했다.

  “제때 왔나, 시기는 적절했나 보군.”

  “뭐?”

  “난 라브다.”

  “허, 이것 참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물을 게 산더미였거든.”

  늑대는 비릿하게 웃는다. 이빨이 그릉 그릉 보였다.

  “알 것 같군. 세례를 묻고 싶겠지?”

  “그렇다. 어서 말해.”

  “글자 그대로 세례다. 축복이라고 불러도 좋고.”

  “왜 내가 죽인 녀석들의 기억이 흡수되는지 어서 설명해.”

  늑대는 눈을 깜빡인다.

  “그게 싫었던가? 그럼 돌려받도록 하지.”

  늑대는 별안간 레오의 목덜미를 물었다. 레오는 급작스러운 공격에 어깨가 움츠러들며 덜덜 떨었다. 고통은 없었다. 늑대의 이빨 끝은 레오의 피부를 가볍게 툭 찌르며 더 이상 박히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빠져나가듯 몸에서 수증기가 일었다.

  “뭘 한 거지?”

  “가이아를 먹었다.”

  늑대의 뻔뻔한 말에 레오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껏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너희는 정말 악마였던 거야?”

  레오의 말에 늑대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눈이 깜빡였다.

  “오랜만에 듣는 단어군. 흠, 아니야.”

  늑대가 더 이상 말이 없자 레오는 기가 막혔다.

  “말하기 싫다는 거군. 그럼 설명이라도 마저 해.”

  늑대는 눈을 굴린다. 거짓을 꾸미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가이아를 돌려받았다. 빼앗긴 것들이거든. 단지 네가 싫다기에 내가 조금 먹은 것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먹을 생각이었지만.”

  “왜?”

  “지상에 남은 천민들은 모두 빼앗긴 가이아들이다. 회수할 이유가 있었다.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 전에 내 힘도 회복해야 하기에 부득이 가이아들을 이용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너희는 왜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는 거지? 묻고 싶은 것이 수백 가지도 넘어서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전쟁은 왜 일어나고 네 위에 누가 있는 거야.”

  늑대는 괜히 시간이 없는 듯 발을 토독인다.

  “레피크다. 지구의 관리자. 좋아. 솔직히 너희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그것이 큰 의미도 없다. 하지만 너는 잠시 유희로 인한 예외로 두지. 잘 듣고 앞으로 있을 선택에 참고해라. 넌 나타 덕에 선택권이 있으니까. 이 지구, 곧 가이아는 본래 곧 하나였다. 하나의 생명체지. 하지만 어느 날 가이아는 스스로 분자를 쪼갰다. 우주의 규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놀라운 반역이기도 하고, 놀라운 성장이기도 하다. 창조주는 화를 내지 않고 되려 흥미롭게 지켜보셨다. 그래서 레피크와 우리를 보내시어 가이아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관리하게 해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가이아는 끝없이 분리했다. 하늘, 구름, 바람, 바다, 대지, 동물, 식물, 끝내 창조주를 닮은 너희 인류에까지 물체를 분리하여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갈아 넣었다. 오히려 창조주는 신이 났지. 우주의 규칙을 깨지 않을 만큼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창조주를 따라하다니 말야. 가이아는 스스로 신이 된 거다. 하지만 우주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었지. 모순이지. 가장 강하지만 가장 약한 존재.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 침입자가 나타났어. 너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존재. 시크다. 녀석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가이아를 몹시 탐냈다. 모두 먹어치우고 싶어 했지. 그는 신이 되고 싶은 거야. 가이아를 관리하는 레피크는 자신의 힘을 모두 끌어다 쓰며 시크를 막아냈다. 하지만 끝내 모두 막아내지 못했지. 결국 가이아는 관리자가 둘이 존재하는 형태로 남았어. 분리된 가이아가 회전하는 수레바퀴도 두 개가 되었다. 어쩐 일인지 창조주는 방관했지. 레피크는 화가 났다. 어찌하여 가이아는 사랑만 받고 그를 관리하는 자신은 이렇게 힘이 들고 도와주지 않는 것인지. 그래도 레피크는 구태여 신경 쓰지 않았어. 갈라졌다고는 해도 대부분의 가이아는 어쨌든 자신의 관리 안에 있었거든. 물론 교활한 시크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가이아를 세뇌하여 약탈하는 수가 적지는 않았지만 레피크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관리해오며 피로해진 레피크도 방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가이아는 레피크와 시크를 모두 두고 저울질하다 끝내 스스로 파멸하고 말았어. 그래서 레피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 가이아를 테라포밍(Terraforming)했다. 가이아를 뜯어 고쳤어. 무리하게 힘을 써서 시크에게 틈을 보일 수 없던 레피크는 철저하게 한 가이아의 뒤에 숨어 그들 스스로의 힘을 이용했다. 스스로 재생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 해결이 쉬워보였다. 그런데 문제도 쉽게 나타났다. 너희 가이아 때문에. 스스로를 재생하며 테라포밍하며 어쩔 수 없이 수레바퀴로 돌려보내도록 버려버린 일부 가이아들이 시크에게 스스로를 바치기 시작했다. 황당했지. 레피크는 가이아를 나무랐다. 그렇게 많이 버렸었냐고. 가이아는 변명했다. 그리 될 줄 몰랐다고. 그 결과 재생에는 성공했지만 가이아의 대부분을 시크가 손에 쥐게 되었다. 욕심이 많은 시크는 모두 차지하려 애쓰겠지. 모두 차지하기까지 멀지 않아 보이거든. 그래서 나타와 나 라브는 태초의 전쟁에서 시크와 휴전할 때 맺은 협약을 깼다. 전쟁을 유발했다. 그래서 전쟁 전에 너와 같은 가이아들을 심어두고 이점을 확보하고 있었다. 물론 겸사겸사 우리의 힘도 키울 겸 욕심도 조금 부리면서.”

  늑대의 장황한 설명에 레오는 머리에서 김이 날 만큼 두뇌가 멈췄다. 말문이 다시 막혔다. 늑대는 이빨을 드러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오늘도 살려줄 테니 가이아를 많이 갖고 와. 그게 네 몫이다. 그 겸에 복수니 뭐니 그것도 같이 하든가.”

  늑대는 이빨로 레오의 손과 발에 박힌 화살들을 거칠게 부쉈다. 뼈를 헤집고 근육을 뚫은 화살대가 스치며 지나가는 속살을 건들 때마다 고통이 메아리쳤다. 레오는 네 발 중 이제 한 개 뺐다는 사실이 막막하고 화가 났다. 화살을 거칠게 부신 늑대는 레오의 앞에서 돌연 쭈그려 앉았다.

  “이제 가야 해. 내가 직접 기사를 죽였다는 걸 시크가 알기 전에. 어차피 시간문제이겠지만. 뭐 차라리 잘됐어. 힘을 모은 나타가 활약할 시간이지. 나도 곧 현신할 것이고. 잠깐 빌린 이 몸은 불의 세례로 태울 것이다. 너는 모두 타버리기 전에 이 짐승의 몸에 있는 내장을 전부 빼고 쓰고 싶은 무기와 함께 가죽 안으로 들어와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레오는 손발을 고통스럽게 어루만지며 늑대에게 물었다.

  “나타가 분명 죽지 않게 해준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픈 것이지?”

  늑대는 윙크를 하듯 한쪽 눈이 감았다 떠지며 웃었다.

  “그 녀석은 거짓말쟁이이거든. 나라도 도와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라.”

  “빌어먹을 놈들이군.”

  늑대는 피식 웃고는 눈을 감았다. 레오는 그를 보며 급하게 외쳤다.

  “그럼 결국 어떻게 되는 거지?”

  늑대는 감던 눈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너와는 상관없어. 할 일이나 해라. 나타가 거짓말 습관은 있어도 약조에 따른 보상은 분명 지킬 거다. 우린 그런 것에 약간 매여 있거든. 마리아를 만나야지.”

  늑대가 눈을 감자 흰 털들이 자연 발화하며 검게 타들어 갔다. 레오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어깨와 발에 여전히 부러진 화살촉이 박힌 채로 활활 타는 그를 쳐다보았다.

 

 6-2. 투쟁 (Duel)

 

  열두 명의 의원들은 주다의 개인실 앞에서 손을 모아 기다렸다. 그들의 등 뒤로 비치는 기다랗고 큰 창문에 불길과 연기가 솟아났다. 간간이 총소리와 폭발 소리가 들렸다. 모두 하얀 얼굴에 검은 머리칼이다. 젊은 의원들은 안색이 어두웠다.

  커다란 갈색 문이 찰칵하며 열리자 창밖과 대조적으로 조용한 복도가 메아리를 울렸다. 양문이 좌우로 열리며 젊은 여성이 나왔다.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에 검고 긴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트렸다. 남색의 제복과 바지를 입었는데 호리호리하지만 다부진 몸매가 드러나도록 달라붙는 옷태가 고혹적이다. 그녀를 보며 의원 대표가 앞서 나가 말했다.

  “주다 폐하, 레피크께서 응답이 있으셨습니까?”

  그녀는 의원들을 지나치며 붉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답했다. 의원들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언제고 일어날 거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이렇게 들어올 줄이야. 시간을 벌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군요. 그래요, 전쟁입니다. 각 지부에 긴급명령을 내리세요.”

  “지금껏 한 테라포밍이 모두 허사로군요.”

  주다는 뒤를 돌아 무언가 말을 하려다 침을 꿀꺽 삼키곤 잠시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우주의 섭리가 우리의 고통을 대가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노아크 발진을 준비하세요. 이륙 준비가 끝나는 대로 즉시 가겠습니다.”

  “바로 가시는 겁니까?”

  “예, 끝을 보아야지요. 제가 지금껏 이곳에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구태여 긴급명령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천민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요?”

  “아뇨. 막을 수 없습니다. 계획대로 하세요.”

  “예, 폐하.”

  “저희 인류는 끝입니까? 알려주십시오.”

  한 젋은 여성 의원이 주다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주다는 그녀를 보고는 참아내던 감정이 드러났다.

  “당신들, 내덕에 천년을 넘게 살아왔습니다. 더 살고 싶습니까?”

  의원들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

  “알려드리기 싫었지만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시크는 실상 발악 중일 것입니다. 사활을 걸고 훈련된 천민들을 대동해서 끝을 보려는 겁니다. 우리가 보낸 기동 타격대가 천민을 많이 죽이면 죽였을수록 제 성공여부도 그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살고 싶다면, 제가 드린 칼로 직접 위로 올라가 천민을 하나라도 더 죽이도록 하세요. 지부는 지민들이 부디 잘 버틸 수 있도록 기도나 하시고요. 아시겠습니까.”

  주다의 일갈에 의원들이 심장에 주먹을 대며 고개를 조아렸다.

  “예, 폐하.”

  그녀는 의원들을 천천히 돌아보며 쓴웃음을 짓다가 자신의 방문을 닫았다. 방문이 완전히 닫히자 한 의원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러자 대표 의원이 그를 나무랐다.

  “불경스러운 소리 말게. 어차피 우리도 오래 살았어. 물론 나도 무섭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봉사한 시간을 생각하면, 분명 큰 보상을 받고 좋은 수레에 올라탈 수 있을 거야. 두려워하지 마시오.”

  다른 의원이 어두운 안색으로 끄덕였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요. 마음이 그러지 못할 뿐입니다.”

  대표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일행을 이끌고 회의실로 향했다.

  “일들을 그르치지 마시오. 그래야 오래도록 살아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의원들은 복도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의 안쪽은 커다란 전광판이 있어 지부의 현 상황을 폐쇄회로화면으로 각각 송출하고 있었다. 기다란 탁자는 비어있고 그 앞으로 기업의 직원들이 상호 지부끼리 정보 교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경찰대장이 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 탓에 의원들이 들어와 앉아도 인사하는 이는 없었다.

  전광판에 비친 도시의 도로에서는 갑옷과 칼을 찬 병사들이 날뛰며 지민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중 빛나는 검은 갑옷을 입고 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는 덩치 큰 천민 전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중력에서 자유로운 듯 몸을 자유자재로 날아오르며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의 칼에 쓰러지는 경찰이 1초에 1명씩 죽어나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전적으로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지민들이 각자 총을 들어 저항하고 있지만 총을 피하듯 날아드는 갑옷을 입은 대군세에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경찰을 비롯한 기동 타격대도 총을 들고 출동하여 진압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민 전사들의 재빠른 몸놀림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표 의원을 전광판을 보며 지휘봉을 잡고 있었지만 이러타할 지시는 내리지 못했다. 내린다한들 유명무실했다.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불길과 비명이 솟아올랐다. 이오플 연구소에서 수신이 들었다.

  “의원님, 지부별 상승 추진 기체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대표 의원은 헤드셋으로 그를 들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허가합니다. 발진하십시오. 우리에게 가호가 있기를.”

  대표 의원이 다시 전광판을 보자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가 한복판에서 검은 칼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파동이 일렁이며 그 앞을 스치는 모든 물체들이 잘려나갔다. 폐쇄회로장치를 인식한 그가 화면을 향해 칼을 휘두르자 그를 비춘 화면이 검게 변했다. 대표 의원은 식은땀을 흘렸다. 다른 한쪽의 전광판에서는 대표 의원의 허가를 받는 열두 하위 의원들이 화상으로 코드를 맞추며 작업을 진행했다.

  “프로그램 코드 입력 허가. 인공지능 자율 제한 해제. 열두 지부의 모든 대기 중 자동화 기계 발진.”

  “코드 해제, 발진.”

  열두 명의 의원들이 입체 화상 시계를 통해 동시에 코드를 송신하고 이를 받은 직원이 중앙컴퓨터에 문구를 입력했다. 전광판의 화면 일부를 연구소 열두 곳에 돌렸다. 전보다 더 큰 상승 추진체에 선별된 기동 타격대가 각각 천 명씩 앉아 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두 지부는 실상 마지막 전투 인력을 위로 쏘아 보냈다. 지부는 갑옷을 찬 천민 전사들에 대항할 무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지상과 지부는 서로 각자의 대지로 나아가 멸망전을 시작했다. 누가 더 빨리 죽이느냐보다 누가 오래 살아남느냐이다.

 

  다른 한편 이오플 비밀 연구시설에서는 직원들이 바삐 뛰어다니며 케이블을 옮기며 전력을 충전하고 기체 정비를 하고 있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중앙시설은 한 기체를 중심으로 높고 길게 뚫려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기다란 형태의 고압 추진체 비행선이 있다. 노아크다. 그 위가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넓은데 따로 날개과 같은 보조 기관은 없다. 흡사 총탄과 같은 형태이다. 비행선 주위 곳곳에 100여 개가 넘는 케이블이 꽂히고 일정 시간이 지나자 직원대표가 시간을 점검하며 장비를 측정했다.

  “고압가스 충전 완료 10초 전.”

  “완료.”

  잠시 후 복도를 통하는 현관문이 열리며 주다가 병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녀는 하얀 제복으로 복장을 갖춰 입고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맸다. 주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들이 비행선으로 길을 안내했다. 주다는 한 병사가 건네는 자신의 키만 한 커다란 대검을 등에 차고 비행선에 올랐다. 비행선의 안은 갖은 컴퓨터 기계장치로 가득 했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정중앙에 마련되어 있었다. 주다가 앉기 전 좌석 옆 보조장치에 칼을 두자 고정장치가 자동으로 매어졌다. 주다는 무심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벨트를 고쳐 맸다. 좌석의 앞은 비행선의 앞쪽 뾰족한 끝부분으로 작은 창이 하나 달려 비행선의 앞을 볼 수 있었다. 주다가 심호흡을 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창문 밖으로 원형 연구시설의 천장이 열리고 있었다. 천장이 모두 열리자 좁고 긴 터널처럼 뚫린 구멍 사이로 파란 점이 보였다.

  “이륙.”

  주다가 나긋하게 말하자 이를 들은 제어실의 직원들이 복창하며 스위치를 당겼다.

  “이륙 준비 완료. 분출 준비 완료 10초 전.”

  “발사.”

  비행선의 가장 밑 꼬리 부분에서 불길이 솟아났다. 연소되며 연기가 옆으로 넓게 퍼져나감과 동시에 비행선이 위로 단시간에 쏘아 올려졌다. 비행선은 한치의 오차 없이 구멍을 타고 밖으로 빠르게 가속했다. 우웅 거리는 진동과 소음이 비행선을 미약하게 흔들었다. 쏘아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비행선은 구멍을 모두 지나치고 빠져나갔다. 비행선은 빠르게 스치는 초록으로 가득한 땅을 거치고 파란 하늘을 뚫으며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노란 대기권과 빨간 성층권까지 뚫으며 올라가자 금세 검고 텅 빈 우주 공간으로 튀어나갔다.

  비행선은 불꽃을 여전히 거세게 쐬어 방향을 틀으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조금씩 미세하게 공간을 돌고 있는 달을 향했다. 비행선은 달을 관통이라도 할 것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일직선으로 쏘았다. 마침내 달의 대기권을 뚫으며 땅에 거의 닿아갔다. 경쾌한 탁음과 함께 비행선의 옆 부분의 기관이 터져나갔다. 칼을 등에 멘 주다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맨몸으로 달의 표면에 떠다니다가 달의 대지에 발을 딛었다.

  이윽고 비행선의 앞코가 달의 땅에 부딪히자 무른 땅의 표면이 울렁이며 진동과 파동을 일으키며 움푹 패였다. 가스가 대부분인 대기도 풀렁이며 공중에 날아오른 주다를 밀어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의 파동 이후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표면과 대기의 모든 파도가 멈춰섰다. 주다는 몸을 한 바퀴 구르며 땅에 거세게 착지했다. 부딪히는 그 힘이 비행선 못지않게 강력하여 또다시 한번 표면과 대지에 파동이 잠시 일었다. 애당초 로켓형 비행체는 안전한 착륙 따위는 고려되어 있지 않았다. 비행체는 철저하게 급하게 쏘아 올리는 편도형 로켓이었다. 주다에게 지구로 돌아갈 비행체는 없다.

  일어선 주다는 잠시 눈을 감고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피부조직이 닭살이 돋듯 거칠게 일어나며 피부로 대기를 빨아들이고 내쉬었다. 주다가 눈을 뜨자 그녀의 동공이 붉은빛으로 이글거렸다. 그녀는 잠시 선 채로 가만히 있다 일순간 고함을 외쳤다. 고함 소리가 달 표면의 낮은 산맥들을 돌아다니며 귀가 째질 듯한 음파가 이리저리 대지를 휩쓸었다.

  “이리 와라!”

  잠시 후 달의 거친 표면에서 비닐이 찢어지는 것처럼 땅을 뜯고 온 생명체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수십 마리의 짐승 얼굴이 한데 구겨지듯 동그랗게 뭉쳐있었는데 열 개가 족히 넘어 보이는 손을 이리저리 달고 그것을 발처럼 땅을 짚고 파편을 해치고 있었다. 하나둘씩 끊임없이 땅을 파고 올라오는 괴생명체들이 올라왔다. 주다는 꼼짝 않고 계속 지켜보며 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는 점차 많아졌는데 족히 백 마리가 넘어 보였다. 주다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선 입 꼬리를 히죽 올리며 등에 멘 대검을 빼냈다. 칼끝이 표면에 둔탁하게 닿자 흙모래가 튀며 올라온 자갈이 공중에 뜬 채 내려가지 않았다.

 

  레오는 늑대의 가죽 안으로 큰 칼과 함께 들어가 핏덩이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마치 뱃속의 태아가 된 것처럼 다리를 웅크리고 팔로 감싸 안고 눈을 감았다. 여전히 자글자글 타오르는 피의 불길은 용광로와 같아 스스로 그 안에서 제련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지날수록 머리가 명료해졌다. 간혹 마음이 자애로워진 것처럼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내 이름이 뭐였더라. 오롯이 한 단어를 집착하듯 마리아의 이름만을 억지로 되뇌었다. 덧없는 보복은 잊혀지고 헛된 희망이 자리 잡았다. 딱히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지만 막연한 기대는 양쪽 관자놀이가 서로 줄을 당기듯 머리를 휘감았다. 마리아를 만날 수만 있다면, 만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오는 손발이 저려오고 몸이 불탈 것 같은 기분에 눈을 떴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다. 거멓게 굳어버린 핏물을 해치고 가죽을 벗고 나가자 몸이 한결 가벼웠다. 기지개를 켜자 옷에 들러붙은 피딱지들이 조각을 내며 갈라졌다. 손바닥을 비벼 살갗을 뭉개자 상처 부위가 보였다. 미세한 자국이 남아 보였지만 상당히 아물어 있었다. 뒤를 돌아 웅크려있던 늑대를 돌아보자 그 거죽이 시꺼멓게 재로 변해 있었다.

  레오는 성채를 벗어나 호숫가에서 몸을 담가 핏물을 씻어냈다. 허리만큼 물속에 들어갔다. 햇빛에 비친 물결에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피가 잘 지워지지 않아 거무틱한 악귀처럼 보였다. 검은 머리칼의 검은 얼굴이 어색했다. 연거푸 세수를 하며 머리칼을 넘기고 호수에서 나와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저 멀리 하늘을 뚫고 날아가는 비행물체가 시야에 보였다. 비행체는 하얗게 연기를 꼬리를 물며 하염없이 위로 올라갔고 나 또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달이 저렇게 밝았던가?’

  본 적 없는 태양과 본 적 없는 달이 함께 있었다. 붉은 해가 하얀 달을 비추며 파란 하늘에서 명암을 드러내 보였다.

 

  페투는 아이라의 신체를 성 밖으로 짊어지고 나갔다. 그리고 직접 세운 십자가에 그녀의 신체를 달아 못을 박았다. 그리고 불로 태웠다. 활활 꽃이 타올랐다. 그녀의 불길이 하늘로 치솟으며 붉은 연기를 올려 보냈다. 그는 불타는 그녀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불길이 그의 얼굴을 감싸며 피부가 이글거렸다. 그녀가 쉼 없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페투도 쉼 없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페투는 그녀를 하늘로 올려 보내주고 온 시야가 붉은 채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칼로 베며 나아갔다. 그는 지옥의 입구를 향했다. 악마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간간히 올라오던 언덕의 끝자락에서 검은 옷과 검은 머리칼을 하고 하얀 얼굴을 한 악마 100인이 악이 준 기계를 손에 들고 커다란 물체에서 내린다. 구린내가 진동하는 곳으로 계속 가다 보면 어김없이 기묘하게 생긴 장비로 빠르게 탄을 쏘는 악마들이 몰려 있었다. 뜨거움이 온몸에 느껴질 정도로 피가 끓어올랐다. 분에 찬 기운이 몸의 모든 근육을 자유자재로 비틀었다. 아이라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들은 페투를 보고 겁에 질리며 수 백발이 넘는 탄을 쏟아 부었다. 페투는 뼈와 근육을 이리저리 비틀며 빠르게 날아갔다. 붉은 섬광이 언덕마다 공기를 메운다. 페투는 그들의 몸을 잘라내며 피를 더욱 뒤집어썼다. 악마들의 탄은 그의 붉은 판금 갑옷을 뚫지 못했다. 그는 죽지 않는 신이 된 기분을 느꼈다. 한층 세차게 칼을 휘둘렀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신이 났다. 그녀가 재촉했다. 더, 더, 더.

  페투는 꼬박 백이 넘는 시체를 밟고 넘어 네모난 금속판이 바닥에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심연의 아가리는 굳게 닫혀있었다. 칼로 이리저리 내려쳐고 쪼개고 비틀어본다.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깡깡 소리만이 초원을 흔들었다. 작은 틈이 보이는 곳에 칼을 밀어 넣었다. 있는 힘껏 칼을 비틀자 틈이 강제로 벌어지다가 끼릭 하는 쇠의 마찰음과 땡강 하는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칼이 부러진다. 페투는 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양옆으로 잡아당겼다. 팔꿈치의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힘을 준다. 으드득 으드득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등을 타고 흐른다. 문은 점차 그 틈이 멀어졌다. 어금니가 위아래로 눌리며 가드득 하며 금이 가고 부서졌다. 그와 함께 문도 활짝 열렸다.

  “페투.”

  아이라가 아닌 다른 음성에 뒤를 들렸다. 뒤를 돌자 검은 옷, 검은 얼굴, 검은 칼을 찬 그야말로 진정한 악마의 행색을 한 사내가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구.”

  페투는 아이라의 재촉에 신경질을 내며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래. 네놈이군. 바로.”

  사내는 움찔하는 듯하다가 등의 칼을 빼 들었다. 페투는 쓰고 있던 판금 투구를 벗어 던졌다. 투구에서 벗겨 나오는 피딱지들이 엉겨 붙다가 떨어졌다.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발을 딛을 적마다 붉은 섬광이 터져 나온다.

  사내가 칼을 내려치면 팔뚝으로 막아서며 그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칼이 날아올 때마다 공기가 출렁였다. 바람이 갈라지고 파동이 일며 갑옷 판금이 하얗게 파인다. 베이는 근육마다 욱신거렸다. 페투는 등에 사내의 칼을 맞고는 고꾸라지면서 엎어졌다.

  페투는 일어서서 무릎을 가볍게 구부렸다. 자세를 낮추면서 발끝을 이용해 두 다리를 힘껏 앞으로 차면서 다시 달려 나갔다. 사내의 품으로 파고들다시피 달려가며 옆구리와 가슴팍에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손에 낀 판금 장갑이 철컥철컥 깡깡 소리를 내며 충격했다. 가슴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심장마다 일렁인다. 사내가 손에서 칼을 놓쳤다. 그는 신음을 토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페투는 그를 놓칠세라 달려든다. 하지만 사내는 내지르는 페투의 손을 잡아채고는 자신의 어깨 위로 넘겼다. 붉은 몸이 그림자를 지며 붕 뜬다. 페투는 그대로 이마부터 바닥과 부딪혀 목뼈가 꺾이면서 등으로 쓰러졌다. 벌겋던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불빛이 터지는 듯번쩍인다. 그의 모가지가 덜렁 덜렁 꺾이다가도 제 자리를 찾았다. 페투는 아부부부부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끼덕 끼덕이는 뼈소리가 목구멍을 긁는다.

  페투는 손으로 머리 옆을 짚으며 몸을 굴렸다. 뒷발로 그를 걷어차며 일어섰다. 그리고 사내의 몸을 양 주먹으로 마구잡이로 난타한다. 하지만 사내의 반격에 팔이 꺾이며 내동댕이쳐졌다. 페투는 다시 일어나 목을 흔들고 팔을 흔들었다. 부러진 뼈들이 급하게 붙는 것처럼 온몸이 끄극 거렸다. 입가에서 붉은 침이 덜렁거렸다.

  페투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사내도 달려왔다. 그는 달려오는 사내의 배를 앞발로 걷어찼다. 사내는 뒤로 나가 떨어 졌다. 발에 차인 사내는 뒤로 날아가다가 심연 구멍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치고는 그대로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깡 소리와 함께 금속음이 울려 퍼지며 사내의 뒤통수가 벌겋게 패인다.

  페투는 아직 못 다한 분노를 그릉 거리며 심연에 얼굴을 집어넣었다.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 속으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페투는 그가 들고 있던 검은 칼을 집어 들었다. 한초의 망설임 없이 심연의 아가리로 뛰어 들어가며 벽을 칼로 찍었다. 칼이 벽을 긁으며 파찰음으로 불꽃을 낸다. 중력의 무게가 그의 몸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심연 속에서 탕 탕 칼 부딪치는 소리가 여전히 쉼 없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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