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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힐러였지만 지금은 요리사입니다
작가 : 파인블루
작품등록일 : 2022.2.28

S급 힐러였던 나는 은퇴하고 식당을 차렸다.
하지만 세상은 던전보다 더 무서운 곳.
제대로 쪽박찼다. 심기일전.
제 2의 고향 던전에 맛집을 차렸다.
메뉴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묘한 맛, 기가 찬 맛, 환상의 맛, 지극한 맛, 커플전용, 내맘대로, 쿡스초이스'
내 요리를 너무도 좋아하는 몬스터 녀석들.
하루도 쉴 틈이 없다.
음식만 먹고 갈 일이지 아주 여기서 죽치는 녀석들.

"야. 그만 좀 와."
"형님! 제 고민 좀 들어주시죠."
'미친 거 아니야. 모솔인 나에게 왜 연애 상담을 하는데.'
"아이구. 그렇게 들이대면 안돼. 자.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문의: doldori9986@naver.com

 
20.
작성일 : 22-02-28 20:10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5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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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를 들어보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바뀌었다.

 

 ‘뭐야! 설마?’

 

 너구차 이 자식, 사기 쳤다.

 엘프는 엘프인데 워리어 엘프다.

 인간이야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더 강하지만 이종족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엘프, 남녀 다 강하고 힘의 차이가 없다.

 마족은 남성이 더 강한 편이고 어떤 이종족은 여성이 몇 배나 강하다.

 

 인간 세상에서 암사마귀가 숫사마귀를 교미 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지만 와전된 얘기다. 그래도 던전의 이종족중 일부는 여성이 훨씬 덩치도 크고 강하다.

 

 아름다운 엘프는 가고 워리어 엘프만 남았다.

 

 “아무 말씀이 없으시네요. 이름이?”

 “정요한입니다.”

 

 짧게 답을 했다.

 

 “나한테는 안 물어보네요.”

 

 그래도 내가 예의는 차린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카렌 액센터 드 마비오스 칼라탄이에요.”

 “...네”

 “많이 과묵하신 거 같은데 너무 좋아요.”

 “네?”

 “몇 번 이런 데이트 모임에 나와봤지만, 너무 말이 많았거든요. 남자라면 힘이죠. 말이 아니라. 전투력이 최고입니다.”

 “......네.”

 

 워리어 엘프에게는 그럴 수 있다.

 전장의 악마라 불릴 정도로 아주 잔인하고 용맹스러운 워리어 엘프.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어디 몸 안 좋으세요?”

 “아닙니다. 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

 “그럼 땀 한 번 뺄까요?”

 “따, 땀이요?”

 

 순간 식은 땀이 났다.

 혹시나 했다.

 

 “이럴 때는 운동하면 좋아요. 한번 붙어보죠. 당신이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남자인지 힘과 힘으로 대결해봐요.”

 “괜찮습니다.”

 “날 여자라고 얕보는 건가요?”

 

 ‘무슨 소리야. 워리어 엘프를 어떻게 얕잡아봐.’

 

 “인간세계에서는 여자와 싸움을 하는 건 가장 무례한 행동입니다. 남자로서 용서 못 할 짓으로 여겨집니다.”

 “...네. 아쉽네요. 요한 씨!”

 “네?”

 “당신은 강자에요. 꼭 붙어보고 싶었는데….”

 “평범한 요리사입니다. 싸울 줄 몰라요.”

 “내가 누구죠?”

 

 이름이 기억 안 난다. 그사이에 까먹었다.

 

 “워리어 엘프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압니다.”

 

 잘 알지.

 대부분 엘프는 예쁘다.

 단 워리어 엘프, 전사 엘프는 헐크다. 헐크.

 근육도 단단하고 덩치도 크다.

 피부도 구릿빛.

 

 난 사기 당했다.

 

 한참 워리어 엘프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난 듣기만 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마치 소개팅 때 남자가 군대 얘기만 할 때 그 느낌이다.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얘기는 지옥이라고….

 

 “배고프군요.”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식사라도 하실래요?”

 “말이라고 해요. 내가 잘 아는 식당이 있어요. 가요.”

 

 끌려갔다.

 차마 내 식당에서 먹자고 말을 하지 못했다.

 혹시나 매일 찾아올까 두렵기에….

 

 “어서 오십시오.”

 “좋은 자리로 안내해줘요.”

 “어? 인간 손님은 안 받는데….”

 “나랑 동석한 거니까 괜찮아요. 동반 1인 인간은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갑자기 싸늘해졌다.

 이 워리어 엘프, 전사.

 튤란족이 운영하는 식당, 이종족 전문식당의 종업원이 감당할 기세가 절대 아니었다.

 

 나도 조금 움츠러들었다.

 싸운다면 이길 자신은 있지만 기세만은 무시무시했다.

 

 “죄송합니다. 자리 안내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

 

 내 식당과는 달리 인간과 이종족은 식당을 따로 연다.

 내가 연 식당이 허구한 날 두 종족 간의 싸움으로 결국 주인은 견디다 못하고 나간 곳이다.

 

 아무리 던전 폴리스가 있다고 해도 가족을 죽인 원수, 동료를 살해한 적에게 평화롭게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뭐로 드시겠습니까?”

 “어디 보자. 잠깐만. 요한씨 뭐 먹고 싶어요?”

 

 메뉴 판에는 마수, 질기디질긴 고기뿐.

 인간보다 훨씬 치악력이 좋은 이종족은 먹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무리.

 

 “아무거나요.”

 “까다롭군요. 아무거나가 제일 어려운 주문인데…. 제가 메뉴 고를게요. 탈리툴라랑 칸베어. 라이안 조금이랑 넉넉하게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나니.

 속사포같이 질문이 계속됐다.

 

 “요한 씨는 어떤 여자가 좋아요? 저처럼 강인한 여자 좋아하죠?”

 

 ‘아니. 난 그냥 예쁘고 착하면 돼.’

 

 “딱히 이상형은 없습니다.”

 “요한 씨!”

 “...네.”

 

 무섭다.

 다음 질문이.

 

 “나 어때요?”

 “네?”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요한 씨가 마음에 들어요. 당신은 강자죠. 겸손하구요. 다 좋아 보여요.”

 “......”

 

 침묵이 최상이다.

 한 귀로 듣고 가끔 답변하고 한 귀로 흘리다 보니 요리가 완성됐다.

 

 “양이 좀 적네.”

 

 나도 많이 먹는 편이지만 지금 눈앞에 차려진 음식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열 면이 달려들어도 못 먹을 정도의 양.

 

 “부족하면 더 시키죠. 우선 허기라도 달래요.”

 

 -우적우적.

 -와그작 와그작.

 

 먹는 모습에 내가 배부르다. 질려버렸다.

 

 “왜 안 드세요?”

 “먹어야죠. 먹는 모습이 참 예뻐서 보다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너무 안 드신다. 이 맛있는 고기를 왜 안 드실까. 너무 부담 가지는 거 아니에요?”

 “......”

 

 부담이다.

 그래도 자꾸 권하니까 다리 하나를 입에 물었는데 이빨이 나갈 거 같았다.

 이건 철이다. 고무라면 어떻게든 씹을 수 있는데 도저히 씹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먹는 걸 포기하고.

 

 “아! 잘 먹었다. 왜요? 고기 맛없어요?”

 “아닙니다. 오늘 속이 좋지 않아서요.”

 “속 안 좋을 때는 시원하게 한 판 어때요?”

 “한 판이요?”

 “격투죠. 맨손 격투. 힘 한번 쫙 빼면 금방 나아요.”

 “...네.”

 

 예의는 이 정도면 됐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카렌!”

 “바란타. 여긴 웬일이야?”

 “당신을 따라왔습니다.”

 “날 미행한 거야?”

 “미행이 아닙니다. 당신을 보고 싶었습니다.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바란타!

 카렌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엘프.

 딱 봐도 워리어 엘프는 아니고 귀족 엘프다.

 얼굴 천재.

 남자인 내가 봐도 가슴 설레게 할 정도의 미남.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거꾸로야.’

 

 “난 약한 자는 싫어야. 넌 너무 약해.”

 “내가 이 남자보다 더 약하단 말씀이십니까?”

 “왜 안 믿어져? 역시 넌 애송이야. 이 남자 강자야. 나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내가 이 남자를 이긴다면 기회를 주시죠.”

 “좋아.”

 

 ‘뭐야. 왜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결정하는데.’

 

 “인간. 그대에게 1:1 결투를 청한다.”

 “싫은데.”

 

 꽤 능력이 있어 보이는 엘프지만 나에게는 안 된다.

 마왕이면 모를까.

 아니 마족의 군단장이면 상대할 만하지만, 너무 약하다.

 던전 폴리스 때문은 아니다.

 

 1:1 순수한 결투는 던전 폴리스도 봐준다.

 마력이나 이능이 극도로 억제된 이곳 던전 평화구역에는 알게 모르게 룰이 있다. 그리고 융통성도 있다.

 

 “내가 너무 약하다고 그런 건가? 결투 신청을 받아다오. 진다면 할복하겠다.”

 “바란타! 그건 안돼. 지더라도 얼마든지 노력하면 너도 나처럼 전사가 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목숨을 버리는 건 엘프의 수치야.”

 “미안해요. 카렌.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전사는 질 수 있어도 포기해서는 절대 안 돼. 그게 전사야.”

 

 명언이다.

 살 떨리는 엘프다.

 

 “여긴 비좁으니 나가서 싸워보자고.”

 

 내가 식당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남의 영업장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어차피 싸워야 끝날 일, 빨리 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인간과 엘프의 싸움이다.”

 “누가 이길까?”

 “엘프지.”

 “아니야, 카렌이 강자라고 얘기한 걸 보면 실력이 있을 거야.”

 “난 엘프에 걸지.”

 “난 인간.”

 “엘프.”

 “인간.”

 

 이 세상에 불구경이랑 싸움 구경이 그렇게 재미나다는데 이종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돈까지 걸고 있다.

 

 밖으로 나와 구경꾼들 앞에서 박투를 준비한다.

 검이나 활을 들고 싸울 수는 없는 일.

 

 카렌의 눈초리가 수상하다.

 날 걱정하는 건 아니고 바란타를 걱정하는 눈치.

 

 ‘뭐야. 설마?’

 

 괘씸했다.

 

 “엘프는 먼저 공격하지 않습니다. 먼저 공격하시죠.”

 

 -퍽퍽퍽!

 

 그날이 끝나자마자 바로 패버렸다.

 전광석화.

 빛보다 빨리 움직여 미처 수비 동작을 펼치기 전에 주먹을 내질렀다.

 발까지 사용하면 죽을 거 같고 힘은 많이 뺐다.

 

 “바란타!”

 

 몇 대 때렸으니 화가 좀 풀려서 그만뒀는데 다시 일어선다.

 때리고 일어서고 쓰러지고 일어서고.

 

 진짜 한 방이면 저세상으로 보낼 자신이 잇지만, 살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바란타! 그만해. 이제 됐어.”

 “카렌! 아직 전 싸울 수….”

 

 -퍼~억!

 

 결국 마지막 한 방에 혼절.

 

 “바란타. 바란타 정신 차려.”

 

 마구마구 흔드는 카렌 때문에 바란타가 깨어나고.

 

 “죄송합니다. 졌습니다. 당신에게 걸맞은 남자가 되고 싶었는데….”

 “아니야. 넌 전사야. 바란타. 실력은 키울 수 있으니까 포기하면 안 돼.”

 “카렌.”

 “바란타.”

 

 ‘뭐야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미남과 야수야?’

 

 왠지 내가 오작교가 된 거 같았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거 같다.

 

 “바란타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나한테 졌다고 낙심하지 말아. 난 너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위험한 전장을 많이 겪었어. 넌 아직 애송이지만 투지는 높게 산다. 좀 더 노력하면 강해질 거야.”

 “내가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 난 예외야.”

 “...네.”

 “카렌. 오늘 당신과 데이트는 가슴에 영원히 기억하면서 묻어두겠습니다. 바란타와 좋은 사랑하세요.”

 “요한!”

 “알아요. 당신 마음을….”

 

 정확히는 모른다.

 

 힐을 해주려다 비록 워리어 엘프지만 힐링 능력은 가지고 있기에 인사만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가볍다.

 하마터면 결혼할 뻔했다.

 

 -딸랑 딸랑

 

 “어서오세... 어? 사장님 벌써 오신 거예요? 데이트는요?”

 

 어린 헌터 둘, 트롤 남매가 날 반겨주며 궁금해한다.

 데이트가 어땠는지.

 열불이 치솟는다.

 

 “너구차 어딨어?”

 “아직 안 왔는데요.”

 

 이 녀석 눈치채고 튀었다.

 오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다.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제대로 튄 놈이다.

 

 오기만 하면 바로 내 쫒아내 버릴 생각이다.

 더는 무료로 숙박도 음식도 줄 수 없다.

 이건 분명 나를 엿먹이자는 수작.

 뻔히 인간의 미모의 기준이 뭔지 알 수 있는 녀석이 워리어 엘프를 소개했다.

 덕분에 사랑의 오작교 역할만 하고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딸랑 딸랑.

 

 세나가 돌아왔다.

 쇼핑 가방에 한 가득 옷이 들어있다.

 

 “세나야. 영화 안 봤어?”

 “봤어. 보고 난 다음에 쇼핑했어. 난 안 받는다고 하는데도 자꾸 선물을 해준다는데 귀찮아 죽겠어.”

 

 전혀 귀찮은 표정이 아니다.

 부녀가 이렇게 다르다.

 누구는 무료 봉사하고 누구는 선불까지 받아왔다.

 

 그래도 착한 내 딸, 자기것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안 봐도 이 아빠 거랑 트롤 남매것도 가져왔다.

 

 딸 키운 보람.

 역시 난 세나 없으면 못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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