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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월광의 알바트로스
작가 : 프로즌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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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기사, 사자의 귀환, 그리고 월광의 알바트로스.
드래곤 지스카드의 세계에서 운명적으로 맞물려지는 장대한 대서사시,
지스카드 연대기 그 네 번째 이야기.
세계에 정면으로 맞서며 역사를 바꾸어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피의 알바트로스라 불리게 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 소년의 걸음이 시작된다.

 
제 13 화
작성일 : 16-07-14 14:33     조회 : 730     추천 : 0     분량 : 1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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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럭!

 새하얀 시트가 빳빳하게 펴졌다.

 때마침 감아들어 온 유월의 바람이 큰 창처럼 정연하게 걸려 있던 하얀 시트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시트를 쓸던 하얀 손이 바람에 헝클어지려는 머리칼을 붙잡으려다 멈칫했다.

 “아들, 무슨 일 있어?”

 뒤뜰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에밀리는 멍하게 있는 앤드류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웅? 아무것도 아냐, 엄마.”

 안채로 통하는 계단에 앉아 있던 앤드류는 엉덩이를 톡톡 털고 일어서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딴에는 의젓하게 행동한다고 한 것이지만, 낳고 기른 어미를 속일 수는 없는 노릇.

 “그러고 보니 엄마가 우리 잘난 아들이랑 통 얘기를 못했네.”

 앤드류가 앉아 있던 계단에 주저앉으며, 에밀리는 아들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오랜만에 느낀 따듯한 손길에 기분이 좋아진 앤드류는 배시시 웃으며 어미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헤헤!”

 “가게일 돕느라 힘들어서 그래?”

 “아니. 안 힘들어. 재미있어.”

 앤드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가죽 냄새 때문에? 엄만 어릴 때 그 냄새 싫었는데.”

 “웅. 처음엔 좀 싫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그럼 뭘까, 우리 잘난 아들을 이렇게 멍하게 만든 이유가?”

 어미의 눈치를 보며 잠깐 주저하던 앤드류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그게, 실은 나 친구가 생겼어.”

 “어머나! 그거 잘됐네. 그래 어떤 친구?”

 에밀리는 기쁨을 숨기지 않고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던 참이다.

 “어 그게…… 나보다 나이가 많아.”

 “몇 살이나?”

 앤드류는 고개를 숙인 채 계단 아래로 늘어트린 다리를 까닥거렸다.

 “몰라. 아무튼 많아. 그리고 되게 하얀 사람인데…… 친절해. 나한테 먼저 친구하자고 했어.”

 “그렇구나. 참 궁금하네. 엄마한테 소개시켜 줄 수 있어? 설마 여자 친구야?”

 나이가 많아 봤자, 두세 살일 것이라 생각하며 에밀리는 다시 웃었다.

 “에이, 그런 거 아냐. 근데 소개는 좀…….”

 “왜에?”

 “음…….”

 앤드류는 다시 우물거렸다.

 “이거 섭섭하구먼, 앤드류 워커군.”

 느닷없이 들린 목소리에 두 모자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곧 앤드류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에밀리의 얼굴에는 당혹이 어렸다.

 “클라…… 아니, 요한 아저씨!”

 갑작스럽게 나타난 젊은 미남자를 앤드류가 아는 척을 하자 에밀리는 더욱 놀랐다.

 무엇보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뒤뜰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질 않았기에 에밀리는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에밀리는 벌떡 일어선 앤드류를 품 안으로 이끌었다.

 눈앞의 젊은 남성의 인상은 더없이 친절해보였다.

 하지만 홀로 앤드류를 키워 오는 동안, 낯선 사람의 첫인상을 그대로 믿는 게 얼마나 어리석인 짓인지 에밀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부인. 요한 클라렌스라고 하오. 아드님과는 얼마 전 친구가 되었소. 아, 본 기사는 웨인 롱필드 씨의 손님이기도 한 사람이니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될 듯하오.”

 클라렌스는 모자를 벗고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클라렌스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처녀들, 아니, 기혼녀라 할지라도 홀딱 넘어갈 만큼 기품 있고 매혹적인 모습이다.

 “저는 그런 말 듣지 못했습니다. 또 내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저 역시 밖에 나가서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좋은 뜻을 품든 나쁜 뜻을 품든, 아이들은 겉모습에 잘 혹하는 법이라서.”

 ‘허어……?’

 차분한 반응에 클라렌스는 한 방 먹은 얼굴이 되었다.

 “엄마, 클라렌스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아까 내가 차도 내드렸어. 롱필드 씨 친구 맞아.”

 엄마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던 앤드류가 고개를 바짝 들었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고, 엄마만큼은 절대 아니지만 클라렌스도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끼리는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이 좋다.

 “그때 누나랑 혼난 날, 그때 클라렌스 아저씨랑 만났어. 미안해, 엄마. 거짓말하려던 건 아닌데…….”

 “아들.”

 에밀리는 허리를 숙였다.

 “엄마 말 잘 들어. 엄마는 아들이 클라렌스 씨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엄마가 여기 오기 전에 말했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어떤 거라고?”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대해 주는 사람!”

 “그래. 아들에겐 잘 대해 주지 않아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야. 그렇다면 여기 와서 만난 사람 중에 좋은 어른은 누구지?”

 “우웅…… 외숙모랑 외삼촌.”

 “어째서일까?”

 “외숙모는 모두에게 잘 대해 주고, 또 외삼촌은 잘은 모르겠지만…… 우움, 나한테 많은 거 가르쳐 줘. 외삼촌은 그냥 다 똑같이 대해 주는 거 같아.”

 앤드류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차근차근 말했다.

 에밀리는 대견함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시 물었다.

 “그래. 그래서 외삼촌도 좋은 사람인 거야. 그렇데 클라렌스 씨는 어떻지?”

 클라렌스는 흥미로운 눈으로 두 모자를 바라보았다.

 당사자가 있건 없건 상관치 않고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단지 보기 드문 훈육 방식이 흥미로울 뿐이었다.

 “그게…… 나 잘 모르겠어. 나한테 잘 대해 주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 엄마.”

 앤드류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말했다.

 클라렌스가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엄마의 말대로 좋은 사람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저 그에게 호감이 생겼을 뿐이다.

 “그래. 엄마는 클라렌스 씨가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야. 우리 잘난 아들이 너무 착해서 아직 누가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는 게 걱정되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랑 얘기를 하면 엄마가 아들한테 도움이 되겠지? 엄마는 우리 잘난 아들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엄마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웅! 나 알아. 알아들었어, 엄마! 이젠 조심할게!”

 앤드류는 고개를 바짝 세우고 헤실헤실 웃었다.

 “그래, 착한 내 아들.”

 에밀리는 아들의 뺨을 꼭 잡으며 마주 웃었다.

 두 모자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뢰라는 말로도 부족할 감정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호오!’

 두 모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클라렌스는 내심 크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현명한 어머니로구나!’

 앤드류가 또래 아이들답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누구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지를 생각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답은 금방 나왔을 터였다.

 “앤드류 어머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에밀리는 천천히 일어섰다.

 여전히 정중한 태도와 목소리였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들처럼 사람의 마을을 읽는 재주는 없었지만, 에밀리는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먼저, 사과를 드립니다. 본 기사, 아드님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앞서다 보니 신사로서 마땅히 선행해야 할 예의를 채 생각지 못하였소이다. 내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클라렌스는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를 아는 이들이 봤다면 깜짝 놀랄 일이었지만, 클라렌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에밀리 워커라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존경받아 마땅할 여인이었으니까.

 “아니에요, 저야말로 사과를 드려야지요. 그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가진 어미의 허물이라 여겨 주시면 그저 고맙겠습니다.”

 에밀리는 차분한 얼굴로 무릎을 굽혔다.

 자신보다 조금 어려 보임에도 조금은 오만해 보이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지만,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사람에게 계속 차갑게 굴 이유는 없었다.

 “하하하! 그것이 어찌 허물이 되겠습니까? 부인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십니다. 아드님께서 또래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이유가 참으로 궁금했는데, 이토록 아름답고 현숙하신 부인을 어머니로 두셨으니 무리가 아니었습니다그려.”

 “과찬이세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에밀리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시원스레 웃고 있는 젊은 미남자는 오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만이 아니라, 여유였다.

 하지만 그의 용모는 많이 쳐도 스물 일고여덟.

 새파란 젊은이의 말과 행동이라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투를 탓하기도 이상했고,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더더욱 실례다.

 “아차!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내 겉모습이 부인만큼이나 젊어 보여서 의아하신 듯한데.”

 “아, 아닙니다.”

 내심을 들킨 에밀리는 슬쩍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지만, 제 나이가 올해 마흔여덟이올시다. 일찍 일가를 이루었으면 부인 또래의 딸과 앤드류 정도의 손자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먼. 이거 참…… 하하!”

 자기가 말해 놓고도 쑥스러웠는지 클라렌스는 그저 웃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웃지 못했다.

 “마흔……여덟……?”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농담을 하는 것이라고 여기기엔 클라렌스라는 사내가 보여 주는 태도가 너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토록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에밀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능력……자이신가요?”

 “그렇소, 부인. 나는 기사,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기사올시다.”

 “소드마스터…….”

 에밀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요한 클라렌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허……?’

 놀란 것은 오히려 클라렌스 쪽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소드마스터라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놀라지 않은 사람, 그것도 여성을 오늘 처음 봤다.

 “크게 놀라지 않으시는 걸보니, 혹시 본인 이외의 마스터를 알고 계시는지?”

 “아니요. 마스터를 실제로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저…….”

 에밀리는 말꼬리를 흐리며 시선을 내리려다 슬쩍 올렸다.

 오늘따라 유별나게 까맣게 빛나는 앤드류의 눈동자를 마주하기가, 어쩐지 미안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나저나 용건이 있으신 듯한데…….”

 에밀리는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클라렌스는 내심 고소를 지으면서도 그녀의 의도에 동조했다.

 “아차! 내 부인과 아드님의 대화가 재미있어 정작 용건을 잊고 있었습니다그려. 일단 편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듯 하오만.”

 “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앤드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에밀리는 걸음을 옮겼다.

 새하얀 시트들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뒤뜰 담벼락 아래, 적당히 그늘진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으로 클라렌스를 안내했다.

 “풍광이 참으로 좋습니다. 집 또한 크지는 않으나 소박한 정취가 있고, 뒤뜰에 이처럼 좋은 경치가 펼쳐져 있으니…… 하하! 가슴이 다 시원해집니다그려.”

 “오빠가 답답한 것을 싫어해서요. 해 질 녘에 이곳에서 맥주 한 잔 마시는 걸 즐긴답니다.”

 “하하! 워커 씨에게 그런 멋진 취미가 있는 줄은 또 몰랐습니다.”

 펼쳐진 풍경만큼 클라렌스는 시원스레 웃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웃는 클라렌스의 모습에 에밀리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것을 본 클라렌스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부인께서는 웃으시는 게 훨씬 보기가 좋구려.”

 “자주 듣던 말입니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우다 보니 별의별 말을 다 듣게 되어서요.”

 ‘허! 오늘은 자주 놀라게 되는 날이로구나.’

 클라렌스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에밀리를 바라보았다.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에밀리는 여러모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여인이었다.

 지체 높은 집안의 여식들에게서도, 외국의 귀족 가문 레이디들에게서도 쉽게 찾지 못하는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현명함이었다.

 ‘참으로 당찬 여인이 아닌가. 허! 그나저나 대체 이런 여인의 마음을 훔친 사내는 누구일꼬? 어떤 사내가 이 여인의 마음을 훔쳐 이런 잘난 자식을 낳았을꼬?’

 -사나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아빠가 그랬어요.

 첫 만남 때 앤드류가 했던 말이 떠오르며 새삼스럽게 호기심이 생겨났다.

 하지만 클라렌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게리엇도 그렇고 에밀리도 그렇고, 어쩐지 앤드류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눈치다.

 앤드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용건이 있는 지금,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홀로 이런 장한 아드님을 키워 내시다니, 부인께서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클라렌스는 허리를 쭉 펴며 말을 이었다.

 “신사적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소. 본 기사가 개인적인 용무로 알폰소 가에 몇 달 있을 것 같은데…… 그때까지 아드님과 조금 가깝게 지내도 될까, 부인께 허락을 맡고 싶소이다.”

 “가깝게 지내신다니요?”

 “아드님을 가르치고 싶다는 뜻이오.”

 “우리 앤드류를…… 가르치신다고요?”

 에밀리는 저도 모르게 살짝 벌어진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그렇소이다. 오라버니 되시는 워커 씨에게 듣기로, 아드님이 몇 달 후에 학교에 가게 되었다면서요? 그때까지, 아니, 그 이상이 되어도 좋소이다. 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드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가르쳐 보고 싶소이다.”

 “가르치시겠다면 대체 무엇을……?”

 에밀리는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제안에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신사로서 가져야 할 덕목과 기본예절. 학교에서 배우지 못할 여러 가지 것들이 되겠소이다. 더불어, 아드님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 이를테면 랜드 워커 제작에 관한 기본 지식이라던가.”

 “랜드 워커?”

 유일하게 이해가 되는 말이 나오자 앤드류가 고개를 발딱 들었다.

 “아들.”

 “우웅…….”

 에밀리가 가볍게 나무라자 앤드류는 곧 고개를 푹 숙였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할 때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에밀리는 클라렌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감사하다는 마음보다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소드마스터나 되는 기사께서 제 아들에게 이런 관심과 호의를 베푸시려는지를. 실례지만, 우리 앤드류에게 왜 관심을 두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다른 이도 아닌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관련된 일이다. 그렇기에 에밀리는 실례라도 불러도 무방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례라니요. 이해합니다. 충분히 그러실 만하지요. 제가 아드님에게 관심을 둔 이유는…….”

 클라렌스는 앤드류에게 시선을 내렸다. 흑진주같이 반짝이는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특별하기 때문이지요. 아직 그 정체가 확실치는 않지만, 아드님은 다른 아이들은 가지지 못한 뭔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본 기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아…….”

 순간, 에밀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있어. 이 사람은…… 우리 앤디에 대해서 뭔가 눈치 챈 거야.’

 확실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흔치 않은 능력자 중에서도, ‘마스터’라는 대단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 앤드류와 가까이 지내고자 할 리가 없었다.

 “엄마……?”

 두려워진 에밀리는 저도 모르게 앤드류의 손을 꽉 쥐었다.

 앤드류가 눈을 찡그리며 올려다보았지만, 에밀리는 떨리는 눈으로 클라렌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흐음…….”

 에밀리의 그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할 클라렌스가 아니었다.

 확실히 이 모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반응할 리가 없었다.

 ‘분명 뭔가가 있구먼.’

 하지만 클라렌스는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앤드류의 특별함을 눈치 챘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앤드류의 모친이 알고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인.”

 “네.”

 클라렌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에밀리는 불안을 누르며 대답했다.

 클라렌스는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말할 것은 순전히 제 생각이니, 기분이 상하시면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또 동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네.”

 “먼저, 제가 눈치 챈 아드님의 특별함을 부인께서는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또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불안을 가지고 계신 듯한데, 맞소이까?”

 “……맞습니다.”

 “역시! 아이의 특별함이 부모에게 꼭 기쁨만을 주지 않음을 내 잘 알고 있지요. 아무튼,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아드님의 그 특별함이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나게 되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겠지요? 이를 테면 나 같은 이들이 또 알아볼 수도 있는 노릇이고.”

 “후우……. 맞습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요.”

 에밀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주억였다.

 이미 앤드류의 특별한 능력을 눈치 챈 사람이다. 속이기보다는 터놓는 쪽이 나을 터였다.

 “앤드류가 아직 어리다 하나 언젠가는 부인의 품을 벗어나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내 볼 때, 부인께서 워커 씨에게 온 것은 그때까지 아드님이 제대로 커 줬으면 하는 바람이 큰 이유를 차지한 듯하더이다. 하지만 세상사 모두 사람의 뜻대로 되기는 요원한 일. 사람의 운명이란 변덕스러운 날씨와도 같아서 그 누구도 쉽게 속단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네. 마스터의 말씀에 저 역시 동감합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우리 앤드류가 어찌 될까 싶어 불안하기 짝이 없어요.”

 에밀리의 음성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절절함이 느껴졌다.

 그런 에밀리의 모습 속에서 클라렌스는 죽은 모친을 떠올렸다. 그녀 역시, 자신을 바라볼 때 저런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본 기사가, 이 요한 클라렌스가 아드님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아드님의 특별함을 가장 먼저 알아챈 대가라고 해야 하나? 나는 앤드류 워커 군이 참하게 컸으면 좋겠고, 운이 좋은 것인지 나는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서.”

 클라렌스는 빙긋 웃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이 이제는 일종의 책임감이 드는 일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기사로 가르칠 것도 아니요, 앤드류가 싫어한다면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아드님의 특별함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끔 도울 수 있다면 만족할 것입니다. 하하! 나 역시 능력이 처음 드러났을 때, 꼭 좋은 일만 겪은 게 아니라서 말이지요.”

 “그러시군요.”

 에밀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능력자와 함께한 때가 있었다. 그와 사랑을 하고, 아들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능력자들이 꼭 대단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남들과 다른 능력이라는 것은 결코 희망만 주지는 않았다.

 “자, 어떻습니까? 부인의 아드님을, 앤드류 워커 군을 나에게 잠시 맡길 수 없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소나기라 여겨도 좋습니다. 그 또한 가뭄엔 반가운 것이니.”

 “소나기…….”

 에밀리는 클라렌스의 마지막 말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나기.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 기이한 마스터와의 만남은 마치 한여름의 소나기와도 같았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지만 꽉 막혀 있던 가슴 한구석이 시원해지는 느낌.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청량하게 느껴지는 소나기처럼, 동안의 마스터는 시원스레 웃고 있었다.

 “엄마, 나 요한 아저씨랑 놀고 싶은 데에. 되게 재미있을 것 같은 데 그럼 안 돼요?”

 어린 아들이 자신을 올려다보며 옹알거렸다.

 햇빛이 부딪혀 반짝이는 까만 눈망울은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순진무구한 빛만 띄우고 있을 뿐이다.

 ‘내 아들…….’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운명을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에밀리는 직감했다.

 오늘의 이 소나기를 피한다면, 큰 먹구름이 찾아왔을 때 앤드류가 겁을 집어먹으리라는 것을…….

 한낮의 소나기를 맞아 보지도 않은 아이가, 폭풍우를 이끌 먹구름에는 결코 맞서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녀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잘난 우리 아들.”

 “웅?”

 포근함이 느껴지는 어미의 부름에 앤드류는 발딱 대답했다.

 앤드류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에밀리는 미소 짓는 얼굴로 속삭였다.

 “아들은 참 친구도 잘 만나는 것 같아. 엄마는 아들이 자랑스럽구나.”

 “에헤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앤드류는 벌쭉 웃었다.

 에밀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깊고 또렷한 빛이 흐르는 클라렌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에밀리는 입을 열었다.

 “마스터 클라렌스. 제 아들을 잘 부탁드려요.”

 “하하하!”

 맑고 시원한 웃음이 뒤뜰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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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 13 화 2016 / 7 / 14 731 0 10049   
12 제 12 화 2016 / 7 / 14 785 0 7243   
11 제 11 화 2016 / 7 / 14 794 0 6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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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 9 화 2016 / 7 / 12 656 0 5898   
8 제 8 화 2016 / 7 / 12 675 0 6019   
7 제 7 화 2016 / 7 / 12 664 0 6407   
6 제 6 화 2016 / 7 / 12 712 0 5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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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 4 화 2016 / 7 / 12 786 0 6701   
3 제 3 화 2016 / 7 / 12 715 0 7401   
2 제 2 화 2016 / 7 / 12 720 0 6498   
1 제 1 화 2016 / 7 / 12 1076 0 5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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