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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댕댕이인줄 알았는데, 늑대라니!
작가 : 블랙다이아몬드
작품등록일 : 2021.12.26

# 여주.
- 홍임수(여, 35살, H 푸드의 대리)
“동생 대신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팥쥐가 된 철벽녀.


# 남주
-지국장(남, 30살 H 푸드의 낙하산 인턴.)
“외로워서가 아니라, 누나를 사랑해서. 누나의 가족이 되고 싶은 거야!”
교통사고로 가족은 잃은 그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 그녀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순정남.

#서브 남
-최재현(남, 37살 H 푸드의 본부장)
“무서운 꼬맹이, 겁쟁이 오빠한테 시집와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기에 대세를 따르는 실속파.

#서브 녀.
김희주(여, 30살, H 푸드의 이사)

“쫓겨난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 그래서 더 짓밟고 싶어.”
열등감에 모든 걸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가식적인 콩쥐.

 
제22화-얼마나 잘나셨는지, 제대로 봐줘야죠!
작성일 : 22-02-27 13:47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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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석에 앉은 박 부장은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다.

 

 ‘설마? 홍 대리랑 본부장이랑 선을 봤을 리가 만무하지. 하긴 본부장과 일개 노처녀 대리랑. 급이 다른지! 드라마도 아니고. 우연히 그날, 같은 장소에서 따로, 각자 선을 봤을 거야.’

 

 재현 본부장과 날 번갈아 보던 박 부장은 도리질했다. 자신의 불안감을 떨쳐내듯 박 부장은 미친 두더지의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지혜 씨가 취해서, 기억이 안 나는가 본데. 그 남자랑 사귀잖아. 내 말이 맞지. 홍 대리.”

 

 듣고 있던 재현 본부장이 피식 웃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음~사귀는 사이군요. 제가 찰떡같이 들었는데, 결국 개똥으로 이해했네요. 제가 좀 이해력이 부족한가 봐요. 홍 대리님.”

 

 ‘산 넘어 산이라고. 그냥 사표 내자.’

 

 재현 본부장의 관심이 나에게 쏠리자, 언짢은 미친 두더지 지혜가 돌려 까기 기술을 선보였다.

 

 “에~이. 소개해주신 박 부장님이 민망해하실까 봐, 사귄다고 말하는 거죠. 홍 대리님 그쵸? 아니다! 설마, 그때 김 과장님이 소개팅한 돌싱남이랑 사귀는 거예요? 축하해요. 홍 대리님.”

 

 내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미친 두더지 어휘력에 테이블을 내려치는 쾅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직원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일제히 재현 본부장을 쳐다봤다.

 

 “그만 일어나시죠. 박 부장님이 먼저 일어나시죠. 이젠 일하러 사무실 갑시다. 오늘도 열심히 일들 합시다. 아자 아자.”

 

 입꼬리만 올린 재현 본부장의 채근에 새삼 놀란 직원들이 VIP룸에서 하나둘씩 나갔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는지. 본부장을 뒤따라 나가던 미친 두더지 지혜와 똥파리 김 과장은 열띤 선절을 주고 받았다.

 

 “딱 보면 몰라요. 홍 대리님, 애인이 없어요.”

 

 “아니야. 홍 대리가 요즘 들어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그건, 애인 생겼다고 말이야.”

 

 “김 과장님, 다 양보해서 홍 대리님이 숨겨둔 애인 있다고 치면, 핸드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야 하는데. 홍 대리님의 핸드폰은 그냥 시계에요.”

 

 “그건 신세대인 지혜 씨의 연애방식이고. 홍 대리가 저 나이 먹고 지혜 씨처럼 남자친구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입술을 쪽쪽 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끔찍해.”

 

 “내 말이 맞아요. 홍 대리님 애인 없어요. 여자의 감을 못 믿으세요. 과장님, 절대 저 얼굴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고요.”

 

 “아이고, 내가 지혜 씨 보다, 홍 대리를 더 오래 알고 지냈어. 결정타는 회식 때야. 기억 안 나?”

 

 지혜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따졌다.

 

 “회식? 뭐요?”

 

 두리번거리며 김 과장은 대단한 비밀을 말하는 양 목소리를 줄였다.

 

 “홍 대리 입으로 공표 해잖아. 부장님이 생각하시는, 그 이상으로 찐~한 19금 넘는 그런 관계라고. 이 정도로 말하면, 갈대까지 간 사이라는 거잖아.”

 

 내가 애인 있든 말든, 뭔 상관이라고. 자기들이 목에 핏대까지 세우면 싸우지, 정말 모르겠다.

 

 성심성의껏 헛소리나 해대는 재수 없는 원수들을 어떻게 응징할까 궁리하는 찰나에.

 

 갑자기 야릇한 표정으로 뒤돌아본 재현 본부장이 김 과장에게 재차 물어봤다.

 

 “정말. 박 부장님이 주선한 그 남자와 19금 넘는 그런~ 찐한 관계라고 말했다는 거죠. 김 과장님.”

 

 딴짓하다 걸린 학생처럼 김 과장은 주춤거리며 대답했다.

 

 “아~들으셨구나. 제 두 귀로, 분명히 들었습니다.”

 

 김 과장의 확신에 찬 대답에 입꼬리가 승천한 재현 본부장이 날 바라봤다.

 

 ‘본부장님도 왕자병 있습니까? 그 이상으로 찐한 관계라고 했지. 상대가 본부장님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착각은 금물입니다.’

 

 눈으로 욕하는 내 사나운 눈매를 읽었는지, 재현 본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한숨을 돌리자, 재현 본부장의 관심이 받지 못한 미친 두더지 지혜가 가자미 눈으로 날 흘겨봤다.

 

  이래서 미친 두더지를 질색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짝짓기를 위한 눈물겨운 구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어찌 됐든 남자에게 사랑을 받았고, 미친 두더지 또한 절절한 사랑을 해 봤으니까. 저렇게 사랑에 목맬 수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한편으로 그 달콤한 기억을 갖고 사는 미친 두더지가 부러웠다.

 

 ‘그러니까, 저렇게 대놓고 들이밀지.’

 

 재현 본부장의 눈동자에서 내가 아닌 미친 두더지가 담기자, 기다렸다는 듯 지혜가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본부장님, 잘 먹었습니다. 우리 회식 자주 해요. 본부장님~너무 좋아요. 과장님도 좋죠.”

 

 앵앵거리는 미친 두더지가 겁이 났는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재현 본부장은 나긋하게 일침을 날렸다.

 

 “회식을 자주 하고 싶다면, 그만큼 성과를 내주세요. 그럼, 저도 지혜 씨와 회식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죠. 지혜 씨.”

 

 애교로 무장한 자신의 얼굴에 철벽을 치는 재현 본부장에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순간적으로 미간이 구겨졌다.

 

 이에 굴하지 않은 미친 두더지가 꽃받침 포즈로 밝은 목소리로 경망을 떨었다.

 

 “당연하죠. 본부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하러 먼저 가보겠습니다.”

 

 주황색 낯빛으로 물든 미친 두더지의 뒤를 쫓아가면서, 똥파리 김 과장이 약 오리듯 실실 쪼갰다.

 

 “지혜라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무리네. 에~이. 모든 남자가 지혜 씨한테 넘어가면, 세상이 무너지지. 나도, 하하. 열심히 일해서. 지혜 씨랑 본부장님이 꼭 함께, 회식하게 해줄게.”

 

 나는 원래부터 김 과장과 천적 관계 그렇다 치더라도, 미친 두더지까지 깔아뭉갤 필요가 없지 않은가!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세상 참~씁쓸하다!’

 

 환상의 전우애를 과시하던 그들이 충성경쟁에 내몰려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을 보고 있잖니. 내가 다 무안했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고. 저놈의 김 과장 새끼가 더 얄미우니까.’

 

 혼자 신나서, 실실거리는 똥파리 김 과장에게 김 과장의 다리를 살며시 발을 걸었다.

 

 재현 본부장 앞에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공개한 김 과장에 대한 나의 소소한 복수라고 할까.

 

 철퍼덕

 

 “윽~으.”

 

 대짜로 뻗은 김 과장을 챙기는 척 가증스럽게 부축했다.

 

 “괜찮아요. 김 과장님. 설마 와인 두 잔에 취하는 건 아니시죠? 나잇살 때문에 김 과장님도 하체가 부실하네요. 운동 좀 하셔야겠다. 김 과장님.”

 

 넘어져서 아픈 것보다 하체 부실하다는 오명에 김 과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네가 발을 걸어서 넘어줬어. 어디서, 약을 팔아. 그리고, 뭐! 하체 부실! 어이가 없었어.”

 

 얼굴에 철판을 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했다.

 

 “과장님. 정말 취하셨어요? 제가 어떻게, 감히 과장님을! 발을 걸어요. 너무 억울해요.”

 

 “딱 걸렸어. 진단서 받아서, 병원비 청구할 거야. 상사를 우습게 만들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증인이야. 다들 봤죠. 내 말이 맞지. 지혜 씨.”

 

 “과장님이 저를 싫어하시는 거,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생사람 잡으시면 안 되죠. 과장님.”

 

 억울해서 펄쩍 뛰던 김 과장은 재차 미친 두더지 지혜에게 대질신문을 요청했다.

 

 “지혜 씨, 봤어. 봤잖아. 분명히. 지혜 씨가 본 대로 말해 봐.”

 

 미친 두더지가 뾰로통한 얼굴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과장님, 취했네요. 과장님의 발에 걸려서, 넘어지셨잖아요. 우리 과장님, 의외로, 와인에 약하시네. 어, 택시 왔어요. 본부장님 타세요.”

 

 레스토랑 앞에 정차한 택시에 올라탄 재현 본부장은 김 과장을 불렀다.

 

 “김 과장님, 많이 취하셨어요? 박 부장님은 이미 회사로 출발하셨습니다. 김 과장님, 집에 가실 생각이 아니시면, 그만 택시에 타시죠.”

 

 재현 본부장은 겁먹은 김 과장을 서둘러 택시에 태우고,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런 젠장! 여우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 꼴이네. 어떻게, 사방이 다 적이야! 이놈의 내 팔자야!’

 

 이젠 재현 본부장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암담했다.

 

 진짜로, 이 회사 때려치울까!

 

 

 ***

 

 낡은 건물 안으로 퀵서비스 조끼를 입은 영실이 들어갔다. 그의 손에 햄버거와 치킨 박스가 들려있다.

 

 헬멧을 벗은 영실은 복도 끝, 구석진 사무실로 들어갔다.

 

 “배달 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정 집사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시게. 일은 끝났지? 이리 앉아서. 먹고 가라. 네 몫까지 넉넉히 시켰다.”

 

 영실은 콧노래를 부르며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넋 놓고 앉아있는 지국장을 쳐다봤다.

 

 “형은 왜 저래요? 누가 또 돈 빌리고 토꼈어요?”

 

 정 집사는 알 듯 모르듯 한 미소로 대답했다.

 

 “글쎄… 도련님도 식사하셔야죠. 어서 오세요.”

 

 정 집사의 성화에 한숨을 내쉬던 지국장은 마지못해 닭 다리의 튀김옷을 깨작거렸다.

 

 “생각보다 맛있네. 할아버지도 많이 드세요.”

 

 입안 가득 햄버거를 삼킨 영실은 실눈으로 지국장을 요리조리 뜯어봤다.

 

 “어구, 관상을 딱 보니까. 차였네. 차였어. 그것도 연상한테! 내 말이 맞지? 우리 잘난 형도, 차일 수 있구나.”

 

 닭 다리는 던지듯 내려놓은 지국장은 살벌한 눈빛으로 따졌다.

 

 “다시 말해 봐!”

 

 예상외로 차가운 지국장의 반응에 일순간 살얼음판이 되었다.

 

 “… 형. 나는 그냥, 웃자고… 정말 미안해. 형.”

 

 장난기 어린 손자가 혼날까 봐, 닭 날개를 뜯던 장 집사가 긴장한 목소리로 화제를 전화했다.

 

 “오늘 최재현 본부장을 만나는 날입니다. 같이 가실 거죠. 도련님.”

 

 여전히 영실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지국장은 무심하게 응답했다.

 

 “얼마나 잘나셨는지, 제대로 봐줘야지. 그래야, 내 사랑을 빼앗기지 않지. 안 그래요? 할아버지.”

 

 지국장의 얼음처럼 차가운 음성에 겁먹은 영실은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어린양처럼 장 집사에게 속삭였다.

 

 “할아버지 제발요. 무서워요. 형이.”

 

 안타깝게도. 장 집사도 딱히 별도리가 없는 듯 두 눈을 감았다.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 장 집사를 원망의 눈초리로 쏘아보던 영실은 다가오는 그림자에 얼어붙었다.

 

 지국장의 얼굴이 공포 영화처럼 딱, 딱, 딱 코앞까지 다가오자 영실은 하얗게 질려 입만 뻐끔거렸다.

 

 “어떻게 알았어? 연상 맞아. 차인 것도 알면, 사귈 방법도 알겠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

 

 당장이라도 사랑의 묘약을 내놓지 않으면 목을 칠 기세에 눌린 영실은 혀가 움직이는 대로 허언했다.

 

 “연상도 연상 나름이지. 한두 살 차이면 친구처럼 다가가는 방법도 있고. 그 이상의 경우면, 이건 좀…”

 

 돌려 말하듯 말을 삼키는 영실이 답답한 지국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되물었다.

 

 “ 다섯 살 연상. 15년을 친남매처럼, 아니지. 그냥 남매처럼, 지낸 사이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처럼 영실은 심적인 압박감으로 헛기침을 해댔다.

 

 “캑 캑. 그…그러니까. 누나는 내 여자니까. 버전이라는 소리인데. 음~삼각관계만 아니면, 희망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내리친 지국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 이제 출발하죠.”

 

 관망하던 장 집사는 풀 죽은 영실의 어깨를 토닥이며 대답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도련님.”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영실은 얹힌 햄버거를 소화 시키려는 듯 주먹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아~씨. 오늘의 운세에서 입방정을 떨지 말고 했는데. 이게 뭐냐~씨. 차라리 한 대 맞고 말지. 돈 아깝게 소화제 사 먹어야 하나?”

 

 들러붙은 엿가락처럼 소파에 누워있던 영실은 사무실로 돌아온 지국장을 보고 강시처럼 벌떡 일어났다.

 

 “어…형. 뭐 빠뜨리고 간 것 있어? 핸드폰? 열쇠?”

 

 바짝 군기든 영실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지국장은 차 키를 던져줬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네가 차 운전해.”

 

 영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얼떨결에 받은 차 키와 지국장을 번갈아 봤다.

 

 “… 꼭 가야 하나… 꼭! 가야죠. 형. 갈게요. 어디로 모실까요?”

 

 자발적으로 나서듯, 영실은 앞장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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