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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망각의 라그나로크
작가 : 오이먹는고슴도치
작품등록일 : 2022.2.27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잊어버린 한 소년, 과연 정해진 운명을 부수고 미래를 뒤바꿀 수 있을까...

 
2화
작성일 : 22-02-27 02:51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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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날 이후, 난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내가 다시 마을로 찾아갈 수 있었던 건 눈을 뜨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마음 같아선 곧장 마을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지 않고서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가

 있었기에 그저 내 회복력을 믿고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마을에 찾아갔을 땐, 나의 바람대로 마을이 멀쩡하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눈앞의 현실은 그날의 습격을 생생하게 상기시켜주는 매개체가 되어 나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과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잔해들, 그리고... 뜯겨져 나간 시체 조각들.

 

 그만 구역질을 참지 못할 뻔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던 건.

 

 "동생은... 동생은 무사해... 올리비아도..."

 

 마법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을 동생과 올리비아만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끼잉...

 

 "괜찮아, 괜찮아 슈..."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고 있는 이 늑대는 할머니와 함께 나를 강가에서 발견해준 아주 고마운 녀석이다.

 다만 이 녀석이 나를 새끼 늑대라고 생각하는 게 좀 문제이라면 문제이지만.

 그 증거로 슈는 내가 치료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돌아가자."

 

 -왕!

 

 폐허가 되버린 마을을 뒤로하고 나는 깊은 숲속의 작은 오두막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당장이라도 동생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할머니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기에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동생을 만나러 갈 수 없다고요...? 왜...'

 

 '정확히는 동생을 만나러 갈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네가 수도로 갈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지금 숨어 지내는 신세이기

 때문이지.'

 

 '숨어 지내신다고요?'

 

 '그래, 미안하다. 네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다.'

 

 '그럼... 편지는요? 동생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제가 살아 있다는 것만이라도...!'

 

 '....애초에 네가 수도에 갈 수 없다는 뜻이 이미 나의 흔적이 너에게 묻어났기 때문이다.'

 

 '흔적이 묻어나요?'

 

 '정확히는 나의 마나가 묻어났다는 거지. 마나에 대해서는 무지한 거 같으니 간단하게 말해 주지. 우선 널 치료하느라 나의

 마나가 아주 듬뿍 너에게 담겨져 있고 수도의 마법사들은 그걸 간단히 캐치해내서 내가 숨어 지내는 이곳까지 쫓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 숲도 네가 느끼지 못하겠지만 마법으로 나의 흔적을 전부 지워낸 유일한 장소지. 마음같아서는

 나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보는 대로 늙을대로 늙어버린 지금은 현재의 마법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이지.'

 

 할머니께서 일부로 말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를 치료한 것에 많은 무리가 오신 듯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낼 수 없는 것도 편지지에 흔적이 묻어날 수 있고 동생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안다면 날 찾으러 왕국에서

 수색대를 보낼 것이기에 괜히 힘이 점점 부치는 할머니께서 위험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영원히 동생을 만나러 갈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아마... 짧으면 3년, 길면 5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만나러 갈

 수 있겠지.'

 

 '정말로요? 근데 왜...'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그러니까 너도 그 시간 동안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을 형이 되어 보자구. 마물의

 습격같은 건 간단하게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예?'

 

 그리고 상처가 완전히 아문 이후부터, 나는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당장 일어나서 뛰어!"

 

 "허억... 허억... 이제... 그...만..."

 

 "지금 당장 일어날 수 없다면 넌 또다시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될 건데도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내뱉는 거냐?"

 

 달리고 쓰러지고, 또 달리고 쓰러지는 날 재미있다는 듯 구경하며 이따금씩 호통을 치시는 할머니는 처음 봤을 때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끄으으윽....!"

 

 "좋아! 그 기세다! 달렷!"

 

 "으아아아아아!!!"

 

 기다려 닐, 언젠가 꼭, 너를 만나러 갈테니까.

 

 

 "닐..."

 

 "어, 올리비아 누나."

 

 기숙사 방을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었던 닐의 상태는 굉장히 처참했다.

 손질하지 않아 지저분하게 길어져 있는 머리와 깨져있는 손톱, 뻘겋게 충혈된 두 눈과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

 책상 위에 쌓여져 있는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을 밤새 모두 읽었는지 반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이네. 왜 찾아온 거야?"

 

 "어떻게 안 찾아오니? 그렇게 마법에 관심 많던 애가 수업에도 나오지 않고, 밥도 안 먹고, 기숙사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데....!"

 

 "내가... 마법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순간 닐의 말에 서리가 맺힌 듯 차가워지고.

 

 "하, 웃기는 소리네."

 

 "뭐?"

 

 "잘 들어. 내가 마법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인 이유는 단지 형에게 돌아가기 위해서였어. 시험에서 낙제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 누나처럼 그딴 시시한 마법 수업 따위 듣고 있을 여유따위 없어."

 

 그의 말은 비수가 되어 그녀를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넌 지금까지 대체 뭘..."

 

 "누나는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 없어? 지난 수백년 동안 자기들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던 마물들이 갑자기 왜 우리 마을을

 습격해왔는지. 그리고 조사해보니 우리 마을만 마물들의 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어. 왕국 변두리에 위치한 몇몇 마을들에도

 마물들의 습격이 있었지. 다만 우리 마을처럼 완전히 쑥대밭이 된 것이 아니라 몇 마리 정도의 귀여운 습격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그게... 무슨..."

 

 "아직도 모르겠어? 행동 양식을 벗어난 마물들의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거라고."

 

 "그렇다면 너는... 이번 습격이 누군가의 소행일 수 있다는 거야?"

 

 "그래, 그러니까 도와줄 거 아니라면 그냥 나가줬으면 하는데."

 

 "...."

 

 그녀도 물론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그보다 더한 슬픔에 묻힌 채 지금까지 헤어나오지 못한 것일 뿐.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뿐.

 억지로라도 기억을 묻고 살아가지 않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뿐이었다.

 

 '델... 난,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루아침만에 가족이, 마을이, 친구들이, 좋아하던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그 공백을 닐은 증오라는 감정으로 메꾸어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그 대체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고.

 그렇게 형제의 비극은 굴러가기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마나에 대해서 설명해 주마."

 

 "저는 어차피 마법에 재능이 없는데요."

 

 "어허, 마법을 쓰지 못한다 해도 마나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거다."

 

 내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체력 훈련을 위한 조깅 후 아침 식사, 그리고 동물들을 돌본 후 함께 점심을 먹고 근력 운동을 한

 후 할머니와 저녁을 먹은 후 여러 지식을 배운다.

 오늘은 마나, 나는 전혀 느낄 수도 없는 것에 대한 공부다.

 

 "마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냐?"

 

 "어... 대기 중에 희박하게 떠돌고 있다고 들었어요."

 

 "흠,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네."

 

 "칭찬 맞죠?"

 

 "응, 그게 다야. 마나는 아주 특정한 장소만 아니라면 어느 곳에나 희미하게 존재하지. 가끔 엄청난 마나가 응축되어 있는 곳도

 있긴 하지만 알 필요는 없고..."

 

 "왜요?"

 

 "그야 네가 평생 갈 수 없는 곳이니까. 알려 하지 마라. 귀찮아진다."

 

 "흠..."

 

 "그럼 다시 말하자면 대기 중에 떠 있는 마나는 웬만한 매개체가 아니라면 전혀 반응하지 않지만..."

 

 할머니의 손바닥 위에 희미하지만 푸른색 빛 알갱이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몇몇 사람에게만은 관대한 힘이지. 그리고 생각보다 마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고작 삼백년 전 쯤에 발견되어

 지금까지도 정확한 마나에 대한 연구를 끝마치지 못한 상태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이 명백한 사실이지.

 사람의 체내 속에서 피와 함께 흐르며 신체를 강화시켜 줄 수도 있고 자신의 역량에 따라서 속성까지도 변환시킬 수 있지.

 이렇게."

 

 할머니의 손에 모여든 푸른 마나가 순식간에 열을 내뿜더니 타오르는 불이 되었다.

 

 "우와! 근데 안 뜨거우세요?"

 

 "당연히 뜨겁지. 잘 봐봐."

 

 타오르는 불꽃의 근원을 쫓아가보니 푸른 마나가 할머니의 손바닥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기가 마나를 어떻게 사용하든 그 사용자도 데미지를 입게 된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마나로 보호막을 쳐 두는 게 중요하지.

 여기까지가 마나를 담을 그릇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역시 저하고는 상관이 없었네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그럼 불만이 많아 보이니 이번에는 너도 할 수 있는 걸 알려주마."

 

 "저도 할 수 있는 마법이 있나요?"

 

 "이걸 마법이라 불러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것들보다는 가능성이 있지."

 

 "그게 뭔데요?"

 

 "바로 마나에게 부탁을 하는 거다."

 

 "네? 부탁... 이요?"

 

 "마나가 대기 중에 떠돌고 있는 만큼 자연에 엄청나게 스며들어 있지. 그런 마나들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만이 아닌 태풍을,

 물을 일렁이게 하는 것만이 아닌 쓰나미를, 바위를 쏫아나게 하는 것만이 아닌 대지를 흔들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다.

 고작 개인이 가진 그릇으로는 생각도 못할 일을 마나에게 부탁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거지."

 

 "그 말은 자연을... 다룰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이 천재지변을 감히 마법이라 표현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리고 지금까지 마나에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기록상

 단 한 명이다."

 

 "에? 고작 한명이요?"

 

 "잘 생각해봐라. 그런 거대한 천재지변을 아무나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건 확실히 그렇네요. 신께서 무슨 제약이라도 걸어두신 걸까요?"

 

 "난 신은 믿지 않지만 뭐, 그렇게 설계됐을 수도 있겠지. 자, 오늘의 마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 내일은 다른 걸 또 알려주마."

 

 그렇게 내가 더 이상 뛰는 것에 숨을 헉헉거리지 않게 되고 할머니께서 만족하실 만큼의 근육이 붙게 되자 나는 처음으로

 검을 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 받아라."

 

 "우왁! 갑자기 그렇게 던지시면 어떡해요!"

 

 "잘만 받는데 뭘."

 

 내가 받은 건 한 자루의 낡은 목검이었다.

 

 "웬만해서는 잘 부러지지 않는 거니까 신경쓰지 않고 막 다뤄도 돼."

 

 "오늘부터 검술에 대해 배우는 건가요?"

 

 "그래, 이제야 어느 정도 몸이 완성됐으니까. 그럼 한번 휘둘러 봐라."

 

 "그냥요?"

 

 "그럼 검을 그냥 휘두르지. 뭐가 필요하냐?"

 

 "아... 그렇죠."

 

 곡괭이나 낫이 더 익숙한 나에게 검은 굉장히 어색한 물건이었다.

 

 "후..."

 

 두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른다.

 

 "뭘 그렇게 뜸을 들여?"

 

 기다린다. 단 한 순간만을 위해서... 바로 지금!

 

 "이야압!"

 

 훙!

 

 목검이 바람을 가르며 하늘과 땅을 잇는 하나의 선을 그려낸다.

 

 '...완벽했다.'

 

 "지금 뭐하냐?"

 

 "네?"

 

 "방금 머릿속으로 완벽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되도 안되는 똥폼을 잡고 있어."

 

 "아하하..."

 

 완전히 속을 읽혀버린 델이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음... 나쁜 소식부터요."

 

 "넌 마법에서 뿐만 아니라 검에도 재능이 없어 보인다."

 

 "...네?"

 

 고작 검 한번 휘둘러봤을 뿐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 검 한번 휘두르는 걸 보고 그걸 알 수 있는 건가요?"

 

 "그럼, 당연하지. 그리고 이제 좋은 소식이다."

 

 나는 그나마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내심 기대를 부풀리고 있었지만.

 

 "예정보다 더 많은 훈련을 받게 될 거다. 기뻐해도 좋아."

 

 "...."

 

 역시 할머니에겐 못 당하겠다.

 

 "별로 안 기뻐보인다? 나에게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잘 모르나 보군."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좋고 말고요."

 

 후에 검술 훈련을 받으면서 느꼈던 건, 이게 고문인지 훈련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억... 허억... 후우..."

 

 "오호라."

 

 "이제... 좀... 후... 괜찮아졌나요?"

 

 "겨우 그 정도로 기고만장 하기는. 한번 더 반복해!"

 

 "네에? 이제는 무리..."

 

 "그럼 뭐, 안탑깝지만 더는 성장할 수 없겠지."

 

 "...."

 

 "움직엿!"

 

 "흐으...!"

 

 할머니의 괴롭힘을 빙자한 훈련도 오늘로 4년째다.

 매일같이 구르고, 달리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현재.

 

 "어때? 강해졌다는 건."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요."

 

 "뭐, 그게 정상이겠지. 그동안 한 거라고는 훈련뿐이었으니까."

 

 한마디로 실전 경험 제로.

 이런 내가 감히 강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젠 웬만한 수도의 기사들과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다."

 

 "수도의 기사들이요?"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델은 수도의 기사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으휴, 내 말은 자신감을 가지라는 거다."

 

 "아... 네."

 

 "아, 그런데 너 애들 똥은 치워줬냐?"

 

 "앗..."

 

 "으휴, 빨리 가서 치워라. 냄새가 진동을 한다."

 

 "넵."

 

 처음에는 늑대인 슈 한 마리만 돌봐 왔지만 이제는 숲의 모든 동물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왕!

 

 "슈!"

 

 오늘도 가장 먼저 나를 반기러 나온 건 슈였다.

 

 "잘 잤어? 밥도 다 먹었네. 잘했어."

 

 슈의 털을 한껏 쓰다듬어 주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단체로 뛰어오기 시작한다.

 

 "자, 잠깐... 으아악!"

 

 한꺼번에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동물들의 파도를 견뎌내지 못하고 그만 바닥에 깔려 넘어진다.

 

 "이녀석들아! 진정 좀 해!"

 

 -크왕!

 

 -컹컹!

 

 언제나 신나서 나를 핥고 있는 녀석들을 떼어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안 치우고 뭐하냐?"

 

 어느 틈에 다가오신 할머니는 나와 동물들을 어이없게 처다볼 뿐이었다.

 

 "이 녀석들, 나한테도 안 하는 짓을 하고 있네."

 

 할머니의 모습에서 약간의 질투심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숲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은 모두 상처를 입고 거의 다 죽어가던 녀석들이라고 한다.

 그 녀석들을 동물을 좋아하신 할머니께서 직접 치료하신 후 데려와 키우고 있던 건데....

 

 "왜 너한테만 유독 저렇게 애교를 못 부려서 안달인건지, 쯧."

 

 "하하..."

 

 "됐고, 잠깐 앉아 봐라."

 

 "네? 하지만 아직 뒷처리를..."

 

 "됐다니까. 이제 안 해도 돼."

 

 할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일단 동물들을 곁에 두고 풀숲에 편하게 앉았다.

 

 "델, 때가 되었다."

 

 "때요? 설마..."

 

 "그래, 이제 동생 만나러 가야지."

 

 나는 놀라서 할머니의 눈을 쳐다보며 다시 되물었다.

 

 "저, 정말요? 이제 만나러 가도 되는 거예요?"

 

 "그래, 드디어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때가 온 거다."

 

 "아하하..."

 

 "왜? 가기 싫냐?"

 

 "아, 아니에요. 그냥... 드디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두 눈에서는 왜인지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 곧 동생 만나야 하는데 왜 울고 그러냐. 자국 남겠네."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할머니의 손길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리고...

 

 "어여 나갈 준비나 해라. 동물들은 걱정하지 말고."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하, 할머니? 손... 손이 왜...?"

 

 "걱정하지 마라. 아프거나 쑤시진 않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해 줘야겠구나."

 

 이후 듣게 된 할머니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 아아..."

 

 나를 한껏 울게 만들어버렸다.

 

 "괜찮다, 델. 이제서야 내가 영원한 안식에 빠져들 수 있게 된 거니까."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왜 할머니가..."

 

 "델, 잘 듣거라."

 

 나는 울며 고개만 끄덕였다.

 

 "너의 강함은 내가 알려준 지식도, 검술도 아니다. 그런 거는 어느 누구나 가르침만 받는다면 얻을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것들

 이지. 다만 너에게는 아주, 아주 특별한 것이 마음속에서 흘러 넘치고 있단다. 너를 처음 강가에서 주워왔을 때부터 알 수

 있었지."

 

 그것은 할머니께서 다 죽어가던 날 구해주신 이유이기도 했다.

 

 "바로 사랑이 흘러 넘치고 있다는 거다. 너의 눈동자에선 어떤 탁함도 묻어나지 않는 순수함이 비치고 있어. 그건 다른 누군가

 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힘을 너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게 강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자신이..."

 

 "그래, 아직은 잘 모를 수밖에. 그저 강하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이 강함같겠지만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것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면 너는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다."

 

 "할머니..."

 

 "울지 말래두. 너는 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큰 아이니까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

 

 "크흡..."

 

 "이제 가거라. 동물들은 이 숲에서 잘들 살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시... 만날 수는 없겠죠..."

 

 "만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언제 어디서든 나는 늘 너와 함께일 거다. 그러니 빨리 가 봐.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몸의 윤곽이 거의 희미해져가는 할머니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눌 때에도 미소 짓고 있었다.

 이에 우는 얼굴로 작별할 수 없던 난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어 보였고.

 

 그것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하, 염병. 더는 울일 없을 줄 알았더만."

 

 숲의 변두리에서 푸른 나무들의 하늘을 바라보던 노파의 희미해진 볼에 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고.

 

 "가거라 델. 어떤 운명이 네 앞을 가로막더라도 너라면..."

 

 희미해진 그녀의 몸이 완전히 마나에 분해되고.

 그렇게 그녀는 300년간의 긴 여생을 끝마칠 수 있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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