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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4
작성일 : 22-02-26 18:05     조회 : 166     추천 : 0     분량 : 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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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행렬로 깔끔히 정리된 몇 줄의 숫자는 박성태의 몇 년이었을까.

  온갖 데이터를 끼얹자 컴퓨터는 느리게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청명은 그 자신이 성태의 매 순간이었던 지난 나날을 떠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도 않았고 같은 해를 바라보지도 않았으므로, 청명은 아무리 고민한대도 성태가 겪은 수년과 감정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계산이 돌아갔다. 청명이 함께하지 않은, 온전히 성태만이 존재하는 시간은 얼마나 외로워야 할지, 얼마나 슬퍼야만 할지. 못내 울다 지구로 돌아와 나를 껴안기 위해서 박성태는 얼마나 짙은 감정에 젖어들어야만 할까.

  청명이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나긋하게 웅얼거렸다. 나는 널 어느 정도로 사랑했어야 했던 걸까.

  오피스의 둔탁한 기류를 깨듯 경고음이 울렸다. 단 한 단어가 명백하게 빛났다. 오류. 얼룩이 묻은 안경이 비뚤어지게 얹혔다.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냉랭한 세상 속으로 돌아오면 숫자의 연쇄가 보였다. 청명은 계산이 엇나간 자리를 찾기 위해 기십 분간 알고리즘과 수식만을 지켜보았다가 문득 다른 구석이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으며 숫자 자체로 눈을 옮겼다. 중력이 갑작스레 변하고 있음은 물론, 다른 데이터들과 표기나 열조차 맞지 않았다.

  ‘… 20.3, 21.0, 12, 11, 112, 11, 21, 21, 3, 111, 1, 111, 11’

  청명은 알타이르로 떠난 비행사들 전부를 알았다. 그래서 그 안에서 누군가 장난을 쳐야만 한다면 그 과업이 누구의 몫이 될지조차 손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이 장난은 모두의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독단으로 빚어진 해프닝이 될 것이다. 청명이 다급히 담배를 찾았다가 이내 황망히 손을 떨구었다. 뚜껑조차 닫히지 않은 작은 만년필이 잡혔다. 만년필의 끝을 이로 살짝 깨물면 연기가 피는 착각이 들었다.

  “… 끊어야 하는데.”

  아연하게 한 마디를 읊조린 청명의 두 눈은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지만 그 와중에도 왼손은 부지런히 숫자를 옮겨 쓰고 있었다. 오전까지 논문 초고에 쓰일 계산을 구상하던 새하얀 에이포의 여백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숫자로 들어차버렸다. 청명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기대었다. 부드럽게 꺾이는 의자에서 스프링 튕기는 소리가 났다.

 

  태생적으로 냉소주의를 겸비하고 이 세상에 나온 청명은 미래의 최전방에 서서도 도무지 달려 나갈 생각을 않았다. 그리하여 염세는 역설적으로 그의 원동력이 되었고, 청명은 언젠가부터 지긋지긋한 지구를 나가 종일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보며 유랑할 작정으로 하루를 겨우 살았다. 평생 하나의 항성을 지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여러 별을 눈에 담고 한 움큼의 가루가 되어 진공을 떠도는 편이 나을 것만 같았다.

  “나도 데려가요, 그러면.”

  “… 뭐?”

  하얀 가운에 파묻혀 천장을 올려다보던 청명이 별안간 들려온 말에 서어하게 굴었다. 흘낏 눈을 돌리면 싸구려 디지털시계가 큼지막하게 보였다. 오후 11시 32분. 아홉 시에 랩에서 나왔고, 대강 아홉 시 반에 여기 왔으니 두 시간 정도 있었던 셈이다. 그런 계산이 오가는 사이 성태는 청명의 품에 파고들며 토라진 목소리로 웅얼거릴 뿐이었다.

  “러시아에 있을 때는 연락이라도 될 테니까 차라리 나아. 우주로 나가버리면 당연히 전화나 문자도 안 해줄 거고, 밥은 잘 먹는지, 해는 잘 뜨는지, 그런 것조차 안 알려줄 거고. 그러니까 나도 갈래요.”

  “못 하는 거야. 그것도….”

  청명은 성태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통 감이 오질 않았다. 지구를 떠나는 일이 청명에게 있어선 태생적 족쇄를 끊어내는 듯한 숭고한 의식이라고 설명한다면 이야기가 쓸데없이 장황해지고, 간단명료하게 사회적 자살이라고 서술한다면 성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감추는 선택도 도무지 못할 짓이었다. 우습게도 청명은 어느덧 성태를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어떤 비극이 기다릴 줄 알면서도 성태가 제 발로 우주로 떠나게 하는 결말만은 막고 싶었다.

  “… 알아요, 형은 늘 이성적인데 나는 늘 형 발목을 잡아요.”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한구석이 덜 말라 촉촉했다. 별 대답 없이 성태의 머리며 뺨을 쓰다듬던 청명이 문득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을 돌릴 요량이었다.

  “저녁 안 먹었지.”

  “그렇긴 한데, 지금 열두 시예요.”

  “난 점심 이후로 아무 것도 못 먹었는데.”

  “정말? 왜.”

  성태가 비척비척 일어나 다리를 갈무리하고 청명에게 기대왔다. 청명은 가당찮은 시도에 순순히 넘어가주는 성태의 성정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성태의 뺨에 한가득 네온 빛이 내려앉았다. 성태는 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원룸촌에서 갓 일 년을 살았는데, 바로 옆 건물 지하에 밤에만 영업하는 낡은 노래주점이 있다. 그 주점에서 골목 방향으로 켜둔 네온사인은 정확히 성태가 지내는 방에 깔린다. 평소에는 암막을 치지만, 가끔 희미한 조명이 필요할 때면 두 사람은 일부러 커튼을 걷고 왁자한 소음과 네온을 배경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세미나 자료 만드느라.”

  “대학원은 가면 안 되겠다.”

  성태가 킬킬 웃으며 몸을 비틀었다. 자정이라 시간이 늦었다던 성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청명 역시 성태의 뒤를 따라가 벽에 몸을 기대고 섰다. 사흘 전 마트에서 마감 세일에 부쳐진 식빵 두 봉지를 사왔는데 한 봉지도 채 뜯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부엌에 난 작은 창 너머로 추적이는 빗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장마였다. 청명은 괜히 가운을 단단히 여미고 성태에게 투덜거리듯 말했다.

  “빵 다 상하겠다. 토스트 해 줘.”

  “계란 있어요? 버터는? 마트에서 뭐 사왔는데요.”

  “버터는 모르겠고, 계란이랑 사탕은 많이 샀어. 우유도.”

  냉장고를 연 성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줄곧 성태의 행동을 구경하듯 서있던 청명이 가스레인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용유를 팬에 둘러놓고 지지부진한 불꽃을 점화했다. 축축한 공기가 잠깐 말라붙는 기분이 들었다. 성태는 안 먹고 챙겨둔 피클을 뜯고 싱크대에 단촛물을 부었다. 시큼한 식초 향이 부엌을 가득 채우자 청명이 뒤늦게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따금 방충망을 넘어 빗방울이 튀어들었다.

  “사탕은 왜 샀을까, 내가 아는 형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싱크대에 깬 계란의 균열 사이로 바스러진 껍데기 한 점이 섞여 들었다. 청명은 쇠젓가락 한 짝으로 껍데기를 들어낸 다음 손쉽게 계란을 뒤집었다. 토스터에서 빵이 튀어 오르며 팅, 하는 소리가 났다. 갑작스레 성태가 청명의 얼굴 앞으로 손을 뻗었다. 빗물이 팬으로 들어갔는지 갑자기 기름이 사방으로 터졌다. 청명이 멀뚱히 그 손을 응시하다 고개를 뒤로 빼냈다. 성태는 다 구워진 빵에 벌써 피클과 올리브를 얹고 있었다.

  “… 담배 끊느라.”

  “와. 앞으로는 무슨 낙으로 살려 그래요. 담배도, 나도 없으면.”

  “손 안 따가워?”

  “뭐 이런 거 가지고요.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줘야지.”

  “무슨 낙에 살 거냐고.”

  꾸욱, 노른자의 겉을 젓가락으로 살살 긁은 후 뒤늦게 계란을 옮겼다. 계란의 겉이 약간 그슬렸다. 성태가 거꾸로 뒤집어둔 케첩 통을 집어 들고 힘껏 짰다. 다음번에는 케첩과 버터를 사와야겠다, 청명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조그마한 접시에 반으로 가른 토스트를 올리면 일순간 하얀 열기가 어렸다. 청명은 일 리터짜리 우유팩을 냉장고에서 꺼내 뜯었다. 평소 커피를 담는 머그에 넘칠 듯 우유를 부었다. 성태는 잔을 테이블에 올리기 전 한 모금을 홀짝였다.

  “답이 정해져 있지?”

  “그렇게 느껴졌으면 미안해요.”

  “미안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학구열로 살지 않을까.”

  청명은 무릎을 가슴팍으로 당기고 팔로 턱을 괴었다. 토스트는 적당히 바삭거렸다. 테이블에 고개를 기댄 성태가 천천히 눈을 끔뻑거렸다. 부엌의 어스름한 조명과 바깥에서 들어오는 네온 빛이 얽혔다. 침대 곁에 있는 큰 창에 맺힌 물방울, 그 속으로 각각의 광원이 어지럽게 불어났다.

  올해가 지나면 청명과 성태는 모두 학위를 딴다. 만으로 삼 년이 걸렸다. 성태는 청명이 그랬던 대로 천체물리학 연구실에 들어가기로 했다. 반면 청명은 몇 연구소에 포닥 코스를 신청하는 대신 러시아로 떠날 예정이었다. 육 개월 간 훈련을 받고 나면 그 다음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향한다. 전화도, 문자도 오가지 않는 어두운 암흑 속으로. 청명은 제가 베어 문 토스트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론 우주에는 토스트도 없을 것이다. 계란을 굽느라 드러냈던 팔에 문득 한기가 어렸다.

  “… 춥다.”

  “에어컨 끌까요? 근데 그러면 더울 걸요. 비도 오고 그래서.”

  청명은 반쯤 남은 토스트를 접시에 도로 내려놓고 성태에게 파묻히듯 기댔다. 문득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아갈 너를 저주한다던 수현의 절규가 떠올랐다. 그때의 청명은 아직 너무 어려서 엄마의 말을 돌려 듣는 법조차 몰랐다. 같은 땅을 밟지 않고 같은 숨을 맡지 않으려면 가야 할 곳은 오로지 한 군데로 정해져 있었다. 청명의 일생은 그 눈높이에 맞춰 기울었다. 지구를 떠나야 했다. 사랑할 친지가 없었던 것은 부차적인 요소였다.

  허울 좋은 변명, 그러니까, 학구열이라는 것은 무얼까. 우주는 말 그대로 냉혈인데 그 속으로 도망치기 위해선 먼저 끓어야 한다. 청명은 고작 스물다섯 해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잔뜩 무뎌져 더 이상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삶에서는 너무 오래 우린 차처럼 쓴맛이 났다. 그래서 성태만은 자신처럼 끓지 않았으면 했다. 적당히 미지근하게, 지구에서 따스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굳이 차가운 우주로 떠나지 않아도 좋았다.

  “아니야, 그냥 좀 안아 줘.”

  “응?”

  청명이 성태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고개를 묻었다. 가운을 꼭 여몄는데도 살결로 추위가 스며들었다. 밖에서는 바이크가 내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모순적이게도 소서를 목전에 앞둔 여름이다.

  “따뜻하게 해주면 더 좋을 것 같고.”

  말귀를 알아들은 성태가 넌지시 웃음을 터트렸다. 테이블은 발로도 부드럽게 잘 밀렸다. 철제 표면이 접시와 함께 진동하는 소리만 조금 났다. 억수처럼 비가 내리는데도 이불은 적당히 바삭거려 기분이 좋았다. 구르듯 침대에 누우면 등 밑에 스프링이 올라오는 감촉이 팅, 하고 울렸다. 청명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성태와 마찬가지로 미소했다. 코를 맞대면 숨결을 공유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 성태야.”

  청명이 숨죽여 말을 꺼냈다. 우주에 가면, 목소리로든, 빛으로든 연락할게. 아. 너 모스 부호는 알아. 외워야 해요? 외우면 좋지. 그걸로 안부 물을 수도 있어. 형, 그런 걸 요즘 누가 써. 너라면 한 시간 만에 외워. 성태는 머리맡의 서랍 칸을 뒤지면서도 코를 찡그리며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러면 보고 싶다는 말부터 외울게요.

  속삭이듯 대화가 오간 뒤에는 밖에서 새 들어오는 빗소리와 주점의 노랫소리만이 방 안을 메웠다. 네온사인은 음울하게 빛났고, 청명은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작가의 말
 

 <알타이르 관측 일기>는 현재의 데이터로부터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점 이동이 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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