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
 1  2  3  >>
 
자유연재 > 일반/역사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과거로 돌아왔다
작가 : 시제
작품등록일 : 2021.12.29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며 기타 하나 매고 서울로 올라온 당찬 남고딩 최영소! 혼자 살다보니 밤낮이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새벽 내내 기타를 치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는데, 눈을 떠보니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채 다 생각하기도 전에 엉덩이는 흙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영소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다름아닌 … 준호 형? 영소와 같은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는 준호가 곤룡포를 입고 영소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으나 정말 이곳이 과거, 조선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소는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궁 안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다니지만 하필 영소가 하늘에서 떨어진 그 날, 궁녀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영소는 역사의 인물들과 아주 깊숙이 엮이게 되는데… 21세기 평범하디 평범한 남학생 최영소는 과연 현재로 돌아갈 수 있을까?

 
10화
작성일 : 22-02-26 04:49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776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중전 마마를 뵈옵니다."

 

 "송 상궁, 무슨 일인가."

 

 소용 정씨의 지밀 상궁이었다. 그는 어딘가 안절부절한 낯으로 빠르게 인사를 고하더니 자신의 주인에게 가 귓속말로 조심히 소식을 전했다. 심각한 표정의 송 상궁관 다르게 소용은 송 상궁을 알은 체도 않은 태 고고히 찻잔을 기울이는 듯 보였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거니 생각한 숙의와 중전이 방심하고 있을 때즘, 송 상궁의 말을 전부 들은 소용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그랑!

 

 "마마님! 괜찮으시옵니까?"

 

 "어머!!"

 

 "괜찮소, 소용?"

 

 숙의가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중전 또한 놀란 낯을 하고 소용을 보았다.

 

 여러 갈래로 조각 난 옥색의 자기에 주인의 몸이 찔리지는 않았는지 송 상궁이 다급히 살폈다. 소용은 괜찮다는 듯 손바닥을 내보였다. 소용은 어색하게 웃으며 중전을 향해 송구하다 고했다. 숙의와 중전은 걱정스럽단 듯이 소용 쪽을 주시했다. 송 상궁은 깨진 찻잔 조각을 모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송 상궁 하는 양을 보던 소용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정말 참말인게냐?"

 

 "소인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알았으니 이만 나가거라."

 

 송 상궁이 나가자마자 소용은 힘이 빠진 몸을 두 손으로 찻상을 짚어 버텨내었다. 가슴이 가쁜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숙의가 벌떡 일어나 건너편 소용의 옆에 털썩 앉아 그의 팔을 안고 부축했다. 정말로 그녀가 걱정된다기 보단 송 상궁이 전해준 놀라자빠질 그 소식이 궁금했기 때문에 보챌 요량이었다. 소용의 숨이 고르게 잦아들자 숙의는 옆에 있던 소원의 찻상에서 차를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소용은 찻잔과 숙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붙잡혀 있는 자신의 팔을 빼내었다. 이제 괜찮으니 돌아가시란 말과 함께였다. 숙의는 멋쩍음과 부끄럼에 타 괜히 발소리를 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놀라고 그러시오?"

 

 숙의는 눈을 삐뚜름하게 뜨며 소용에게 물었다. 소용은 잠시 머뭇대다가 재촉하는 숙의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어제 상참 때 전하께서...제 아버님의 내전 출입을 금하셨다 들었습니다."

 

 "뭐요? 대체 왜?"

 

 숙의의 표정도 경악으로 물들었다. 후궁의 친부가 궁궐에서 일하는 신료일 경우, 후궁전에 드나드는 것은 암암리에 윤허되어 오던 일이었다. 궁의 여인이 밖으로 나가는 데 제약이 있으나 사람을 부르는 것에는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금하다니, 그것도 딸을 낳아준 총애하는 후궁에게 말이다. 그렇다면 숙의의 아비 또한 내전에 발 들일 길이 막혔을 것이었다. 숙의의 얼굴이 소용처럼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것까진 모르겠으나, 국구께서 반대하셨음에도 강경하게 몰아붙이셨다 합니다."

 

 소용은 국구를 언급하며 슬쩍 중전의 기색을 살폈다. 아무런 말이 없던 중전은 소용의 시선을 올곶게 마주했다. 이윽고 숙의의 시선까지 자신에게 꽂히자, 중전은 찻잔을 들이키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겼다. 내전 출입금지에 관한 사항은 왕에게서 전혀 듣지 못한 일이었다. 왕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져 중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중전은 친절한 말투로 날카롭게 반응했다.

 

 "전하께서 후궁들을 긴히 살피겠다는 뜻이니 앞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게 좋겠네."

 

 "헌데 중전마마..."

 

 소용은 어떻게 말해야 좋을 지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눈은 울상인 채로, 입은 우스움을 숨기지 않아 미소를 띄운 채로 말했다.

 

 "부원군께서도 예외없이 출입하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이를 어쩌면 좋을런지요."

 

 "...그래요?"

 

 명백한 비웃음에 수치심이 찾아들었다. 중전은 애써 웃으며 답하고는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서안 아래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전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만큼 그는 꽉 주먹을 쥐었다. 모욕감을 떨쳐내려는 혹은 잊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승정원에서 나온 학선은 짙은 푸른색의 관복을 차려입었다. 그는 평소보다 반 시진(時辰, 약 한 시간)정도 일찍 입궐했다. 원래 같았다면 도승지는 편전으로 가기 전 대전에 들려 왕께서 조회 때 하명하실 일이나 알아두셔야 할 안건을 미리 보고드려야 하지만, 왕이 독대를 금한 탓에 보고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도승지의 업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니 하는 수 없이 편전에 미리 나가 전하를 일찍 뵙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이른 시각에 입궐했던 것이다.

 

 곱게 생긴 수려한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당상관치고는 젊은 나이에 속하는 데다가 오래 전 변란 때 칼을 들고 싸워본 적이 있어 그런지 다른 관료들처럼 비실대지 않는 몸은 궁궐 내 학선의 인기에 한몫을 더했다. 그의 인기를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궁녀들이었는데, 드넓은 구중궁궐 안에 제대로 된 사내는 지엄하는 지존 빼고는 보기 귀했으므로 도승지의 존재는 노소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모든 궁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도승지 나으리~ 간밤 평안 하셨사와요?"

 

 "도승지 영감, 오늘 내 연지 색이 어떻습니까?"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나으리!"

 

 오늘만 해도 그렇다. 편전으로 향하는 길 내내 학선의 발목은 마주친 궁인들에게 여러 번 잡혀 시각이 점점 지체되고 있었다. 냉정하게 뿌리치긴 커녕 항아님, 상궁님 다정하게 불러주는 도승지 영감을 어느 궁인이 쉽게 놓아주려 하겠는가?

 

 

 

 힘들게 궁인들의 무리를 벗어난 도승지가 드디어 편전께에 도착했다. 그가 한숨을 돌리며 전각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계단 아래 구석에서 젊은 생각시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이 생긴 학선이 다시 계단을 내려와 궁인들이 삼삼오오 모인 곳에 조심히 고개를 내밀었다.

 

 "저, 항아님들 안녕들하시오?"

 

 "어머, 도승지 나으리!"

 

 재미있는 소문을 주고받는 듯 심각하던 표정들에 갑자기 분홍색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제일 앞에서 괄괄한 목소리로 말하던 생각시 하나가 수줍게 볼을 붉히며 학선의 앞으로 나아갔다. 학선은 그에게 활짝 웃어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재밌게 하고 계신가 궁금해서 이리 무례를 저질렀소."

 

 "아, 아닙니다. 전혀요."

 

 사내를 만나 볼 일이 거의 없는 생각시들은 반반한 얼굴로 다정히 몇마디 물어보기만 해도 말 못 할 비밀에 가정사까지 다 털어놓을 것처럼 굴고는 했다. 학선의 앞에 있는 생각시도 그러했다. 그녀는 중궁전의 수방에 소속된 생각시로 어제 오늘 들었던 궁인들의 모든 소문을 죄다 줄줄이 읊었다. 별 쓸데없는 뜬 소문들만 가득해 지루해지려던 찰나, 도승지의 얼굴을 사색으로 만든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지난밤 우물에서 발견된 순임에 관한 소문이었다. 우물에서 밧줄로 묶여 발견된 시신은 이번이 세번째로, 사라졌던 두 궁녀와 순임 모두 똑같은 사인으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에는 조금의 살이 붙어, 단순한 궁인들의 자결이라기엔 요상한 부분이 있어 감찰부에서 대대적으로 수사를 시작할 거라는 말도 포함이었다.

 

 "...고맙소, 항아님. 먼저 가보리다."

 

 학선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남은 생각시들은 소문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도승지 나으리의 잘생김에 대해 찬사를 날리기 바빴다. 그들의 발언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몰랐으므로 가능했으리라.

 

 

 

 

 

 *

 

 

 

 

 

 영소는 왕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이틀 보았다고 익숙해진 궁궐 천장이 영소를 반겼다. 오늘도 꿈 같은 이 현실에서 깨어나기는 실패했구나. 영소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잔뜩 켰다. 움츠러들었던 몸이 늘어나며 하품이 절로 나왔다.

 

 "일찍 일어났구나."

 

 "엇, 안녕히 주무셨어요."

 

 왕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서 나는 작은 대화소리를 들은 장 내관이 문 밖에서 입시를 청했다. 왕이 허락하자, 장 내관은 어제처럼 세숫물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아직 닫히지 않은 문으로 대전 상궁이 다른 세숫물을 들고 함께 들어왔다.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영소가 물끄러미 상궁을 올려다보다 그만 그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내 놀라고 말았다.

 

 "헉! 서, 선생님?"

 

 영소의 검지 손가락이 정확히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대전 지밀상궁 김씨는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그는 시중을 들기 전 장 내관에게 들어 영소의 존재를 미리 전해 듣고 온 참이었다. 김 상궁은 12년 동안 대전에서 충실히 일했으며, 영소의 옷을 지어준 침방 큰 상궁과도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장 내관과 함께 내전에 들어와 시중을 들으라는 허락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 내관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왕의 침전에서 은밀히 모시고 있다는 도령이 있는데, 그가 가끔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말해도 못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귀에서 지워버리기만 하면 꽤 돌볼 맛이 난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설명 어디에도 연장자를 향해 함부로 삿대질을 하는 벼락맞은 인성에 관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

 

 왕은 익숙한 듯 낯설게 되물었다. 왜 김 상궁을 보고 선생님이라 칭하냐며 영문을 묻는 표정이었다. 영소는 난처한 얼굴의 김 상궁과 정확히 김 상궁에게 향해있는 자신의 검지 손가락, 해명을 바라는 익숙한 왕의 얼굴을 차례대로 보다가 먼저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손가락을 접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자, 세수합시다. 세수-."

 

 영소는 어설프게 화제를 돌렸다. 왕은 이상하게 영소를 보았으나, 이내 마지못해 세숫물을 들이라 명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 내내 영소의 시선은 계속 힐끔 힐끔 김 상궁을 향했다. 김 상궁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으나 사실 불편한 기색을 감추고 있는 것 뿐이었다. 대전에 있는 낯선 사람을 웃전 모시듯 시중 들고 있는데, 딱 봐도 한참은 어려보이는 아이가 멀뚱 멀뚱 자신을 구경하고 있으면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하, 소신 내금위장입니다."

 

 "들라."

 

 완벽히 무관복을 차려입은 우현이 왼쪽에 칼을 차고 대전 안으로 입시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왕은 장 내관과 김 상궁을 밖으로 내보냈다. 우현은 나가는 이들에게 짧게 목례를 건네고 본디 자신의 자리로 가 섰다.

 

 "김 상궁을 아느냐?"

 

 별안간 왕이 영소에게 물었다.

 

 "네?"

 

 영소가 당황하여 되물었다. 한참 말이 없길래 그저 실수로 치부하나 했더니, 그냥 넘어가는 법이 한 번도 없다. 어버버거리던 영소는 왕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진실대로 말할 용기를 내었다.

 

 "저 다니는 학교 담임 선생님이랑 방금 상궁님이랑 되게 닮으셔서요. 마치 준호 형이랑 전하처럼요."

 

 "...담임 선생님은 또 뭐지?"

 

 "그러니까 담임 선생님이란 말은, 저한테 따로 공부를 가르쳐주시는 스승님? 뭐 그런 분이란 거죠. 저만 가르치시는 건 아니고 서른 명 정도 같이 가르쳐주세요. 대학 상담도 해주시고."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눈치였지만 왕은 심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소는 어느 순간부터 왕이 자신의 말을 믿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상하다고 여기는게 아니라 정말로 제가 있던 세상과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인정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소는 약간의 감동을 받은 채로 왕에게 환히 웃어주었다. 고마움의 표시였다. 왕은 갑자기 마주친 아이의 미소에 또 한 번 쿵,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래도 대전이 곧 무너질 소리인가 보다.

 

 왕은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아이의 눈을 피했다. 영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웃으면 준호 형은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던데. 너는 웃을 때만 참 예쁘다며 준호가 욕같은 칭찬을 했던 때를 떠올린 영소가 왕의 시원찮은 반응에 괜히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어제와 확연히 달라진 두 사람의 기류에 우현은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둘을 관찰했다. 왕은 우현의 심상찮은 눈을 마주치고는 못된 짓을 하다 들켜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을 모면하기 위해 왕은 대뜸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보니 넌 글자를 하나도 모르더구나. 원래 있던 곳에선 어떤 글자가 쓰이는지는 모르나 여기 있는 동안에는 천자문이라도 떼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천자문... 한자요? 아니 세종 대왕이 발명한 한글이 있는데 왜 한자를 쓰세요?"

 

 왕은 하찮은 질문에 답을 해줘야 하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특유의 거만한 눈썹의 모양이 퍽 재미나 영소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해서 오늘은 글 선생을 붙여 줄 것이니 심심해하지 말고 잘 배우거라."

 

 "네? 잠깐만요, 공부를 하라고요?"

 

 "..."

 

 "전하! 아니 가지 말아봐요, 형!!"

 

 왕은 미련없이 방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허탈하게 닫힌 문은 매우 단호했다. 으으, 공부. 예체능을 전공하는 학교에서는 흔히 공부가 본분이라는 대한민국 학생들보다 적은 학습량을 제공했다. 그들의 목표는 예체능 능력을 연마하는 것이지 머리를 잘 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영소는 그 적디 적은 학습량을 공부할 때조차 버티지 못해 수업 시간에 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런 제가, 한글도 아니고 한자를 공부한다고? 영소는 글선생으로 누가 들어오든 드러눕고 뻐팅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방 안에 누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뭘까. 잠깐, 아까 왕이 방을 나갈 때 혼자만 나갔었나?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는 내금위장과 함께가 아니라?

 

 영소는 창문께를 향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없기를, 제발 없기를. 이내 충격적인 걸 보았다는 듯 영소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우현은 영소의 반응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서안을 들어다가 자신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을 가리키며 칼로 땅을 툭툭 쳤다.

 

 "내가 오늘은 너의 글선생이니 어서 자리에 앉거라.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고."

 

 냉혈한이 따로 없는 목소리다. 영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애처로운 송아지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서안에 앉았다. 풀이 죽은 영소의 모습을 보니 그간 느꼈던 얄미움이 한 방에 씻겨내려간다. 두꺼운 서책을 책상 위에 쾅 내려놓은 우현은 어쩐지 생기가 돌며 신이 난 것 같았다.

 

 

 

 

 

 *

 

 

 

 

 

 중전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궁궐의 안주인에게 마음대로 가지 못할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목적지가 대전인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왕이 중전의 문안을 거부한지도 연도가 달라질 만큼 오래된 일이 되었고, 중전은 자존심을 참으며 왕의 뜻을 따라 상궁에게 대신 문안을 하달하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중전의 자리는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며 아양을 떠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것은 후궁에게 맡겨두어도 충분하다. 중전은 어심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 때론 비정해보이고 무심해보이며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옥좌의 주인을 이해해야 하는 자리란 말이다. 그것은 연정이나 사랑 같은 낭만적인 단어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층 더 복잡하고 고상하며 희생적인 것이었다.

 

 중전은 현숙한 국모의 역할을 잘 해내었다. 내명부의 일을 잘 다스렸고, 외명부 대신들도 중전의 인덕을 칭송했다. 오직 왕만이 중전에게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조바심을 내지 않았던 건, 왕의 그러한 변덕까지도 어느 정도는 눈감고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중전이 더는 참지 않는 이유는 이해가 가능한 정도를 넘었기 때문이었다.

 

 

 

 주상께 뵙기를 청한다며 대전으로 보냈던 사람은 상참 시각이 다 되어 편전으로 거둥하셨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중전은 다시 대조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오실 때까지 대전에서 기다릴 것이다."

 

 "예? 마노라, 다시 생각하소서. 차라리 대조전에서 기다렸다가 상참이 끝나고 다시 뵙기를 청하심이..."

 

 "윤 상궁."

 

 중전의 크고 아름다운 눈에 은은한 분노가 서렸다.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윤 상궁은 상전의 차가운 목소리에 목이 베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죄를 청했다.

 

 "소,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감히 중전 마마께서 가시려는 길을 막다니, 소인을 내치셔도 합당하다 여길 것이옵니다."

 

 "그만. 일어나게."

 

 여전히 벌벌 떠는 윤 상궁의 팔을 잡고 중전이 그를 직접 일으켜 세웠다. 중전은 귀한 손으로 윤 상궁의 구겨진 당의를 직접 펴주었다. 그리고 아주 아름답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난 참을 만큼 참았네."

 

  그 말이 윤 상궁을 향한 것이 아님을 그 자리의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말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0 20화 2022 / 2 / 28 201 0 6519   
19 19화 2022 / 2 / 28 199 0 4347   
18 18화 2022 / 2 / 28 206 0 3694   
17 17화 2022 / 2 / 28 200 0 3760   
16 16화 2022 / 2 / 28 210 0 5079   
15 15화 2022 / 2 / 28 202 0 5584   
14 14화 2022 / 2 / 28 192 0 4306   
13 13화 2022 / 2 / 28 193 0 5143   
12 12화 2022 / 2 / 27 199 0 3060   
11 11화 2022 / 2 / 27 194 0 5256   
10 10화 2022 / 2 / 26 200 0 7761   
9 9화 2022 / 2 / 26 257 0 5204   
8 8화 2022 / 2 / 25 197 0 5501   
7 7화 2022 / 2 / 25 192 0 5134   
6 6화 2022 / 2 / 25 208 0 6405   
5 5화 2022 / 2 / 25 208 0 5512   
4 4화 2022 / 2 / 23 221 0 6371   
3 3화 2022 / 2 / 22 224 0 5655   
2 2화 2022 / 2 / 22 206 0 6064   
1 1화 2022 / 2 / 22 327 0 675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