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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증명할 나이
작가 : 계춘
작품등록일 : 2022.2.14

세명의 중년 여성의 서로 다른 삶을 적은 글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안타까움보다 해결할 것들에 대한 여자들의 압박감에 대해 썼습니다.

 
증명할 나이
작성일 : 22-02-25 21:16     조회 : 165     추천 : 0     분량 : 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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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씨, 저는 오세정입니다. 기억하죠? 기억하지 못한다면 짐승이죠. 난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지옥에서 살았습니다. 당신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요. 조금의 양심이 아직 남아있다면 나를 만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내 사이트에 당신의 만행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뻔한 수작은 하지 마세요. 당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이 회사에 다니며,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있는 내 지인들이 있으니까요. 개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시간과 장소는 다시 연락드리죠.”

 

  사내메일로 보냈으니 같은 계열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쯤은 예상이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김영철은 많이 아주 많이 두려워야했다.

 

  일단 메일을 보내고 나니 오세정은 처음의 마음과 다르게 떨었다. 과거의 사실이 생각나서가 아니었다. 김영철을 대면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해야하고, 오세정은 또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들추어야 해결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도망을 갈 수도 없었고, 본인이 아니면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견디고 또 견뎠다.

 

  오세정은 복수할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의 법 윤리가 그때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여자에게 그런 일은 치부다. 그리고 공소시효도 지난 지금은 들춰봤자 법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김영철에게 어떤 벌을 줘야 할까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그리고는 김영철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처음 메일을 보낸 후 그놈에게서 아무런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 놈도 떨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음 주 24일 목요일, 퇴근 후 7시, 성대 앞 k 커피숍, 전화번호를 메일로 보내시오. 그리고 약속장소에 오지 않을 경우 그 일을 사내 고발사이트에 올리고 당신의 부모님께 이 일을 알릴 것임.’

 

  자신만만하게 두 번 째 메일을 보내기는 하였지만, 오세정은 자신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여러 포인트에 걸 맞는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오세정은 자신의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 스크립트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24일 목요일이 되었다. 오세정은 생각이 많아져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반차를 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1시간 일찍 약속 장소에 가서 그놈을 기다렸다.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찾는 김영철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커피숍에 들어갔을 때 다행히 김영철은 보이지 않았다. 그놈이 오기 전에 생각해온 말들을 다시 연습하고, 반응에 대해 상상했다. 다행히 그 때 진단서를 받아놓은 게 있어서 그 진단서의 사진을 찍어 놨었다. 그것만 보여주면 법적인 책임은 아니더라도 본인이 한 게 아니라고 발뺌하지는 못 할 것이다.

 

  문이 열리는 풍경소리가 들렸다. 오세정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영철이 오세정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커피숍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오세정은 많이 달라졌다. 나이가 들어서 외모도 바뀌었지만, 그 사람의 분위기는 어떤 사회적 위치로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자신감이 넘치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공한 것 같은 사람, 그게 딱 오세정이었다. 그녀는 자존감이 높고, 자신의 일에 매우 의욕적인 성공한 사회인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오세정을 알아보았는지 김영철은 뚜벅뚜벅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잘 차려입은 수트가 아닌 면바지에 간단한 난방과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저, 세정아.”

 

  그놈 또한 오세정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세정이라고 호칭했다. 그런 짓을 하고도 피해자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뻔뻔함이 하늘을 찔렀다.

 

  “인사는 하지 못할 것 같네요.”

 

  오세정은 앉으라는 듯 두 눈을 아래로 내렸다.

 

  멋쩍게 서 있던 김영철은 테이블 위에 오세정의 커피 잔이 있는 것을 보고 카운터로 가서 자신의 커피를 샀다. 그리고 한 손에 커피 잔을 들고 바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오세정은 김영철을 똑바로 보고 있었지만, 김영철은 그저 자신의 구두만 보고 있었다. 김영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세정아, 과거의 일은 정말 죽을죄를 지었어. 그 땐 내가 미쳤었나봐. 진심으로 미안하다.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너의 집을 나오고 나서 정신이 들었던 것 같아.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겠지.”

 

  홍설수설을 하던 김영철은 커피 테이블 아래로 무릎을 꿇었다. 지킬 게 많은 사람들에게 나오는 행동이다. 김영철 또한 지킬 게 많은 모양이었다.

 

  디자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게 최우선이라서 심리학은 필수다. 독일 학교에서 학부와 마스터 과정에서 필수 전공이었고, 게다가 많은 아픔을 겪은 오세정은 심리학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쏟았었다. 자신의 마음을 본인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습관이 생겼고, 김영철의 행동을 조고 그 습관이 나와 버렸다. 하지만 김영철에게 동정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 날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잠시 사랑하던 사람이라는 것이 몸서리치게 짜증났다. 그 사건은 오세정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 잊지 못할 큰 사건이었다.

 

  “김영철씨, 쇼하지 말고 일어나세요. 그리고 일단 이 회사를 그만두세요. 나는 당신같은 사람과 같은 회사에서 일할 수는 없어요. 알아보니 결혼해서 아이가 있던데. 아빠가 그런 나쁜 놈 인거는 알고 있나요? 당연히 모르겠죠. 아이에게 그걸 알리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는 말이 달라지겠죠. 그 사건의 진단서와 증인도 가지고 있으니까, 잘 생각해 보고 메일 줘요.”

 

  “그리고 당신 본가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증인의 녹취록과 사진을 간단한 설명과 함께 보냈어요. 당신 같은 악마를 키운 당신의 부모도 같이 책임져야죠.”

 

  김영철은 오세정에게 사과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무릎까지 꿇으면서 사과를 호소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그렇게 큰 사건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냥 남녀사이에 있었던 싸움 정도로만 치부해 버렸을 수도 있다. 김영철은 일어서서 나가려는 오세정의 팔을 잡았다. 그냥 보내면 더 큰 댓가를 치러야 할 것 같았다. 본가에 보낸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사건이 아내와 아이에게 알려진다면 남자의 인생 자체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그리고 또 무릎을 꿇었다.

 

  “세정아, 한번만 용서해줘. 그 대신 보상은 충분히 할게. 네가 어떤 금전적인 댓가를 원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원하는 대로 다 줄게. 우리 가족에게만은 말하지 말아줘.”

 

  “김영철씨는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친 것에 대한 미안함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그저 자신의 일에만 신경 쓰는 것을 보면요. 그리고 돈은 필요 없어요. 찾아보면 알겠지만 예전의 오세정이 아니거든요.”

 

  오세정은 잡고 있던 김영철의 손을 뿌리쳤다. 오세정의 상처는 김영철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용서라고 하지만 그냥 잊어달라는 것이지 상처에 대한 후회와 반성, 미안함은 아니었다. 그런 예상은 했었다. 그 시대의 남자들에게 여자는 도구에 불과했었고, 여자들 스스로 덮는 일이 많은 시대였다.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제 몸에 손을 대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다시는 당하지 않아. 이렇게 넘어가는 것도 당신 가족의 인생이 불쌍해서 인줄 알고, 나는 할 이야기 끝났으니 약속이나 지켜요. 일주일 후에 회사 사내 사이트에서 확인해 볼 거예요.”

 

  오세정은 더 갚아주고 싶었다. 이 일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고 가족들 모두 알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써 무너지게 하는 것은 지금 오세정에게 힘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의 인정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 한 아내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 못 할 짓이다. 같은 여자로써 불쌍하기도 했다.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오세정이 독일로 유학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유학을 가더라도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그 나이에 그런 자리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철의 일은 실수였는지 아니면 본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일로 티클 하나 없는 행복함에 스크래치가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놈은 그 중압감을 늘 안고 살아야 할 거다.

 

  일주일이 지났다. 오세정은 사내 사이트로 김영철을 찾아보았다. 그녀와의 약속대로 퇴사를 하였다. 그 놈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거다. 안심이 되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떤 다른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불안했다. 그 놈에게서 당한 거에 비하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세정은 꼭 나쁜 짓을 한 것 같았다.

 

  이런 일들이 지나고 나니, 오세정의 삶은 얼룩지지 않았다. 오히려 맑은 색깔에 좀 더 짙은 색을 섞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깊고 단단한 삶을 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이 편해지니 오세정을 도와주었던 친구가 보고 싶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오세정도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작은 복수도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때는 집 전화번호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찾을지 막막했다.

 

  “현도씨, 대학 동기를 찾고 싶은데, 옛날 집 전화번호만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을까요?”

 

  “팀장님, SNS 하지 않으세요? 그걸로 찾으면 되잖아요. 그리고 대학교에 가셔서 사정얘기 하시면 아마 거기서 연락해서 연락이 팀장님께 갈 수 있도록 해 주실 거예요. 한번 알아보세요.”

 

  “여기는 그렇게 하는군요. 독일에서는 개인 정보가 너무 중요해서 잘 이용할 수 없거든요. 한번 찾아볼게요. 고마워요.”

 

  오세정은 며칠 동안 친구 찾기에 몰두했다. 카페에 등록해서 사정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고, 대학교에도 직접 찾아 갔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전화번호가 없어진 것이라고 알 수 없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친구를 찾았다. 그리고 연락을 했다.

 

  “지원아, 나 세정이야, 오세정.”

 

  “뭐? 나쁜 년. 이제? 어떻게?”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겨서 반가워해야 할지, 어떻게 할지 몰랐다. 그리고 뭐부터 물어봐야할지. 어떻게 얼굴을 볼지 걱정도 되었다. 친구에게도 그 사건은 트라우마로 남는 큰일이었다. 어떤 사건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뉴스에서 봐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사건이라는 것쯤은 짐작 할 수 있었다.

 

  지원은 역시 조소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찾아보면 네이버 검색창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제법 유명인이었다. 아무 일이 없었다면 오세정도 친구와 함께 모든 고민을 공유하며 작가로써 활동을 하고 있었을 거다. 또 다른 시간은 얻었지만, 그런 시간들을 잃어버려서 오세정은 조금 우울했다.

 

  오세정에게는 독일의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냥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는 한국에 없었다. 그래서 지원이 더욱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연락을 시작한 후, 오세정은 매일 지원에게 전화를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지원과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동안의 시간들을 보상받으려는 것 같았다. 그것이 삶의 낙이었고, 행복이었다. 엄마와는 할 수 없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다시 한국에서의 오세정의 삶은 따뜻한 얼음과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국이었다. 지원이 없는 독일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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