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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댕댕이인줄 알았는데, 늑대라니!
작가 : 블랙다이아몬드
작품등록일 : 2021.12.26

# 여주.
- 홍임수(여, 35살, H 푸드의 대리)
“동생 대신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팥쥐가 된 철벽녀.


# 남주
-지국장(남, 30살 H 푸드의 낙하산 인턴.)
“외로워서가 아니라, 누나를 사랑해서. 누나의 가족이 되고 싶은 거야!”
교통사고로 가족은 잃은 그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 그녀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순정남.

#서브 남
-최재현(남, 37살 H 푸드의 본부장)
“무서운 꼬맹이, 겁쟁이 오빠한테 시집와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기에 대세를 따르는 실속파.

#서브 녀.
김희주(여, 30살, H 푸드의 이사)

“쫓겨난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 그래서 더 짓밟고 싶어.”
열등감에 모든 걸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가식적인 콩쥐.

 
제21화-그녀와 내가 어떻게 됐을까요? 홍 대리님.
작성일 : 22-02-25 15:07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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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부장과 김 과장은 고심 끝에 자신 있게 외쳤다.

 

 “본부장님, 토마토 스파게티로 하겠습니다.”

 

 메뉴판과 눈치 게임을 하던 직원들도 통일정신을 발휘해, 이구동성으로 토마토 스파게티를 외쳤다.

 

 “저도, 박 부장님과 같은 거로.”

 

 “토마토 스파게티 먹겠습니다.”

 

 도미노처럼, 여기저기에서 토마토 파스타를 외치는 모습에 새삼 우리 부서가 이렇게 담합이 잘 되는지, 처음 알았다.

 

 한숨을 내쉰 재현 본부장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반문했다.

 

 “홍 대리도 왠지, 느낌상. 홍 대리는 크림 스파게티를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맞나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재현 본부장 때문에 나도 모르게 들숨을 들이켰다.

 

 “…….”

 

 직장생활에서 갈고닦은 눈치로, 부서 사람들은 지진 난 동공으로 나와 재현 본부장을 의심 어린 눈치로 번갈아 봤다.

 

 뒤통수 맞은 것처럼, 당황스러운 나는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섣불리 입을 여는 순간, 풍문의 쓰나미에 휩쓸려 갈 것이다.

 

 나 못지않게 이 분위기가 싫었던 지혜가 짜증 섞인 애교로 비아냥거렸다.

 

 “학교 급식도 아니고, 누가 돈 주고,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어요. 촌스럽게. 홍 대리님도, 여자고. 멋스럽지는 않아도, 촌닭은 아니까! 당연히 크림 스파게티 좋아하겠죠.”

 

 오랜만에 말 같은 말을 하는 미친 두더지 덕에 직원들은 수긍하듯 끄덕였다.

 

 “그렇지. 내 돈 내고,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지 않지. 내 아내도, 크림 스파게티만 먹더라.”

 

 미친 두더지 덕분에 위기를 탈출했지만. 뚜껑 열리게 하는 재수 없는 어휘력 때문에 코딱지만큼만 고마웠다.

 

 숨 막히는 정적에 심년감수한 나는 레스토랑의 매니저 등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은 분위기를 눈치챈 매니저가 가져온 와인을 박 부장의 와인 잔에 따라주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화이트 와인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코스 요리로 준비했습니다. 즐거운 회식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메뉴판을 치워 드리겠습니다.”

 

 미소를 머금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재현 본부장이 장난스럽게 으름장을 놓았다.

 

 “본부장으로 승진한 기념으로 한턱냅니다. 맛있게 드시고. 젊은 혈기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여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많이 도와주세요.”

 

 “오히려 저희가 재현 본부장님의 지도편달을 더 받아야죠. 그래야 우리 부서도 발전이고 회사도 번창하죠. 하하하.”

 

 박 부장은 알아서 납작 엎드렸다.

 

 “고맙습니다. 박 부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임원만 되면 인생이 탄탄대로라는 착각이라는 거, 누구보다 잘 아시죠.”

 “아~네.”

 

 “그래서 말입니다. 특히, 박 부장님과 김 과장님의 넓은 아량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건배할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박 부장과 김 과장은 자신들을 꼭 찍어 말하는 재현 본부장의 속내가 무서웠다.

 

 ‘우리 목이라도 칠 생각인가?’

 

 ‘어떡해요. 박 부장님, 저 제대로 찍혔죠.’

 

 재현 본부장의 선전포고에 식겁한 박 부장과 김 과장은 이구동성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네. 본부장님. 당연하죠. 본부장님만 믿겠습니다.”

 

 마치, 전 본부장처럼 허수아비 취급당하는 본부장이 아니라는 걸 각인시키듯.

 

 박 부장과 김 과장에게 허울뿐인 충성 맹세라도 받아냈다.

 

 쩔쩔매는 박 부장과 김 과장을 보면서 고소했지만, 마냥 좋을 수 없었다.

 

 나도 소개팅에서 거절한 전적이 있기에. 거침없는 재현 본부장이 불편하기도 했다. 다음 타켓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등줄기에 땀이 났다.

 

 멍청하게도 회식을 가장한 지뢰밭에 끌려온 모양새였다. 지뢰가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감에 휩싸인 나와 달리. 재현 본부장은 평온하게 코스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접시 위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음식을 깨작거리는 내 귓가에 재현 본부장이 속삭였다.

 

 “여자의 내숭입니까? 오늘도 보기보다 적게 드시네요.”

 

 ‘이런 젠장! 뒤끝 장렬이다!’

 

 “그날처럼, 홍 대리님의 접시에 남겨질 음식을 제 접시에 덜어주세요. 이번에도 부담 없이 잘 먹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감사하게.”

 

 “…….”

 

 당장이라도 다 뒤집어엎고 나가고 싶지만. 보는 눈도 많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색한 미소만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며시 내 음식을 덜어간 재현 본부장은 행복한 미소로 먹어 치웠다.

 

 “맛있네요. 많이 드세요. 좀 더 시킬까요? 박 부장님의 입맛에 맞으세요?”

 

 재현 본부장의 부름에 박 부장은 씹던 파스타 면발을 삼키며, 아부를 떨었다.

 

 “아~주 끝내줍니다. 먹어 본 스파게티 중에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듭니다. 맛있습니다.”

 

 박 과장의 아부가 흡족하듯 재현 본부장은 썰어둔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는다.

 

 시력을 과시하듯, 내 음식을 덜어간 재현 본부장의 행동을 포착한 미친 두더지가 자신의 음식을 건넸다.

 

 “제 접시에 놓여 있는 음식은 손도 안 댔어요. 본부장님 드세요.”

 

 “아. 네. 잘 먹겠습니다. 지혜 씨.”

 

 재현 본부장의 인사치레 말에 신난 지혜가 들뜬 목소리로 신나게 말했다.

 

 “저는 다이어트 중이라서. 본부장님은 살이 안 찌는 복 받은 체질이신가 봐요. 그렇게 드셔도, 옷 핏이 너무 좋아요. 비결 있으시면, 말씀 좀 해주세요.”

 

 민망하고 짜증이 난 나와 달리.

 

 재현 본부장은 씩 웃으며, 미친 두더지가 건네 음식을 넙죽 받아먹었다.

 

 “지혜가 준 음식이라, 더 맛있네요. 고마워요. 제의 옷 핏감은 모르겠고. 지혜 씨 말솜씨가 참~기분 좋게 만드네요.”

 

 내 귀에는 고맙다는 말이, 비아냥처럼 들이는 이유가 뭘까?

 

 미친 두더지에게 이렇게까지 덤덤하게 응대하는 남자들 없었는데.

 

 ‘이 남자도 강적이다.’

 

 박 부장과 김 과장까지 쌈 싸 먹는 본부장의 속을 알 수가 없어 더 섬뜩했다.

 

 그래서 더 엮기가 싫었다.

 

 박 부장 라인과 본부장의 라인 사이에 굳이 내가 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가 무슨 덕을 본다고. 이미 물건너간 승진이고. 나 또한 굳이 승진할 마음도 없었다.

 

 그저 월급 받은 만큼 적당히 일하고 정년퇴직하고 싶다. 내가 회사에 목숨 건다고, 회사에서 열녀비를 세워줄 것도 아닌데.

 

 어차피 적당히 날 쓰고 버릴 회사라면,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했다.

 

 ‘평생직장도 아닌데. 잘난 니들이나 사내 정치하세요. 제발 나 끌어들이지 말고. 생각만으로 체기가 돈다.’

 

 갈수록 짜증스러운 건, 체할 것 같은 회식 자리에서 지국장의 눈웃음이 아른거린다는 사실이다.

 

 점심시간도 끝나겠다. 이젠 슬슬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는데.

 

 “본부장님, 이 레스토랑을 되게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추억의 장소? 맞으시죠? 본부장님.”

 

 재현 본부장에게 말 폭탄을 던진 미친 두더지 지혜 때문에 우리 부서 사람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언짢게 붙잡혔다.

 

 

 쓸데없는 질문하는 미친 두더지에게 ‘한 대 맞고 싶냐’라는 눈빛으로 일제히 쳐다봤다.

 

 재현 본부장과 눈빛 교환에만 사로잡힌 미친 두더지의 혈안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추억이라? 특별한 장소는 맞네요.”

 

 우리는 미친 두더지의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재현 본부장에 훈화 말씀이 제발 빨리 끝나길 다 같이 기도했다.

 

 둘만의 대화 속으로 몰아간 미친 두더지를 화형 시키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부서 사람은 말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재현 본부장은 턱을 괸 채로, 세상에서 가장 사냥한 상사처럼, 나긋하게 대답했다.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사람을 여기서 우연히, 운명처럼 만났죠.”

 

 재현 본부장의 말에 사레 거린 내가 마시던 물을 뿜어냈다.

 

 “캑캑…….”

 

 더럽다고 타박하는 미친 두더지를 등진 채, 재현 본부장님은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을 건넸다.

 

 “괜찮아요? 이걸로 닦아요. 물도 체해요. 천천히 마시지.”

 

 부담스러운 재현 본부장의 손길을 손사래를 치며 그의 손수건을 돌려줬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이 손수건으로 빨리 옷이나 닦아요. 홍 대리님.”

 

 재현 본부장과 손수건 돌리기 놀이로 실랑이 벌이기 싫었던 나는 재빨리 손에 잡힌 냅킨으로 원천 봉쇄했다.

 

 “이거로 됐습니다. 본부장님. 냅킨으로 닦을게요. 괜찮습니다.”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는 재현 본부장이 못마땅한 미친 두더지가 화제를 전화했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궁금해요?”

 

 미친 두더지의 닦달에. 본부장은 야릇한 미소로 나를 쳐다봤다.

 

 ‘제발, 설마! 말하지 마. 말할 필요가 없잖아. 본부장님이 차인 게 아니라! 날 차다고 생각하시라고요.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줘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재현 본부장에게 눈짓을 보내며 그의 입술만 쳐다봤다.

 

 손에 들린 와인 잔을 지그시 바라보던 재현 본부장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기어이, 쏟아냈다.

 

 “아~여기서 소개팅했습니다. 아차! 내 나이가 있으니까. 선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내 첫사랑 아니,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를….”

 

 재현 본부장은 말을 삼키고, 곁눈질로 내 반응을 살피면서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 레스토랑에서…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이 여자가, 내 여자다.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기타 등등이 생각나는 그녀를 만났죠.”

 

 미친 두더지 지혜를 원망의 눈초리로 째려보던 직원들의 눈빛들이 일제히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재현 본부장을 쳐다봤다.

 

 호기심을 참다못한 여직원이 재현 본부장을 다그쳤다.

 

 “그래서요? 본부장님, 어떻게 됐어요? 그날부터 1일? 인가요.”

 

 직원들의 관심을 즐기던 재현 본부장은 그윽한 눈빛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그녀와 내가 어떻게 됐을까요? 홍 대리님.”

 

 재현 본부장의 도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간신히 무표정으로 갈무리했다.

 

 “저야 모르죠. 본부장님.”

 

 재현 본부장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뻔한 내 답을 예상했다는 듯, 자신의 시야를 걷어갔다.

 

 “하긴. 상사의 연애사가 뭐가, 궁금하겠어요. TMI이네요. 미안해요.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미친 두더지 지혜가 비음 소리를 한껏 뽐내며, 일어서는 재현 본부장을 붙잡았다.

 

 “본부장님의 로맨스가 너~무 궁금해요. 그렇죠. 김 과장님.”

 

 짜고 치는 고스톱판에 바람잡이처럼 김 과장이 경박스럽게 떠들었다.

 

 “우리 본부장님이 이렇게 로맨틱하신 줄 몰라뵙습니다! 이렇게 잘생기고 능력 있는 본부장님이시니까. 어떤 여자가 마다하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일과 사랑을 다 성취하신, 우리의 로또! 본부장님. 존경스럽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김 과장의 아부에 재현 본부장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김 과장님 말처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녀에게 보기 좋게, 차였습니다.”

 

 김 과장은 ‘이건 아닌데’라는 얼굴로 박 부장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김 과장에 아부의 스승인 박 부장은 나라고 별수 있겠냐는 듯, 시선을 회피했다.

 

 미친 두더지 지혜가 어색해진 공기를 환기하려고, 날 산 제물로 바쳤다.

 

 “어~본부장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그 여자는 잊어버리세요. 이 레스토랑이 터가 안 좋은가 봐요. 우리 홍 대리님도, 여기서 소개팅하셨거든요. 근데, 우리 홍 대리님도 차였다고, 그랬죠?”

 

 여기 더 있다간 먹다 남은 스파게티로 미친 두더지의 뺨을 후려칠 것 같아, 화장실로 도망가려는 순간.

 

 동공의 커진 재현 본부장이 정색하며 반문했다.

 

 “홍 대리님이 거절하신 거,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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