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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의 편지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4

받는 이, 받는 시간을 쓰면 과거든 미래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전달되는 우표를 갖게 된 소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1부 - 제 9화. 바뀌어버린 과거 (3)
작성일 : 22-02-25 00:47     조회 : 193     추천 : 1     분량 : 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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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영은 금빛우표가 마치 독극물인양 검지와 엄지 끝자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어느 순간부터 우표가 빛나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었다. 빛이 완전히 차단 된 8평짜리 작은 방. 그곳에 소영과 우표 단 둘이서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우표는 그저 네모난 형태만 간신히 유지했다.

 

 손끝 감각으로 방을 더듬었다. 수없이도 꺼내본 우표 수집 앨범이 소영의 다른 쪽 검지에 닿았다. 방에는 이제 앨범이 내는 부스럭 소리만이 귓바퀴에 맴돌았다. 평소엔 느끼지 못한 사소한 소리가 지금은 어찌나 큰지 몰랐다.

 

 금빛우표를 앨범 맨 뒤에 넣고 나서야 소영은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꿈일 뿐이야.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현서랑 둘이서 살아가면 돼. 남편은 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소영은 화장실로 가 거의 하루 만에 양치를 했다. 눈물로 입 안의 모든 수분을 빼낸 기분이 가시질 않아 입을 헹궈야겠다는 생각 먼저 들었다. 날카로운 칫솔로 몸의 구석구석을 전부 씻어내고 싶었다.

 

 화장실 불을 켜고 고개를 들어보니 전쟁을 치른 듯 몰골이 처참한 여자가 거울에 서 있었다. 하루 종일 울어 충혈 되고 부은 눈과 감지 않아 기름진 머리. 갈라진 입술, 하얗게 일어난 얼굴.

 

 소영은 입을 헹구고 최대한 찬물을 틀어 고양이세수를 했다. 물이 너무 차가운 나머지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세수를 멈추지 않았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거울을 봤다. 아까와 똑같은 여자가 거기에서 소영을 보고 있었다.

 

 “진짜 과거가 바뀐 거야?”

 

 소영은 혼잣말을 했다. 어쩌면 거울 속 자신에게 물어본 것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 모두 정답을 알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스탠드 조명을 켰다. 노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자 무리한 허리에서 소리를 냈다. 눈을 감아보지만 감은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어둠이 편안했다. 눈을 감자 공허한 우주 속에 홀로 던져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엔 아무런 고통도, 죄악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섭리대로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소영이 완전한 우주를 만들기 위해 상체를 일으켜 스탠드 조명을 껐다. 유일했던 빛이 사라지자 갑자기 아기가 옹알대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은 황급히 조명을 다시 켰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세상에 소영 혼자만 남은 기분이었다. 소영은 침대에 앉은 채로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현서야……”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를 공허.

 

 현서가 엄마 옆에 누워 아직 통제하지 못하는 팔과 다리를 꼼지락댔다. 마치 천장의 모빌이라도 되는 듯 통통한 손가락을 보여 까르르 웃어댔다. 소영은 현서의 작은 코를 툭 건드렸다.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소영은 현서를 안아 모유를 먹였다. 현서는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 엄마의 따듯한 체온을 느꼈다. 이내 배가 부른지 엄마의 가슴에서 입을 떼고 옹알거렸다. 소영이 아이의 볼록 나온 입술을 툭 건드리자 눈을 꾹 감으며 커다란 하품을 했다.

 

 그렇게 아기를 품에 안고, 소영은 새근새근 잠든 천사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현서의 등을 규칙적으로 툭툭 치면서 몸을 하늘하늘 흔들자 작은 트림을 하곤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현서가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더니 무언가를 가리켰다. 장소는 순식간에 안개 낀 밤거리로 변했다. 방울소리가 달팽이관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현서가 가리킨 건 무중력처럼 허공에 떠 있는 금빛우표였다. 8장 묶음의 우표는 거기에 떠서 모녀를 노려봤다. 현서가 손을 뻗어 우표를 잡자 소영이 손을 쓰기도 전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현서야…… 현서야!!!”

 

 소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공중에 떠 있었다. 안개가 바닥도 완전히 덮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만 가는 방울소리 때문에 소영을 귀를 막아보지만 그 소리는 귓속에서 발생한 듯 뇌를 갈기갈기 찢었다. 끔찍한 고통에 소영이 비명을 질렀다.

 

 

 

 “현서야!”

 

 소영이 꿈에서 간신히 헤어 나왔다. 두 손에 묻고 있던 고개를 화들짝 들어 올리자 어두운 방이 눈앞에 드러났다.

 

 방울소리는 침대 위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 벨소리로 바뀌었다.

 

 발신자 ‘동생’

 

 저쪽에서 전화를 끊으면서 벨소리가 멎었다. 보니 몇 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잔뜩 찍혀 있었다. 소영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소영이 누나 맞으시죠?

 

 “네. 누구세요?”

 

 — 저 아까 봤던 재영이 친구에요. 지금 빨리 의료원으로 오세요.

 

 “어? 병원은 왜……”

 

 수화기 저편의 남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 듯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 재영이가 길에서 칼을 맞았어요. 지금 수술실 들어간 지 좀 됐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겼다.

 

 . . . . . .

 

 도시에서 가장 큰 의료원은 마치 어둠을 잠식한 듯 고요했다. 택시에서 내린 소영은 잠시 자신이 잘못 찾아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길에서 칼에 맞다니? 하지만 이미 하루 새 너무 많은 사건을 겪은 소영은 더 이상 못 믿을 것도 없었다.

 

 멀리서 앰뷸런스 한 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오자 그제야 소영도 정신이 들었다. 구겨진 신발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외투가 제대로 걸쳐지지 않아 어깨에서 계속 흘러내렸다.

 

 수술실 앞에는 옷이 전부 피로 물든 석우가 앉아 있었다. 소영은 그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건 남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머리카락부터 신발까지 전부 피로 흥건했다. 그 피는 아마 재영이 흘린 피일 것이다. 재영이 어떤 상황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누나!”

 

 석우도 소영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우의 다리가 눈에 띄게 덜덜 떨렸다.

 

 “어떻게 된 거야. 어?”

 

 소영은 석우의 팔을 붙잡고 간신히 쓰러지려는 하체를 고정했다.

 

 “모르겠어요. 누나 집에 데려다주고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석우는 그제야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마저도 시원하게 쏟아지는 게 아닌 꽉 막힌 수도꼭지처럼 꺽꺽댔다. 우는 것조차 괴로워보였다.

 

 소영도 그 모습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석우가 앉아 있던 의자에 간신히 앉아서 손에 묻은, 석우의 옷에서 묻어나온 재영의 피를 보았다.

 

 “나 때문이야. 내가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석우도 소영의 옆에 앉았다.

 

 “누나 잘못이 아니에요. 사고였어요. 자책하지 마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안 그랬을 텐데.”

 

 그 순간 소영의 머리에 금빛 우표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소영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자 석우가 두 손에 파묻었던 머리를 들어올렸다. 소영은 온몸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거야.”

 

 “네?”

 

 “내가 돌려놓을 수 있어.”

 

 소영은 뛰어서 병원을 나갔다. 석우가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소영은 멈출 수 없었다.

 

 ‘재영이까지 잃을 순 없어. 모두 나 때문이야. 현서도, 재영이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길가 편의점 앞에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소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전거를 타고 세차게 페달을 굴렀다. 이제 막 편의점에서 나온 자전거 주인이 소리를 질렀지만 텅 빈 밤하늘로 울려 퍼질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영은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안으로 돌아와 스탠드를 켰다. 그 옆에 있는 책꽂이에 있는 앨범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지체 없이 앨범을 책꽂이에서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자 우표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희미하게 방울소리도 들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소영은 눈을 꾹 감고 우표를 꺼냈다. 그리고 한 장을 뜯어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머지 우표는 도로 넣어놓았다. 우표에 미처 마르지 않은 재영의 피가 희미하게 묻었다.

 

 곧장 책상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을 줘도 글씨는 맥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멈출 순 없었다.

 

 

 

 ‘많이 혼란스러운 거 알아.

 나도 하루 종일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통스러웠어.

 그러나 절대로.

 이 우표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특히 재영이에게.

 재영이는 너의 얘기를 듣고

 힘들어하는 너를 위해 집에 데려다줬다가

 돌아가는 길에 괴한의 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어

 누구보다 힘들다는 것도 다 알아

 우표는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하자.

 현서도 재영이도 둘 다 잃을 순 없어.

 조금씩 힘내서 반드시 현서를 찾아 낼 거니까.

 절대 좌절하지 말자.

 이 말도 안 되는 미친 일을 원래대로 되돌릴 거야.

 차소영.’

 

 

 

 소영은 편지를 접어 편지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오늘 날짜와 오후 시간을 적었다.

 

 소영 자신의 집 주소를 적고, 받는 이…… ‘차소영.’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금빛우표를 집어들었다. 동시에 방울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왔지만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방울소리가 다시 사라졌다.

 

 ‘내가 미친 거야……’

 

 이 미친 짓을 한 번 더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우표를 붙이자 우표에서부터 시작된 금색 빛이 편지봉투를 서서히 잠식했다. 마치 물에 젖어가는 것처럼 금빛이 퍼지더니 편지봉투가 완전히 빛에 잡아먹혔을 때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잠시 넋을 놨던 소영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재영의 단축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신호대기음이 천천히 들려오고, 한참을 기다려도 전화가 걸리지 않자 소영은 서서히 통제력을 잃어갔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달칵—

 

 —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잠에서 들 깬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영아? 재영이지?”

 

 — 왜?

 

 “너 정말 재영이 맞아? 괜찮아?”

 

 — 왜 이래. 잘 자고 있었는데……

 

 재영은 잠에 취해 말끝을 흐렸다.

 

 — 누나 울어?

 

 재영이 묻자 소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 이 누나 또 무슨 꿈을 꾼 거야……

 

 “나 너무 무서웠어.”

 

 — 빨리 자! 오밤중에 정말.

 

 “응. 꿈 꿨나봐. 미안해 깨워서.”

 

 — 아유. 따듯한 차라도 마시고 자. 악몽에 좋대.

 

 한숨을 푹 쉰 재영은 전화를 끊었다. 소영은 잠시 통화기록을 보며 정말 재영과 통화한 게 맞나 확인했다. 분명 재영의 목소리가 맞았다.

 

 소영은 고개를 푹 숙여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한 번 더 과거가 바뀌었다.

 

 . . . . . .

 

 다음 날 아침.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소영은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가시적으로 크게 바뀐 건 없었다. 현서가 사라진 어제, 재영이 다시 살아난 어젯밤도 그랬다. 그 누구도 바뀐 세상을 알아채지 못했다.

 

 잡상인 노인이 있던 다리 진입로에 도착한 소영은 잠시 거기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산한 밤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트럭은 없었다.

 

 소영의 발에 뭔가가 걸리면서 소리가 났다. 내려다보니 방울이었다. 소영은 잠시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조심스럽게 방울을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그 방울소리와 달랐다.

 

 “그거 내 껀데……”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다섯 살 쯤 된 여자아이가 소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옆에는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언니한테 주세요, 해야지?”

 

 “주세요……”

 

 얼굴이 벌게진 아이는 소영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웅얼거렸다. 소영은 허리를 숙여 아이의 손에 방울을 쥐어줬다.

 

 “미안.”

 

 아이의 손바닥 위에 방울이 떨어지자 짤랑,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저 혹시.”

 

 “네?”

 

 소영이 돌아가려는 여자와 아이를 불러 세웠다. 여자는 돌아보며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여기 자주 지나다니세요?”

 

 “자주는 아닌데, 왜요?”

 

 “이 자리에서 잡화 파는 트럭 본 적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물건 파는데.”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모르겠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 같아요.”

 

 “네……”

 

 어쩌면 그 트럭은 꿈에서 본 것일까? 하지만 우표는 실재했고 노인이 말한 효력도 있었다.

 

 “아이가 예뻐요.”

 

 소영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아이는 수줍은지 엄마의 다리 뒤로 숨었다.

 

 “고마워요.”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다리를 건넜다. 안개로 가려졌던 그 다리 너머엔 커다란 공원이 있었다. 여기에 이렇게 넓은 공원이 있었나, 소영은 기억 속을 더듬었지만 자문에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리를 건너 공원으로 넘어 온 소영은 가장 먼저 보이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부모와 연을 날리는 아이,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 캐치볼을 하는 부자, 꽃을 관찰하는 모녀. 생기가 없는 눈으로 소영은 평화로운 공원의 풍경을 바라봤다.

 

 검정색 중절모를 쓴 노인이 천천히 걸어와 소영의 옆에 앉았다. 햇빛이 닿아 소영이 피했던 자리였다. 노인은 햇빛을 담기라도 하려는 듯 모자를 벗어 뒤집어서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신문을 벤치에 두고 슬쩍 눈을 감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햇빛을 만끽하는 듯 보였다.

 

 소영은 저도 모르게 신문으로 눈길이 갔다. 오늘 자 지역신문이었다.

 

 <헤드라인 : 강도에 칼 맞은 20대 청년 사망>

 

 “할아버지, 이거 신문 좀 봐도 돼요?”

 

 소영이 묻자 노인은 한 쪽 눈만 떠서 소영을 힐끗 봤다.

 

 “그래요.”

 

 소영은 신문을 집어 들어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어젯밤 자정 쯤 한 청년이 강도가 든 슈퍼마켓 앞을 지나다 강도에게 칼에 수십 번 찔려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수술 중에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속 사망한 청년의 사진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재영이 대신 다른 사람이 죽은 거야……’

 

 

 

 곧장 집으로 돌아온 소영은 귀걸이 보관함에 있는 귀걸이를 전부 꺼내 쏟아버리고 금빛우표를 그 안에 넣었다.

 

 “전부 다 이것 때문이야.”

 

 소영은 보관함을 옆구리에 끼고 다시 집을 나갔다.

 

 

 

 뒷산에 오른 소영은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등산로에서 벗어나 외진 곳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음산한 분위기가 흘렀다. 길이 잘 닦이지 않아 몇 번이고 발목을 삐끗했지만 소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솔잎이 소영의 얼굴을 찔렀다.

 

 “모든 게 바뀌었다면. 나도 바뀌어 주겠어.”

 

 소영은 평평한 곳에 멈춰 서서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가지에 손이 찔렸지만 소영은 되려 가지를 더 세게 쥐었다.

 

 어느 정도 깊이의 땅이 파지자 소영은 귀걸이 보관함을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흙을 덮고 그 위로 올라가 마구 짓밟았다. 삐었던 발목이 시립도록 욱씬거렸지만 땅이 완전히 단단해질 때까지 소영은 계속 발을 굴렀다.

 

 그러다 왈칵 눈물을 쏟았다. 소영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발과 무릎, 손에 흙이 잔뜩 묻어 지저분했다.

 

 “현서야…… 내가 꼭 다시 찾을 거야.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

 

 소영은 현서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처럼 옆에 있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웃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서는 소영이 아픈 배로 낳은 하나 뿐인 딸이었다. 분명 어딘가에 현서가 있었다.

 

 ‘알 수 있어. 현서는 없어지지 않았어.’

 

 소영은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렸다. 현서가 뱃속에 있을 때 발길질을 했던 그 감각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소영의 배는 따듯했다. 현서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발밑에서 희미하게 방울소리가 울렸다. 소영은 가지와 잎으로 땅을 팠던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 그리고 다시 사람의 흔적이 선명한 등산로로 나와 하산했다. 발목이 시려 가파른 내리막을 쉽게 내려갈 순 없었지만 그동안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영은 화장대에 앉아 진하게 화장을 했다. 핸드폰과 배터리를 분리해 쓰레기통에 넣었다. 여분의 편지와 편지지도 전부 찢어 버렸다. 항상 편하게 입고 다녔던 후리한 옷을 벗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입술을 진하게 칠했다.

 

 거울에 비친 소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더 이상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과거가 바뀐 것처럼. 이제 소영도 바뀌어야 했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일 순 없었다.

 

 바뀐 지금을 살아야 했다. 그래야 현서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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