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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증명할 나이
작가 : 계춘
작품등록일 : 2022.2.14

세명의 중년 여성의 서로 다른 삶을 적은 글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안타까움보다 해결할 것들에 대한 여자들의 압박감에 대해 썼습니다.

 
증명할 나이
작성일 : 22-02-23 22:52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6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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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정은 일어날 수도 없었다. 두 다리 사이가 뻐근했다. 그 보다 머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하거나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감정인지 모르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분조차하기 힘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김영철이 다녀갔고, 맞았고,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 그날 밤을 보내고 많은 생각에 잠긴 오세정은 아빠를 찾았다. 아빠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자책감으로 아빠의 표정은 어두웠다. 침대 밑에서...

 

  아빠는 오세정의 상황에 따라 표정이 바뀌었다. 오세정이 기쁠 때는 아빠도 행복해 했고, 슬플 때는 아빠의 얼굴도 어두웠다. 김영철과 만나는 날을 기억해 보면 아빠의 얼굴이 어두웠던 것 같다. 그 때 오세정은 행복했었다. 아빠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그 때는 몰랐었다.

 

  “아빠, 이제 어떡하지? 나 죽을까? 힘들게 공부시킨 엄마에게 말 할 수는 없잖아.”

 

  아빠는 무표정이었다. 어떤 정답도 줄 수 없다는 듯 고개만 떨구었다. 비록 살아계시는 분은 아니라도 부모에게 죽는다는 말을 하는 자식은 불효자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냥 말하고 싶었다.

 

  머리를 들고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걸어갔다.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색깔 있는 편지 봉투를 보았다. 들어 올리는 순간 오세정은 두 팔은 떨렸다. 김영철이 보낸 러브레터였다. 여행을 다녀오고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편지함에 미리 넣어 놓은 것 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인생은 코미디이다.

 

  오세정은 며칠 동안 어디에도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고, 나갔다가 김영철을 만날까봐 문의 고리를 풀 용기도 나지 않았다. 계속 김영철이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3일이 지나고 초인종이 울렸다. 오세정은 무서웠다. 그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정아, 집에 있어? 나야. 문 열어봐.”

 

  오세정이 며칠 동안 학교에 오지 않자, 의아하게 생각한 친구는 무작정 오세정의 집을 찾아왔다. 실기 수업 때문에 교수님의 전달사항도 많아서 오세정을 만나야 했다.

 

  그때의 오세정 또한 도움이 필요했다. 누구든 옆에 있어주어야 했다. 오세정도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일을 저지를 것 같아 자신을 찾아 온 친구가 반가웠다. 그 때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어서 입술이 터지고 손 끝이 갈라졌다.

 

  오세정의 상태를 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나쁜 일이 세정에게 일어났음을 직감했고, 바로 다시 나가 약국으로 갔다. 오세정의 상태 설명을 하고 적당한 약을 구입했다. 집으로 다시 돌아 온 친구는 오세정의 눈을 보지 않았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약을 발라주고 싱크대로 가서 쌀죽을 끓였다.

 

  죽을 먹이려고 오세정 곁으로 갔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눈 주위가 파랗게 부어올랐고, 팔 여기저기에 타박상이 있었다. 집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오세정의 팬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집작을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세정아, 난 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 하지만 지금 너의 상황은 남겨 두어야 할 것 같아. 범인이 누구든, 그 사람을 잡든, 그건 너의 판단이지만, 지금 남겨두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줬으면 좋겠어. 그럴 수 있지?”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작품을 할지 몰라서 언제나 그 상황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그 날도 친구에게 카메라가 있었고, 그 카메라로 오세정의 흔적들을 찍었다. 그리고 날짜도 남겨 두었다. 아주 영리한 처사였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런 증거조차 남지 않았을 거다.

 

  눈물이 흘렀다. 괴롭고, 힘들고, 도움이 필요하고, 말하고 싶고,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오세정의 주위에는 이런 상황을 정리해 줄 힘이 있는 어른은 없었다. 그 때는 그런 힘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오세정의 곁에는 힘없는 엄마만이 있을 뿐, 엄마도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세정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말하고 싶지 않을 거야. 하지만 어떤 말이라도 믿을 거니까.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꼭 얘기해줘. 그리고 사라지지 말고. 그냥 연락만 하게 해줘.”

 

  저녁을 준비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기 전, 집의 상황도 사진 찍었다. 청소를 끝내고, 오세정의 옷을 갈아입히고, 친구는 집으로 갔다. 오세정은 약을 바르고 밥을 먹었다. 친구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김영철을 만날 수도 있기에 아직은 두려웠다. 그래서 일단 휴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집으로 가는 것은 엄마에게 짐을 주는 것 같아서 가지 않기로 했다.

 

  경찰서는 가지 않았다. 스스로 이겨내 볼 생각이었다. 학교에 소문이 나면 오세정도 나쁜 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해봤자 김영철은 집행유예다. 한국에서는 이런 사건이 잇을 때 여자만 피해자이고 행실이 부정한 사람이 된다.

 

  “엄마, 나 학교 휴학하려고.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작품준비가 많아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오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그러기로 했어요. 나 이제 어른이니까 내 의견 존중해 줘요.”

 

  오세정은 일단 다른 집을 구했다. 그리고 공부하던 미술학원 원장님께 전화를 해서 사정얘기를 했다. 잠깐 학교를 그만두고 학비를 벌려고 한다고 했다. 학원 근처에 집을 구하고,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불과 일주일에 이 모든 것이 변했다. 그리고 집 전화번호도 바꾸고, 삐삐번호도 바꿨다. 미안한 일이지만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 일과 관계된 모든 일은 잊고 싶었다.

 

  “세정아, 나는 몇 달 뒤에 국전이 있어서 그거 심사 준비를 해야 해. 입시 준비하는 학생들 맞아서 봐줄 수 있지? 입시는 나보다 홍대에 들어간 네가 더 잘 하잖아. 그렇다고 너한테 전적으로 맞기는 건 아니야.”

 

  학생들 입시 준비하는 틈틈이 오세정도 작품 활동을 했다. 그래야 마음도 안정되고 그냥 시간을 버리는 것 같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겉으로는 평온한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늘 성실하고 착한 오세정을 안타깝게 생각한 원장님이 다가왔다.

 

  “세정아, 이제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말해 줄 수 있니? 나도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원장님, 저는 여자 인생에서 제일 안 좋은 경험을 했어요. 그것도 너무 사랑하는 사람한테요. 그래서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엄마가 생각나서 그럴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그리고.....”

 

  오세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두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원장님은 오세정에게 독일 유학을 권유했다. 실력이 좋아서 지금까지의 포트폴리오만 있어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학교에 충분히 합격을 할 수 있고, 독일로 가면 자동차 디자인 학부에서 공짜로 공부도 하고, 학업비자로 아르바이트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오세정은 망설이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유학을 간다고 했고, 국비 지원이라서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짓말했다.

 

  원장님의 언니가 독일에 살고 있어서 그 쪽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홈스테이도 저렴하게 알아봐 주셨다. 원장님의 도움으로 지원서를 내고, 비자를 받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준비하는 기간도 반년은 걸렸다.

 

  “아빠, 나 유학가기로 한 거 알지? 엄마에게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 걱정하실까봐. 그리고 더 잘 되면 되니까. 아빠도 응원해 줄 거지?”

 

  아빠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잘 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응원을 해 주었다. 그건 아빠만의 방식이었다.

 

  두 계절이 지나고, 오세정은 독일로 떠났다. 그리고 5년 동안 힘든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홈스테이 하는 곳의 주인 분들이 너무도 가족처럼 대해 주셨서 가족의 그리움이 조금은 가실 수 있었다.

 

  한국에 올 비행기 가격도 만만치 않았고, 다짐하고 있는 오세정의 삶이 깨질까봐 두려웠다. 오세정은 꼭 성공하기로 마음먹었다. 독일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과 교류를 할 뿐 어떤 친구도 만들지 않았다. 한국은 좁은 곳이라서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서웠다.

 

  학부 과정을 마치고, 마스터라는 석박사 통합 과정을 끝냈다. 논문은 통과 된 상태였고, 미술학도의 특성상 졸전은 꼭 해야 했다.

 

  졸업 작품전이 다가왔다. 그 과에는 한국 학생을 포함해서 아시아인은 오직 오세정 한 명 뿐이었다. PPT를 하고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서 많은 교수님들과 자동차회사 간부들에게 시연도 하였다. 백인들 사이에서 아시안이 있어서 눈에 띄기도 했지만, 오세정의 실력은 다른 졸업생들보다 훌륭했다.

 

  그래서 담당 교수님의 추천으로 독일에서 알아주는 자동차 회사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신입직원이었지만, 독일 회사에서는 상하 관계가 어렵지 않았다. 직급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름을 불렀고, 자기가 맡은 부분만 하면 딱히 직원사이에서 힘들 일은 없었다.

 

  2000년 초반 한국에서 자동차 디자인은 생소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자동차는 늘어나고 있기는 했지만, 필수품이 아니었기에 그냥 타기만 하면 되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돈 많은 사람들 역시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마다 인컴이 늘어나고, 나라는 IMF를 극복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그냥 차가 아닌 자신의 부와 가치를 내세울 도구를 원했다. 그래서 그저 사람의 편리를 위한 보기 좋은 도구에 많은 돈을 쓰기 시작했다.

 

  딱 그 시기였다.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의 성능과 가성비에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매출을 가지고 오는지, 유럽의 소비 패턴이 한국 회사에 자극을 주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한국의 자동차 회사에서는 외국, 특히 독일에서 공부한 자동차 디자이너가 필요했고, 그 기회를 노려서 오세정은 독일에서의 커리어를 이용해서 한국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 연구소에 지원을 하였다. 몇 사람 뽑지 않았지만, 영어, 독일어,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독일에서 빵빵한 커리어도 갖고 있는 오세정을 뽑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세정은 그 당시 한국에서 월급쟁이들이 그냥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연봉 협상이라는 것도 하였다. 매출에 따른 인센티브와 디자인의 소유권은 회사와 오세정이 일하는 팀의 반반으로 정하고 입사를 하였다.

 

  단지 한국 사람들처럼 철 밥통이 아니라 신차가 출시되고 매출이 발생하면 그것으로 일단 계약은 끝나게 된다. 하지만 그 때는 오세정만의 무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또 다시 계약을 하자고 제시를 할 것이 뻔하였다.

 

  오세정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완전 성공이었다. 비율로는 국내 판매가 더 많던 시기였지만, 새로운 디자인 덕분에 해외 수출이 날개를 달 듯 늘어나고 있었고,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라는 윗선의 압박도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오세정은 다른 일반 사원보다 승진의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오세정은 얼마든지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있었다. 그녀의 인생 중 성취욕만큼은 최대였다. 그리고 엄마의 자랑에 어깨가 들썩일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허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많은 것을 잃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빠가 옆에 없다. 독일에 갈 때부터 아빠는 없었다. 그렇게 험한 일을 당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해서 아빠는 세정의 곁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오세정은 아빠를 볼 수 없었다. 아빠가 늘 그리웠다.

 

  아빠가 그리운 만큼 오세정의 삶을 바꿔놓은 그 놈도 잊을 수 없었다. 안정된 살을 살다보니 그놈을 찾아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으로 어떤 복수를 할 수는 없지만, 그놈을 만나서 가슴떨리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 되었다. 그 나쁜 놈이 마음 졸이며 살게 하고 싶었다.

 

  건축공학과를 나왔으니 대개업의 건축회사에서 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사내 아이디를 이용해서 김영철을 찾았다. 동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학교 출신의 나이도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출신 학교를 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보다 직급이 높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직급까지 보이는 것을 보니 오세정이 먼저 연락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만약 그 놈이 이 회사에 다니고 있고 그것도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같은 건물에서 근무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찾아보자.’

 

  오세정은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인면수심을 한 놈이 가정을 가지고,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를 끔찍히 사랑하고,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쳣다. 며칠 동안, 오세정은 그 회사 건설회사 부서를 알 수 있는 인맥들을 총 동원해서 동명이인의 그 사람이 어디서 근무하고 있는지 알아냈다.

 

  운명인지 그 사람도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놈이 맞는지 얼굴을 보기 위해 그쪽 부서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그놈이 맞았다. 오세정은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복수를 해야 내가 마음이 편해지고 그 놈이 지옥에서 살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을 마친 후, 생각을 정리한 오세정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서 그놈에게 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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