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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염매 : 금지된 것
작성일 : 22-02-23 20:32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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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매魘魅

 : 금지된 것

 

 

 

 마을 어귀서부터 썩은 내가 진동을 하였다. 나그네는 걸음을 멈추어 죽은 이들의 마을을 휘 돌아보았다. 사람의 살점이 썩은 내였다. 망령만이 남아 구천을 떠도는 냄새가 진득하게 피부에 엉겨 붙었다.

 “이런.”

 나그네는 몸을 돌렸다. 이런 곳은 들어서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이 꼬여도 단단히 꾄 것이다. 다른 길을 찾는 편이 좋겠다. 등 돌려 멀어지는 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 마을에는 괴이한 돌림병이 있었다. 그 돌림병이란 것은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픽픽 쓰러지며 죽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머리며 배며 가릴 데가 없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지천에 깔렸다. 그것이 처음에는 서민들의 혈세를 탐하는 탐관오리며 호부한 양반들 사이에서 도는 병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서님들의 금품을 갈취하고 제 배만 불리는 못된 자를 천지신명께서 벌하시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병은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이어지더니 달포가 넘도록 낫는 이가 없었다. 온갖 명약이라는 약은 다 가져다 써보아도 낫는 이가 없었으며 명의라는 명의는 죄 불러다 모아도 도통 차도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병은 마침내 서민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했다. 마을이 온통 병으로 앓았다. 누구도 그 병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이제 온전히 건강한 이가 남지를 않았다. 온 마을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희망이 없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이물의 일입니다.”

 저를 추이꾼이라 밝힌 사내는 나붓이 웃으며 그리 말했다.

 “추이꾼이라니,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당연하게도 그이의 말을 믿어주는 이는 없었다. 허나 사내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여전히 웃는 낯을 하고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으셔야 하는 상황이 아니십니까. 추이꾼이든, 선무당이든, 이 괴이한 돌림병을 낫게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혹여 제가 잘못 알고 찾아온 것이라면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말을 듣고도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사내를 문전박대하던 그 종놈이 안으로 들어가 추이꾼이 왔다 아뢰는 동안 사내는 손에 든 커다란 죽통을 내려다보았다. 무어가 그리도 흐뭇하던지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안으로 드시랍니다.”

 그럴 줄을 알았다는 듯, 사내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대문을 지나 하인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타박타박 낡은 걸음 소리가 풀석이며 먼지를 일으켰다. 굳게 닫힌 안방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았다. 으리으리한 기와집인줄로만 알았건만 차갑고 무거운 공기만이 맴도는 그곳은 아주 초라하고 아주 작았다. 그 와중에도 자존심은 잃을 수 없다는 양 의복을 단단히 갖춰 입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대감 나리는 우스웠다. 집안 모든 식솔이 그 돌림병에 걸려 꼼짝을 못하는 것이 뻔한 데도 무에 그리 고집을 피우며 뻗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내는 그 고고하기 짝이 없는 대감나리의 앞에 가만히 앉았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못 참겠다는 듯 입을 먼저 뗀 것은 당연하게도 대감이었다.

 “자네가 바로 그 추이꾼이라지.”

 사내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답하는 음성은 언뜻 진중하였으나 미미한 웃음기가 담겨있었다.

 “자네가 이 돌림병을 낫게 할 수 있다 들었네.”

 “예.”

 “내 그것을 어찌 믿을 수 있나.”

 사내는 고개를 들어 대감과 눈을 맞추었다.

 “고매하신 대감 나리께오선 이 추이꾼이 낯설고 못미더울 수 있습니다. 아무렴은요. 저와 같은 추이꾼들은 그런 취급에 익숙합니다. 어린애들에게 들려주는 구전에서나 나오는 이들이 아닙니까. 허나 나리, 지금은 무어라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붙잡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추이꾼이든, 귀신이든, 그 무엇이든 말입니다. 제가 병을 낫지 못하게 한대도 손해 볼 것은 없으며 혹여 병이 낫게 되거든 그것은 나리께 득이 아니겠습니까.”

 대감에게 그 말은 실로 설득력이 있어 그는 사내의 말을 곧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낫거든 득이요, 낫지 않아도 잃을 것은 없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릇 그런 일일수록 더욱 의심이 가는 법이었다. 그런 일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해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추이꾼도 사람인데 어찌 아무런 이득 없이 남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는 타고나기를 선하게 타고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흔치 않은 법이다. 대감은 꼿꼿하게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가, 언뜻 눈을 치켜뜨며 대감을 보았다. 기묘하게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웃음이요, 눈빛이었다. 허나 대감은 흔들림이 없었다. 예사는 아니로구나. 사내는 그리 생각하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는 가운데 대감이 미소 지었다.

 “정녕 아무런 이유도 대가도 없이 이러는 것은 아닐 테고,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언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어서 말해보게. 으응? 자네 그 꿍꿍이가 무언지 말해보란 말이야. 그 웃음 뒤에 든 시꺼멓게 품은 속이 무언가.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그제야 사내는 두 손을 활짝 펴 내보였다.

 “천 냥.”

 “그럼 그렇지. 썩 돌아가게.”

 “그저 천 냥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집안 온 식솔의 병을 낫게 해줄 터이니 그 뒤에, 모두 나은 것을 보시고서 그 값을 치르시면 됩니다. 이만하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텐데요. 저에게도, 나리에게도 말입니다.”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꿀처럼 들척지근 하면서도 귓가에 착 감겼다. 본디 달콤한 것이 더 치명적인 법이라 하였건만, 그 추이꾼이라는 자가 어찌나 그럴싸하게 말을 하던지 알면서도 혹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는 그 틈을 사내는 놓치지 않았다.

 “자, 어찌 하시겠습니까.”

 싫다 하셔도 저는 손해 볼 것이 하나 없습니다. 딱 그런 태도였다. 결국 대감은 사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천 냥이 그리 적은 돈은 아니었다. 허나, 그보다 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었다.

 “그리하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내는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았다. 짊어지고 다니던 죽통을 제 앞에 내려놓고는 등짐을 풀어헤쳤다. 향과 소금이 가지런히 짐 안에 정돈되어 있었다. 사내가 선보이는 치료라는 것은 상당히 기묘하였다. 의원의 치료라기보다는 무속인의 의식에 가까웠다. 아픈 이를 앞에 두고는 죽통과 환자 사이로 소금을 흩뿌렸다. 환자는 두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다. 사내는 향에 불을 붙이고는 휘이, 휘파람을 불었다. 연개가 매캐하게 환자의 주변을 맴돌 무렵이면 사내는 눈을 감고 염하듯 무언가를 중얼대었다. 그것은 사람의 말인양 하였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짐승의 말이라기엔 너무도 뚜렷하였다. 알아듣자면 너무도 느린 듯 하였으나 다시 듣기에는 너무도 빨라 듣고 있자면 어째서인지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사내가 무어라 말하는 줄을 알 수가 없으니 환자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었고,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환자의 눈을 덮고 한 손으로 어깨를 짓누르며 계속하여 읊조렸다. 그랬더니 환자는 곧 입에서 흰 거품을 토해내며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본 안주인이 기겁하며 사내를 떼어놓으려 몸을 일으켰다. 허나 대감은 짐짓 엄한 목소리로 ‘가만 두시오’하는 것이었다. 환자는 악을 쓰다가 풀썩 쓰러지며 혼절하였다. 사내는 염을 마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반 식경이면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쌀죽을 먹이면 곧 털고 일어날 것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불안한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저이의 차도를 보고 이후를 정하셔도 좋습니다.”

 그러고는 긴 한숨을 뱉으며 죽통을 툭, 투욱, 두드렸다.

 사내의 말대로 환자는 반 식경이 거의 지날 즈음 눈을 떴다. 묽은 쌀죽을 먹이자 기운을 차렸고 깨질 것만 같던 두통과 살을 찢는 듯한 복통이 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환자의 퍼렇게 뜬 얼굴에는 다시 혈기가 돌았고 그것을 본 집안사람들은 온통 감탄으로 소란했다.

 “이제는 믿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뒤로는 너무도 자명했다. 사내의 앞에 모든 식솔들이 줄을 섰고 사람들은 허연 거품을 뱉으며 픽픽 쓰러졌다. 반 식경이면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며 사내는 기어코 대감에게로부터 천 냥을 받아내었다.

 사내의 소문이 마을에 퍼진 것은 금방이었다. 온 마을에 돌림병을 치료할 수 있는 추이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발 없는 말이 마을 전체를 휘도는 것은 삽시간이요, 사내를 찾는 사람들은 구름떼와도 같았다. 재물을 가진 자들은 천 냥, 이천 냥,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전답을 팔아서까지 병을 고쳐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사내는 종일 염을 외었고, 그러고도 사람들의 줄은 이틀, 사흘 째까지 끊이지를 않았다.

 온 마을의 병든 이가 낫는 데까지는 이레 남짓이 걸렸다. 사내가 얻은 재보는 헤아릴 수도 없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사내를 추앙하였다. 기적을 일으킨 사내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그 어떤 의원이나 무당도 고치지 못한 병을 간단하게 고쳐낸 사내라며 치켜세웠다. ᅟᅳᆨ러나 사내는 그런 사람들을 등지고 마을을 떠났다. 다른 마을에 도는 병을 보아야 한다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못내 아쉬운 내색을 감추지 못한 채 사내를 보냈다.

 사내가 떠나고 이레가 지났다. 대감이 죽었다.

 

 

 

 

 

 노아는 가난한 농부의 집 아들이었다. 여느 평범한 또래 애와 다를 바가 없이 평범하게 자랐다. 노아는 총명하고 영특한 아이였다. 그런 노아에게 남다른 일이 생긴 것은 노아가 여섯 살이 된 봄이었다. 노아는 마당 앞을 뛰놀다 어느 사내를 만났다.

 “안녕, 아해야. 내 말을 좀 묻고 싶구나.”

 사내는 다정하게도 웃으며 말하였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 어디냐. 묻는 말에 노아는 손가락을 들어 저어쪽이요, 하고 가리켰다.

 “이 아저씨에게 거기까지 길안내를 해주련?”

 그 말에 노아는 사내의 손을 잡고 걸음을 떼었다. 그것은 마을에서 노아를 볼 수 있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 오는 길에 죽은 마을을 보았네.”

 나그네의 말에 추이꾼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죽은 마을이라는 고유의 이름이 있는 것 같았다. 나그네는 말을 이었다.

 “허공에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죽은 이들의 망령이 둥둥 떠다니니 들어섰다가는 큰 화를 당할 것만 같아 그대로 길을 틀었지.”

 그러자 누군가가 조심스레 말을 더했다.

 “내 지나온 마을에는 아이를 잃어버린 어미가 있었다네.”

 싸늘한 침묵이 돌았다. 아이가 사라지는 일은 드물게 있는 일이었다.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그네가 발견한 마을과 사라진 아이. 억측일지도 모르나 모든 추이꾼들의 머릿속에 같은 단어가 맴돌았다.

 “어쩌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였으나 쉬이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하였다. 마치 그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금기인 것처럼.

 

 

 

 

 

 노아는 이제 온전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더라.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제 이름조차도 희미해져 온전히 떠올릴 수 없는 아이의 머릿속엔 온통 식욕만이 들어찼다. 노아는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던 모습보다 반은 작아져 있었다. 빼짝 말라 피골이 상접하여 숨이나 간신히 붙어있는 것이 얼마나 굶었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내는 커다란 죽통을 노아의 앞에 내려놓았다. 햇빛도 쬐지 못한 채로 바짝바짝 말라만 가던 아이의 잔뜩 예민해진 후각에 고소한 음식 냄새가 잡혔다. 그것은 죽통 안에서 나는 냄새였다. 죽통은 겨우 노아의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정도였고 아이가 들여다 본 그 안에는 생전 먹어보지 못한 맛깔 나는 음식이 들어 있었다.

 “아저씨.”

 노아가 말했다. 먹어도 돼요? 사내가 답했다.

 “물론이란다.”

 노아는 엉금엉금 기어 죽통 안으로 손을 뻗었다. 통은 깊었고 아이의 손은 닿지를 않았다. 아이는 몸을 바짝 웅크리며 통 안에 몸을 반쯤 집어넣었다. 손은 닿지 않았다. 아이는 몸을 완전히 구겨넣었다. 손이 음식에 닿은 순간이었다.

 쿵.

 죽통의 뚜껑이 닫혔다. 노아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함구하는 것입니까.”

 여인은 나그네에게 물었다. 저 또한 아이를 잃은 어미인 터라 남의 아이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탓이다. 사라진 아이와 죽은 마을은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불길하였다. 아이를 잃는 것은 어떠한 연유로든 가슴이 갈가리 찢기고 마음이 산산히 부서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햇병아리 추이꾼인 여인에게도 추이꾼 특유의 호기심이라는 것은 있었다. 그것들이 뒤엉키자 여인은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그네는 조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염매요.”

 “염매?”

 여인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생경한 단어였다. 추이꾼들 사이 오가는 이야기에서도 듣지 못했고 그리도 많은 이물을 기록해놓은 나그네의 추이록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름이었다. 추이록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추이꾼들이 모두 아는 것. 그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여인은 다시 물으려 입술을 열었다. 허나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그네였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이물이 아닌 탓이라오.”

 “이물이 아니라니…….”

 “염매는 고약한 저주요. 어린 아이를 이용한 저주.”

 여인은 입을 다물었다. 나그네는 짧은 한숨을 뱉고는 차근히 말을 이었다.

 “염매는 아이를 납치하여 행하는 저주요. 염매를 행할 적에는 아이를 납치하여 시작한다오. 납치한 아이는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을 먹이는데 그러면 아이는 비쩍 말라가며 음식만 보아도 눈이 뒤집혀 달려들게 되지. 그리 된 아이를 두고는 좁은 죽통 안에 음식을 넣고. 허면 아이가 어찌하겠소.”

 “……음식을 먹으려 죽통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바로 그 순간, 죽통을 봉하며 날카로운 칼로 통을 찌르면 아이의 정혼이 거기 갇히게 된다오.”

 여인은 숨을 집어삼켰다. 어찌 그런 인륜도 천륜도 저버린 일을.

 “그 죽통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발길 닿는 곳에 고약한 병을 퍼트리는 것이 염매요. 그 병을 고쳐준다는 핑계로 갖은 재물을 탐하기도 하지. 허나 그것은 고쳐지는 병이 아니오.”

 그러니 더욱 고약하고 못된 주술이지. 그 주술은 행하는 자에게도 좋을 것이 없소. 여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그네를 보았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묻는 소리에 나그네는 답하였다.

 “남을 해치는 일은 결국 자신도 해치기 마련이오.”

 

 

 

 

 

 가신 줄을 알았던 돌림병은 다시 돌아왔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악질이었다. 누구도 피하지 못한 병은 사람들을 픽픽 쓰러트렸다. 높은 데서 낮은 데까지 병은 사람도 신분도 가리지를 않았다. 쓰러진 사람들은 기어코 하나 둘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허나 온 마을이 앓는 탓에 송장을 치워줄 사람조차 없었다. 시신이 썩어가는 냄새 속에서 사람들은 두 눈을 감고 다음 차례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병을 고쳐준다던 사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사내는 마을 근처에 남아 있었다. 먼 곳을 도망가버릴 수도 있었건만 사내는 부러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며 행동하지 않았다. 사내는 마을에 다시 돌림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느린 손길로 죽통을 토닥였다. 썩은 내가 진동을 하였다.

 사내가 무언가 불길한 이변을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찌릿, 하고 일순 갑작스레 가슴께가 아려왔다. 무언가 예감이 썩 좋지를 않았다. 마치 핏줄이 한 올 끊어진 듯이 날카롭고도 강렬한 통증이었다. 아무래도 죽어가는 마을에 너무 오래 머문 탓이다. 사내는 짐을 주섬주섬 들쳐메었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한다. 죽통을 어깨에 짊어지었다. 사내의 귀에 어떠한 소리가 들려왔다.

 

 벅벅.

 

 허나 당장 자리를 피하는 것만이 급선무인 사내의 귀에 그 소리는 언뜻 스쳐지나가는 소리였다. 사내는 발을 떼었다.

 

 벅벅벅.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사내는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로 가야 할런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만 했다. 사내의 귓가에 자꾸만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벅벅, 벅벅벅. 그제야 사내의 귀에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벅벅, 벅벅벅벅, 벅, 벅벅벅, 벅벅…….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긁는 듯한……그래, 마치 얇은 손톱으로 어딘가를 긁는…….

 “아저씨.”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랬어요?”

 사내가 죽통을 채 벗어 던지기도 전, 아이의 피투성이 손이 사내의 머리칼을 잡아내었다. 작은 고사리 손인데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 손은 기이하게도 힘이 셌고 사내의 머리는 죽통 안에 욱여넣어지더니…….

 

 콰득, 와드득.

 

 뼈를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스러졌다. 시뻘겋게 물든 손이 사내의 팔, 다리, 몸뚱아리까지 하나하나 죽통 안으로 끌어당겼다. 콰드득, 와득, 우드득.

 “배고파요, 아저씨.”

 

 

 

 

 

 나그네는 죽어버린 마을의 근처에서 아무렇게나 뒹구는 죽통을 발견했다. 흥건하게 마른 핏자국은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그네는 죽통 안을 들여다 보았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이와 뼛조각이 남아 있었다.

 “늦었군.”

 나그네는 옷을 털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계속 나아갔다. 안전한 길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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