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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댕댕이인줄 알았는데, 늑대라니!
작가 : 블랙다이아몬드
작품등록일 : 2021.12.26

# 여주.
- 홍임수(여, 35살, H 푸드의 대리)
“동생 대신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팥쥐가 된 철벽녀.


# 남주
-지국장(남, 30살 H 푸드의 낙하산 인턴.)
“외로워서가 아니라, 누나를 사랑해서. 누나의 가족이 되고 싶은 거야!”
교통사고로 가족은 잃은 그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 그녀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순정남.

#서브 남
-최재현(남, 37살 H 푸드의 본부장)
“무서운 꼬맹이, 겁쟁이 오빠한테 시집와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기에 대세를 따르는 실속파.

#서브 녀.
김희주(여, 30살, H 푸드의 이사)

“쫓겨난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 그래서 더 짓밟고 싶어.”
열등감에 모든 걸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가식적인 콩쥐.

 
제 18화-고놈, 늑대야!
작성일 : 22-02-23 09:31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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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젓가락으로 깨진 맥주잔의 파편들을 한쪽으로 모아놓고 벨을 눌렀다.

 

 종업원이 다가오자 내가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이 친구가 나름, 저를 축하해준다고 흥분했네요. 죄송합니다. 깨진 유리잔과 불판 좀 갈아주세요. 그리고 고기도 3인분 더 주시고요.”

 

 굴욕적인 패배감에 김 과장은 읊조리듯 악담을 늘어놓고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 봤자, 여자라 기껏해야, 과장 정도 되겠지. 그래. 실컷 잘난 척, 해봐라. 그 실적은 어차피 나한테 다 돌아온다고. 계집애 주제에.”

 

 싸해진 회식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고기를 잘근잘근 씹고 맛보았다.

 

 불판 갈아치우는 속도가 점점 느려질 무렵. 직원들이 제각기 화장실을 왕복하면서 저마다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또는 애인을 불렀다. 아이가 아프다.

 

 지방에서 부모님이 오셨다. 아내가 화났다. 저마다의 이유를 대면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나만 빼고, 다 있지. 나도, 지국장이라도 부를까? 지나가던 소가 웃겠다. 세입자가 집주인을 부르는 것도 웃기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씁쓸함을 삼키고 있을 때, 박 부장은 내 얼굴에 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계산하고. 영수증은 꼭 첨부해. 처음 참석한 회식 자리인데, 2차도 못 가고 미안해. 홍 대리도 알지. 사춘기도 이기는 갱년기의 무서움을, 요즘 내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서. 이해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정하게 제 갈 길을 가는 박 부장의 뒤태가 흐뭇하게 보였다.

 

 덩그러니 남은 소주를 기울이던 나는 연달아 울려대는 카톡 소리에 테이블을 살펴봤다.

 

 “김 과장 핸드폰인데. 허풍쟁이 주인처럼 카톡도 많이도 오다.”

 

 던지듯이 무심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김 과장의 핸드폰이 내 눈을 사로잡고 말았다.

 

 [홍 대리는 쓸데없이 회식에 왜 와서, 분위기 어쩔거냐고. 평생을 도움이 안 돼.]

 

 [그렇게 말이다. 정말 결혼하는 거야? 뻥~ 아니야? 누가 살벌한 마녀랑 결혼하냐!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놈이다. 불쌍한 놈.]

 

 [그 남자도 어지간히 못난 놈이겠지. 난쟁이, 뚱보. 빚 있어, 팔려 가는 건가? ㅋㅋ]

 

 [설마. 가짜 신랑 대행업체 고용해서, 가짜 결혼식 한다고. 사기 치는 것 아닐까요. 부장님. ㅎㅎㅎ.]

 

 [부장님, 우리 부서에 할당된 해고자 명단에 홍 대리 이름 올리신 거, 맞죠. 부장님만 믿습니다. ㅋㅋㅋ]

 

 [당연하지. 모두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가야지. 이상하게 내 느낌상, 뭔가 걸려. 뒷골이 싸~하단 말이야.]

 

 [뭐 가요? 부장님.]

 

 [홍 대리랑 소개팅하러 나간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고 말이 있었어. 그게 좀 걸리네.]

 

 [어떤 사람을 소개해 줬는데요, 부장님]

 

 [우리 동네 건어물집 아들인데, 한량이라서, 이혼남인데… 그 아들 대신 딴 놈을 보냈다고 하면서. 대단한 놈 보냈다고 자랑을 늘어놨어.]

 

 [에~이 난 또 뭐라고요. 생선가게 아들이 대신 소개팅을 해겠죠. 끽해봐야, 시장 바닥 아줌마의 수준인데.]

 

 [건어물이든, 과일이든. 아무튼 홍 대리님과 너무 잘 어울려요. 부장님, ㅎㅎ]

 

 [그렇겠지. 근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찜찜해.]

 

 [무슨 소문이오? 부장님. 궁금해요. 지혜는 너~무 궁금해요. 부장님.]

 

 [웬일로 김 과장이 조용하네. 홍 대리 이야기만 나오면, 게거품을 물던 사람이 너무 조용하니까. 적응이 안 돼. 이봐, 자나?]

 

 [아까, 홍 대리님의 악담에 또 상처받으신 거 같은데요. 홧김에 또 혼자 포장마차 가서, 자작하시나 보죠.]

 

 [이 부장을 쫓아 보낼 때, 홍 대리도 보냈어야 했는데. 이 부장이 숨겨놓은 망할 장부 때문에!]

 

 [박 부장님의 세상인데, 뭘 걱정하세요.]

 

 [하긴, 잘난 척만 하는 이 부장을 쫓아낸 거만으로도, 내가 이겼지. 지혜 씨, 장부는 잘 갖고 있겠지.]

 

 [그럼요. 호호호. 저의 목숨인데, 신중단지 모시고 있습니다. 부장님~]

 

 [그래, 자네와 나의 목숨줄이지! 잘 보관하고. 나 이외는 절대 보이지 말고. 내일 보세.]

 

 박 부장은 단체방에서 나간 뒤에도 불안하듯, 김 과장에게 카톡을 따로 보냈다.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내 얼굴이 경련이 날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지막 카톡까지 읽어내려갔다.

 

 [자네, 열쇠는 잘 갖고 있지. 자네와 나는 한 몸이네. 내가 대신 홍 대리의 목을 쳐줄 테니, 그때까지 참아. 이건 부장으로서, 명령이야.]

 

 내 눈이 시릴 정도로 김 과장의 핸드폰을 노려봤다.

 

 “이렇게 날 씹어들 드시나. 장수하기 싫은데. 능력도 없는 것들이! 이 부장님을 쫓아낸 자리를 문어 대가리는 박 부장님이 차지하고. 김 과장은 나 대신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그 소문이 사실이네. 고맙게도 이렇게 실토해 주시네.”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른 잔에 김 과장의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다 멈췄다.

 

 새삼 김 과장의 쉬운 핸드폰 패턴에 감사했다.

 

 “이 단순한 놈아, 정말~고맙다.”

 

 살기 어린 눈으로 증거를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에 카톡을 캡처했다.

 

 “이 쓰레기한테 복수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어차피 나갈 몸이라면. 너희들 몸에 칼 꽂는 구경이라도, 하고 나가야지! 내가 덜 억울하겠다.”

 

 계산서를 가져오는 종업원은 비 맞은 중처럼 이를 갈고 있는 내 모습에 흠칫했다.

 

 “… 저기 계산서요. 우리 사장님이, 잠깐 뵙자고… 하시는데요.”

 

 겁먹은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는 종업원에게 미안한 마음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네. 이 카드로 결제해주세요. 사장님은 어디 계세요?”

 

 삼겹살 사장은 맥주잔을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뭘 그렇게 구시렁거려, 우리 애들 놀래게.”

 

 “잘 지내셨어요? 사장님의 얼굴 보니까, 또 매출액 올랐네요. 축하드려요.”

 

 “귀신이네. 이래서 홍 대리한테는 앓은 소리도, 허세도 못 떨지. 내가.”

 

 맥주잔에 올라오는 거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 삼겹살 사장님은 벨을 눌렀다.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 안주랑 쭈쭈바 좀 가져다줘요.”

 

 사장 부름에 달려온 종업원이 카드와 영수증을 네게 건넸다.

 

 “네 사장님.”

 

 푸짐하게 담긴 과인 안주와 쭈쭈바를 쟁반에 가져온 종업원에게 사장은 호탕하게 말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직원님들. 뒷정리는 내가 하고 갈 테니까. 모두 내일 봐요.”

 

 “사장님도 힘드시잖아요. 같이 정리하고 퇴근할게요.”

 

 “토끼 같은 아들내미가, 치킨 먹자고 했다며. 어서 가 봐. 30분 후에 치킨이 배달될 거야. 맛있게 먹고. 이달 월급은 보냈습니다. 핸드폰 확인하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염치없지만 오늘을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신바람 나게 춤을 추며, 나가는 직원들이 부러웠다.

 

 뿌듯한 얼굴로 맥주를 마시는 삼겹살 사장님을 선망의 눈망울로 바라봤다.

 

 “행복해 보이네요. 사장님. 거기다가, 멋있고.”

 

 “이 맛에 내가 삼겹살 사장 노릇을 하지.”

 

 “직원 월급을 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사장님밖에 없을 겁니다. 나도 회사에 사표 내고, 사장님 밑에서 일해도 돼요? 불판 잘 닦는데.”

 

 “나야 좋지. 우리 집에 복덩이가 덩굴째 들어오는 건데. 임수 대리가 말한 대로 하니까. 매상도 3배로 뛰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건물주가 됐는데. 나야 땡큐지. 대로 한복판에서 빨가벗고 춤이라도, 추라면 내가 춘다고.”

 

 “제가… 복덩이인가요? 제 주제에… 복덩이라니요…….”

 

 복덩이…복덩이라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 그 말은 나에겐 저주에 가까운 악담이었다.

 

 “네까짓 게, 내 복덩이를 죽였어! 너 같은 것,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 죽어. 죽으라고.”

 

 내 목을 조르면서 악다구니를 치는 엄마의 복덩이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곱씹듯이 읊조리던 내가 묻어놓았던 서러움이 폭발했다. 꼭꼭 눌러뒀던 눈물과 콧물을 쪽팔리게 쏟아져 나왔다.

 

 맥락 없이 흘리는 내 눈물을 본다면,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주사라고 타박했을 것이다.

 

 고맙게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신 삼겹살 사장은 그저 말없이 쭈쭈바를 드시고 있었다.

 

 ‘실컷 토해내셔. 꾹꾹 담았던, 오만가지 것들을 토해내야. 뭐라도 다시 채우지. 미움이든, 원망이든… 사랑이든.’

 

 얼마나 울었을까,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인, 내 얼굴을 겨우 들자. 통곡 끝에 민망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쓴맛이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와, 마른침으로 속을 달랬다.

 

 삼겹살 사장님은 내 입에 포도 한 알을 살포시 넣어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분 빠지면, 피부가 늙어. 한 참 이쁠 때, 관리해야지. 홍 대리처럼 젊었으면, 정말 사랑하는 남자 만나서 시집간다.”

 

 윙크를 날리는 삼겹살 사장님의 얼굴이 성모 마리아처럼 느껴줬다.

 

 꽃무늬 앞치마를 둘러매고, 백발 단발머리에 선글라스를 멋지게 얹은 삼겹살 사장님의 평온한 아우라가 부러웠다.

 

 “…사장님.”

 

 “응? 왜 홍 대리?”

 

 “저도…내일이라는 게 있을까요?… 사장님처럼.”

 

 주사 핑계로 튀어나온 내 헛소리에 눈이 커진 사장님은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세상 누구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해줬다.

 

 “그럼. 나는 고작 삼겹살 식당 건물주로 끝날 사람이지만, 홍 대리는 적어도, 프랜차이즈 회사의 회장님이 될 사람이야! 내 청춘을 바친 내 식당을 걸고 말하지.”

 

 호방한 사장님의 언변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씀만으로도, 힘이 나네요. 사장님.”

 

 “누가 또 홍 대리를 괴롭혀? 소갈머리 없는 박 부장? 아니면. 맥주컵 깬 찔찔이 김 과장이야. 평생 저만 청춘인 줄 알고 찢고, 까부는 싸가지 낙하산 지혜?”

 

 “어떻게 직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요. 이래서, 사장님이 성공하셨나 봐요.”

 

 “그것들이, 보통 진상이야! 기억하기 싫어도, 그놈의 진상 덕에 내 머릿속에 박혔지.”

 

 “말하면 혼내 주시려고. 저 대신요?”

 

 “당연하지. 어디서 귀한 우리 홍 대리를 구박해. 다 데려와. 두 다리를 동강 내줄게.”

 

 “참 든든한 백을 가졌네요. 제가. 이래서, 사장님의 식당에 단골이 많나 봐요.”

 

 너스레를 떠는 나를 빤히 보시던 사장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다. 오늘은 웬일로 조용해.”

 

 “네?”

 

 “이 시간까지 안 들어가면 쫓아와서 데려가던 동생이 안 보이네?”

 

 “아! 국장이요?… 출장 갔어요.”

 

 “그래서, 마누라를 친정에 보낸 남편처럼 회식 술 파티에 참석하셨네요. 근데, 막상 없으니까 허전한가 봐?”

 

 “그냥 동생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전혀~그런 사이가 아니라고요. 사장님. 집주인과 세입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남자가 아닌 댕댕이라고요. 사장님.”

 

 새침한 눈초리로 삼겹살 사장이 떠보듯이 물었다.

 

 “동생 같은 애인이지. 고놈, 늑대야! 눈빛이 보통내기 아니야.”

 

 “아이고. 늑대가 다 죽었네요. 진짜, 늑대가 그 소리 듣고, 통곡합니다. 사장님.”

 

 “내 말이 틀리는가, 나중에 보자고. 그것도 우두머리의 늑대라고! 홍 대리, 그렇게 넋 놓고 있다간, 금세 늑대에게 목덜미를 물린다.”

 

 순간 움찔한 나는 블라우스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혹시나 내 쇄골에 각인된 지국장의 키스 마크라도 보셨나 싶어 호들갑 떨며 시치미를 뗐다.

 

 “낏해야 애한테 누가 잡혀 먹어요! 내가 잡아먹으면 모를까. 사장님도~참.”

 

 “음~그래도, 잡아먹을 생각은 있나 보네. 잘 생각했어. 그 나이에 집도 있겠다. 우물쭈물하다가 남들이 채간다. 조심하라고.”

 

 “제발~데려갔으면 좋겠네요. 사장님. 귀찮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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