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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의 편지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4

받는 이, 받는 시간을 쓰면 과거든 미래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전달되는 우표를 갖게 된 소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1부 - 제 7화. 바뀌어버린 과거 (1)
작성일 : 22-02-23 00:07     조회 : 211     추천 : 1     분량 : 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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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딸 현서 어디 있냐고!”

 

 소영은 침대로 가 이불을 손으로 더듬는다. 이불과 침대 커버까지 죄다 벗겨버리곤 매트리스까지 찢어버릴 기세였다.

 

 “누나, 왜 이래!”

 

 부엌에 있던 재영이 황급히 방으로 돌아와 소영을 말렸다. 소영은 시뻘개진 눈으로 침대만 노려봤다.

 

 “현서 몰라? 내 딸. 니가 예뻐하던 조카잖아.”

 

 “그만 좀 해. 무슨 소리하는 거야 아침부터”

 

 재영도 슬슬 짜증이 나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너야 말로 왜 그래!”

 

 소영은 재영의 팔을 뿌리치고 온 집안을 뒤졌다. 현서야, 현서야! 애타게 부르짖는 그녀의 외침은 마치 짐승의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현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울음소리마저 없었다.

 

 소영은 힘이 풀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금빛의 우표 8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표는 햇살이 닿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빛나지 않았다. 달빛에는 그렇게 눈부셨는데, 소영은 생각했다.

 

 그 순간. 편지 내용이 기억이 났다.

 

 

 ‘나관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 절대로.

 그 사람과 엮이지 마세요.

 나처럼 평생 인생을 증오하며 살아갈 겁니다.

 그 남자를 믿은 내 인생을 뒤바꾸고 싶습니다.’

 

 

 소영은 뇌에서 피가 솟구치는 기분을 느꼈다.

 

 “혹시. 나 결혼 안 했어?”

 

 묵묵히 소영이 어지른 걸 정리하는 재영에게,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뭐?”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떨려서인지, 아니면 황당한 소리를 멈추지 않아서 되물었는지는 몰랐다.

 

 “결혼 말이야. 나.”

 

 재영은 소영이 서서히 꿈과 현실을 분간하는 듯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안심하고 침대에 앉아 측은한 누나를 쳐다봤다.

 

 “누나는 결혼도 안 했고. 딸도 없어. 책상에 엎드려서 불편하게 자니까 이상한 꿈꾸지.”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소영은 두 주먹으로 바닥을 마구 내리쳤다. 놀란 재영은 다시 소영을 붙잡았다.

 

 “누나 제발 정신 차려!!”

 

 소영은 이제 난리를 칠 힘도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현서야, 현서야!” 외치며 갈라진 목소리를 뚫고 정신없이 소리 질렀다.

 

 

 

 시간이 흐르고 소영은 침대에 누워 잠에 들어있다. 재영은 침대에 등을 기대어 책을 읽고 있다. 소영이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키자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재영이 누나를 쳐다봤다.

 

 여전히 꿈속에 있는 듯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덩그러니 앉아 있는 침대를 보았다.

 

 “일어났어?”

 

 “나 왜 여기에 있어?”

 

 “아침에 내내 울더니 지쳐서 잠들었잖아. 기억 안 나?”

 

 소영은 잠시 기억의 퍼즐을 더듬었다. 소중한 딸.

 

 “현서는……”

 

 “또 꿈 꾼 거야?”

 

 그리고 우표.

 

 “……아니야. 나 집에 갈게.”

 

 소영은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거려 있던 외투를 입었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소영은 잠옷 바람이었다. 잠옷 위에 외투만 걸치고 밤새 그렇게 돌아다닌 것이다. 그리고 안개 속 관희의 키스. 다인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정말로 과거가 바뀌었다면 어젯밤의 일도 없던 일이 된 건가……’

 

 어쩌면 아직 알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져 어쩌면 지금 꿈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면 남편도, 현서도 그대로 있을지 몰라.’

 

 빨리 집에 가야했다.

 

 소영은 책상 위에 있던 우표 8장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데려다 줄게.”

 

 재영이 소영을 따라 나왔다. 소영은 그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야. 나 혼자 갈 수 있어. 미안해, 불쑥 찾아와서.”

 

 지금 이 상황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소영은 황당한 기색을 애써 숨겼다.

 

 

 

 거리는 너무 시끄러웠다. 대화하며 웃고 지나가는 사람들, 상가의 간판, 도시의 소음.

 

 

 

 문득 어젯밤의 다리까지 왔다. 지금은 불이 꺼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가로등만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트럭도, 노인도 없다.

 

 소영은 가로등 아래에 멈춰 섰다. 우표를 잡기 위해 꼬물거리던 현서의 고사리손이 생각났다.

 

 입을 틀어막고 꺼억 꺼억 울었다.

 

 

 

 소영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어쩌면 집에 관희와 현서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차마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상설시장과 마트, 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홀로 돌아다니다 이제야 집에 당도했다.

 

 떨리는 손 때문에 열쇠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철컥, 하고 잠금쇠가 열렸지만 소영은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집 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고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현관의 신발장 위에는 가족사진이 있었다. 아직 현서가 너무 어려 셋이서 함께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불룩하게 배가 튀어나온 소영과 관희가 다정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문을 열면 소영의 눈높이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바로 그 사진이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없었다. 신발장 위에는 아무 것도 없이 자작한 먼지만 쌓여 있을 뿐이었다. 저녁 어스름의 해가 신발장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문을 완전히 열어보니 확실히 달랐다. 행거에 걸려 있던 관희의 옷들이 없고 천장의 모빌도, 창문에 붙어 있던 야광 스티커도 없었다.

 

 아코디언처럼 부푼, 관희와 연애편지를 나눴던 노트도 없었다.

 

 ‘정말로 그 이와 함께 지낸 2년이 전부 사라져버린 걸까.’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책상 위에 있는 탁상달력은 2005년 오늘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소영의 핸드폰이 덩그러니 있었다.

 

 소영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배터리가 한 칸만 남아 있었고 어떠한 문자도, 전화도 온 데가 없었다.

 

 연락처로 들어가 천천히 명단을 내려본다. 관희의 이름은 없다. 대신 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강다인’

 

 소영은 관희의 입술을 집어 삼키던 다인의 큰 입이 떠올랐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소영의 의지로 눌렀는지, 떨리는 손 때문에 눌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내 신호음이 가고, 딸깍 소리와 함께 전화가 연결됐다.

 

 — 여보세요?

 

 소영은 화들짝 놀라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치 독극물이라도 되듯 핸드폰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느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숨을 크게 내쉬는데, 전화벨이 큰 소리로 울렸다.

 

 수신자. ‘강다인’.

 

 애처롭게 울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가까스로 핸드폰을 열어 통화 버튼에 엄지손가락을 갖다 대지만 차마 누를 수 없었다. 이내 그녀가 눈을 꽉 감자 전화벨이 멈췄다. 동시에 배터리가 다 한 핸드폰이 저절로 종료됐다.

 

 힘없이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소영은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뜨거워 눈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 . . . . .

 

 얼마 전에 군 전역을 한 재영은 복학 전까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도심의 아웃도어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소영을 닮아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 덕에 그의 손길을 거쳐 간 옷은 한 치의 구겨짐 없이 완벽하게 진열됐다.

 

 그는 오늘 아침 소영이 벌였던 소동 때문에 그리 편하진 않았다. 한 번도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그녀였다. 어릴 적부터 두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커왔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았다. 분명 소영이 단순히 꿈 때문에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일이 끝나고 누나가 괜찮은지 가봐야겠어.’

 

 맛있는 걸 사들고 가서 사연을 물어보면 분명 얘기해줄 것이다. 그 어떤 비밀이라도. 지금 소영에게 필요한 건 휴식과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였다.

 

 “너 차재영 아니야?”

 

 그렇게 재영이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매대를 정리하며 누나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한 가득일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키가 훤칠하고 멀리서 봐도 각진 얼굴이 인상적인 고등학교 동창 석우였다.

 

 “모석우?”

 

 “제대했다더니. 여기서 일하고 있었어?”

 

 “복학하기 전에 잠깐 일하려고. 야, 너는 키가 더 큰 거 같다.”

 

 “무슨.”

 

 고등학교 때부터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석우도 재영과 같이 사범대를 준비했지만 재영만 합격하고 석우는 재수를 선택했다. 왠지 그때부터 두 사람은 대화가 끊겼다. 나의 꿈을 다른 사람이 먼저 이루면 괜히 자격지심을 느끼며 불편해지기 마련이었다.

 

 “옷 골라봐. 뭐 찾아?”

 

 재영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석우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에 섣불리 그에게 위로나 다른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나 되었다.

 

 “그냥 부모님 선물 하나 해드리려고.”

 

 “응. 저쪽으로 가자. 저기에 있는 게 더 예뻐.”

 

 하지만 두 친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가 너무 반가울 뿐이었다. 사실 마음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재영은 석우를 응원하고, 석우는 재영을 본받아 열심히 재수하는. 그게 친구였다.

 

 “오랜만에 만난 것도 반가운데. 이따 일 몇 시에 끝나?”

 

 “30분 있으면 끝나.”

 

 재영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옷 보면서 조금 기다릴게. 시간 되면 같이 저녁이나 먹자.”

 

 재영도 석우와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누나가 마음속에 걸렸다. 석우도 그런 재영의 근심을 눈치 챘다.

 

 “왜? 오늘 안 돼?”

 

 “안되진 않는데. 대신 오래는 못 있을 거 같아. 잠깐 저녁 먹는 거 정도는 괜찮아.”

 

 “안되긴 짜샤. 아무리 일이 있어도 몇 년 만에 본 친구를 내치기냐?”

 

 “알겠어. 대신 진짜 오래는 안 돼. 누나가 좀 아파서 가봐야 하거든.”

 

 재영은 소영의 상태를 설명하기 어려워 그냥 그렇게 둘러댔다.

 

 “너희 누나면…… 소영이 누나?”

 

 “너 우리 누나 아나?”

 

 “응. 우리 1학년 때 3학년이지 않았어? 너희 누나 예뻐서 학교에 모르는 사람 없었잖아.”

 

 “그 사람이 왜 예쁘냐. 그냥 생긴 거지.”

 

 재영은 그렇게 얘기하고는 석우를 데리고 상의 코너로 갔다.

 

 

 

 “그럼 다음 달에 군대 가는 거야?”

 

 불씨가 꺼져가는 불판위로 재영과 석우는 건배했다. 연기가 자욱한 실내 포장마차 형식의 삼겹살집. 불판에는 몇 점 남지 않은 삼겹살이 바짝 익고 있었다.

 

 석우는 꽉 찬 소주 한 잔을 다 털어 넣었다.

 

 “응. 좀 늦지? 대학 다 마치고 가려다가 그냥 휴학했어.”

 

 “잘했어. 대학 졸업하기 전에 갔다 오는 게 낫지.”

 

 “너는 뭐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네.”

 

 “내가 언제 잘 못 지낸 적이 있냐.”

 

 재영은 남은 소주를 전부 각자의 잔에 털어 넣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 대학은 어디로 갔냐.”

 

 석우는 재영의 의도를 다 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솔직히 사대는 나한테 좀 어려웠고, 그냥 경영 쪽으로 돌려서 삼수했어. 그래서 나 아직 2학년이다.”

 

 석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싹 익은 삼겹살을 집어 먹었다. 오도독뼈가 씹혔다.

 

 “걱정 마. 사대 갔으면 적응 잘 못했을 거야. 지금 뒤늦게 적성 찾은 거 같아. 수석 했으면 말 다 한 거 아니야?”

 

 “걱정 했잖아, 자식아…… 연락 뚝 끊더니.”

 

 “너 말고도 다른 애들도 다 연락 끊었어. 고등학교 친구는 지금 너랑 만난 게 처음이야.”

 

 “잘하는 짓이다……”

 

 두 친구는 마지막 소주를 삼켰다. 달았다.

 

 “너는 복학한다고?”

 

 잠시 말이 없다, 석우가 물었다. 석우는 불판 위에 남은 삼겹살 하나를 재영을 위해 남겨 두었다. 하지만 재영도 같은 생각인 듯 삼겹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응. 임용도 준비해야 하고. 너 전역할 때 쯤 나 실습 나가있겠다.”

 

 “신기할 거 같아. 너 선생님 하면.”

 

 “뭘 신기해. 그냥 하는 거지.”

 

 “희현이는?”

 

 한참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재영이 군대에 가기 전 고백을 할지 말지 숱하게 고민했던 짝사랑녀.

 

 “내가 걔 좋아했던 거, 그게 기억이 나?”

 

 “모르는 사람도 있었나. 희현이도 알았을 걸.”

 

 “됐고. 일어나자. 나 가봐야 해.”

 

 “말 돌리지 말고!”

 

 석우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갔다는 듯 장난스런 미소로 일어나려는 재영을 붙잡았다. 재영은 친구의 손을 뿌리치고 짐을 챙겨서 계산대로 갔다.

 

 . . . . . .

 

 “주 대리님. 혹시 나관희…… 전화번호 아세요?”

 

 불이 꺼진 방에서 소영은 휴대전화를 뒤적거리다 공장 경리 사수였던 주 대리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그녀는 한참을 통화버튼 위에서 엄지손가락을 빙빙 돌리다 간신히 전화를 걸었다.

 

 관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관희만이 이 사단의 진실을 말해줄 수 있었다.

 

 — 차소영 씨?

 

 “네. 잘 지내셨어요?”

 

 — 무슨 일이야? 갑자기 그만 둬서 많이 놀랐어.

 

 “혹시 제가 언제 회사 그만 뒀는지 기억 하세요”

 

 보아하니 소영이 회사를 그만둔 건 확실했다. 현서가 없다면, 육아 때문이 아니라면 회사를 그만 둘 이유도 없었을 텐데.

 

 — 1년 정도 됐지? 그나저나, 나관희라면, 현장직?

 

 “네.”

 

 — 잘 모르겠는데…… 강다인 사원한테 전화 해봐. 다인 씨 전화번호는 있을 거 아니야.

 

 “다인 언니가 관희 오빠 번호를 알아요?”

 

 — 둘이 동거 시작한지 좀 됐어. 공개 연애하다가 곧 결혼한다고 엊그제인가 청첩장 돌렸는데.

 

 “네?”

 

 — 소영 씨한테는 연락 안 갔나봐.

 

 소영은 핸드폰을 덮어버렸다. 전화가 자동으로 끊기면서 맑은 기계음을 냈다. 소영이 손을 아래로 축 늘이자 휴대전화가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소영은 핸드폰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처절한 심정으로 관희의 핸드폰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었다. 하지만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만 들릴 뿐이었다. 처음엔 소영이 번호를 잘못 누른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곧 과거가 바뀌면서 어쩌면 틀어진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희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한 것이다.

 

 소영은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주워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 새끼들. 세상이 바뀌든 말든 이렇게 될 거였다 이거지……”

 

 소영은 분노에 차 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통화대기음만 한참 울리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지나가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쳐도 아랑곳 않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통화대기음이 한 번 더 음성사서함 안내음으로 변했다.

 

 “당장 전화 받아 이 미친년아—”

 

 가슴 속에서 응어리졌던 소영의 무거운 분노가 결국 터져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놀라 소영을 쳐다봤다. 소영은 그럼에도 통화 버튼을 다시 눌렀다. 그러나 다시 음성사서함 안내음……

 

 소영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눈물은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웠다.

 

 구름이 이상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구름이었다. 그건 마치 이 우주를 통째로 농락하는 누군가의 손이 차가운 티스푼으로 휘휘 젓은 형상과 닮아 있었다. 고대인들이 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면 분명 신이 노했을 거라 여겨 뜨거운 제사를 올렸으리라.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게 전부 거부당한 건 아닐까. 소영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와 다른 세상을 살았다. 하지만 분명 그녀도 그 세상을 살았다. 다만 갖고 있는 기억이, 경험이 다를 뿐이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소영은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과 모습에 대해 공포감을 느꼈다. 어쩌면 현서와 관희만 바뀐 게 아닐지도 몰랐다. 소영은 지난 2년간의 기억과 경험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분명 소영은 지난 2년을 살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소영이었다.

 

 ‘이 모든 비밀을 풀기 위해선 먼저 현서를 찾아야 해.’

 

 현서는 소영의 전부였다.

 

 소영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구름은 어느새 강한 상층권의 돌풍으로 인해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그러자 속절없이 흐르던 눈물도 멈췄다. 시야가 점점 또렷해지면서 부정확했던 걸음걸이가 힘 있게 변했다.

 

 소영의 손에 매달려 있던 핸드폰이 희미한 벨소리를 울리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핸드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강다인’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무지개로 빛나는 화면은 다인의 이름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한낱 전파로 허공을 떠다니던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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