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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댕댕이인줄 알았는데, 늑대라니!
작가 : 블랙다이아몬드
작품등록일 : 2021.12.26

# 여주.
- 홍임수(여, 35살, H 푸드의 대리)
“동생 대신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팥쥐가 된 철벽녀.


# 남주
-지국장(남, 30살 H 푸드의 낙하산 인턴.)
“외로워서가 아니라, 누나를 사랑해서. 누나의 가족이 되고 싶은 거야!”
교통사고로 가족은 잃은 그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 그녀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순정남.

#서브 남
-최재현(남, 37살 H 푸드의 본부장)
“무서운 꼬맹이, 겁쟁이 오빠한테 시집와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기에 대세를 따르는 실속파.

#서브 녀.
김희주(여, 30살, H 푸드의 이사)

“쫓겨난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 그래서 더 짓밟고 싶어.”
열등감에 모든 걸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가식적인 콩쥐.

 
제17화- 19금 넘는 그 이상으로 찐한~관계
작성일 : 22-02-22 16:13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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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부장은 몇 가닥 없는 속알머리를 정성스럽게 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결과 보고는 있어야지. 소개팅 성공했는지. 그 남자랑 만나고 있는지? 정식으로 사귀는 거는 …아니지.”

 

 무표정으로 내가 모른 척 반문했다.

 

 “왜 그러시는지….”

 

 내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애가 타는 표정으로 박 부장은 애꿎은 넥타이만 풀어헤쳤다.

 

 “주선자로서, 당연히 알아야지.”

 

 박 부장의 음흉한 속내를 파악한 나는 여유롭게 시치미를 뗐다.

 

 “글쎄요.”

 

 기겁한 박 부장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다그쳤다.

 

 “뭐… 뭐가 글쎄라는 거야. 설마, 진짜로 사귀는 거야. 언제, 어떻게. 뭐가 좋아서?”

 

 ‘굳이 싫다는 소개팅을 시켜 주고, 막상 잘되니까. 불안한 모양이지. 당신 대신 날 해고할 명분이 없어지니까. 그러니까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왜 건들어서. 쯧쯧쯧.’

 

 모르쇠로 일관하는 내 반응에 화가 난 박 부장은 신경질적으로 서류철을 책상에 던졌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 부장님.”

 

 승리의 입꼬리를 올리며 내 책상으로 돌아왔다.

 

 ‘결혼이 만능열쇠도 아니고! 내 행복 따위는 안중에 없으면서. 남이야 결혼하든 말든, 뭔 상관들 하시는지. 조선 시대 아니고. 강요하니 회사가 이 모양, 이 꼴이지.’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둔 사표 봉투와 통장 잔액을 번갈아 바라봤다.

 

 ‘남들 다 있는 집도, 애인도 없고. 하다못해, 남들 다 있는 가족도 없으니. 뭐가 하나라도 제대로 있어야지! 불쌍한 인생. 이번 생은 망했다.’

 

 

 

 ****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습관처럼 댕댕이가 찾아오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장을 빌미로, 가출한 댕댕이의 도시락을 챙길 필요가 없었다. 그 핑계로 편의점 샌드위치 들고 벤치에 앉았다.

 

 ‘요건, 가격 대비에 샌드위치 맛은 괜찮네. 경쟁사라 더 맛있네.’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울려대는 핸드폰 액정을 봤다.

 

 “엄마…….”

 

 액정에 찍힌 엄마라는 두 글자에 사레 걸린 나는 헛구역질해댔다.

 

 끈질기게 울려대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감쌌다.

 

 간절하게, 미칠 듯이 읊조렸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지나갔다.”

 

 

 **

 

 퇴근을 기다린 듯,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에 온몸이 얼어버렸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만큼 했으면 되잖아요. 얼마나 더 해야 직성 풀리는데. 나도 아프다고. 엄마, 제발~.”

 

 몰려오는 편두통에 관자를 누르며, 눈을 감고 있었다.

 

 퇴근 준비하던 사무실 직원들이 무언에 압박하듯 나를 힐끔거렸다.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에 감고 있던 내 눈을 떴다.

 

 모여 있는 직원들을 말없이 쳐다보자, 지나가던 박 부장이 비아냥거리듯 권유했다.

 

 “홍임수 대리도! 회식에 참석하려고 기다리셨나?”

 

 ‘아 회식 있다고 했지. 집에 들어가기 싫은데, 잘됐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앞장서 걸어갔다.

 

 “하긴, 홍 임수 대리께서는 회식을 싫어하지. 내가 깜박깜박했네.”

 

 직원들을 향해 농담하는 박 부장에게 응수했다.

 

 “뭐 하세요. 부장님, 회식 가자면서요. 어디로 갈까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박 부장이 다그쳤다.

 

 “큰 병이라고 걸렸어? 아니면, 시한부 선고라도 받았어? 무섭게 왜 이래.”

 

 

 ***

 

 회식 자리에 우둑하니 앉아있는 내가 신기한지, 직원들이 힐끔거렸다.

 

 “그만 쳐다보고, 빛깔 좋게 구워진 고기를 맛보세요. 박 부장님.”

 

 나긋하게 말하는 내가 소름 끼치듯 박 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일 저승길이라도 떠나?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어? 안 하던 회식에 참석하고. 샤워하고 기다리는 우리 마누라처럼 무섭게 왜 이래!”

 

 자작한 소주잔을 입안에 털어놓고, 자조적으로 일갈했다.

 

 “해고되기 전에 부장님과 한잔을 마셔야 할 것 같아서요.”

 

 직장인에겐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해고라는 금기어를 내뱉자. 회식에 참여한 직원들의 입에서 고기와 안주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캑… 윽 …홍 대리!”

 

 사레들린 박 부장은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다급히 소주를 입안에 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지혜 사원은 씹던 오이를 삼키며 맞장구쳤다.

 

 “홍 대리님에 간담 써늘한 농담을 더 들을 수 없겠네요. 아쉬워라~.”

 

 고추냉이를 몰래 품은 내 쌈을 미친 두더지 입에 밀어 넣고, 웃어 보였다.

 

 "지혜 씨, 걱정마. 앞으로 못 해도, 6개월 정도는 질리도록 볼 수 있어. 날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네. 지혜 씨.“

 

 마지못해 내 쌈을 받아먹던 지혜가 미친 두더지처럼, 앉다 서기를 반복했다.

 

 "어~스~읍. 어…내 코… 도대체 뭘 넣었어요? 아 진짜~! 물… 물! 물 달라고요. 물 줘요.”

 

 “쌈장 넣었는데? 왜 그래?”

 

 “… 스~읍 …정말 쌈장만 넣었어요. 고추냉이 맛이 나는데! 거짓말!”

 

 “무슨 소리야! 쌈장 넣었어. 내가 그런 유치한 장난이라고 할 것 같아! 애도 아니고.”

 

 방울뱀 소리를 내며 입에 생수병을 들이붓던 지혜가 테이블을 부숴버릴 듯 내리쳤다.

 

 “누굴 바보로 알아요. 아~진짜. 고추냉이를 넣었잖아요. 고추냉이.”

 

 “여기 고추냉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 미각까지 술 취했어? 지혜 씨, 너무 마신 거 아니야?”

 

 “홍 대리님! 생사람 잡지 말아요. 저 안 취했어. 멀쩡해! 술은 홍 대리님이나 취했죠. 내 입에서 고추냉이 냄새가 나는데, 어디서 새빨간 거짓말 해요!”

 

 “지혜 씨, 그건 지혜의 입 냄새겠지. 이번 기회에 치과나 가보지.”

 

 “홍 대리님!”

 

 지혜와 실랑이를 도저히 봐줄 수 없었던 박 부장이 벌컥 화를 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둘 다 그만해. 회식도 일의 연장이야. 어디서 어린것들이! 이래서, 풀어주면 안 돼!”

 

 박 부장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겁먹은 지혜가 제자리에 앉았다.

 

 씩씩거리던 지혜가 전략을 바꿨는지, 한껏 올린 입꼬리로 갈무리했다.

 

 “어머, 어머! 박 부장님이 소개해 준, 그 남자랑 잘됐구나. 그래서! 회사 그만두신다고, 하시는구나. 축하해요. 홍 대리님.”

 

 섞은 동태눈을 동그랗게 깜빡이는 지혜의 모가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입안에 소주를 뿜어내며, 벌떡 일어난 박 부장이 버럭 화를 냈다.

 

 “뭐야! 미치지 않고서! 누가, 뭘 사귄다고. 그놈, 제정신이야.”

 

 고깝게 빈정거리는 미친 두더지도 짜증이 났지만. 내가 연애 좀 하겠다는 게, 박 부장이 저리도 게거품으로 거품을 물일인가 싶다.

 

 ‘아주 단체로 미쳤나! 연포탕에다 미친 두더지로 수육으로 쌈 싸 먹어버릴까 보다!’

 

 울화를 짓누르며, 너희들보다 우월하다는 표정으로 교양있게 반격했다.

 

  “지혜 씨, 내 경조사 챙기는 것보다는 안과 먼저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불 나간 형광등처럼, 눈을 깜박이면. 안구 건조증이 심각한 거야! 치과보다 안과가 먼저 가봐. 꼭 병원에 가.”

 

 “진짜, 별꼴이야! 늙은 마귀할멈 같은 게!”

 

 설욕 당한 미친 두더지가 도망가듯 자리를 옮겼다.

 

 ‘소개는 해준다는 생색은 내고 싶지만,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 저런 심보는 뭐야! 문어 대가리 부장. 연포탕을 끓여서 청계천에 뿌려주마!’

 

 평소와 다르게 치켜세운 내 눈꼬리에, 머쓱한 박 부장은 얼버무리듯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하하하.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음~너무 갑작스럽게 생활…라이프가 확 바뀌면, 뭐라고 할까나. 음…”

 

 헛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박 부장의 맥주잔에 소주를 콸콸 따라 건넸다.

 

 “생활과 라이프라는 동의어를 강조하시는 걸 보아하니. 제 저승길 걱정하시는 건, 역시 부장님밖에 없네요. 쭉~ 쭉~들이켜세요. 부장님.”

 

 뻘쭘한 박 부장은 소주를 들이켰다.

 

 “내 말이! 내가 홍 대리를 아~주 아끼잖아. 내 마음은 알지. 그나저나, 그 사람이랑,”

 

 콧방귀를 뀌고 쌈을 크게 싸서 박 부장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부장님이 생각하시는 그대로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다 ~부장님 덕분입니다.”

 

 뜬금없는 가십거리를 발견하듯 나와 박 부장의 대화에 직원들의 눈에 불이 났다.

 

 흥분한 박 부장은 내게 걱정을 가장한 핀잔을 줬다.

 

 “내가 뭘 생각하는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젊은 사람이 성급해서야. 늙은 나이에, 제비 만나면 어쩔 거야. 내가 내 딸 같아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런 충고해 주는 거야. 내 마음 알지.”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설레서 죽겠다는 목소리로 자랑했다.

 

 “어머~부장님은 딸 없잖아요. 그래도, 부장님이 소개팅 주선했는데. 설마 저 엿 먹으라고, 제비라도 섭외하실 분도 아니고. 나이도 많은 사람끼리, 진도 좀 빼죠. 부장님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찐한~! 19금을 훌쩍 넘는 그런 관계. 아시잖아요. 부장님.”

 

 내 도발에 말 문이 막힌 박 부장은 그제야 입술이 다물어졌다.

 

 나 빼고, 저마다 속닥거리는 소리에 회식 자리가 후끈 달아올랐다.

 

 주목받은 내가 참을 수 없는지. 지혜가 미친 두더지처럼, 내 옆구리에 찰싹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주사를 가장한 2차 공격을 개시했다.

 

 “어머~그래요. 그럼, 올해 결혼하시는 거예요. 부케 받을 친구도 없죠. 대리님은 딱 봐도, 친구 없게 생긴 관상이니까. 걱정 노 노! 젊은 내가! 내가! 대리님의 부케 받을게요. 옷 한 벌 해주세요. 호호호.”

 

 끓어오는 화를 당근을 씹으며 달래던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일갈했다.

 

 “일개 낙하산 직원이! 굴러와서. 회사에 짱돌처럼 박혀 있던 대리를 챙겨주니, 눈물 나게 고맙네. 하지만 파리 목숨인 대리가 어떻게! 일개 낙하산 옷 한 벌을 뽑아 줄 수가 있겠어. 아쉬운 대로 밥 한 끼는 사 줄게.”

 

 “어머, 대리님 월급이 저보다 많으면서~약한 척, 너~너~그러면 안 돼용~”

 

 “미리 결혼 준비해 줘서 고마워. 백도 능력이라는데, 능력 좋은 낙하산 덕 좀, 봅시다. 지혜 씨. 축의금 많이 내줘. 파리 목숨 대리를 위해서.”

 

 얼굴이 붉어진 미친 두더지가 땅속으로 기어들어 가듯, 멀찌감치 떨어진 테이블로 옮겨갔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김 과장은 어느새 술잔을 들고 내 옆으로 스멀스멀 기여와 앉았다.

 

 “오~동기. 이제야, 결혼하네. 나는 솔직히 많이 걱정했거든. 너의 성질을 내가 잘 알잖아.”

 

 “그래서, 어쩌라고?”

 

 “이 봐! 이렇게 괄괄하게 말하면 싫은 사람들의 눈에는 안하무인처럼 보인다. 너 그것 모르지.”

 

 “앞으로도, 알 생각은 없는데.”

 

 “네가 이래서 시집이나 갈까? 걱정했는데. 이제 내 마음을 푹~놓고 자겠다. 축하한다. 나 혼자 장가가서, 미안했는데, 한 잔 마셔. 짠할까.”

 

 “그래 짠~하자. 미안하면 내가 더 미안하지.”

 

 “알긴 아는구나! 그래, 말해 봐. 다 용서해 줄게. 홍 대리.”

 

 “그래. 고맙다. 그때, 힘들게 길바닥에서 고백했는데. 단칼에 차 버리고, 그 차디찬 길바닥에 버리고 와서! 미안해.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너~무 매몰차게 차버렸지. 내심 너 볼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그 말이 왜 나와! 다 지난 일이야. 술 먹고, 장난친 걸 가지고! 농담한 걸 갖고. 언제까지 우려먹을 건데!”

 

 “그럼, 다행이고. 나도! 네가 장가가서 얼마나 기뻐한 줄 모르지. 앓던 이가 싹~빠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짠~하자. 뭐해 마시자며. 마셔. 김 과장, 님.”

 

 붉으락푸르락해진 김 과장은 맥주잔을 불판 위에 내리쳤다.

 

 “이게~야! 막말로, 네가 그따위니까! 시집을 못 가는 거고. 만년 대리로 눌러앉는 거야. 주제 파악이나 하시고, 남 지적질이나 하시지.”

 

 “앉아. 너 취했다. 여기 우리 고객이 될 수 있는 식당이야. 그러니까, 추한 모습 보이지 말자! 그리고 막말인 것 알면서,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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