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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의 편지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4

받는 이, 받는 시간을 쓰면 과거든 미래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전달되는 우표를 갖게 된 소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1부 - 제 5화. 잔인한 (1)
작성일 : 22-02-21 08:00     조회 : 206     추천 : 1     분량 : 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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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봄.

 

 결혼식 입장곡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하객들로 가득 찬 식장. 소영의 동기 경리들과 군복을 입은 재영도 자리를 지켰다.

 

 이내 육중하고 화려한 문이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쏟아지고, 시끌벅적했던 장내가 꿀 먹은 듯 조용해졌다.

 

 거기엔 턱시도를 입은 관희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소영이 나란히 서 있었다.

 

 “신랑, 신부. 입장!”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장내에 울려 퍼지자 힘찬 행진곡이 시작되었다. 관희와 소영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마른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행진이 시작되자 다시 박수소리가 메아리쳤다.

 

 가볍게 낀 두 사람의 팔짱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세게 조였다. 그만큼 두 사람은 점점 더 긴장했다. 분명 식장 중 가장 작은 식장을 골랐는데 그럼에도 연단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소영은 오로지 정면만 바라봤다. 관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하객들은 잠자코 두 사람의 행진을 바라봤다. 소영이 남자 친구에게 차였을 때 열성을 다해 위로하던 고등학교 친구들, 공정부 과장, 공정부 직원들과 사수, 손수건을 건넸던 남자 직원, 물류팀 서지우 대리. 모두들 진실된 마음으로 소영과 관희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을 보냈다.

 

 “두 사람은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래도 서로를 사랑할 겁니까?”

 

 연단 앞에 선 두 사람에게, 나이가 지긋한 주례가 물었다.

 

 관희와 소영은 서로를 바라봤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이미 정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대답 대신 입을 맞췄다.

 

 재영은 도저히 못 보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 직원들은 씁쓸하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다인. 그녀는 제일 뒤에서 무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리처럼 새빨갛게 칠한 입술을 앙 다물었다.

 

 결혼식을 마치는 종소리가 소영과 관희의 마음을 따듯하게 매만졌다.

 

 

 

 두 사람의 시간은 퇴근버스만큼 빠르게 달려갔다. 달리는 퇴근버스 안에서 이제 소영과 관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소영의 안전띠는 관희 쪽에, 관희의 안전띠는 소영 쪽에 연결돼 있었다. 두 사람은 사소한 것까지 함께 공유하며 삶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갔다.

 

 차창으로 보이는 봄의 거리는 이내 여름이 됐고, 버스가 그 다음 코너를 지나자 가로수가 세상을 불게 물들인 가을 길을 달렸다. 회전교차로를 지나자 앙상한 가로수와 녹은 눈이 질척거리는 길이 나왔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관희와 소영은 눈에 신발이 젖지 않게 조심히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관희가 작업복을 벗고 양말을 벗으려는데 소영의 관희의 바지를 벗겨버렸다. 관희는 한 발로 간신히 중심을 잡았지만 소영은 아랑곳 않고 관희의 티셔츠도 뒤집었다.

 

 관희도 이에 질세라 소영의 유니폼 자켓을 벗겼다. 품이 큰 자켓이 소영의 몸에서 스르르 떨어지자 그녀의 살짝 부른 배가 보였다.

 

 관희는 소영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기 안 서!”

 

 소영은 아이처럼 웃으며 관희를 뒤따랐다.

 

 . . . . . .

 

 “소영 씨. 잠시 얘기 좀.”

 

 소영은 여전한 타자 속도로 서류를 작성했다.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소영은 여전히 공정부 경리팀의 에이스였다. 소영은 배가 완전히 불러 키보드를 치려면 손을 완전히 뻗어야했다. 벽시계는 퇴근시간 3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영은 타자 치던 걸 멈추고 과장의 뒤를 따라 탕비실로 들어갔다.

 

 “소영 씨 출산까지 얼마나 남았지?”

 

 과장은 서랍에서 커피 원두가루를 꺼내며 물었다. 소영은 과장을 대신해서 종이컵을 꺼내주었다.

 

 “다음 달 예정이에요. 이번 해는 안 넘길 거 같아요.”

 

 과장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잠시 말의 뜸을 들였다. 소영은 인내심을 갖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경리 팀에서 소영 씨 만큼 일 잘하는 사람은 또 없어, 그치?”

 

 “아니에요. 다들 잘하시는 분들이에요.”

 

 “안 그래도 강다인 사원이랑 오 대리, 마케팅 팀으로 전과해서 경리 팀 사람도 부족한데. 소영 씨가 일당 둘은 해줘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야.”

 

 “저, 과장님. 무슨 일로……”

 

 소영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과장은 열심히 원을 그리고 있던 티스푼을 멈췄다. 종이컵 속에서 토네이도를 만들던 커피가 이내 속도를 줄이다 잠잠해졌다.

 

 “어제 부서장 회의가 있었어. 소영 씨 말고도 물류2팀 채아 씨도 아마 임신 8개월 차라지?”

 

 소영은 멈춰버린 커피만 주시했다.

 

 “나야 소영 씨 계속 붙잡고 있고 싶은데. 우리 공장이 아무래도 사이즈에 비해 인력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까. 육아 휴직을 주기 힘든 상황이야.”

 

 “출산 전까지는 계속 출근할 수 있어요. 출산하고도 6개월이면 바로 복직할 수 있을 거예요.”

 

 “알지, 알지. 나도 참…… 어제 강력하게 잘 얘기했는데도 윗대가리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가봐.”

 

 과장은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서서히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미안해. 다음 주까지만 출근해야 할 거 같아. 그래도 얘기 잘 돼서 퇴직금은 6개월 치 바로 지급 될 거고. 나중에 소영 씨가 다시 복직하려고 하면 최우선적으로 우선권 있을 거니까……”

 

 “과장님 결정이 아니잖아요. ……들어가 봐도 되죠?”

 

 소영은 애써 웃으며 과장의 눈을 보았다. 과장은 커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퇴근시간에 단 한 번도 커피를 입에 대지 않던 과장이었다.

 

 “어. 들어가.”

 

 과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탕비실에서 나간 과장은 곧장 사무실을 나갔다. 커피는 여전히 소용돌이치며 선반 위에서 고요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소영은 자리로 돌아와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일에 집중하려 해도 집중할 수 없었다. 최근 내부에서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긴 했다. 어느 정도 입소문을 통해 각오를 하고 있던 소영이었다. 하지만 직접 통보를 받으니 예상보다 더 아팠다.

 

 소영은 기괴하게 부른 자신의 배를 한 손으로 스윽 만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관희와 소영은 말이 없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소영은 그저 차창 밖 풍경만 바라볼 뿐이었다. 관희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관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니폼을 벗어 스탠드형 옷걸이에 대충 걸어놓고 옷을 하나 둘 훌렁훌렁 벗으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영은 알몸의 관희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깜짝이야!”

 

 관희가 이제 막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몸에 뿌리려하는데 소영이 화장실 문을 발칵 열었다. 소영은 얼굴만 안에 집어넣고 말했다.

 

 “내가 옷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화장실 가지 말랬지.”

 

 “좀 봐줘. 오늘 엄청 힘들었어. 기계 고장 나서 제 시간에 맞추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샤워하고 나와서 치울게. 언제 안 치운 적 있어?”

 

 “먼지 사방팔방 날려서 내가 맨날 바닥 청소하는 건 모르지? 나중에 치울거면 한 곳에 벗어두라고 했잖아.”

 

 “알았어. 나 샤워 좀 하자.”

 

 소영이 나가지 않자 관희는 그대로 몸에 물을 뿌렸다. 관희가 더 이상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소영은 고개를 저으며 화장실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걸 보고, 관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 가?”

 

 샤워를 하고 나온 관희가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외출복을 입었다. 소영도 이제 막 샤워를 하려던 참이었다.

 

 “나가서 밥 먹고 올게. 친구들 만나고 올 거야.”

 

 “나는?”

 

 “오늘은 혼자 먹어. 뭐 시켜 먹던지.”

 

 관희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대충 털었다. 머리에서 튀긴 물이 거울에 후두둑 튀었다.

 

 “진작에 얘기해주지 갑자기 통보해버리면 어떡해.”

 

 “그래서 먹기 전에 말 했잖아.”

 

 “……나 임신한 건 알지?”

 

 “그걸 왜 몰라. 늦을 수도 있어. 먼저 자.”

 

 관희는 소영을 보지도 않은 채 외투를 걸쳤다. 그리곤 신발장으로 가 신발을 구겨 신었다.

 

 “나 회사 다음 주까지만 나오래.”

 

 관희가 현관문을 닫기 전에 소영이 말했다. 관희는 닫으려던 손을 멈췄다. 그렇게 잠시 두 사람은 멈췄다. 소영은 관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관희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소영은 두 뺨으로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술에 취한 관희가 칠흑같이 어두운 집으로 들어왔다. 관희는 빛이 약한 부엌불만 켠 채로 옷을 갈아입었다. 소영은 벽 쪽을 바라본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관희는 혹여나 소영이 잠에서 깰까 최대한 조용히 움직였지만 술기운에 모든 행동이 둔했다.

 

 옷을 갈아입은 관희는 슬쩍 소영의 옆에 누웠다.

 

 소영은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무수한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한 벽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창밖에선 술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소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어둠만이 소영을 위로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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