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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증명할 나이
작가 : 계춘
작품등록일 : 2022.2.14

세명의 중년 여성의 서로 다른 삶을 적은 글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안타까움보다 해결할 것들에 대한 여자들의 압박감에 대해 썼습니다.

 
증명할 나이
작성일 : 22-02-20 08:40     조회 : 177     추천 : 0     분량 : 7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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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정의 곁에는 늘 아빠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오세정을 교무실로 불렀다. 쉬는 시간이라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교무실 문을 열었을 때 그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께서는 오세정의 왼족 어깨에 손을 올리며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다치셨어. 선생님하고 같이 병원에 가자.”

 

  오세정의 아버지는 인천부두 하역장에서 일을 하셨다. 무거운 건축자재가 들어오는 날은 늘 긴장과 두려움으로 일을 하신다고 했다. 그 날은 도로 밑에 깔리는 시멘트로 만든 고리모양의 하수구를 옮기고 있었다. 그중 고리하나가 빠지면서 몇 개가 미끄러져 내려왔고, 그 밑에서 일하던 인부 3명이 깔렸다.

 

  최대한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만 붙어 있을 뿐 돌아가실 거라는 것은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오세정과 선생님이 응급실로 들어갔다. 찾을 것도 없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곁에서 서 있는 모습만 보아도 그 곳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아빠의 가슴위서 손을 올리고 엉엉 울고 있었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 날부터 오세정은 아빠가 원망스럽고 그만큼 그립고 미안했다. 그리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실어증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상담을 하고 전문적으로 고칠 수 있는 곳도 없었기에 몇 번 병원은 갔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딸을 정신병자로 만들기 싫었다.

 

  아빠를 보내고 한 학기가 끝나고 있었다. 아빠가 퇴근하면 늘 오세정의 곁에 앉아 숙제도 같이 하고 만화도 같이 봤었다. 그 때문에 오세정은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아빠가 없어도 오세정은 마음속으로 아빠가 있는 것처럼 숙제도 물어보고 만화의 줄거리도 이야기 했다.

 

  어느 날, 아빠가 오세정의 곁으로 왔다. 떠나지 않았다. 집에서, 학교에서, 놀이터에서도 아빠는 늘 함께였다. 중학교 입학식에도 아빠는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아빠는 있었다.

 

  아빠가 보이던 날부터 오세정은 다시 말을 할 수 있었고, 대학합격을 하고 오피스텔에 들어왔을 때도 아빠는 함께였다.

 

 -

  친구가 학교에 왔다.

 

  “세정아, 그 남자는 만나 봤어? 나의 감사함은 전했고?”

 

  “응, 좋은 사람 같더라. 건축과 예비역이래. 25살.”

 

  오세정은 친구와 함께 건축과 학과실로 갔다. 인연이 있다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나고 싶었다.

 

  친구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오세정이 만나고 싶었다.

 

  “세정아, 어떻게 왔어?”

 

  “벌써 반말을 하는 사이야?”

 

  “아...그 다쳤던 친구구나.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어? 한참 선배니까 반말해도 될 것 같아서. 혹시 불편하니?”

 

  “아니에요. 그게 더 편해요.”

 

  그 이후, 오세정와 김영철은 자주 만났다. 미술과 공대이기는 하지만 둘 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세정의 곁에는 늘 아빠가 있어서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선배, 좀 있으면 축제잖아요. 어때요?”

 

  “이번 축제 때 학교에 올 거니? 그냥 그렇지 뭐. 마지막 날에 연예인들이 와서 공연하는 거 빼고는 술 먹고.”

 

  김영철은 오세정과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늘 붙어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오세정은 흔한 연인처럼 지내는 것은 싫었다. 생각이 맞아서 이야기 하고 서로 존중하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건 한 쪽만의 생각이었다.

 

  “세정아, 이번에 같이 춘천으로 여행 갔다 올까? 맛있는 것도 먹고, 집 스케치도 같이 하면 좋잖아.”

 

  김영철의 머리는 오세정과의 여행 계획으로 꽉 차 있었다. 어떤 속옷을 입고 가야할지, 어떤 과정을 해야 할지, 흔 한 남자들의 고민들이었다.

 

  오세정은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좋은 관계가 어색해 지는 것이 싫었고, 사귀는 사이에서 이런 과정은 배제 할 수가 없었다. 축제의 첫 날인 5월 12일에 1박 2일로 가기로 하고, 오세정은 김영철과 헤어졌다.

 

  “아빠, 여행가도 될까? 선배가 너무 좋기는 한데, 여행은 정말 가까운 사이일 때 가야하지 않을까 해서.”

 

  “아빠는 우리 딸이 뭐든지 잘 할 거라고 믿어. 하지만 남자는 모두 도둑놈이라고 하잖아. 하루 놀다 오면 안 될까? 걱정이 많이 되네.”

 

  아빠의 대답에 흔들렸다. 이성이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고, 만약 그런 사이가 되면 서로의 책임감으로 10중 8,9는 결혼을 한다.

 

  5월 12일, 축제가 시작되고 학생들로 학교가 꽉 찼다. 여름이 아닌데도 반팔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종종 보였고, 예술의 학교 홍익대의 축제를 보러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흥분으로 꽉 차 있었다.

 

  두 사람은 9시에 정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오세정은 가까이 살아서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문으로 올라오는 사거리 건너편에서 짙은 청색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김영철이 슬로우 모션처럼 다가왔다. 오세정은 여행의 설레임보다 걱정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김영철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세정아, 많이 기다렸어? 차가 조금 막혔어. 대학 축제일 때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이렇게 너랑 여행 간다니까 너무 좋아서 어제 잠을 못 잤어.”

 

  “아뇨, 저도 금방 왔어요. 선배, 근데 저희 뭐 타고 가요?”

 

  “너 춘천 안 가봤구나.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지. 가서 그 곳에 있는 대학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

 

  두 사람은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갑자기 김영철이 오세정의 손을 잡았다. 다정한 연인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그 순간부터 아빠의 모습은 사라졌다. 언제나 붙어 있었는데, 그래서 김영철과 잘 지내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었는데, 이제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청량리 역 주변은 지저분했다. 난전도 많고 노숙자들도 많이 보였다. 오세정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기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여러 종류의 기차가 있었고, 번호도 다양해서 처음 가는 사람은 찾지도 못 할 것 같았다. 오렌지 색 무궁화 호가 3번 플렛폼에 서 있었다. 그 기차였다. 두 사람은 6번 칸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기차여행은 언제나 두근거림이 있다. 어렸을 때 친척집 방문할 때 비둘기호를 탄 적이 있다. 초록색 등받이에 등받이가 직각으로 고정 되어 있어서 조금만 가도 허리가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그 때는 뭐든지 좋았다. 여행이 좋다기보다 이모와 삼촌들이 주는 용돈이 기대 되었던 것 같다.

 

  춘천 행 기차를 타고 가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여름을 재촉하는 꽃잎이 기차의 속도 때문에 이리저리 번지고 있었고, 서울의 한강으로 들어가는 한강 줄기는 기차와 반대방향으로 끝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북쪽이어서 모내기가 늦어서인지 들판의 벼들은 새싹처럼 올라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 때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았을걸.

 

  기차는 2시간 정도를 달려 춘천 역에 도착했다. 서울과 그 근교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춘천도 시골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역 앞에는 2층짜리 건물밖에는 없었다. 5층이 넘는 빌딩들은 찾기도 힘들었고, 좁은 길에는 그 흔한 신호등조차 없어서 양쪽을 잘 살피며 길을 건너야 했다.

 

  춘천에는 닭갈비와 막국수가 유명해서 관광객들을 위한 닭갈비 골목이 있었다. 많이 낡기는 했지만 그 정취에 취해 음식이 뭐든 맛있어 보였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좋은 집을 찾다 보니 모퉁이 끝에 자리한 허름한 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선배, 저기 어때요? 깨끗하지는 않지만 왠지 역사와 전통이 있어 보이지 않아요?”

 

  “그러네. 저기 가서 먹을까? 배 많이 고프지?”

 

  두 사람은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에서 보던 닭갈비와는 많이 달랐다. 숯불을 가지고 오더니 구명이 뚫린 불판을 위에 올려놓고는 채소 하나도 없이 양념이 된 닭 조각과 감자만 불판위로 올렸다. 마치 돼지갈비를 보는 듯 했다. 색깔만 다른. 두 사람은 배가 고팠는지 익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김영철은 밥을 먹고 나니, 숙소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미리 예약을 하고 갈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가서 물어봐야 했다. 혹시 방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선배, 밥 먹고 어디 갈 거예요? 여기 거리도 예쁘던데. 소화도 시킬 겸 걷다가 커피 마시러 갈까요?”

 

  김영철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음흉한 생각을 들킬까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세정의 눈이 멈춘 곳은 커피숍 앞에 있는 가판대였다. 알록달록한 머리끈과 여러 가지 악세서리들이 놓여 있었다.

 

  “선배 우리 반지 하나씩 사서 낄까요? 춘천 여행 기념으로요.”

 

  오세정이 구경을 하고, 맛있는 것들을 사먹고, 깔깔 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김영철은 온통 숙소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저, 세정아. 우리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지? 숙소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방을 구하고 구경하는 건 어때? 아니, 다른 뜻은 아니고.”

 

  오세정도 어른이다. 남자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할지는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그 사람과의 소소한 추억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시간을 쌓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려 주어야 할 것 같아서 거절 할 수는 없었다. 그 시절의 여자들은 ‘아니’라는 말을 잘 못했다.

 

  “그래요. 우리 방부터 구하고 커피 마시러 가요.”

 

  두 사람은 주위에 보이는 모텔들을 여러 군데 들어갔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방은 대체로 깨끗했다. 그런 곳을 처음 가는 세정이는 프런트에 있는 사람들이 물어보면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적당한 방을 구한 두 사람은 방 값을 지불하고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모텔을 알아보기 전 까지 두 사람은 즐거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 때는 달랐다. 서로 그날 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그리고 어색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모텔 302호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올라가는 계단은 힘들었다. 몸이 힘 들었는지, 마음이 힘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세정이는 스위치를 찾고 있었지만, 김영철은 익숙한 듯 열쇠의 막대기 부분을 어느 구명으로 넣었다. 제법 와 본 모양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침대가 있었다. 그것도 더블침대. 이 한 침대에서 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세정은 만감이 교차했다. 그 날은 아빠가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와 하루 밤을 지내는 동안 아빠가 곁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어색한 공기를 느낀 김영철은 괜히 냉장고를 열어서 사이다 캔 하나를 땄다. 먼저 먹으라는 말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 피곤했지? 빨리 씻고 자자. 내 말은... 그냥 자자고.”

 

  오세정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김영철은 가방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방에 혼자 남은 오세정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김영철이 씻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떤 프로그램이 나오는 지도 모르고 시선은 텔레비전에 고정시켰다. 욕실에서 나오는 김영철과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얼마 후, 김영철이 욕실에서 나왔다. 샤워를 했는지 머리까지 모두 젖어 있었다. 어색함을 숨기려고 오세정은 주점주점 잠옷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키스는 할 것 같아서 양치질을 세 번이나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오세정은 조심스럽게 김영철의 옆에 앉았다. 그런 오세정을 바라보는 김영철의 눈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오른 손은 오세정의 왼쪽어깨를 잡고, 가볍게 키스를 시작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황홀했다. 어쩌다 정신이 들어 눈을 뜨니 오세정의 상의는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바지 안쪽으로 김영철의 손이 들어가고 있었다.

 

  오세정은 두려웠다. 이렇게 첫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너무 어렸다. 그 때 오세정의 눈에 보인 것은 아빠였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를 보는 나서 오세정은 부끄러웠다. 순간 김영철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거부의 표현이었다.

 

  김영철은 당황했다.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며시 손을 떼고 옆으로 누웠고, 그 보습을 본 오세정도 등을 돌려 누웠다. 하지만 잠은 잘 수 없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세정은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짐을 쌌다. 김영철도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눈빛을 주고 받고는 방을 나갔고, 바로 춘천역으로 가서 가장 빠른 서울행 기차표를 구입했다.

 

  그렇게 춘천여행은 끝이 났다.

 

  “아빠, 왜 그 때 온 거야?”

 

  아빠는 그 사람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냥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표정이라고 생각되었다.

 

  며칠 동안 김영철은 오세정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세정도 궁금하고 걱정은 되었지만 당분간 서로의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 되었다.

 

  오세정은 김영철과 만나지 않는 동안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 할 수 있었지만, 가슴 은 불안함으로 뛰고 있었다. 그 세대의 여자들이 가지는 ‘착한여자 컴플렉스’.

 

  컴퓨터가 상용 되면서 디자인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필수였다. 오세정도 방과 후 학원에 열심히 다녔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해서 학원은 늘 10시에 끝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상가로 가득한 거리에 집이 있어서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1층 로비에 들어가는 길에 편지함을 보았다. 색깔이 있는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편지를 들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도착 음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김영철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서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놀란 오세정은 문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김영철이 바라봤다.

 

  “세정아.”

 

  오세정은 김영철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김영철은 오세정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 안에는 아빠도 서 있었다.

 

  “선배, 앉아요. 난....”

 

  그 순간 오세정의 눈앞이 번쩍였다. 화장실 옆 벽에 머리를 박고 넘어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뭔지 알지도 못했다. 두 눈을 뜨고 주위를 보았다. 코에서 흐르는 피가 하얀색 운동화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김영철은 오세정의 머리채를 쥐고, 창문 옆에 있는 침대로 끌고 가서 힘껏 밀어버렸다.

 

  눈 옆이 찢어졌는지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것이 귀 옆을 지나 턱 밑을 흘러 내렸다. 피였다. 아픈지도 모를 정도로 무서웠다. 오세정의 아빠 또한 침대 아래에서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래요, 선배?”

 

  오세정은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서 화를 냈다. 그 순간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귀가 먹먹했고, 두 볼이 뜨거워졌다. 김영철의 분노가 다시 폭발한 것 같았다. 김영철은 손에 묻은 피가 찝찝했는지 침대의 이불로 손을 닦았다. 두 손을 세정의 두 다리 옆에 놓더니 위로 올려보며 애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같이 있고 싶고, 키스하고, 자고 싶었어. 하지만 너는 나를 단지 강간범으로 대했어.”

 

  오세정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뺨을 두 번이나 맞아서 입을 벌릴 수도 없었고, 그런 사람에게 대꾸하기 싫었다.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천장만 바라보았다.

 

  김영철은 그렇게 울고 있던 오세정의 윗옷을 찢었다. 분노에 찬 얼굴로 복수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바지를 벗기고 오세정의 다리를 벌렸다. 발버둥 쳐 봤지만 소용도 없었다.

 

  덜덜 떨고 있는 오세정의 몸 위로 김영철은 거칠게 덮었다. 그리고 묵직한 것이 몸 속을 들어오면서 게임은 끝이 났다.

 

  나름의 복수를 끝낸 김영철은 옷을 급히 입고, 오세정을 그냥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를 하고 범인을 잡고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해 주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그냥 연인들 끼리 싸운 거라고 치부하기 일쑤였고, 오히려 행실이 나쁜 거 아니냐고 여자에게 손가락질 하는 그런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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