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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의 편지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4

받는 이, 받는 시간을 쓰면 과거든 미래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전달되는 우표를 갖게 된 소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1부 - 제 3화. 찬란한 (3)
작성일 : 22-02-20 00:17     조회 : 205     추천 : 1     분량 :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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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놀라셨죠. 저 물류팀 서지우라고 합니다.”

 

 출근버스에서 내린 소영이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밝은 햇빛 때문에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출근길 직원들은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겨우 100미터 남짓임에도 누가 더 조금이라도 늦게 출근하는 지 시합이라도 하듯 느린 발걸음으로 어슬렁댔다.

 

 이제 출근 일주일 차인 신입사원 소영은 윗사람들보다 먼저 사무실에 들어가려 속도를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 소영의 어깨를 두 번 툭툭 쳤다.

 

 “네?”

 

 밝은 인상의 서지우라는 사람은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물류팀 유니폼이 썩 어울리지는 않았다.

 

 “제가 이런 말을 하기는 처음인데. 소영 씨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혹시 괜찮으시면 이따 식사하실 때 같이 밥 먹어도 될까요?”

 

 남자는 소영의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혹여나 소영이 놀라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게……”

 

 소영 역시 이런 경우가 별로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데. 버스에서 이제 막 내리는 관희가 시야에 들어온다.

 

 “관희 씨!”

 

 소영이 냅다 손을 흔들며 관희에게 소리 질렀다. 서지우란 남자도 놀란 듯 등 뒤를 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가장 놀란 건 아무래도 관희였다. 관희는 소영을 한 번 보더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한 눈에 봐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미안해요. 급히 볼 일이 있어서.”

 

 소영은 서지우란 남자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관희에게로 가려다가,

 

 “그리고 저는 같은 경리부서 분들이랑 같이 밥을 먹어서요.”

 

 혹여나 남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소영이 가까이 다가오자 관희가 말했다. 소영은 괜히 뒤를 돌아 남자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지 살폈다.

 

 “그냥 저냥 알게 됐어요.”

 

 소영은 주변을 살피며 건성으로 말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려 관희를 올려다봤다. 관희가 소영을 빤히 쳐다봤다.

 

 “왜요?”

 

 “저 부른 건 그쪽이에요.”

 

 남자를 쫓아내는 데에만 신경 썼던 소영이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그니까……” 소영은 괜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어색하게 웃어보이고는 뒤를 홱 돌아 총총걸음으로 공장 쪽으로 갔다.

 

 관희는 그런 소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에 서서 쳐다봤다. 넘어질 듯 빠른 걸음으로 걷는 소영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관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인이 보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온 소영은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허리를 숙여 컴퓨터를 켜고는 팬이 돌아가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소영 씨, 벌써부터 출근하기 싫은 거야? 땅 꺼지겠어.”

 

 사수가 어느새 소영의 옆에 와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소영은 화들짝 놀라 구부정한 허리를 바로 폈다.

 

 “예? 아니에요. 아침부터 별 일이 다 있어서……”

 

 “농담이야. 커피나 한 잔 할까?”

 

 “네. 금방 타 올게요.”

 

 소영은 싱긋 웃고는 탕비실로 갔다. 소영이 커피를 타는 사이 다인도 탕비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소영을 도와 인원수대로 종이컵을 꺼내 원두와 프림을 나눴다.

 

 “오셨어요? 아까 버스에서는 너무 멀리 앉아 계셔서 인사 못 드렸어요.”

 

 소영은 고마움을 인사로 대신했다. 아직 싱숭생숭한 듯 소영은 눈이 퀭했다.

 

 “괜찮아요. 근데 아까 보니까 어떤 분이 데이트 신청하는 것 같던데.”

 

 “네? 아니에요, 데이트는…… 그냥 저랑 친해지고 싶다고.”

 

 “관희 씨랑은 얘기 해봤어요?”

 

 소영은 잠시 어제 일을 떠올렸다. 다인이 관희에게 물어봐달라고 했던 그 질문.

 

 “아…… 저도 사실 잘 모르는 분이라서 선뜻 물어보기가……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그래요? 아쉽게 됐네. 그냥 어제 얘기 없었던 걸로 해요.”

 

 “갑자기 왜요?”

 

 “그냥. 어제 생각해보니까 내가 연애하려고 취직한 것도 아니고. 당분간은 돈을 벌고 싶거든.”

 

 “아……”

 

 소영은 할 줄 아는 말이 아, 밖에 없는 듯. 아님 아직 정신이 주차장에 가 있는 듯 초점이 흐렸다.

 

 “그리고 내가 언니니까 이제부터 말 편하게 해도 되죠?”

 

 다인이 고개를 돌려 소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억지로 짓고 있는 그녀의 눈웃음 주변에 잔주름이 가득했다. 소영은 갑자기 가까워진 그녀의 얼굴 때문에 정신이 확 들었다.

 

 “네? 네.”

 

 “호칭도 그냥 편하게 소영아, 라고 부를게. 괜찮지? 우린 동기잖아.”

 

 “언니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뭉뚱그려 끝나려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탕비실 문이 열리고 관희가 들어왔다. 소영과 다인은 둘 다 시간이라도 멈춘 듯 동시에 놀라 관희를 쳐다본 채로 몸이 굳었다.

 

 “안녕하세……”

 

 먼저 정신 차린 다인이 관희의 눈을 보며 인사했다. 하지만 관희는 다인을 지나쳐 소영에게 가까이 갔다.

 

 “오늘도 서류 작업 도와줄 수 있어요?”

 

 “서류요?”

 

 대뜸 남의 부서에 들어와서 서류를 도와달라니. 소영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맑은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자니 선뜻 거절하기 어려웠다.

 

 다인은 소영과 관희를 흘겨보고는 탕비실을 나가버렸다.

 

 “어제처럼 얼마 안 되는 양이긴 한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아…… 그럴게요.”

 

 “그럼.”

 

 관희는 제 할 말만 하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소영은 탕비실 창으로 다인이 제 자리에 앉는 걸 봤다. 그녀는 시선을 살짝 돌려 소영을 흘겨봤다. 그러고는 재빨리 고개를 다시 반듯이 해 깜깜한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봤다.

 

 “뭐야, 갑자기……”

 

 소영은 정신을 차리고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쟁반에 커피를 담아 나가려는데 다인이 내버려두고 간 티스푼이 보였다. 티스푼 주변엔 원두가루가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소영은 다인을 슬쩍 보고는 휴지로 지저분한 걸 치웠다.

 

 . . . . . .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기지개를 펴며 하나 둘 일어났다. 소영도 빠르게 타자를 마치고는 모니터 화면을 껐다. 그랬다가 관희가 서류 작업을 도와달라고 한 게 생각 나 다시 모니터 화면을 켰다.

 

 “밥 먹으러 갑시다!”

 

 과장이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그가 먼저 사무실을 나가자 직원들이 과장의 뒤를 따라 나갔다. 소영이 다인에게 조금 기다려달라고 얘기하려 고개를 돌렸지만 다인은 소영을 보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관희 씨가 오는 김에 같이 남아서 대화하면 좋을 텐데.’

 

 소영은 속으로 중얼거리곤 조금은 지저분해 보이는 책상을 정리했다. 어제 관희가 갑자기 왔을 때 책상이 지저분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소영 씨는 안 먹어?”

 

 사수가 마지막에 나가면서 물었다. 소영은 민망한 듯 미소 지었다.

 

 “마무리할 거 있어서 이것만 금방 하고 갈게요.”

 

 “얼른와요.”

 

 사무실에 혼자 남은 소영은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를 가만히 들을 뿐이었다. 커서가 깜빡이는 빈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내 노크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소영이 반사적으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관희가 얼굴만 빼꼼 내밀고 실내를 둘러봤다. 그리고 소영과 눈이 마주쳐 꾸벅 인사를 하곤 그녀에게 다가갔다.

 

 “얼른 주세요. 빨리 밥 먹으러 가게.”

 

 소영이 손을 내밀며 재촉했다. 원체 커피에 입을 대지 않던 소영은 점심 식사 후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게 회사에 있는 동안 낙이 돼버렸다. 어제처럼 괜한 사람들이 말을 걸지 않게 홀로 사무실에 돌아와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다.

 

 “예? 아, 서류요? ……서류는 없어요.”

 

 “서류가 없어요?”

 

 소영은 황당해서는 관희의 눈빛을 살폈다. 그는 소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네. 사실 따로 할 거 없어요.”

 

 “그럼 왜 아까 도와달라고……”

 

 “소영 씨랑 같이 밥 먹고 싶어서요.”

 

 소영의 눈이 토끼 눈이 됐다. 의외였다. 소영은 왠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미안해요.”

 

 소영은 관희를 지나쳐 황급히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관희는 애꿎은 문만 쳐다볼 뿐이었다.

 

 

 

 소영은 퇴근 셔틀버스 안에서 아까 점심시간에 있던 일을 생각하며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관희가 고마운 마음에 같이 밥을 먹자고 한 것일 수도 있었는데 최근 말을 거는 남자 직원들이 많은 탓에 혼란스러워 괜히 오해를 했을 거라고 자책했다.

 

 ‘왜인지 이유라도 물어볼 걸.’

 

 소영은 그렇게 후회하며 창가에 머리를 콩콩 찧었다. 관희와 지나가다 마주치면 괜히 어색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보아하니 서류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사무실에 오는 것 같던데.

 

 아까의 행동을 후회하며 머릿속이 복잡한데, 마침 다인이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소영은 다인에게라도 마음 속 답답함을 풀려 손을 들고 다인을 불렀다. 하지만 다인은 소영을 힐끗 보더니 멀찍이 떨어진 앞자리에 앉았다.

 

 “못 봤나……?”

 

 소영이 다시 한 번 다인을 부르려는데 관희가 뚜벅뚜벅 들어왔다. 소영은 으악, 싶어 앞좌석 등받이 뒤에 몸을 숨겼다. 관희는 뒷좌석으로 와 소영을 발견했다. 소영이 몸을 숨기고 있던 말던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 피곤해서요. 넓게 앉아서 가고 싶은데.”

 

 소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관희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옆에 앉아 버리면 곤란할 뿐이다. 소영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관희는 소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리를 옮기지 않고 소영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을 뿐이었다. 엉덩이 하나가 거의 복도로 빠져나왔다.

 

 “아까부터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소영 씨랑 같이 앉고 싶어서요.”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소영이 한 번 더 놀라 관희를 올려다봤다. 관희는 안전띠를 매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저냥 알게 됐어요.”

 

 이내 곧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의 소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았는지 더 이상의 대화 진전이 없었다. 소영은 관희를 힐끔거렸다. 관희는 여전히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그냥 편하게 앉아요.”

 

 “소영 씨 불편하지 않게요.”

 

 “그러는 게 더 불편해요. 얼른 제대로 앉아요.”

 

 소영은 관희의 가방 끈을 붙잡고 그의 엉덩이가 좌석에 딱 붙을 수 있게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관희의 작업복 바지 재질과 시트 재질이 약한 마찰력으로 인해 주르륵 미끄러졌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내리기 직전까지 말이 없었다. 소영은 왠지 버스 소음이 고마웠다.

 

 . . . . . .

 

 집 앞에 도착한 소영은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내가 불을 안 끄고 갔나?’

 

 꼼꼼한 성격의 소영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보니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 한 켤레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익숙한 신발이었다.

 

 “왔어?”

 

 소영이 현관과 방을 잇는 미닫이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 책을 보던 재영이 쳐다도 보지 않고 인사했다.

 

 “차재영. 니가 여길 왜 왔어? 열쇠는 또 어디서 났고.”

 

 소영의 두 살 동생 재영이었다.

 

 “누나가 집에 놔둔 비상용 열쇠 훔쳤지. 나 가출했어.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재영은 여전히 책을 내려놓지 않은 채로 말했다. 소영의 책꽂이가 조금 어질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재영이 재밌는 책이라도 없나 여기저기 뒤져본 것 같았다.

 

 “비밀은 무슨. 빨리 집에 가.”

 

 재영은 그제야 책을 내려놓고 피식 웃었다. 오래 누워있었는지 그의 머리가 조금 붕 떠 있었다.

 

 “거짓말이고. 나 다음 주에 입대 해.”

 

 “입대? 군대 가?”

 

 “응. 그래서 가기 전에 누나랑 좀 놀고 싶어서.”

 

 “놀긴 뭘 놀아. 곱게 갈 것이지 갑자기 와서는…… 연락은 하고 와야 할 거 아니야.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뭐 어때. 밥 해줄게. 배고프다.”

 

 소영은 가방을 내려놓고 미닫이문을 다시 열었다.

 

 “나가서 사갖고 오자.”

 

 재영의 뒤에 보이는 창문으로 도심 사이 보름달이 뽀얗게 뜬 게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고 미처 보지 못했다.

 

 소영은 내내 관희보다는 다인이 신경 쓰였다. 왠지 어제 탕비실에서부터 그녀를 피하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지. 혹시 내가 뭐라도 말실수를 한 건가.

 

 아무래도 관희가 소영과 아는 체를 했을 때부터였다.

 

 ‘관희 씨와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닌데. 빨리 오해를 풀어야겠어.’

 

 내일은 꼭 다인의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소영은 스스로 다짐했다.

 

 

 

 “아, 진짜 배부르다.”

 

 재영은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싹싹 긁어먹고는 뒤로 발랑 드러누웠다. 호기롭게 트림도 내뱉고는 혼자 껄껄 웃었다.

 

 “야. 밥 먹고 바로 누우면 돼지 된다.”

 

 “뭐 어때. 어차피 훈련소 들어가면 죽어라 뛰어다녀서 살 빠질 텐데. 일주일만 돼지처럼 지내자.”

 

 편한 옷차림의 소영은 책상에 턱을 괴고 재영을 내려다봤다.

 

 “그래서. 좋아하는 애한테 고백 한 번 못하고 군대 가는 게 한이다?”

 

 재영은 고개만 들어서 소영을 쳐다봤다. 턱살이 여러 겹 겹친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냥 푸념 늘어놓은 거야. 신경 쓰지는 마.”

 

 “뭐래. 딱 보니까 그 얘기하려고 온 거구만. 너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애 있으면 나한테 와서 비밀이라면서 얘기하고 그랬잖아.”

 

 “이 누나가 도대체 몇 년 전 얘기를 꺼내는 거야.”

 

 소영은 아무 말 않고 단지 재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재영은 패배를 인정한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일어나 제대로 앉았다.

 

 “한까지는 아니고. 아쉬워 죽겠다는 거지.”

 

 “여자의 입장으로. 고백 안 하는 게 맞아. 군대 절대 안 기다려 줄 거야. 서로가 상처야.”

 

 “그치? 그게 맞겠지?”

 

 재영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내심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은 듯 입술이 비죽 나왔다.

 

 “대학 동기라고 했지?”

 

 “응.”

 

 소영은 방안이 생각났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니가 군대 전역하면 그 친구는 임용 패스하고 이제 막 선생님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그렇겠지?”

 

 재영은 교사를 꿈꾸며 사범대에 재학 중이었다.

 

 “그러면 니가 전역하고. 그 친구가 근무하는 지역으로 똑같이 임용을 넣는 거야. 자연스럽게 너희는 같이 근무하게 될 테고. 같은 학교에 못 가더라도 같은 지역에 있어서 만나기는 쉬울 거 아니야. 니가 의지하기도 쉽고. 넌 그 친구보다 호봉이 낮을 테니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더 가까워지는 거지.”

 

 “오. 일리 있어. 괜찮은 방법이야.”

 

 재영은 어느새 소영의 언변에 빠져들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입대 일주일도 안 남기고 고백하는 건 아니야. 얼마 만나지도 못하고 평생 남남으로 살고 싶어?”

 

 “당연히 아니지. ……근데 누나는 대학 때 연애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또 이럴 땐 연애 도사네?”

 

 “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니까.”

 

 “웃기지도 않어.”

 

 재영은 일어나서 빈 그릇들을 치웠다.

 

 “……누나는 회사에 괜찮은 남자 없어?”

 

 부엌에서 돌아온 재영이 대뜸 물었다. 이제 막 책상에 앉으려던 소영의 머릿속에 관희가 스쳐지나갔다.

 

 “무슨. 나 이제 첫 출근한지 일주일 됐어.”

 

 “다행이다. 누나가 누굴 좋아한다는 게 걱정돼. 그 남자는 무슨 죄야.”

 

 “죽을래? 니 짝사랑녀가 불쌍하지. 하필 차재영 눈에 들어서.”

 

 재영은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 쳤다.

 

 “그냥…… 신경 쓰이는 남자가 하나 있긴 한데.”

 

 소영은 괜히 재영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했다. 재영은 건수가 하나 걸렸다는 듯 책상 옆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왜? 누나가 좋대?”

 

 “그런 건 아닌데. 계속 나한테 밥 먹자고 하고. 내가 거절했는데도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만 앉은 거 있지. 빈 자리 많은데.”

 

 “좋아한다고 말한 거나 다름없네.”

 

 “됐어. 나 마지막 연애 때 전 남친이 얼굴에 침 뱉은 거 알잖아. 내 연애는 그 날로 종결이야.”

 

 “알아서 해.”

 

 재영은 도로 부엌으로 가 손에 고무장갑을 꼈다. 그러더니 다시 소영을 돌아봤다.

 

 “근데 그건 알아둬. 그 남자야 어찌 됐든. 누나한테 말 걸려고 엄청 용기 냈다는 거. 1년 내내 말도 못 걸고 군대 가는 애도 있는데.”

 

 소영은 재영을 빤히 쳐다봤다. 재영은 피식 웃고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소영은 라디오 버튼을 돌려 주파수를 맞췄다.

 

 오늘은 소영의 사연을 읽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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