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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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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

소개팅이 엇갈려 우연히 만난 극작가와 연극배우가 11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

 
제 19화. 그리웠어요.
작성일 : 22-02-19 01:03     조회 : 183     추천 : 1     분량 : 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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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오랜만이야.”

 

 찬우가 한창 매표를 끝내고 한숨을 돌리려는데 예슬이 찾아왔다. 예슬은 갑자기 영화관을 그만뒀던 두 달 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가슴까지 정갈하게 떨어진 웨이브한 머리는 예슬의 가녀린 체구와 잘 어울렸다. 살이 더 빠진 듯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예슬아! 엄청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최근 어린 알바생들과 합이 잘 맞지 않아 근무에 실증을 느끼던 찬우에게 예슬의 등장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가장 마음이 맞고 편하게 일할 수 있던 건 예슬의 덕이 컸다. 처음 영화관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찬우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예슬은 모를 것이다. 예슬의 밝은 에너지는 찬우가 글을 다시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오빠는 여전하네. 이제 매니저님이 된 것만 바뀌었어.”

 

 예슬이 찬우의 명찰을 보고는 말했다.

 

 “죽겠어. 뭐만 하면 매니저님, 매니저님 찾아댄다니까? 아무리 가르쳐도 제대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예슬이 네가 일 참 잘했는데.”

 

 “그럼. 나 만한 사람이 없지.”

 

 찬우는 매점에 있던 알바생을 불러 매표소를 지키게 한 다음 예슬과 함께 로비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두 사람이 종종 매니저가 자리를 비울 때 땡땡이치던 곳이었다.

 

 “매니저라고 이렇게 맘대로 땡땡이쳐도 되는 거야?”

 

 예슬이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일할 때 누구 눈치를 보냐, 이제.”

 

 그렇게 말하면서 찬우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매니저가 된 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영화관 그만두고 제주도로 여행 갔다 왔어.”

 

 “혼자?”

 

 “응. 나쁘지 않더라. 비수기라 사람도 많이 없고, 남쪽이라 그렇게 춥지도 않고. 여기는 눈 자주 왔다며. 나는 육지 들어와서 눈 처음 봤어.”

 

 “좋네. 나도 여행 가고 싶다. 언제 마지막으로 여행 갔는지 기억도 안 나.”

 

 “오빠도 한 번 갔다 오면 좋을 텐데. 많이 공부됐어. 재정비도 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되고.”

 

 예슬은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주저하는 듯 마주 잡은 손을 만지작거렸다.

 

 “민석 오빠는 어떻게 지내?”

 

 “언제 물어보나 기다렸어. 그것 때문에 온 거지?”

 

 “알고 있었어?”

 

 예슬이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고는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 때문에 많이 상처받았을 거야.”

 

 “물론이지.”

 

 “위로는 못해 줄 망정!”

 

 “예슬이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다 내가 벌인 일이지. 나도 민석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괜히 옆에서 바람 많이 넣었으니까.”

 

 찬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예슬의 표정을 살폈다. 아마 그리 편한 여행은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까는 단지 살이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예슬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야위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눈가의 주름과 다크 서클이 화장 아래에 숨어 있었다.

 

 “나도 민석이 두 달 동안 제대로 못 봤어. 방에 들어가서 글만 쓰더라. 안 그래도 어제부로 글 완성해서 드디어 밖으로 나왔어. 들리는 얘기로는 민석이 글로 공연 올린다고 하더라.”

 

 “잘됐네. 참 멋진 작가야. 내가 공연을 보러 가도 될까?”

 

 “물론이지. 아마 내가 먼저 얘기 안 꺼내도 민석이가 먼저 연락할지도 몰라. 티켓 보내주면서.”

 

 “내가 민석 오빠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민석은 잠시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는 두 손을 맞아 코 높이까지 올려 팔로 삼각형을 만들었다. 민석은 그 주먹 위에 턱을 괬다.

 

 “우리는 그런 과정들을 겪어도 돼. 사랑 때문에 질투하고, 시기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때로는 골탕 먹이거나 상처를 준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그 순간을 후회하면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우린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그럼에도 자책하며 견디기 힘들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땐 하루 날 잡고 감정을 모두 쏟아내 버리고 말아. 계속 갖고 가면 무겁기만 하고 갈수록 더 지칠 테니까.”

 

 예슬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리는 걸 보았다.

 

 “확실히 작가들은 다르구나. 멋있어. 오빠를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고마워.”

 

 “작가는 무슨.”

 

 찬우는 괜히 민망해서 말을 얼버무렸다.

 

 “내가 민석 오빠한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아. 어린 마음에 못되게 굴려고 했던 것도 있어. 하지만 오빠를 좋아한 마음은 진심이었어. 잊진 못할 거야. 항상 응원할 거고. 민석 오빠는 분명 좋은 작가가 될 거야.”

 

 간신히 눈물을 참은 듯 예슬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물론 오빠도 좋은 작가가 될 거야.”

 

 예슬은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게 싫어 덧붙였다.

 

 “나랑 민석이가 쓴 글 본 적도 없으면서!”

 

 찬우는 고마우면서도 괜히 심술을 부렸다.

 

 “여행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침착해 보여. 전에 말썽만 부리던 예슬이가 좋았는데.”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까 정신 차려야지.”

 

 “그래봤자 아직도 어린 게.”

 

 “오빠한테만 어리지. 나 이제 복학하면 내가 나이 제일 많을 거야.”

 

 “복학하기로 한 거야?”

 

 “응. 졸업장은 따야지. 전공 살려서 직장도 구하고. 영화 해외 마케팅 쪽으로 준비할 생각이야. 내가 생각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예슬이 처음으로 진짜 미소를 지었다. 홀가분한 미소였다. 지난 두 달 동안 아무한테도 얘기 못하고 얼마나 우울해하고 답답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괴로움이라는 건 상대적이라서 다른 사람은 절대로 공감할 수 없다. 기분과 상태를 보고 함께 슬퍼하는 걸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부르지만 그 사람의 깊이를 전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슬픔과 기쁨을 나눌지도 몰랐다. 모르는 사람을 붙잡아서 힘듦을 토로해도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 진짜 모습이 들통난다손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함께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소식 자주 들려줘. 솔직히 두 달 동안 연락 끊었을 때 많이 실망했어. 적어도 나한테는 연락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해. 그래도 어떻게 연락해. 민석 오빠 룸메이트한테 연락하느니 사자굴에 들어가겠다.”

 

 “보고 싶었어.”

 

 “어?”

 

 “너 너무 갑자기 떠났잖아. 오늘 얼굴 보러 와줘서 고마워. 전화나 문자도 퉁 쳤으면 아마 더 삐졌을 거야.”

 

 “뭘……”

 

 로비에 사람들이 하나둘 많아지기 시작했다. 찬우가 손목시계를 보니 상영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가봐야 하지? 내가 너무 오랫동안 붙잡아놨네?”

 

 “응. 가볼게. 자주 놀러 와. 영화 보러도 오고. 공짜로 해줄게. 마케팅하려면 영화 많이 봐야 해.”

 

 “공짜는, 내가 거지도 아니고. 직원 할인만 해줘.”

 

 “알겠어.”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털털하게 웃었다.

 

 

 

 찬우는 예슬이 처음 영화관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수줍음과 작은 보조개가 인상적이었다. 지금보다 머리는 짧았고 생머리였다. 누구에게나 밝았고 일하는 데에 금세 적응해서 선배들에게도 이쁨을 받았다. 특히 성격이 비슷한 찬우와 예슬은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도 비슷했고 말하는 투도 닮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누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은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언젠가 우리 둘 다 영화관을 그만둔다고 해도 오빠랑은 계속 연락할 거 같아. 우리 진짜 전생에 남매 아니었을까? 물론 내가 누나.”

 

 언젠가 예슬이 그렇게 말했었다. 마감을 하고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럼 좋지. 맨날 괴롭힐 수 있는 친구 옆에 둘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나는 무슨. 철이나 들고 말해.”

 

 “내가 어때서!”

 

 두 사람은 어깨로 서로를 툭툭 치며 사이좋게 다퉜다.

 

 

 

 “조심히 가. 나 주말에 오프인데 밥 먹자.”

 

 상상 속에서 나온 찬우가 예슬을 배웅하며 말했다.

 

 “대신 오빠가 사줘. 승진 턱 내야지. 난 여행에 돈 다 써서 없어.”

 

 “그래. 우리 맨날 휴게 때 편의점 음식만 먹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된 거 먹자.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 와.”

 

 “좋아.”

 

 예슬은 작은 손을 흔들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힐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찬우는 문이 닫히고도 전광판이 1층에 다다르도록 엘리베이터 앞을 지켰다.

 

 . . . . . .

 

 “가벽 넘어지지 않게 모래주머니 단단하게 고정 시켜! 그거 쓰러지면 다치는 건 우리야!”

 

 연출이 지하극장에서 무대를 만들던 극단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막 못질을 끝내고 무대 뒤에 세운 가벽이 휘청이자 모두의 긴장감이 거친 숨소리로 변해 고조됐다.

 

 무대는 만들 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닥을 완벽하게 마감하지 않으면 삐져나온 가시에 찔릴 수 있었고 조명을 제대로 고정 시키지 않아 갑자기 떨어져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항상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망치, 못과 같은 공구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손이 긁히거나 작은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작은 극단의 경우엔 전문 무대 제작 스태프가 있는 게 아니라 배우든 작가든 전부 제작에 투입됐기 때문에 안전사고에 항상 노출돼 있었다.

 

 “조명 제대로 고정 시켰는지 확인하고! 사다리 조심히 오르내리고!”

 

 연출은 사람들이 안일함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질러대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얼마 되지 않는 극단 사람들이 목장갑을 낀 손으로 조금씩 조금씩 무대를 만들어갔다. ‘좋아하세요’의 기초 배경이 될 무대였다.

 

 “성현아. 오늘은 작가님 안 온다니?”

 

 못질을 하던 연출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성현은 가벽에 뚫린 직사각형의 구멍에 창문을 달다 말고 연출을 쳐다보았다.

 

 “오늘 한 번 찾아온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작가님 연락 오면 알려줘. 오늘 시파티라도 해야지.”

 

 연극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시파티와 쫑파티는 지켰다. 시파티는 말 그대로 연극을 시작하기 앞서서 하는 회식이었고 쫑파티는 연극을 완전히 마무리 지은 후에 수고했다는 의미로 하는 회식이었다. 술과 즐거움이 가득한 소소한 회식을 즐기며 사람들은 더더욱 끈끈해졌다. 그게 연극인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혜는 등퇴장로에 장식할 조화를 꽃꽂이하다 말고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민석이 온다고 했다. 민석이 함께 참여해서 동선을 만들며 조금씩 ‘좋아하세요’를 완성 시켜 나가는 것이다.

 

 “언니! 걱정하지 마.”

 

 희진이 지혜의 마음을 들여다보곤 귓속말로 말했다.

 

 “응.”

 

 억지로 대답은 했지만 사실 지혜도 지금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벌써 민석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지도 오래됐고 그를 향해 뛰던 설레는 가슴은 어느새 걱정과 민망함으로 변해있었다.

 

 

 

 ‘내일 만나고 싶어요. 단 둘이.’

 

 민석에게 그 문자를 받은 게 너무나도 까마득한 역사처럼 느껴졌다. 지혜는 그날 민석을 만나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철웅과 완전히 정리하고 마음 가는 대로.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석이 어린 여자애와 공연을 보러 왔을 때 처음엔 혼란스러웠고, 모욕스러웠고, 울고 싶었다. 무대에 선다는 게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런 식이고 싶지는 않았다. 지혜는 연기를 하고 싶은 거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이 들어서 어린 남자애와 눈이 맞았다, 젊은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이더라. 이런 소문은 두렵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소문이 사실이냐고 전부 물어올 것이고 곧 드러날 민석과의 나이차는 사람들의 험담과 그로 인해 밀려오는 심리적 두려움이 강조될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돈 없는 신인작가보다 대기업의 총수가 훨씬 좋아 보일테니.

 

 사람들은 얼마나 신이 나서 떠들어댈까. 이 좁은 연극판에서 어린 신인 작가와 늦은 나이에 데뷔한 배우가 만난다는 게 술 안줏감으로 얼마나 좋은 얘기일지는 지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말을 포장하고 좋은 얘길 한다손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진실을 알고 싶었다. 민석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나는 작가님에게 어떤 사람일까.’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답은 항상 ‘무지’였다. 어둡고 컴컴한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왜 아무 대답도 없는 거지.’

 

 아무리 해답을 찾아보려 해도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건 창조하거나 발명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난 어디로 가야 이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거지?’

 

 사실 이 대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지혜에게서 대답을 찾을 수 없다면, 이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방법밖엔 없었다.

 

 

 

 “작가님 오셨어요!”

 

 공구를 가지러 밖으로 나갔던 성현이 소리쳤다. 극단 식구들의 시선이 전부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지혜만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작가님 유령인 줄 알았잖아요. 무대 제작 할 때가 다 돼서야 오시다니.”

 

 “작품이 너무 좋아요. 왜 이제 나타났어요.”

 

 극단 식구들이 하던 걸 멈추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모두가 민석을 반겼다. 하지만 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간소한 인사만 할 뿐이었다.

 

 다행인 건 사람들이 민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 달 전 그 사단이 있고 지혜는 어쩌면 극단을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성현이 자리를 빨리 정리한 것도 있었고 극단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저 그런 성현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성현은 그 때의 일을 멀리 보내고 여전히 지혜가 훌륭한 배우임을 강조했다. 민석을 작가로 데려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저 한 사람의 재능만 알아보고 그 원석을 세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지혜는 괜히 손에 쥐고 있던 하얀색 꽃을 만지작거렸다. 여전히 고개는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내 발소리가 멈추고 고개 숙인 지혜의 시야에 한 쌍의 발이 보였다.

 

 “미안해요. 너무 늦게 왔죠.”

 

 민석이 지혜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혜는 고개를 완전히 들지는 못하고 민석의 손을 바라봤다. 참 그리운 손이었다.

 

 처음엔 그를 미워했다. 그 다음엔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그리워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도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래도 손을 꺼내 그의 손을 마주잡고 싶었다. 그와 함께 걸을 때 손이 살짝 스치면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와 팔꿈치만 부딪쳐도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싶었다.

 

 항상 그의 뒤에 있었다. 그가 먼저 손을 잡아주길, 그가 먼저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길, 그가 먼저 좋아한다고 얘기 해오길 기다렸다.

 

 이번에도 그가 찾아왔다. 지혜는 한 번도 먼저 걸음을 내딛은 적이 없었다.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왜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을까.

 

 지혜는 고개를 들어 민석을 보았다. 민석은 웃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지혜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웠어요. 지혜는 그 한 마디를 속말로 삼켰다. 그리고 이제는 지혜도 다가가고 싶었다. 얼마나 그에게 가고 싶었는지 몰랐다.

 

 처음 소개팅 때 소개팅 남과 헤어지고 민석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거기에 없었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연극을 보고 극장 앞까지 찾아왔다.

 

 ‘나도 이제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

 

 민석과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 중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한다는 말이었다.

 

 

 

 “우리 얘기를 글로 써줘서 고마워요.”

 

 지혜가 말했다. 뜻밖이었다. 민석은 어쩌면 둘만의 얘기를 허락도 없이 글로 옮겨 적어 지혜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얼굴을 당당하게 볼 수 있을까 수도 없이 밝은 표정을 연습했다.

 

 ‘최악의 연애가 도사린다’가 그랬듯이, 찬우의 새 시나리오가 그랬듯이. 실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언제나 조심스러워지니까.

 

 하지만 지혜는 고맙다고 했다. 민석은 두 눈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우리 얘기가 평생 글로 남아 항상 꺼내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그러면서 지혜는 민석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의 손바닥에 하얀 꽃을 올려놓았다.

 

 민석은 그 하얀 꽃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시들지 않을 조화는 그렇게 민석의 손 위에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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