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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당신의 밤을 가질 때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22.1.18

구미호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희귀 혼혈인 해나는 능력이 발현되지 않아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 납치당한 실험실 안에서
불완전한 구미호로 강제 각성을 겪으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에 시달리게 된다.

마녀를 사랑한 죄로 루만으로부터 추방당한 왕자,
유진을 유일하게 받아 준 한국에서의 첫날 밤.

유진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해나를 제압하지만 폭주로 인한
페로몬에 노출되고 그녀와의 밤을 보내게 되는데.

 
11 왕자의 여자
작성일 : 22-02-17 23:38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4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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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진정제 투여 마쳤습니다. 유팀장님."

 

 "수고 했어요. 고생 좀 했겠군요."

 

 "정해윤은 이제 거의 모든 진정제가 소용이 없어 마약성 진정제를 써야만 했습니다."

 

 "누이가 알면 또 한 소리 듣겠군..."

 

 

 

 

 

 

 그 누이가 함께 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만.

 

 

 

 

 

 

 온종일 해나의 행방을 찾던 해윤이었으나 찾을 수 없었음에 그의 상태는 지호조차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흥분과 걱정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를 얌전히 데려오기 위해서 남은 힘을 쥐어짜낸 지호는 사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지호의 상태를 눈치 챘던지 가까이 다가서려던 진명을 향해 짧게 고개를 내젓자 더이상의 접근없이 그는 목례만을 남기고 방을 나서기 위해 돌아섰다.

 

 

 

 

 

 진명이 완전히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얼어붙은 듯 고정된 시선으로 응시하던 지호가 붉게 충혈된 두 눈을 꼭 감으며 머리를 의자 깊숙이 기대었다. 엄지손가락 한마디 만한 구슬 두개를 손아귀 안에서 굴려대던 그가 기나긴 한 숨과 함께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야 속으로 모니터 속 해나의 얼굴이 들어오고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그가 스페이스바 위에 검지 손가락을 얹은 채 눌리지 않을 정도만 톡톡톡 쳐댄다.

 

 

 

 

 

 저택에서 가져 온 감시카메라들은 왜인지 구식 모델들로만 설치되어 있어 화질이나 음질의 품질들이 제법 떨어졌지만 육안으로 구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루만의 왕자와 해나의 실종이 연관되어 있음을 충분히 인지 할 수 있는 영상 속의 둘을 보는 지호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인간을 유혹하던 해나를 보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보다도 지호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왕자와 해나 사이에서 느껴지는 유대였다.

 

 

 

 

 

 

 그들 사이에 어째서 어떻게 유대감이 싹튼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해나를 바라보는 유진의 시선을 불쾌하게 응시하며 지호는 날카롭게 돋아나는 송곳니를 갈아댔다.

 

 

 

 

 

 

 "왜 그런 눈으로 정해나를 보는 거야?"

 

 

 

 

 

 

 불과 반나절 전만 하더라도 거침없이 동족들의 목숨을 끊어놓던 그의 감정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 그의 눈빛에 스며들어 있었다. 영상을 되돌려 자신의 품을 빠져나가는 해나를 끌어 당기는 유진의 두 눈을 차갑게 응시하며 지호가 계속해서 구간을 반복시키고 있었다.

 

 

 

 

 

 

 처음엔 인간을 구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그였지만 놀랍게도 그에게 인간은 안중에도 없는 관심 밖의 인물일 뿐이었다.

 

 

 

 

 

 

 처음엔 영상 속의 인간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저택의 소유자가 한지광의 부인이란 것을 알아내니 그 곳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도, 밀회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실종된 소유자의 남편 뿐일거란 추측에 지호는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의 측근보다도 어째서 그의 관심은 온통 해나에게 쏠려버린걸까.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는...

 

 

 

 

 

 

 "정해나가 인간이 아니란 사실 쯤은 이미 알고 있잖아. 왜 죽이질 않는거지?"

 

 

 

 

 

 

 자신의 손에 묻은 피가 그녀의 동족임을 모를리 없을 그의 이해불가한 행동을 계속 지켜보던 지호가 기어코 감기려 드는 눈꺼풀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만다.

 

 

 

 

 

 버티기 힘든 무거운 눈꺼풀과 탈진에 가까운 몸의 상태에 더는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적어도 잡아 먹을 눈빛은 아니었었지."

 

 

 

 

 

 

 기절할 듯이 밀려드는 나른한 기운에 온몸이 녹아들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부디 그의 손이 또 다시 피에 젖어 있지 않기를 빌며 지호는 깊은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

 

 

 

 

 

 

 "잡아 먹을 듯 한 눈빛이네."

 

 

 

 

 

 동이 터올 무렵임에도 유진의 품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해나는 자신의 얼굴로 쏟아지는 유진의 거칠며 한없이 더운 그의 숨결에 현실을 끝없이 자각하며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네 얘길 하는 건가? 날 보던 눈빛이 그러하던데."

 

 "그럴리가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날 바라보던 왕자님의 얘기지요."

 

 

 

 

 

 이젠 가벼운 농담마져도 오갈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무겁게 짓누르던 그의 더운 몸이 떨어져 나가고 해나는 몸을 굴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이불 속을 파고 들어갔다.

 

 

 

 

 

 "씻고 자는 게 어때?"

 

 "설마 같이 씻자는 거예요?"

 

 "먼저 씻는다면 기다릴 셈이야. 우리가 그럴 사이까진..."

 

 "몸은 어때요? 내가 효과가 있었어요?"

 

 

 

 

 

 

 빼꼼히 고개를 들고서 물어오는 해나에게 유진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처음 밤을 보냈던 그 이후처럼 정말 씻은듯이 나아진 몸이었지만 또다시 증세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유진의 마음이 읽혔던지 조금은 실망한 얼굴로 해나가 다시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우린 그냥 서로에게 임시방편인 사이네요. 난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내가 말 실수라도 한 건가?"

 

 "아니예요. 먼저 씻고올래요? 난 왕자님보다 체력이 한참이나 부족해서 영 힘이 안나네요."

 

 

 

 

 

 멀어지는 유진의 발걸음 소리 뒤로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가 이어졌다. 가만히 엎드려 있던 해나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로 그와 함께 오랜 밤을 보낸 침대 위를 바라 보았다.

 

 

 

 

 

 팔찌만 찾는다면 바로 종료될 관계라 생각했다. 아니 급한 마음에 거기까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도움을 청할 곳이 그 뿐이었고 그로인해 벌어질 일들 따윈 그려볼 새도 없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만에 팔찌의 분실이 살인 미수로 이어졌고 또 눈에 띠지 않도록 숨어 다녀도 모자랄 판에 인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뱀파이어 왕자의 여자.

 

 

 

 

 

 잔뜩 구겨지고 헝클어진 이불만큼이나 상황이 혼자선 수습해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유진과의 관계를 해윤이 알게 된다면 그의 귀에 들어가버린다면 그 후에 벌어질 아찔한 상황에 해나는 두눈을 질끈 감고 만다. 앞뒤 상황 잴 것 없이 해윤은 곧장 유진에게 덤벼들 것이 분명하고 그로 인해 꽁꽁 숨겨져 있던 버닝테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라도 하면 그땐 대의를 위하여...

 

 

 

 

 

 "소를 희생시키려 들겠지. 끔찍해."

 

 

 

 

 

 유지호는 해윤과 자신을 죽이려 들게 뻔했다. 그에게 있어 버닝테일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베일에 싸인 보스를 위한 그의 충성심은 이루말할 것도 없고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동족들을 모아 지금과 같은 세력으로 성장하기까지 그의 공이 컸음을 익히들어 알고 있기에 해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해윤이 아니라도 그가 문제였다. 지호의 귀에 이일이 들어간다면. 인간들의 편에 선 뱀파이어 왕자와 은밀하게 만나왔음을 그가 눈치 챈다면 그땐 어떡해야 하는 건지 해나는 좀처럼 그 어떤 판단도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었던 거지?"

 

 

 

 

 

 죄책감이 잔뜩 실린 유진의 음성이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해나의 앞에 온 몸이 젖은 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유진이 불편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기적이었다뇨?"

 

 "폭주도 아닌데 억지로 내게 안겼잖아. 내 몸이 회복될 때까지 강제로..."

 

 "내가 먼저 제안했던건데 이기적일게 뭐있나."

 

 

 

 

 

 해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상대를 속이며 내면을 감출 수 있는 가장 손 쉬운 방법에 모두가 그래왔듯이 그 역시 자신의 마음을 방관할거라 생각했지만 유진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돌아서는 대신 말릴새도 없이 해나를 품에 안아들었다.

 

 

 

 

 

 "앗 차가워요!"

 

 "따뜻하게 씻겨줄게."

 

 "네? 뭐라구요? 따뜻하게 뭘 해?"

 

 "우리 관계에 연모는 없다지만 아무 감정이 없는 건 아니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유진의 말을 잔뜩 당황해 새빨개진 얼굴로 곱씹던 해나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발끈하기 시작했다.

 

 

 

 

 

 

 "고맙다고 날 씻겨준다는 거예요?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우리의 역할은 침대 위에서까지만이예요. 알겠어요?"

 

 "인지하도록 하지. 하지만 고마운건 별개고 우리의 계획 역시 별개야."

 

 "우리의 계획이라니요? 이봐요! 이봐요! 내려줘요! 뭐하는거예요!"

 

 

 

 

 

 욕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 사색이 된 해나가 유진의 가슴팍을 쳐대기 시작했다. 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치는 해나를 안고서 욕조 앞에 다다른 유진이 그녀를 뽀얗고 보드라운 거품으로 가득한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연인이 되기로 한 이상 침대에서만이 아니라 늘 연인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말은 바로해야죠. 우린 척만 하는 거잖아요. 연인인척!"

 

 "그래서... 진짜 연인이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아무래도 내 역할은 여기까지겠지. 씻고 잠드는 게 좋을거야. 그 가득한 근심들을 털어내기에도."

 

 

 

 

 

 몸을 낮추어 욕조 안의 해나와 두 눈을 맞춘 그가 젖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생각도 읽고 그래요?"

 

 "아니? 그런 재주는 없어. 생각보다 별 재주가 없지. 영화나 소설같은건 허구일 뿐이고."

 

 "하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들과 달리 당신은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잖아."

 

 

 

 

 

 자신도 모르게 유진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던 해나였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서 따뜻하게 감겨오는 목욕물의 온도에 기분좋은 나른함을 만끽하던 그녀가 문득 깨달은 현실 속 자신의 행동에 놀라 급히 손을 떼어내려하자 유진은 해나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며 더욱 자신의 뺨을 부볐다.

 

 

 

 

 

 "사실은..."

 

 

 

 

 

 스르륵 감긴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창백한 살갗과 대조적인 그의 속눈썹이 길고 곧게 뻗어내렸고 곧 그 밑으로 투명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오랜 시간동안 혼자였기에 누군가의 품이 너무도 그리웠거든."

 

 

 

 

 

 다시 한차례 가늘게 떨린 그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촉촉이 젖은 그의 두 눈에 측은히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미안해. 독 때문이 아니라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널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눈물이 전염되는 것 일까. 감정이 전염되는 것일까.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려버리는 유진을 아프게 바라보던 해나가 눈물을 머금은 채 흐느끼는 그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이미 차게 식어버린 그의 몸과 흐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 되게 닮았었구나. 많이... 아주 많이."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의 그리움이 닿아있는 곳을, 그 이름을.

 밤새 독의 고통에 신음만을 토해내던 그의 입에서 희미하게 흘러 나왔던 그 이름을 만약 다시 꺼낸다면 그는 무방비로 무너질져 버리고 말 것이다. 기억만으로도 그리움만으로도 이토록 아파하는 유진이니.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었다.기어코 외면하고만 싶었던 해나의 아프고 위험한 감정이 다시 떠올려진다.

 

 

 

 

 

 

 유진의 등을 쓸어내리며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 질끈 감아버린 해나가 후우하고 무거운 숨을 뱉어냈다. 애써 감춰두었던, 가려두었던 감정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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