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
 1  2  3  >>
 
자유연재 > 일반/역사
증명할 나이
작가 : 계춘
작품등록일 : 2022.2.14

세명의 중년 여성의 서로 다른 삶을 적은 글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안타까움보다 해결할 것들에 대한 여자들의 압박감에 대해 썼습니다.

 
증명할 나이
작성일 : 22-02-17 11:31     조회 : 167     추천 : 0     분량 : 1025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해해 달라는 지훈의 부탁으로 그 일은 잘 마무리가 되는 듯 했다.

 

  윤단은 개신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결혼은 사랑과 믿음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나름 그 시대의 전문직이었고, 다른 중매 자리도 여러 번 들어왔었다. 하지만 저울질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결혼을 해도 생활비는 윤단이 해야 할 것이고, 지훈이 직업을 갖기 전까지는 윤단이 가장이다. 예비 시어머니가 이런 것까지 생각했다면 이렇게 예의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

 

  결혼을 하더라도 호텔일은 열심히 하였다. 경제가 좋아지고 월급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돈 쓸 곳이 필요하고,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바란다. 여러 나라에서 오는 여행객들도 늘어날 것이고,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냥 편하게 쉬고 싶어서 호텔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단은 이런 호텔 사업을 낙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이쪽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이런 윤단에게 결혼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싫었다.

 

  지훈을 만난 그 다음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둘러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달려가며, 호텔리어로써 품위를 지키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잘 못 본 줄 알았다. 벨 보이의 안내를 받으며 윤단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전시어머니였다. 갑자기 공황장애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어머님, 어쩐 일이세요?”

 

  “내가 너희들 같이 보고 말하고 싶었는데, 지훈이는 지금 공부중이잖아. 방해가 될까봐서 너하고 먼저 이야기 하려고 왔어.”

 

  “상견례 때 주신 목록 때문에 오신 거죠?”

 

  “응, 단아, 엄마는 너희들이 결혼을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네. 지훈이 학위 받고 교수가 되면, 아니면 그냥 대기업에 들어가면 그 때 결혼하면 안 되니? 난 이렇게 어설프게 결혼 하는 거 싫거든. 그 목록도 아주 마음을 내려놓고 적은거야. 너희 집 형편도 고려해서. 난 우리 아들 밀어 줄 수 있는 처가가 있으면 좋겠어.”

 

  윤단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며느리와 그 집안이 마음에 안 드니 결혼하지 말라는 거였다. 돌아가는 길에 고개를 돌리시더니 유니폼이지만 치마가 너무 짧다고 저렴하게 느껴진다는 말까지 하셨다. 가난한 집의 호텔리어, 자체가 싫은 거겠지.

 

  ‘지훈은 뼈 속까지 아프게 말하는 어머니를 알고 있을까?’

 

  그 시절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랬듯이 윤단도 예비 시어머니와의 나쁜 일은 지훈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이해하지도 모두 믿지도 않을 테니까. 참고 이해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이었다.

 

  “지훈씨, 어머님께서 호텔에 다녀가셨어.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시고 가셨는데, 지훈씨가 어머님과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어머님은 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아. 금요일에 오전 퇴근이니까 그 때 만나서 얘기해”

 

  그 날 호텔 회식이 있었다. 호텔리어들은 모두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팀끼리 나눠서 약속을 잡았다. 가까운 연대 앞으로 가기로 했다. 대학 앞이라서 음식 값이 싸기도 했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좋았다.

 

  그 시절 대학생들은 일단 입학을 하면 논다. 지금처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졸업을 하면 갈 곳도 많고, 4년제 대학을 나오는 인원도 많지 않아서 눈만 조금 낮추면 일 할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역시 대학생들이 많았다. 그 때는 무슨 뒤풀이가 그렇게 많았던지. 남자들은 여자 얘기, 여자들은 남자 얘기로 시끄러웠다. 그리웠다. 저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자유롭고 활기찬 학생들의 목소리가 좋았다. 부러웠다.

 

  윤단은 조금 억울했다. 열심히 살았던 시간의 결과를 생각했다.

 

  “윤단씨, 결혼 준비는 잘 하고 있어요?”

 

  “준비라고 할 게 있나요? 그냥 식 올리고, 살 집 구하고, 그러면 되죠. 참, 팀장님은 휴가가 언제라고 하셨죠?”

 

  윤단은 직원들이 결혼에 대해 질문하는 게 싫어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지훈은 아버지께 도움을 청했다. 어머니 때문에 이 결혼은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예상이 되었다. 급한 불부터 꺼야 해서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비상금을 일단 빌려 주셨고, 지훈이 취직이 되면 그때 갚기로 했다. 물론 어머니께는 비밀이었다.

 

  “단아, 아버지가 2000만원을 빌려 주시기로 했어. 그리고 다른 예단은 더 간소하게 할게. 이 일은 어머니는 모르는 일이니까 말 할 필요는 없어. 네가 기분이 나쁠 거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나를 돕는다고 생각해 줄래? 난 결혼 늦추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그 돈은 내가 돈 벌어서 꼭 갚을게. 힘들게 해서 미안해.”

 

  지훈은 드라마에 나오는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남자 주인공 같은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은 여자에게 불리한 게임이라는 것은 알았고, 윤단이 힘들지 않게 최대한 배려를 했다.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그 때는 너무도 따스한 남자였다.

 

  시어머니는 예단비를 받았고, 받고 싶어 하셨던 밍크코트는 윤단이 선물로 사 드렸다. 아들을 결혼 시키고 엄마들의 모임에 밍크코트 입고 가는 것은 필수였던 시절이었다. 그게 그 사람의 위치를 알려주듯이 말이다.

 

  그 일로 꽤 많은 이익과 손해를 보았다. 결혼은 많은 이해타산이 들어가는 행사이다. 누가 이익이 되었는지는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

 

  이혼하고 마음으로는 처음 갖는 아침이었다. 지훈이 아이들의 등교를 돕거나 하교 후 저녁을 챙기는 아빠는 아니었기에 그의 부재는 힘들지 않았다. 친정 엄마도 늘 곁에 있었고, 호텔일도 나쁘지 않게 해 내고 있었다.

 

  “엄마, 오늘 저녁 타임 인거 알고 계시죠? 애들 아침 꼭 먹이고 학교 보내주세요.”

 

  “그럼, 요즘 애들이 밥을 얼마나 잘 먹게. 할머니랑 죽을 때까지 같이 살고 싶다고 하더라. 걱정 말고 잘 다녀오기나 해.”

 

  엄마는 늘 응원만 할 뿐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윤단은 그게 더 슬펐다. 늦은 오후 출근은 같은 시간 일을 하더라도 힘들었다. 할 일은 많지 않지만 늘 긴장하고 일을 해야 했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나가는 순간 윤단은 멈칫했다. 결혼하기 전 예단 이야기를 하러 호텔에 왔을 때처럼 전 시어머니가 아파트 앞에 서 계셨다.

 

  “어멈아, 내가 왜 왔는지는 알고 있지? 지훈이 일본에 갈 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는 했어. 하지만 이혼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니? 그러게, 이럴까봐 결혼하지 말라고 했잖아. 우리 지훈이 인생 망친 거 어떡할래? 너는 우리 지훈이와 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이제 알겠니?”

 

  어의가 없었다. 이혼의 원인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먼저, 이렇게 약속 없이 찾아오지 마시구요. 저 이제 며느리 아닙니다. 그리고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정말 이혼을 왜 했는지 몰라서 그러세요? 저 지훈씨 싫지 않아요. 결혼생활 10년이 넘어가면, 다들 힘든 일 몇 가지씩은 갖고 사는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서로의 문제로 이혼하지 않았어요.”

 

 “애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른 이유라면 그럼 우리 지훈이가 바람이라도 피웠다는 거니?”

 

  “아뇨, 지훈씨는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남편이었어요. 우리 사이의 문제는 오직 지훈씨 어머니셨죠. 다시 찾아오지 마세요.”

 

  윤단은 출근이 늦어질 것 같다고 말하고 얼른 차를 타고 떠났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상황 이야기를 하고, 초인종을 눌러도 열어주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들어가서 난리를 피울 사람이었다.

 

  출근을 하고 그날 일에 대해 지훈에게 메일을 보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고 또 그러면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이제 윤단의 일이 아니었다.

 

  저녁 타임은 새벽 2시부터 쉬는 시간이 있다. 최소한의 필요한 인원만 있고 다른 사람들은 직원 휴게실에서 쉬는 시간을 가진다. 저녁에는 객실 청소 이외의 청소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객실 직원들은 자리를 피해 주어야 하기도 했다.

 

  윤단은 휴게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후의 일도 그렇고, 이혼 후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아서 머리가 복잡해 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호텔 주위의 정원을 돌아다니면 머리가 맑아졌다. 그 날도 운동화를 갈아 신고 조용한 저녁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윤단씨.”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남자 두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구? 저 아세요?”

 

  “나다. 네 오빠.”

 

  윤단의 오빠와 직장동료가 서 있었다.

 

  “하하하, 오빠. 여기는 무슨 일이야? 집이 코앞인데 호텔에서 뭐해?”

 

  윤단의 오빠는 이 호텔에 워크숍이 있어서 왔고, 하루쯤은 집에 가기 싫어서 호텔에 묵는다고 했다. 공짜니까. 윤단의 오빠는 누가 뭐래도 가정적인 남편에 아빠였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집에 가기 싫을 때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작은 일탈은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런 우연들이 신기해서 윤단은 그들과 커피 한잔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와 같이 있던 직원도 불편하지 않았다. ‘이게 이혼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직원은 눈치가 빨라서 객실로 일찍 들어가고 윤단과 오빠는 이혼 후의 삶에 대해서 많은 걱정과 고민을 같이 하였다. 이럴 때는 형제가 중요하다.

 

  아침이 되어서 손님들의 체크아웃이 끝나면 윤단의 일은 끝난다. 손님들의 배웅을 끝내고 객실의 상황 파악만 되면 퇴근, 하지만 그 전에 지훈이 메일을 보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답장이 와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적혀 있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불쌍했다. 이런 상황, 우리 모두가 불쌍했다.

 

  누구 한명이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 무릎 꿇어야 하는 나와 지훈,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아이들이 있었다.

 

  이혼에 가해자는 있는 걸까? 바람피우는 배우자, 도박에 빠진 배우자, 술에 절어 폭행하는 배우자, 시집살이, 경제적인 압박감 등등 이 모든 것이 직접적인 이유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이혼 그 자체는 쌍방이다.

 

 -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당연히 친정에 먼저 들른다. 결혼 후 친정에는 갈 수 없었던 시절의 잔재였다. 공항에 도착 한 후 지훈의 집에 전화를 했다. 잘 도착했다는 안부 전화였다.

 

  “어머니, 잘 다녀왔어요. 저희는 정릉으로 갈게요.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아가, 지훈이 옆에 있니?”

 

  “아뇨, 지금 정릉에 전화 드리고 있어요.”

 

  “잘 되었네. 아가, 친정에 가는 거는 이번이 끝이라고 생각해라. 부모님 생신과 명절에만 잠깐 다녀오는 걸로 해. 네 어머니께도 잘 말씀드리고.”

 

  어의가 없었다. 무슨 가마타고 시집가는 조선 시대도 아니고 막 여행 다녀온 며느리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거기다 지훈에게는 시시콜콜 말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동대문에 내려서 택시를 갈아 타야했다. 짐도 많은데다 버스를 갈아타고 걸어가기 싫었다. 윤단은 어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친정에 가야하는데 미리 기분이 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지훈씨, 우리 집에 가는 게 힘들어?”

 

  “아니, 그냥 좀 어렵지. 그런데 갑자기 왜?”

 

  “아니, 난 지훈씨 집에 가는 게 좀 싫거든. 아직 시댁이라는 곳이 좀 그렇잖아.”

 

  지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늘 곤란한 대화에서는 말을 아끼는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따뜻한 위로의 말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딱 그 시대의 남자였다. 지금이라고 많이 바뀐 것은 없지만 말이다.

 

  친정에서의 신행이 끝나고 다음 날 시댁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윤단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어왔다. ‘어제는 그냥 하시는 말씀이었겠지’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눈물바다가 되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가까운 거리에 살 것이고 자주 얼굴을 볼 수도 있는데 왜 시집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바뀌고, 바꾸어야하는 일로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식민지 시대에 살았던 할머니에게 키워진 엄마와 그 엄마 밑에서 큰 우리시대 여자들은 여전히 그랬었다.

 

  부탁한다는 친정 엄마의 말 한 마디로 그 자리는 종료 되었다.

 

  따뜻하지는 않지만 춥지도 않은 날씨였다. 지난 가을에 남아있던 낙엽들이 굴러다니고 신호등은 빠르게 초록불로 바뀌었다. 지훈의 집에 가는 길은 빨랐다. 가기 싫었나보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서는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며느리 모드로 들어갔다. 신행이 끝나고 시댁으로 가면 친정엄마는 몇 가지 음식을 싸 주신다. 며느리 집의 음식을 소개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낯선 시댁에 가서 힘들어 할 딸을 위해서 보내는 것이다.

 

  윤단은 친정 엄마가 보내신 음식을 꺼내서 상을 차렸다. 친구들에게 듣기로는 결혼 후 처음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가 상을 차려 놓는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지훈의 엄마는 과일 하나도 차려 놓지 않았다.

 

  “이게 너희 어머니께서 보내신 거니? 내가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네. 내일 갈 때 모두 가져가라. 우리 집에 두면 다 버리겠다.”

 

  저녁식사를 하고 설거지와 방 청소를 하고 잘 준비를 하였다. 친정엄마는 사위가 처음 온다고 해서 새 이불도 사 놓고 방 청소도 깔끔하게 해 놓으셨다.

 

  “어머니, 이불이 어디 있을까요?”

 

  “응, 장에서 아무거나 가지고 가. 침대가 일인용이라서 너는 바닥에서 자야겠네.”

 

  눈치가 없는 건지 지훈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처음 시댁에 와서 이런 저런 일을 다 하고 있는데 걱정도 안 되었나보다. 화가 났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신혼집으로 갈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옷을 입으셨다.

 

  “엄마, 어디 가요?”

 

  “어디 가긴, 너희 집에 가야지.”

 

  “네? 왜요? 저희 집에 가서 좀 쉬어야 해요. 단이는 내일 출근해야 하고, 저도 학교에 가야 해요.”

 

  이런 저런 살림도 가르치고 어차피 왔다 갔다 할 거니까 며칠 같이 있겠다고 하셨다. 도와주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지훈도 그랬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더욱 거절 할 수 없었다.

 

  “단아, 이번만 엄마랑 같이 가자. 처음이라서 도와주시고 싶으신가봐. 너도 내일부터는 출근이니까 힘들지 않을 거야. 미안. 빨리 가시라고 할게.”

 

  윤단은 그렇게 말하는 지훈이 미웠다.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을 안다면 먼저 엄마를 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지훈은 불화를 만들기 싫어했다. 그냥 며느리가 조금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결혼을 하고 사람들은 모두 배우자들이 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마음이 변하는 것일 뿐 그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코를 곯고 자는 모습을 보았을 때, 연애 할 때는 그 사람의 힘든 모습이 측은했겠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다음 아침이 되었을 때 괜히 짜증부터 내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배우자에게 책임을 돌린다.

 

  하지만 윤단과 지훈 사이의 일은 마음이 변한 배우자끼리의 사소한 다툼이 아니다. 이혼까지 갈 때에는 두 사람의 사랑과 의리로 해결할 수 없는 딱딱하고 두꺼운 벽이 있었을 거다.

 

  윤단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댁의 경조사는 꼭 챙겼다. 며느리로써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다. 그 날도 시댁 작은아버님 아드님이 결혼하셔서 시부모님과 같이 예식장에 가게 되었다.

 

  “아이고, 형님, 그동안 잘 계셨죠? 우리 며느리에요. 결혼식장에서 보고 처음 보시죠?”

 

  시어머니는 여러 가족들에게 윤단을 소개했다.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휴, 여기는 왠 일이야? 너 우리 시동생 아는 거야?”

 

  “아니, 너 몰랐어? 너의 동서와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나저나 소현이 얘기 들었니? 이번에 며느리 봤는데 이비인후과 의사라고 하더라. 그 아들 박사학위 받고 지방사립대에 임용 되었잖아.”

 

  “응, 그랬구나. 잘 되었네.”

 

  시어머니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시댁으로 가던 시어머니는 윤단에게 그냥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 날은 피곤해서 쉰다고 했다.

 

  며칠 후 시어머니의 생신이 되어서 윤단과 지훈은 주말에 시댁으로 갔다. 평일에는 시간이 되지 않아서 월차를 내고 갈 수 있었다. 윤단은 잘 하는 요리는 아니지만 정성을 다해 생신 상을 차렸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려요. 잘 하지는 못하지만 맛있게 드셔주세요.”

 

  “고맙다. 애썼네. 다음부터는 그냥 밖에서 외식해도 돼.”

 

  그렇게 말씀 해 주시는 시어머님이 고마웠다. 힘들었지만 상을 차린 보람이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러 부엌으로 갔다. 음식을 하는 것도 상을 차리고 치우는 것도 모두 윤단의 몫이었다. 하지만 힘든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가, 다음부터는 이런 상은 차리지 마라. 그 때 들었던 의사며느리는 음식을 못해서 호텔 주방장을 데리고 와서 음식을 차렸다고 하더라. 그 정도는 아니라도 이건 너무 소박하지 않니? 그리고 너는 그렇게 바쁘고 훌륭한 직업도 아닌데 좀 더 신경 쓰지 그랬니? 내가 친구들에게 자랑 할게 없네.”

 

  시어머니는 항상 지훈이나 시아버님의 앞에서는 좋은 말씀만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지훈에게 해도 모두 사실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아주 객관적인 사람이었다. 그냥 본인의 어머니가 깐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래서 윤단은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았고 하기 싫었다.

 

  한 번은 지훈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며 시댁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공부하는 아들이 힘들까봐 뭐든 며느리만 시켰다. 항상 그러셨기 때문에 퇴근 후 그냥 시댁으로 갔다. 현관문 초인종을 누르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몇 번을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으로 전화를 했을 때 벨 소리는 들렸다.

 

  ‘왜 아무도 없나?’

 

  윤단은 30분이 넘게 초인종을 누르고, 부르며, 문 앞에서 기다렸다. 핸드폰이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시부모님 두 분 모두 갖고 있지 않으셨다.

 

  “아가, 너 여기서 뭐하니?”

 

  “아버님, 어머님께서 오늘 퇴근하고 집으로 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집에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아요.”

 

 “응? 너희 시어머니 집에 없을 거야. 오늘 시골에 계모임이 있어서 거기 갔어. 나도 갔다가 몸살기가 있어서 먼저 집에 왔다. 아마 내일 오실 텐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어의가 없었다. 분명 오늘 7시에 집에 오라고 하셨다. 그것도 지훈이 신경쓸까봐 말하지 말라는 말씀도 분명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의 황당한 일을 말하고, 자꾸 시어머님이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물론 지훈은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했고, 내일 전화 해 본다고 했다.

 

 -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계절의 변화다. 윤단은 아이들과 아파트 단지의 꽃구경을 하러 나왔다. 아이들이 어려서 멀리 가는 것은 힘들기도 했지만, 마침 꽃이 가득한 단지에 사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을 해서 저녁에 퇴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당번은 늘 윤단이 해야 했다.

 

  꽃비가 내리고 따뜻한 바람이 아팠다.

 

  교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두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시선이 머물렀을 때 윤단은 그 여학생들이 부러웠다.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것은 어른의 눈에는 나빠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을 한 장면만 보고 따질 수는 없다.

 

  뒤에 탄 학생이 내리려는 듯 윤단의 앞에 오토바이가 멈추었다. 영화에 보는 것처럼 긴 머리를 날리며 헬멧을 벗지는 않았지만 윤단의 눈에는 나름 멋있는 장면이었다.

 

  “애들아, 어디가?”

 

  갑자기 질문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한 페이지에 들어가고 싶은 거였다.

 

  “알바가요. 왜요?”

 

  뒷좌석에서 내리던 학생이 대답을 했다.

 

  “아니, 너희들의 웃음소리가 부러워서.”

 

  “그럼 앞자리에 있는 친구도 알바를 하니? 우리 호텔에서 주말에 정원 정리 도와주는 알바 구하고 있는데, 와볼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앞에 앉은 학생은 주말마다 학원이 4개나 있어서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은 친구가 알바에 늦을까봐 집에 가는 길에 데려다 주는 거라고 했다.

 

  윤단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왜 어른이 되면 모든 일들을 색 안경을 끼고 보는지 반성했다. 멀리서 보면 이 학생들은 날라리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시간을 아끼고 열심히 살아서 부모님의 신뢰까지 얻고 있는 모범생들이다.

 

  그런 반성을 하고 그 학생들과 인사를 하였다.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 지 문득 걱정이 되었다.

 

  윤단은 자유롭고 자존감 넘치게 살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에 사과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단단하고 성실하게 자신을 위하며 살겠다고 다짐도 하였다. 그게 먼 훗날 아이들에게 엄마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지훈이 시어머니께 전화를 하였다. 윤단이 겪었던 일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전화를 했다면 그 상황은 더 쉽게 끝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모든 일에 신중한 지훈은 그 때도 여러 번 생각을 하고 전화를 했었다. 물론 시어머니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했고, 시간이 날 때 7시쯤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분명 거짓말이었다.

 

  그런 일들은 자주 있었다. 다른 모든 시어머니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저 상상만 하다가 시간이 가고 어떤 일에 부딪히면 화를 내고 싸운다. 보통은 그렇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증명할 나이 2022 / 2 / 28 171 0 7503   
9 증명할 나이 2022 / 2 / 25 165 0 5440   
8 증명할 나이 2022 / 2 / 23 173 0 6511   
7 증명할 나이 2022 / 2 / 20 177 0 7829   
6 증명할 나이 2022 / 2 / 18 174 0 6583   
5 증명할 나이 2022 / 2 / 17 170 0 8648   
4 증명할 나이 2022 / 2 / 17 168 0 10250   
3 증명할 나이 2022 / 2 / 15 181 0 7227   
2 증명할 나이 2022 / 2 / 14 177 0 2784   
1 증명할 나이 2022 / 2 / 14 285 0 249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