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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국경의 휘파람
작가 : 혜성처럼
작품등록일 : 2022.2.5

한양 공화국 공무원 김종서의 9급 시절부터 2급까지의 파란만장 승진일기.
위인 김종서가 아닌 인간 김종서의 모든 것.

 
2.내 친구 복면거사
작성일 : 22-02-15 21:13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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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내 친구 복면 거사

 

 닭 울음 소리.

 딱히 첫 닭소리에 귀가 트여서가 아니라

 자기전에 들이마신 한 바가지의 물이 딱 이 시간 소피줄을 터뜨리려는 거다.

 어쩌겠나

 더 자겠다고 부벼댔다간 그 따스한 이부자리에 오줌바다를 만들 수도 있다.

 벌떡 일어나 자리를 정돈한다.

 아무리 급해도 옆에 누운 어머니 배게랑 이불 여며드리기는 소홀할 수 없다.

 

 소피도 봤겠다, 찬바람을 쐬고 나니 잠이 싹 가신다.

 종서가 3년 전 첫 대과에 낙방한 후 새벽잠을 버리기로 작정하며 써먹은 이 방법이 효과가 좋다.

 오늘도 종서는 물동이를 양어깨에 지고 고을 공동 우물터로 가서 물을 떠 온다.

 부엌 입구 항아리 두 개를 가득 채우기까지 5번 왔다갔다 했다.

 허기가 심하게 올라왔지만 꾸욱 참고 부뚜막 앞에 앉아 책을 편다.

 아궁이에 남은 불이 동트기 전까지 남은 어둠속에서 종서의 책을 밝혀줄 것이다.

 

 어제까지 중용을 점검했다.

 수없이 외고 또 외워 한 글자 한 글자의 책속 위치까지 생생하다.

 오늘은 시경을 외며 확인해봐야겠지만 건너 뛰기로 한다.

 그러다 예기까기 와버렸다.

 시경을 외자면 맘이 금새 신산해지고 주역은 경서칠책 중에 제일 호감이 가질 않고

 춘추를 보다보면 생각이 삼천포로 빠질 것 같아서다.

 사실은 책 때문이 아니다.

 만난 지 달포도 안된 그 복면 거사 생각을 하면 무슨 책이든 글자가 눈앞에서 따로 놀게 된다.

 

 그날 종흥이 대신에 인왕산서 나무를 해오는 길이었다.

 어머니가 글공부가 바쁜 종서를 배려해 나무는 종흥이 해야 했지만 고뿔이 단단히 난 아우님을 위해 종서는 하루종일 나무짐을 날랐다.

 방안을 오래 오래 달궈서 벌벌 떠는 아우의 고역을 덜어주고 싶었다.

 마지막 짐을 나르고 이제 집에 가면 어머니가 차려줄 김 모락모락한 밥을 생각하니 지게짐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깨끈 추스르느라 잠시 눈을 돌린 그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며 나자빠지는 종서.

 등나무 가지로 조여놨던 나무짐이 와르르 쏟아진다.

 어이없어 눈을 부라리던 종서는 이내 눈꼬리를 내린다.

 굶주림인지 병색인지 맥아리도 없어 보이는 촌부가 겁에 잔뜩 질려 두 손을 조아린다.

 ”살려 주십시오. 저 좀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만한 일로 살려달라 말라 할 것인가?

 오줌 냄새에 찌든 고쟁이는 둘째치고 온 얼굴에 핀 하얀 곰팡이 버짐을 보아하니 달포는 너끈히 굶었을 법한 세상 비루한 몰골이다.

 하도 참담하여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우선 종서는 자기를 눌러매고 있는 지게 어깨끈에서부터 놓이는 게 우선이다.

 “알겠소 알겠소.

 둘 다 한눈을 팔 수 도 있지

 가던 길 가시오. 내 사정도 급하오.”

 지게에서 몸을 돌려 빠져나오니

 사내는 어느새 두 명의 장정들에게 양쪽으로 꽁꽁 팔짱을 끼여 있었다.

 이건 또 무슨 판대기인가?

 “살려주십시오 , 난 아무 죄도 없습니다.”

 “얼른 끌고가”

 일행을 인솔하고 있는 나졸이 몸을 돌려 돌아서 가려 한다.

 “여보시오, 무슨 사정인지 일단 알고나 봅시다.

 달기골 김가 종서라 하오.”

 내가 그 나랏일이란 것에 하대받을 지체는 아닐세”

 “....채무 송사요. 됐소?”

 “....”

 “뭣들해 , 자네들은 어서 걸음 서두르지 않고!”

 

 그렇게 떡대들에 거의 끌려가듯 멀어져가는 촌부의 모습을 보는데 종서의 명치를 건드리는 이 찝찝함을 어찌할 수 없다.

 종서는 지게짐을 진 채로 달려 그들을 따라 잡았다.

 “무슨 송사요?

 무슨 송사길래 거반 죽은 것 같은 사람을 이렇게 모질막스럽게 데리고 가는 거요?”

 “사족이라고 고이 상대를 해줬더니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구만!

 왜 남의 일에 자꾸 껴들고 그래 엉!”

 종서가 분명 나졸의 심사를 건드리게 분명하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채무냐 이말이오.

 진짜 그러고 한성부까지 끌고 갈 작정이오?

 이번엔 촌부를 양 옆에 꼈던 장정이 바로 촌부를 팽개치고 종서 앞에 다가온다.

 그중 한명이 종서 가슴팍부터 밀치니 다시 나자빠지는 종서.

 그 사이 나졸은 바닥에 주저앉은 나졸의 목을 발로 눌러 감시한다.

 무게중심이 뒤에 있는 탓을 하고 싶지만

 자신의 비리한 체구가 원망스럽긴 또 처음이다.

 이렇게 무안하고 낯뜨거워 보긴 이십평생 처음 겪어본다.

 속은 감추고 다시 얼굴 추스르며 이번엔 지게를 그대로 바닥에 둔 채

 일어서서 맞선다.

 ”이쯤되면 구린내는 이쪽에서 나는걸?

  집이들 뭐야?“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장정 하나가 앞무릎으로 종서 배를 가격한다.

 아까 머리에 얼굴 부딪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으로

 종서는 정신까지 아득해온다.

 아이구야

 배를 움켜쥐고 잠깐 허리를 구부렸다가 그 김에 바로 자신을 찬 장정의 허벅지를 감싸안았다.

 생각지도 못한 종서의 기습에 놀란 장정이 종서를 떨구려고 몸을 흔들면 옆에 있던 장정이 종서의 얼굴과 등짝을 발로 찬다.

 지켜보던 나졸도 합세해서 육모방망이를 휘두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서는 붙들고 있던 장정 허벅지를 놓지 않았다가 허벅지를 더욱 꽉 물어버린다.

 장정의 비명 소리에 항아리 깨지듯이 요란하다

 ”이 미친 놈 빨리 떼 얼른!“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종서 머릿속에선 사족 체면에 상민들과 이런 난장을 벌이고 있는 이 광경을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이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자신이 받은 모욕도 모욕이거니와이대로 물러서면 더욱 큰 곤욕을 당할 것이 뻔하니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거다.

 악으로 깡으로 장정 하나 붙들고 늘어져 버티고는 있지만 어차피 일대 삼의 대결에서 자신이 곧 패배할 건 뻔하다.

 전하는 글로 보면 대단히 오랜 시간인 것 같지만 다른 장정이 쳐댄 발길질이 열 번도 안되고

 육모 방망이에 대가리를 얻어맞은 횟수도 여섯 번을 안 넘은 것을 알수 있다.

 촌각의 육분지도 안 지난 찰나의 시간이종서에겐 영원처럼 느껴진다.

 아 , 공자님, 맹자님.

 저를 이 무간지옥에서 건져주소서

 

 그 순간 시야가 환해져온다.

 방금 까지 온 등짝과 머리에 내리던 불덩어리가 꺼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안고 있던 장정 허벅지에 물린 주둥이를 빼고 주위를 보니 나졸과 장정 하나가 저만치 나자빠져 있다.

 장정과 나졸이 하나같이 자기 뒷덜미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 뒤에 서있는 한 사람

 갓을 썼는데 얼굴은 면포로 가리고 있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역광에도 선명한 아미와 눈매를 보아 하니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아직 종서가 매달려 있던 장정이 소리친다.

 ”너 뭐야!

  이봐 너부터 빨리 안떨어져? 저리 가라고!”

 “그러게 말일세. 이제 그만 떨어져 주지.

 살점 하나 뜯었다가 누구 입에 부치려나”

 넉살 좋은 거사의 한 마디.

 목소리도 풋사과향이 날 것같은 나이 창창한 젊은이의 것이다.

 주둥이야 진즉에 뗐지만 허벅지를 두루던 두 팔을 그제야 풀었다.

 스무 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어도

 상대의 키가 자기 머리 하나 반 만큼은 큰 것을 알겠다.

 종서가 자기 허벅지에서 떨어져 나가자 장정이 이번엔 거사를 향해 달려든다.

 여유있게 몸을 틀더니 바로 장정의 뒷덜미를 가격하는 거사.

 그러자 장정은 그결에 바로 땅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죽었나?

 방금까지 뒷덜미 잡던 일행이 쓰러진 장정에게 다가가 흔들면 다행이 숨은 붙어 있나보다.

 나졸이 장정을 힘써 일으키면 그제서야 눈을 뜨는 장정.

 그를 부축해 도망치려다 문득 촌부가 진즉에 사라지고 없는 것을 보고 더욱 놀라 당황하는 나졸이다.

 종서가 말을 걸려고 다가가자 셋은 힘써 달음질 친다.

 “이것봐 아까 내가 물은 거 대답은 해주고 가야지”

 대답없이 떠나는 그들의 뒤통수가 어이없어 허허 웃으며 무심코 돌아보니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거사님도 아니 보인다.

 “이런 날도 있구나.

 대낮에 낮도깨비를 다섯이나 보다니.”

 

 이레 동안이나 인왕산 산자락 아래 서대문 일대를 다 뒤지고 돌아다녔다.

 서대문 문지기에게 몇 번이나 박대를 받으면서 면포쓰고 다니는 거사님을 묻고 다녔다.

 그 걸음으로 도망치기가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인왕산 가는 길목도 훑었다.

 골목 골곡, 가가호호, 필부필부 .

 말그대로 싹 털었다.

 그날 조카딸과 함께하는 거사님과의 재회를 잊지 못한다.

 

 

 “아버님, 숙부님 찾으러 다녀오겠습니다. ”

 뒷모습은 품이 안맞는 도포자락 때문에 어설퍼보여도 천상 남정네의 외양을 하고선

 나긋하고도 명랑한 목소리라 안채에다 내지르는 인사.

 그런 자미를 두고 집안의 가노들이 그려려니 하고 지나간다.

 자미가 쌩 돌아서 쏜살같이 대문밖으로 튀어나가면

 안방 창이 열리고 윤영감이 자미의 뒷모습을 내다보고 있다.

 이렇듯 자미의 모든 수는 자미를 아는 모든 이의 손바닥 금처럼 환히 읽히는 줄 모르고

 알싸한 이른 봄의 바람 기운에 취해버린 자미다.

 

 자미의 숙부 윤원찬.

 위로 두갑 위의 숙부라니.

 아버지께도 아들과 진배없는 자미의 삼촌 어른은

 오늘도 한양 도성 밖으로 나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마굿간에 말이 없어진 것이다.

 때문에 숙부 찾으러 나왔다고는 하나 숙부 그림자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애시당초 없었다.

 윤자미가 구하는 건 숙부의 벗이다.

 이왕지사 자기 베필로 삼으면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언제부텨 숙부가 자미옆에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기억해서 뭐하나.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자미옆에 있어왔는 걸.

 할머니께서 늘그막에 얻으신 귀하디 귀한 늦둥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기저귀 갈아주며 맡아 키우신 건 어머니였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겐 당신 배로 낳은 딸보다 어린 시동생이 더 끔찍해진 사유.

 마마가 온 도성을 휩쓸던 그 해 그 달.

 자미는 외가댁에서 대문을 걸어잠근 덕에 살았지만 마마는 본가 담장을 넘어 아버지와 숙부를 걸고 넘어뜨렸다.

 어머니는 울고 불고 하는 고집쟁이 딸을 기어이 떼어놓고 숙부님 병간호하려 본가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숙부는 쾌차했고 자미는 다시 숙부님을 만났다.

 

 당시 자미는 이전의 숙부와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가 반갑고도 미웠다.

 자리에 누워있는 숙부 온 얼굴에 뭔가 덮인 것들이 있는데 저렇게 아프고 이상한 얼굴로 어머니 손길을 독차지 했느냐는 원망의 시선으로 째려보았을 뿐이다.

 아니 그 얼굴을 보듬으려 애면글면하는 어머니 때문에 오히려 그 흉터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섯 살 자미도 숙부의 우둘두툴한 두꺼비등딱같은 얼굴을 함께 쓰다듬으며 컸다.

 어린 시절 숙부따라 거리를 돌아다니고 나면 자미와 숙부는 늘 피투성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사실 자미는 옷만 지저분해졌을 뿐 옷이고 몸은 멀쩡했다.

 숙부만이 옷은 아예 찢어지고 피가 묻어있으며 드러난 살갖엔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몇 번을 거리에서 어울리던 녀석들과 다투고 난 후로 자미는 더 이상 숙부와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았다.

 숙부는 낮이면 자기 방에 서 책을 읽고 죽도를 깎던가 뒤란에 가서 또 죽궁을 그렇게 날려댄다.

 작았던 체구가 커지고 턱밑이 거뭍해지는 나이가 되면서는 각궁도 능숙하게 다루게 된 숙부는 이제 밤하늘 소쩍새같이 군다.

 사위가 깜깜해오면 오히려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자기집 대문 놔두고 담장위로 넘나든다.

 그런 숙부의 유일한 벗이 자미다.

 새벽에 이슬젖은 도포자락을 팔에 걸치고 방에 들어오면 진즉에 방안을 지키고 있는 자미에게 들켜 고분고분 실토하게 되는 자미의 숙부 윤원찬.

 이제 숙부도 자발적으로 자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둘은 사이좋은 남매처럼 첫닭이 울고서야 함께 잠을 청한다.

 

 서둘러야지.

 자미 혼담문제로 작은이모댁에 다녀오기로 하신 어머니가 돌아오시기전까지 귀가해야 한다.

 “제발 당분간만이라도 얌전히 집에 붙어있어.”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네 작은 어머니가 매파를 보내신다쟎니.”

 “정말 제 혼사를 준비하시는 거에요?

  숙부님은요?”

 “그전에 에미가 먼저 이모댁에 들러볼거야.

 너 줄라고 옷감도 준비하셨다고 하더라. ”

 “숙부님은요?”

 “ 참 도련님 과거 준비하기로 한 거 알아?”

 “ 숙부님은 혼례 안 치루시고 과거를 보신다는 거냐고요?

  네 대답좀 해보세요”

 어머니의 아픈 속, 자미의 숙부.

 어머니가 일부러 대답을 피하는 줄 알면서도 보챘던 자미.

 숙부가 무슨 생각으로 혼인을 피하는지 안다.

 그러니까 자미가 나서려는 것이다.

 혼례를 안치루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는 없다는 거 안다.

 10년 넘게 친구 하나 없이 보내온 숙부다.

 다만 자미의 빈 자리를 채워주고 떠나야겠어서 자미 마음이 바쁘다.

 처음엔 각시도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벗이냐, 각시냐의 선택지를 두고 잠시 갈팡질팡하던 자미 마음에 확답을 얻은 걸 얼마 후였다.

 

 “어딜 다녀오셨어?

 그날은 좀 달랐다.

 겉옷을 벗지도 않고 그저 킥킥 거리며 들어오는 숙부.

 “뭐가 그리 재미있는데?”

 “뭐가가 아니라 누가가 그랬어”

 “누구? 어떤 사람이?”

 “나도 몰라.”

 “왜 몰라?”

 “그냥 길가다 우연히 봤어. ”

 “근데? 그렇게 우연히 본 그 어느 사람이 어디가 그렇게 웃겼던 건데?”

 대답하려다 생각만해도 다시 웃음이 나오는지 터지는 웃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숙부.

 “아이참 답답해요. 혼자만 웃지말라구!”

 “우리 자미도 같이 봤어야 했는데 ”

 

 자미가 오늘날 숙부의 옷을 입고 거리를 쏘다니게 된 사연이 그러하다.

 나이만 자기보다 조금 많았지 아직은 하는 짓이 아버지의 걱정근심을 한 몸에 사는 아들답다.

 아니 과연 여인이 숙부에게 그런 웃음을 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여인의 문제는 사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그렇게 자미는 숙부에게 벗을 구해주리라 마음 먹는다. 그리고 그 벗이 이왕이면 부모님도 맘에 들어할 자기 베필감이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급한 건 숙부다.

 사내는 사내끼리 알아본다고 했다.

 사내복색의 자기를 대하는 사내들 시험을 해보려는 계획이다.

 쓸만한 사내는 학당이나 이름난 학자들 문하에 들어가 앉아있을 시간이긴 하다.

 밤이슬 맞고 다니는 괴짜 숙부에겐 거리의 왈짜들 중에서도 보물이 있을 줄 어찌 알랴 싶은 기대가 은근 있다.

 

 인왕산 앞 종서

 이런 식의 타문수색이 효과가 빠르리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다.

 지푸라기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게 더 빠르려나 막막한 기분도 들었다.

 돈의문에서 인왕산 입구까지 두 개의 한 장 길이 대로가 있다.

 이 대로오 연결된 골목길이 각 여덟 개 그리고 여섯 개.

 첫 번째 대로에 연결된 그 첫 번째 골목길에 딸린 민가가 또 열 두 채.

 그 열두 채 집을 방문해서 문의하고 나오니 걸린 시간이 반가 하고도 이각이었다. ( 한 시간 하고 30분이었다. )

 점심 먹기 전에 이렇게 한 골목 훑고 집에 들어갔다. 오후에 또 한 골목 훑기를 반복한 지 나흘째였다.

 이쯤되면 대로 중간에서 수색을 멈추기가 아쉬어지는 것이다. 이왕 시작한 것 끝장을 보리라는 그 지랄맞은 성미 탓에 또 탐문을 이어간다.

 그렇게 첫 번째 대로 수색을 마치고 다음 두 번 째 대로 수색을 계속 할 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눈 앞에 낯익은 간끈 장식인 고리영과 도포가 보였다.

 도포 위에 덧입은 족제비털 쾌자에 허리를 조이는 세조대는 맑은 옥색이어서 족제비 털에도 가려지지 않는 고급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래서 중국 패담집에 죽었다 살아나온 님을 보는 마음이라 그러는 구나 하는 관용어를 떠올리며 반가워하며 거사에게 달려갔다.

 “거사님!”

 

 가까이 가니 체구가 이리 아담했던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얼굴부터 보자는 조바심이 먼저였다. ‘거사님’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려 세웠는데 이건 또 무슨 판대기인가?

 아무리 갓 쓰고 도포로 둘러매어 사내 흉내를 내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여인의 얼굴인 것을 못 알아볼 종서가 아니다.

 짙은 눈썸과 동그런 눈매, 뽀얀 얼굴, 오똑한 코.

 그리고 활짝 벌어진 입술과 하얀 이.

 종서의 손바닥으로 충분히 감싸고고 남을 얼굴이건만 돈의문 앞 마을 바닥을 뒤지던 것 보다 더 간절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그 얼굴 구석구석을 탐색해본다.

 판정은 끝났다.

 실망을 숨기지 않고 잡고 있던 어깨를 놓고 묻는다.

 “누구시오?”

 “... 인달방 파평윤가 자미라고 합니다. ”

 “ 혹 오라비가 있소?”

 “ 없습니다. ”

 구구절절 물고 늘어지고 싶지 않다.

 옷이야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지.

 이 천둥벌거숭이같은 처자가 제 아비 옷을 훔쳐입고 나온 사연은 따져 물어봐야 뭐 하나 .

 돌아서 자리를 뜨려는데 눈앞에 캄캄해온다.

 종서는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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