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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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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

소개팅이 엇갈려 우연히 만난 극작가와 연극배우가 11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

 
제 14화. 커튼콜.
작성일 : 22-02-14 00:04     조회 : 187     추천 : 1     분량 : 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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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의 아침은 평소보다 햇살이 더 눈부셨다. 지혜는 평소 하던 대로 동이 틀 때와 비슷한 시간에 눈을 떴다. 동지가 다가오면서 해가 늦어지는 바람에 지혜 역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조금씩 눈을 뜨는 시간이 늦어졌다. 어쩌면 그건 지혜가 오늘 하루의 컨디션을 점치는 수단이자 미신이었다. 태양과 비슷한 시간에 기지개를 켜면 좋은 날, 그렇지 않으면 불길한 날.

 

 물론 단 한 번도 지혜의 점이 맞았던 적은 없었다. 오늘 역시 태양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지만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내일 만나고 싶어요. 단 둘이.’

 

 막 잠에 들려고 할 때 민석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실 지혜는 민석에게 자신의 진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철웅과 비교하는 건 좋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한 8년 보다 민석과의 일주일이 더욱 행복했다. 철웅이 해주지 못하는 걸 민석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혜는 지난 일주일 동안 동이 트는 동시에 눈을 떴다. 특별히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좋아요. 내일 저녁 여덟 시에 극장 앞에서 어때요?’

 

 지혜는 조심스럽게 문자를 입력했다. 그리고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좋아요. 여덟 시에 만나요.’

 

 

 

 지혜는 평소처럼 집을 나와 극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극장은 걸어서 겨우 이십 분 남짓이었지만 오늘 하루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데에는 제격인 시간이었다. 오늘은 다행히 걸음걸이가 가벼웠고 겨울이라는 이름을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따듯한 날씨였다.

 

 한창 도시를 헤집고 다녔던 도시개발사업은 막바지에 다다르는 듯 보였다. 이제 흉물스러운 공사현장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이전보다 더 깨끗한 도시가 한창 햇살을 가득히 머금었다.

 

 ‘때로는 새로운 것도 좋지.’

 

 지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콜 시간까지 많이 남아있어 지혜는 오늘부로 공사가 끝나고 개통이 된 거리에 들어섰다. 공사를 하기 직전까지는 항상 다니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혜는 낯선 거리가 좋았다. 모퉁이를 돌면 뭐가 나올지 몰랐다. 무서운 개가 지키는 골목이 나올 수도 있고 화려한 가로수가 아치형으로 펼쳐진 대로가 맞이할 수도 있었다.

 

 지헤가 민석에게 마음을 표현했을 때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낯선 거리처럼.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고백이라는 모퉁이를 돌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야만 거리를 빠져나와 익숙한 길로 갈 수 있었다. 그 낯선 거리가 지름길일지, 아니면 우회길 일지는 지나가야만 알 수 있었다.

 

 

 

 막상 극장 앞에 도착하고 나니 잊으려고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겨우 어제의 일이었다. 철웅이 한 달 만에 나타났고 민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철웅이 민석을 해코지한 게 분명했다.

 

 ‘정말로 그 오빠가 민석 씨를 해코지한 거라면?’

 

 그렇다면 오늘 민석이 만나자고 한 건 어쩌면 더 이상 자신을 보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지혜가 철웅은 이제 남자 친구가 아니며 민석에게 마음이 있다는 얘기를 한들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고백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11살이나 어린 남자 애를 좋아하는 꼴이라니. 주변의 시선이야 어찌됐든 민석 역시 11살이나 더 나이 먹은 지혜를 좋아하고 있을 거라는 건 완전한 착각일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졌다.

 

 ‘어쩌면 오늘이 민석 씨를 사적으로 만나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몰라.’

 

 정말로 그럴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민석이 원고를 주지 않고 다른 극단의 작가가 될 가능성도 높았다. 극단은 많고, 민석은 유능한 작가일 테니까.

 

 ‘하지만 오늘 점괘가 좋았는걸……’

 

 그렇게 위로를 해보았지만 지혜의 점괘가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그게 미신이라는 건 지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혜는 극장 앞 돌계단에 앉아 있는 민석을 상상했다. 민석의 모습은 작고 초라했다. 기억 자가 되게 모든 다리는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거기에서 민석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앉아 고개를 숙이고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 . . . . .

 

 “오빠! 여기!”

 

 예슬이 밝은 목소리로 손을 흔들었다.

 

 예슬은 겨울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꽃무늬 원피스에 얇은 패딩을 하나 걸치고는 이 추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봄이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날씨도 그걸 알았는지 오늘따라 화사한 햇살과 함께 포근한 날씨였다.

 

 민석도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민석은 약속한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했지만 예슬은 그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민석이 예슬에게 채 가기도 전에 예슬이 먼저 달려와 민석에게 팔짱을 꼈다. 민석은 갑작스런 그녀의 스킨십에 놀라 몸이 굳었다. 예슬도 그걸 눈치 챘는지 괜히 민석의 팔을 더 감았다.

 

 “오래 기다렸더니 추워서.”

 

 민석은 그게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오늘은 정말이지 날씨가 좋았다. 민석은 팔짱을 껴도 된다거나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해 그저 그대로 서 있었다. 차마 예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원래는 그녀에게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팔짱 하나에 얼굴을 쳐다보는 것조차 할 수 없다니. 민석은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춥기는……”

 

 민석은 간신히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떨었다. 분명 추위 때문에 떨리는 건 아니었다.

 

 “가자. 연극 시간 늦겠다.”

 

 예슬은 민석을 연행하듯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민석은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예슬을 만나면 하려고 했던 말들이 조금씩 햇살에 타버리는 것을 느꼈다. 증발된 말머리들은 어느새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팔을 감은 예슬의 부드러운 두 팔에 온 신경이 가 있었다.

 

 ‘미안해.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이 말을 얼마나 많이 곱씹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예슬이 상처를 받지 않을지 고민했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찬우의 말대로 남녀가 만난다고 꼭 연인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정리할 필요는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두 남녀가 가까워진다는 건 그만큼 위험 요소가 있다는 뜻이니까.

 

 민석이 쓴 불멸의 희곡 ‘최악의 연애가 도사린다’ 역시 남자 친구가 있는 한 여자가 여러 남자들을 친구로 가까이 두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여자는 순수하게 친구들을 만났을 뿐이지만 그녀를 만나는 남자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듯 한 사람, 두 사람 그녀를 마음에 품으면서 여자가 여럿 남자를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다. 남자 친구에게까지 그 소문이 귀에 들어가고 여자가 아무리 오해를 풀려고 했지만 이미 신뢰는 꺼져버린 뒤였다.

 

 이에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남자 친구에게 앙심을 품는다.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나도 이해시킬 필요 없다며 여자는 대놓고 이성 친구들과 만나며 소문을 진실로 만들기 시작한다. 사실 여자는 오해를 풀고 이해해주길 바랬을 뿐인데. 최악의 상황으로 내딛은 바람에 두 남녀는 결국 결별하고야 만다.

 

 

 

 그렇게 예슬이 뿜어내는 설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에 젖었던 시간도 잠시.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모쏠로맨스’ 극장이었다.

 

 “내가 저번에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재미있을 거 같아서!”

 

 예슬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팔짱을 낀 민석의 팔을 붙잡고 티켓박스로 갔다.

 

 “어어어……?”

 

 민석은 당황할 틈도 없이 예슬의 리드에 끌려갔다.

 

 그 순간 민석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성현이 지혜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성현이 주로 티켓박스를 지키고 있다는 것. 며칠 전부터 줄줄 외우고 있던 지혜의 타임테이블. 지혜가 오늘 이 시간에 공연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예슬이 ‘모쏠로맨스’를 보자고 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을까.

 

 민석은 예슬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팔짱을 꼈던 손도 풀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예슬 역시 당황한 듯 보였다.

 

 “우리 다른 거 보자. 내가 더 재미있는 거 알아.”

 

 민석이 말했지만 예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오빠랑 이거 보고 싶어서 바로 예매한 건데. 기다려, 티켓 끊어올게.”

 

 예슬이 주먹으로 민석의 배를 툭 치고는 티켓박스로 갔다. 민석은 머릿속에서 안 되는 데, 안 되는 데 읊조렸지만 그 사이 이미 예슬이 티켓을 끊어왔다.

 

 “그러지 말고 다른 거 보자. 내가 살게.”

 

 민석이 불안한 기색을 최대한 숨기며 말했다. 지금 민석의 머릿속에는 지혜뿐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모쏠로맨스’의 첫 장면.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지혜가 등장한다. 그리고 소극장인 탓에 관객들의 모습이 다 보일 테고 당연히 예슬과 함께 앉아 있는 민석의 모습 역시 눈에 띌 것이다. 엊그제 철웅과의 일도 그렇고 그 상태에서 다른 여자애와 함께 간다면 지혜의 입장이 어떻겠는가.

 

 “괜히 연극 보자고 그랬나…… 난 오빠가 좋아할 줄 알고 같이 가자고 했던 거였는데.”

 

 순간 지혜와 걱정으로 가득찼던 머릿속이 리셋 됐다. 예슬은 한껏 풀이 죽은 모습으로 작은 손에 쥔 티켓만 빤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

 

 ‘이따 얘기하겠지만 여기엔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주연 배우로 있어서……’

 

 하지만 민석은 차마 그 말을 덧붙이지 못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아이처럼 좋아했던 예슬이다. 지금 이 기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처음 들어선 길에서 두 갈래 길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두 갈래 길의 끝은 어둡고 좁아 보이지 않았다.

 

 “알겠어. 괜히 나 혼자만 설렜던 거 같아. 그럼 이거 취소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예슬은 완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민석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예슬은 작은 몸을 돌려서 티켓박스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티켓을 끊어 와서 어린아이처럼 뛰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민석은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민석이 소개팅 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어도, 같이 저녁을 먹자는 제안을 거절했어도 항상 밝았던 예슬이다.

 

 “아니야. 내가 생각이 짧았어. 예슬이 네가 고른 거 나도 한 번 보고 싶어.”

 

 민석이 끝내 말했다. 왜 예슬의 뒷모습에 마음이 흔들린 걸까. 그녀가 먼저 팔짱을 껴 와서? 아니면 정말로 자신을 좋아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예슬은 금세 밝은 표정으로 민석의 품에 안겼다. 민석은 당황했지만 잠시 그러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 예슬과 민석 단 두 사람만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지하 극장으로 내려가는 15개의 짧은 계단에서, 민석은 마치 깊고 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예슬이 먼저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가자 민석은 그제야 다시 지혜가 떠오른 것이다.

 

 분명 오늘은 예슬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려고 했다. 민석의 마음, 예슬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고백. 그리고 민석이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어쩌면 예슬 덕분에 지혜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을 지도 모른다.

 

 지하 극장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갈 때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는 기분이었다. 분명 오늘은 날씨가 좋았는데. 이 지상과 불과 몇 미터 아래에 있는 지하극장은 죽은 생선을 저장하는 냉동고처럼 스산했다.

 

 

 

 좌석을 찾아 앉은 민석은 생각보다 앞자리인 것에 놀랐다. 예슬은 이번에도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고 민석이 자리에 앉자 예슬은 엉덩이를 옮겨 민석의 옆에 딱 달라붙었다. 민석은 하체를 꿈틀거리며 최대한 예슬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예슬은 그럴 때마다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민석은 외투의 깃을 세워 최대한 얼굴이 보이지 않게 했다. 이제 막 공연 시작 안내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 추워?”

 

 민석이 깃을 세운 걸 보고 예슬이 귓속말로 물어왔다. 춥진 않았지만 막이 오를 걸 생각하니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순 없었다.

 

 “조금.”

 

 민석은 거짓말했다. 사실 예슬이 완전 달라붙어 있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지하극장인 탓에 조금은 더웠다. 예슬은 민석이 얼굴을 숨기려는 것도 모르고 민석을 따듯하게 하겠다며 더욱 달라붙었다. 민석은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하우스 조명이 마감되고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극장 내. 민석은 차마 무대를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극장이 어두운 탓에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되려 민석은 눈이 아플 정도로 세게 감고 이도 세게 물었다. 턱이 아팠지만 민석은 요동치는 심장 소리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조명이 들어왔다. 스포트라이트가 미닫이문을 향해 떨어졌고, 동시에 미닫이문이 활짝 열렸다. 거기에 지혜가 있었다.

 

 

 

 처음 무대 위에 있는 지혜를 봤을 땐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몰랐을 때였다. 그저 카페에서 잠시 마주쳤던 그녀를 떠올리며 어떤 사람일지 무얼 하는 사람일지, 다시 한 번 더 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상상의 나래만 나비처럼 펄럭이며 날아다녔다.

 

 무대 위에 있는 그녀는 아름다웠고, 극 속으로 끌어들였다. 마치 민석을 동아줄로 옭아매고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정말이지 말 그대로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 말 외에는 어떤 다른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지혜도 딱 그랬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옆에 예슬이 있다는 것까지 완전히 잊고 오로지 지혜의 눈만 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 말투, 눈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민석의 작은 눈은 어느새 용량이 넘쳐 더 이상 지혜를 담을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그녀를 쫓았다. 그러면서도 불쑥불쑥 그녀와 눈을 마주칠 뻔 할 때마다 애써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옷깃에 파묻었다.

 

 다행히 지혜와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그럴수록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마음껏 지혜를 보지 못한다는 게 한이었다. 어쩌면 오늘 일이 잘못 틀어진다면 영영 지혜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운이 좋아서 민석의 작품에 지혜가 캐스팅 돼 함께 일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일 뿐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건 죽기보다도 더 싫었다.

 

 그리고 민석은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난 역시 지혜 씨가 아니면 안 돼.’

 

 이런 상황에 막상 맞닥뜨리고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잠시 예슬에게 마음이 흔들렸던 게 부끄러울 뿐이었다. 예슬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슬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지혜를 향한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무대 위에선 지혜가 이제 막 주인공과 첫 키스를 하기 직전이었다.

 

 “그럼…… 우리 키스 할까요?”

 

 남자 주인공이 수줍게 물었다. 극중에서 이제 지혜가 연기하는 서희의 생일이 겨우 1분 정도 남아있었다. 생일이 되기 전까지 키스를 하지 않으면 서희는 평생 어떤 남자와도 만날 수 없었다.

 

 서희와 남자 주인공의 입술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민석은 괜히 엉덩이를 고쳐 앉으며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물론 민석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민석이 자신의 글에 지혜의 입술을 상상하며 썼던 문장이 떠오르는 바람에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럽게 키스한다.’

 

 왜 갑자기 그런 문장을 쓴 거지…… 민석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몸 안에서 자라고 있던 감자의 싹이 심장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민석은 그때 심장이 잠시 멈췄던 걸 느꼈다. 그만큼 한 문장이라도 지혜와 함께 하고 싶었다.

 

 “좋아요. 키스 해주세요.”

 

 서희가 수줍게 말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은 서희의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럽게 키스했다. 민석은 시선을 들 수 없었지만 예슬은 의외의 전개라는 듯 민석의 팔을 슬며시 잡았다. 민석이 슬쩍 보자 예슬의 시선은 오로지 키스신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에요! 완전 푹 빠져서 봤어요. 특히 마지막 키스신은……!”

 

 민석은 지혜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혜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때. 바보 같은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고 서로를 이해했다.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찾고. 민석은 그 한 순간 순간을 잊지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예슬과 지혜에게 반드시 마음을 전하리라.

 

 민석은 그렇게 막이 내리는 마지막 무대를 지켜보았다. 이내 커튼콜이 시작되고, 지혜가 마지막으로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할 때 민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박수를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었지만 지혜가 자신을 알아볼까 손뼉만 세차게 칠 뿐이었다.

 

 다행히 무대를 향해 기립박수를 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객석 제일 앞에 앉아 큰 체구와 큰 손바닥으로 기립박수를 치며, 연달아 ‘브라보!’를 외치는 한 남자.

 

 민석은 박수 치던 손을 멈추고 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쩌면 민석은 너무나도 쉽게 지혜에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로맨스 연극의 결말이 결국 남자와 여자가 이어질 운명이듯. 아무리 갈등이 쌓이고 원수 사이가 되더라도 결말은 사랑이듯.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철웅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차가운 현실을 대변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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