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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호설 : 눈 산의 주인
작성일 : 22-02-11 19:03     조회 : 180     추천 : 0     분량 : 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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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오도카니 동굴 안에 앉아있었다. 돌아가라, 그리 말한 지도 이레가 지난 뒤였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마땅치 않은 그곳에서 아이는 그저 오도카니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가, 산군과 눈이 마주치자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산신님, 오셨어요?”

 마치 어제도 보았던 양 달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영 탐탁지 않았다. 도통 무엇을 바라고 저리 하는 것인지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마을을 도와줄 수 없다 그리 단호하게 일렀거늘 여즉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눌러앉은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신이 아니다.”

 “앗차, 그랬었지요. 그러면 제가 무어라 불러야 좋을까요?”

 능청스럽게도 앙큼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며 산군은 더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느릿하게 몸을 웅크리며 산군, 하고 답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킬킬대며 장난스레 웃고는 다정하게도 네에, 산군님, 하였다. 그 천진한 얼굴을 보자니 더욱 할 말이 없어 산군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눈 내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워왔다. 고요 가운데에 아이의 숨소리와 소복소복 쌓여가는 눈송이의 발소리와 이따금 산군이 낮게 그르렁대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공간에 흩어졌다.

 “왜 돌아가지 않은 것이냐.”

 그리 물었더니 아이는 헤헤, 하고 가만히 웃었다.

 “돌아가보아야 아무도 기뻐하지 않을 텐데요, 무얼.”

 아이는 여전히 해사하게도 웃는 낯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입술로 조곤조곤 토해내는 말은 결코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저는 제물로 여기에 왔어요. 마을 사람들은 제가 돌아가면 분명히 산신께서 노하셨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게다가 마을은 흉년이 심했는 걸요. 사람들이 모두 배를 곯고 있어요. 한 사람의 입이라도 줄여놓는 편이 모두에게 좋을 거예요. 제가 산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도 그랬어요. 입 하나를 덜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그러니 제가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덜어낸 입 하나가 다시 늘어나는 격일 테지요. 마을의 그 누구도 그런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을 거예요. 산군님께 짐이 되지는 않을 게요. 너무 염려는 마세요. 저는 그저 여기서 혼자 씩씩하게 지내다가 산신님 곁으로 갈게요. 제물이잖아요. 저는 그러려고 여기 온 거예요. 산군님께서 베푸신 친절은 감사드려요. 하지만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마을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산군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죽을 텐데. 허나 말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애당초 여기 온 순간 죽음을 감내하고 온 것이리라. 제물이라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 아닐까. 허나 아이는 그런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산군은 그조차도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어린 것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돌아갈 수 없다. 태연하게도 그런 이야기를 뱉어내는 얼굴이 정말로 다 괜찮은 것만 같아서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산군님, 정말로 저는 다 괜찮아요.”

 그리 말하니 더욱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산군은 그저 한숨을 폭 뱉으며 흩어지는 눈발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뒤로 산군과 아이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아이는 항시 산군의 곁에 붙어있었다. 눈이 그치고 차갑게 가라앉은 새벽에도, 어스름하게 동이 터올 무렵에도, 서리는 산군이 잠을 청하면 바로 그때 같이 잠을 청하였고 산군이 기지개를 켜는 그 순간에 눈을 떴다. 산군과 함께 설산을 걸었고 다 말라빠진 나무에 열린 나무열매 따위를 주워먹으며 간신히 연명을 했다. 몇 차례인가 산군은 아이에게 마을로 돌아갈 것을 권했으나 그럴 때마다 아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결국 산군은 아이를 마을로 돌려보내는 것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아이가 곁에 남는 것을 인정하고 난 뒤에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산군은 저도 모르게 아이를 눈으로 쫓았다. 아이가 제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겨울의 산은 지독하리도 혹독하고 매서웠다. 차가운 산 위에서 산군은 곁에 두는 체온이 그리 작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제 품에 기대어 잠이 드는 약간의 무게감과 곁에서 내뱉는 고른 숨소리가 귀에 익기 시작한 순간부터 산군은 헤어질 것을 염려했다.

 이별이 오지 않는 관계는 없었다. 산군은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산군은 아이보다 많은 것을 보았다. 많은 것을 겪어왔다. 봄이 오고 꽃이 피면 찾아오는 생명의 따스함을 느꼈고 겨울이면 저무는 삶의 끝자락을 보았다. 만남이 있으면 끝도 찾아오는 법이라 산군은 언제고 서리와의 이별을 염려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마치 헤어지지 않을 양 하였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산군은 그저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아이에게 곁을 내어줄수록, 아이의 체온이 익숙해질수록, 아이의 이름을 부를수록 점점 더 헤어지는 일이 염려되었다. 익숙해지면 헤어지는 것이 어렵기만 할 터인데. 그러나 마음이 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은 헤어짐에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갔소?”

 “죽었다.”

 사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딱 말을 고르는 표정인지라 산군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먼저 대꾸했다.

 “당연한 일이지. 이렇게 눈이 내리는 산에서 서리는 며칠이나 제대로 요기를 하지 못했다. 이전에도 기근이 심한 마을에서 온 아이라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지. 하여 몇 번이나 마을로 돌려보내려 했건만.”

 “억지로라도 돌려보냈어야 하는 것이 아니오.”

 “제 죽을 날을 가늠하고 있는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더 말해야 좋단 말인가.”

 사내는 거기서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산군의 목소리는 담담한 어조였으나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더라면 차라리 매정하다 매도하기라도 할 수 있겠건만 그것을 외면하기에 산군의 감정은 너무도 깊고 무거웠다.

 

 

 

 

 

 서리는 이미 제가 죽을 것을 아는 아이처럼 굴었다. 산군이 그것을 알아챈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서리의 팔다리는 갈수록 비쩍 말라만 갔고 나중에는 뼈마디가 선명하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밝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였다.

 “서리야, 정녕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겠느냐.”

 산군이 그리 물었을 적에 서리는 다시금 웃었다.

 “정말로 괜찮아요. 저는 산군님이랑 있는게 더 좋아요. 마을 사람들은 이미 제가 진즉에 죽은 줄로만 알 거예요.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잖아요.”

 그 웃는 낯이 언제부턴가 괜찮지 않게 보였다. 아이는 언제고 괜찮다고 말했으나 산군은 더 이상 아이가 괜찮지 않아 보였다. 측은지심이 생겼다는 것은 정이 들었다는 의미였다. 산군은 언젠가부터 아이에게 정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그치만 괜찮지 않은 것은 산군님이에요.”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구나.”

 “제가 없어도 산군님은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언젠가 아이는 훌쩍 자라 어른이 되고 만다. 그것은 어른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빨리, 갑작스레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염려하느냐.”

 “저는 산군님이 혼자 남게 되시거든 외로워지실까 그것이 염려돼요.”

 거기에 무어라 답할 수가 있던가. 산군은 서린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한결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건만 이제는 영영 떠날 것처럼 아득하도록 멀게만 보였다. 산군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눈을 다시 뜨면 흩어지는 눈발처럼 영영 서릿발에 흩어져 아이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 여겨지자 눈을 뜨고싶지가 않았다.

 “산군님, 산군님.”

 작달만한 두 손이 산군의 뺨을 감싸쥐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살갑게도 저를 불러왔다. 그러니 어찌할 도리가 있을까. 산군은 다시금 눈을 떠 아이를 보았다.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산군님과 지내는 시간이 정말로 정말로 즐거웠거든요.”

 “서리야.”

 “산군님도, 저와 지내는 시간이 즐거우셨어요?”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하염없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산군은 다만 하고픈 말을 가슴 한 켠에다 꼭꼭 눌러두고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웠다.”

 그러자 아이는 비쩍 마른 두 팔로 산군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것이면 되었어요.”

 때로는 그저 즐거웠던 기억이면 충분한 이별도 있었다.

 

 

 

 

 

 “그 뒤로 한참이나 산에 들어오는 이가 없었지. 계절은 차갑고 눈발은 거세니 말일세. 나도 이리 무모하게 산에 들어와 길을 잃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

 “거 참 송구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내는 미간을 좁히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산군이 웃음을 터뜨린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하하. 산군의 웃음소리는 사람의 그것과도 유사하고 짐승의 우는 소리와도 비슷했다.

 “서리와 약조를 하였지.”

 그 약조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닐세. 그저 자네처럼 한겨울에도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치가 있거든 무사히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어. 즐거운 듯한 목소리에 사내는 더욱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아주 큰일이 날 뻔 했소?”

 “아무렴. 눈이 이리도 거세게 내리는 이 산에서 온전히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것은 나 외에는 없네.”

 “감읍드리는 바외다. 아주 성은이 망극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소.”

 “자네 태도는 전혀 몸둘 바를 모르겠는 태도가 아니지만.”

 입술을 삐죽이는 모양이 퍽이나 불만스러운 얼굴이라 산군은 다시금 낮게 웃었다. 어느새 눈발은 잠잠하게 가라앉고 허공에는 하늘하늘 깃털처럼 흔들리는 함박눈이 느리게 유영하였다.

 “자네를 보낼 때가 된 것 같네.”

 산군은 몸을 일으켰다. 사내는 산군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둘은 아무런 말도 않았다. 산군이 동굴 밖으로 나서자 사내가 그 뒤를 따랐다.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마을이 보이는 그 순간까지도 둘은 달리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시답잖은 농지거리는 더는 계속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스치는 연이었다. 여기서 돌아서고 나면 앞으로는 만날 일이 없을 터였다. 그것은 사내도 산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아무런 말이 필요가 없었다.

 “……자네는.”

 마을 어귀에 도달할 무렵이었다.

 “나를 추이록에 기록할 셈인가.”

 산군은 그렇게 운을 떼었다. 돌아보는 눈빛은 시린 서리빛깔. 사내는 하염없이 깊은 그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럴 줄을 알았다는 듯, 산군은 그리 놀라지도 않고 사내에게 말했다.

 “허면 내가 있는 곳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말아주시게.”

 추이꾼들이 닥다글 닥다글 몰려들어 산에서 길을 잃는 것은 딱 질색이거든. 사내는 그러마 답하였다. 그렇게까지 상세히 기록하는 것은 이쪽으로서도 귀찮은 일이오. 답하는 목소리에 산군은 또 웃었다.

 “그리고 기록하려거든 이름은 이렇게 적어주시게.”

 

 

 

 

 

 “산군님, 산군님. 제가 선물을 해도 될까요?”

 “무슨 선물을 말이냐.”

 “산군님의 이름을요.”

 아이는 그리 말하고는 내게 익숙한 얼굴로 웃어뵈었다.

 “호설. 호설이에요.”

 흩어지는 눈발 사이로 걸어가는 산군님의 모습이 꼭 눈보라 같았거든요. 아이는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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