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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호설 : 눈 산의 주인
작성일 : 22-02-11 19:02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6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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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발 아래서 짓눌린 울음을 터뜨렸다. 나그네는 고개를 들어 눈보라가 몰아치는 하늘을 보았다. 기실 눈의 울음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었다.

 겨울은 척박한 계절. 휘몰아치는 눈폭풍에 휘감긴 산은 위엄있는 산군이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호설虎雪

 : 눈 산의 주인

 

 

 

 

 눈발이 지독하여 한 치 앞도 제대로 뵈지를 아니하였다. 발을 딛고 길을 돌아보면 걸어온 자리에 자취조차 남지를 않아 온 길이 어디인지, 가던 길이 어디인지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그네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하얀 숨이 눈발에 뒤섞여 흩어졌다. 일순,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고립. 완전한 고립이었다.

 “이런.”

 길을 잃었군. 허탈한 웃음만이 잇새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새하얗게 흐려지는 시야 너머, 나그네는 이제 제 목소리도 온전히 들을 수가 없었다. 아아, 산신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나그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벌겋게 얼어붙은 손발 끝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를 않았고, 살갛에 닿아오는 눈폭풍은 매섭지도 아리지도 않았다. 온 몸의 감각이 무뎌지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새하얗게, 번갈아 점멸하다가 나그네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사내가 눈을 떴을 적에는 까만 동굴 안이었다. 여전히 밖은 눈이 시리도록 허연 눈발이 흩날리는데, 사내는 다만 영문을 알 길이 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

 사내는 일순 밭은 숨을 들이켰다. 제 주변을 나뒹구는 것은 짐승의 사체였다.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 쌓아놓은 양, 노루며 여우며 토끼며 하는 것들의 죽은 고기가 사내의 곁에 바투 붙어있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짐승들은 금방이라도 숨을 뱉고 일어날 듯이 생기있어 보였고, 눈꺼풀 하나 옴짝달싹 않는 고깃덩이 위로는 미미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사내는 잘게 떨리는 손끝으로 여즉 숨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짐승의 털을 쓸었다. 등골이 선득하게 소름이 끼쳐왔다. 차가운 날씨 탓인지 혹은 불길한 기분 탓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고 무엇을 해야 할런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내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을 보았다. 길을 잃은 것은 분명하건만 예까지 오게 된 경위를 도통 짐작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어디든 좋으니 민가로 돌아가기는 해야겠지만 갈 길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사내가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새하얀 눈발 너머로 무언가가 언뜻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게 뉘시오?”

 사내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러나 설산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바람 부는 소리조차 들리지를 않았고 그 온전한 침묵과 고요 속에서 나그네는 잠시 못 박힌 것처럼 시선을 멈추었다가 눈을 감았다.

 “하하.”

 허탈한 웃음이었다. 아무도 없는 줄을 알면서도 허망하게 뱉어낸 말이 찬바람에 흩어져 사그라들었다. 사내는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되었다. 어쨌거나 목숨만은 건졌으니 이대로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는 양 하였다. 그러나 이제 막 기세를 펼치기 시작한 동장군의 위세는 등등하여 도통 꺾일 줄을 모르니 사내는 그저 기약없는 기다림 가운데에 앉아 하염없이 아까운 시간만을 흘려보내야 할 것이 분명하였다.

 설경 너머로 꿈틀대는 것은 산줄기를 빼다박은 수묵화였다. 사내는 그 흐르는 줄기와 눈이 마주쳤다. 새하얀 털결을 가진 범이었다. 번뜩이는 금빛 눈동자만이 그 하얀 가운데서 발하였다. 순간 사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으레 산에서 길을 잃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사내도 별반 다를 것은 없을 터였다. 아아, 이제 죽겠구나. 그러나 범은 사내를 해칠 것처럼 보이지는 아니하였다. 범은 그저 가만히 사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묵직한 눈길에는 적개심도 경계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사내를 바라보는, 그 시선 하나 뿐이었다. 사내는 그 눈을 묵묵히 마주보았다. 먼 발치에 선 짐승이 저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양 하였다. 둘은 그리 눈길을 주고받았다. 마치 말이라도 주고받는 것처럼 그리하였다. 휘몰아치는 침묵만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사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설경으로 발을 내딛었다. 발 아래서 눈이 짓밟히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다. 발끝이 저릿해오는 감각에도 사내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범에게로 다가갔다. 내딛는 걸음은 차분하고 느렸으나 망설임이 없었다. 범은 느리게 눈을 끔벅였다. 사내의 입술이 열렸다. 잇새로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눈보라에 휩쓸려 흩어졌다.

 “주인이시오?”

 물어오는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실려있었다. 범은 잠시 사내를 바라보다 그를 향해 바투 걸어왔다. 이제 둘의 거리는 지척이었고 사내는 손만 뻗으면 범에게 닿을 수 있었다. 물론 범 또한 원한다면 사내에게 달려들어 그 숨통을 끊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둘 사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였소. 감읍드리는 바외다.”

 사내는 비뚤어진 흑립을 기울이며 인사했다.

 “산의 날씨라는 것은 본디 변덕스러운 터이니.”

 범이 말했다.

 “이리 눈보라가 거셀 줄을 알았더라면 발도 들이지 않았을 것이오.”

 사내는 그리 답했다. 범은 가만히 사내를 바라보다가 그 곁을 지나쳐 동굴로 향했다. 사내는 응당 그리 해야하는 일인 양 범의 뒤를 쫓았다.

 “그저 떠돌이는 아닌 모양이로군.”

 “추이꾼이오.”

 “추이꾼이라.”

 아직도 그이들이 떠돌아 다니던가. 범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낮은 음성에 씁쓸한 기운이 묻어났다. 백설처럼 흰 털빛 위로 눈이 떨어졌다. 눈은 채 녹지 못하고 쌓이다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사내가 손을 들어올린 것은 문득 어느 순간이었다. 사내의 손이 눈발 서린 범의 털 위에 올라앉았다. 손바닥 아래로 형형한 냉기가 감돌았다.

 “이따금 추이꾼들이 산에 찾아오곤 하지.”

 얼음덩어리 같은 몸에서 낮은 울림이 느껴졌다.

 “허나 산군을 뵈었다는 이는 없었소.”

 “본 일이 없으니 고할 일도 없는 것이 응당 마땅한 것을.”

 “허면 어찌…….”

 그 뒤에 이어질 말은 듣지를 않아도 뻔한 말이라 범은 부드럽게 사내의 손 아래에서 벗어나 동굴 안에 자리했다. 사내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범의 곁을 두자 범은 눈을 끔벅이다 가지런히 겹쳐놓은 제 앞발 위로 턱을 기대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모습을 보여 무엇하겠나. 알알이 주영이 맺힌 갓끈에 홀리고 색색깔 비단으로 제 몸을 휘감는 일에 홀리고, 사슴이며 토끼며 다 먹지도 못할 만치의 짐승을 취하여 그 가죽만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이들의 앞에 나타난들 내게 무슨 이득이 있겠어.”

 허면 왜 자네의 앞에 나타났는가, 그것이 묻고 싶겠지.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산군은 잠시 눈발이 흩어지는 동굴 밖을 내다보았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어릿어릿 소녀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들려오지 않을 어린애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어린애의 웃음소리가, 어린애의 얼굴이.

 

 

 

 

 

 조갈이 일어 숨조차 쉬이 뱉을 수 없는 계절이었다. 산 자조차 송장마냥 퀭한 눈을 간신히 치뜬 채로 비척비척 걸음을 걷던, 아귀같은 가뭄이 온 마을을 들쑤시던 해였다. 굶주림은 흡사 광기와도 같아 더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산으로 산으로 밀고 들어왔다. 풀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먹었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맨 흙을 시커먼 손톱으로 후벼파 구불구불 기어나온 토룡조차 고기라며 국을 끓여 씹어삼키곤 하였다. 인륜이고 천륜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만 숨을 뱉는 일에 급급하여 사람들은 눈깔이 뒤집힌 채 입 안에 무언가를 욱여넣기만 바빴다. 그럼에도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천지에 깔렸고, 어느 집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가면 그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고깃국을 끓여먹었다. 어디 그 뿐이었으랴. 광기는 온 마을을 사로잡아 나중에는 죽지 않은 이조차도 그들의 식량이 되었으니 노인은 늙고 살이 없어 제쳐두고, 어른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으니 제쳐두어 그들이 택한 것은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갓난쟁이 어린애들이었다. 어디 그것이 사람이 할 일이던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에게 할 일이던가. 허나 굶주림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저들이 하는 일이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로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먹고, 먹히는 일들을 반복해왔다. 그럼에도 굶주림은 가실 바를 몰랐다. 삭막한 계절이 지나고 찾아온 겨울은 유난히 더 혹독했다. 몰아치는 눈바람 속에 비쩍 말라버린 나무는 이미 껍질이 허옇게 벗겨져 죽어가기 일보직전이었고 시들어버린 풀은 뿌리조차 남지 않았다. 산조차도 피죽만 남은 사람들의 허연 갈비뼈처럼 새하얗게 껍데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위로 차곡이 쌓이는 눈은 아리고, 너무 아린 탓에 감각조차 온전히 느낄 수가 없었다.

 서리는 동짓밤이 지나던 무렵에 태어난 농사꾼의 딸로, 그 혹독한 계절을 어찌어찌 버텨낸 강인하고 운 좋은 아이였다. 허나 사람들은 이제 이토록 험난한 가뭄을 구제하지 않는 산신을 원망하기 시작하였고 처녀애를 산신에게 바치면 이 혹독한 계절이 가고 풍요가 찾아올 것이라는 헛된 믿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니 서리는 마을에서 꼽아낸 처녀애로, 말하자면 산 제물이었다. 보통의 제물이라면 가장 좋은 옷감을 입혀다 갖은 치장을 하는 것이 으레이건만 서리는 그조차도 받지를 못했다. 가장 좋은 옷감은 이미 내다팔아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 사용되었고, 아이는 간신히 도타운 누빔저고리만을 받아 숲에 내몰렸다.

 산군은 모두 알고 있었다. 마을에 유난히 심했던 기근과 수없이 죽어났던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마을에서 고기 익는 냄새가 날 때면 누군가가 또 죽은 뒤였다. 시체를 씹어삼킨 뒤에 곧 그 뒤를 따라 숨을 거두는 이들도 있었다. 때로는 배가 부르자 제가 한 일이 무언지를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산군은 그저 인륜도 천륜도 저버린 이들에게 마땅한 벌이 내려진 것이라 생각했다. 측은지심은 남일이요, 그들이 살건 죽건 산군에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일이었다. 산군에게는 오로지 산이 중요했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차갑게 말라가는 나무와 뿌리조차 남지 않고 휑하게 뽑혀버린 풀무리, 이제는 씨족조차 남지 않은 짐승들이 중요했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였다. 저들이 살기 위해 내일은 가늠치도 못하고 그저 막무가내로 손을 뻗치기가 일쑤인 존재들. 그러니 산군은 그들이 바친 처녀애에 대해서도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았다.

 그러나 서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차가운 산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를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 꿈틀거리는 산군의 모양새가 서리에게는 그리도 매혹적이었던 모양이다. 서리와 산군은 그렇게 만났다.

 “산신님!”

 그 순간 산군은 무엇을 생각했던가. 돌아보자면 산군은 서리를 보고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허나 첫 만남은 유난히 특별했다. 산군은 그런 아이를 처음 보았다. 범의 모양을 한 산군을 보고도 산신이라 망설이지 않고 확정하였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작은 손을 흔들며 도움을 청했다. 보통의 아이였다면 잔뜩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고도 남았을 것을. 허나 서리는 보통 애가 아니었다.

 “산신님, 산신님! 저희 마을을 도와주세요!”

 설산의 산등성이에서 아이는 산군을 보았다. 새빨갛게 얼어버린 제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말을 걸어왔다. 눈발마냥 팔랑이는 손을 무시하려 고개를 돌렸으나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산신님, 산신님, 하며 말을 붙여왔다.

 서리와는 눈발이 흩어지는 산 속에서 만났다. 모르는 체 하여도 끈덕지게 제 뒤를 쫓는 모양이 퍽이나 안쓰럽고 딱하기도 하여 사람들에게도 등 떠밀리고 내몰려 예까지 쫓겨난 아이가 어찌 그리도 해맑기만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꽁꽁 얼어버린 두 손을 제 하얀 털 속에 묻고 방울처럼 재잘대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뒤엉켜 산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니 산군이 아이에게 측은지심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산군은 아이의 목덜미를 들어 동굴에 옮겼다. 눈발이 거세게 몰아칠 때면 산군이 몸을 피하던 곳이었다. 아이는 해사하게 웃었다. 산군은 그 모습이 어째 영 탐탁지를 않았다.

 “산신님, 저는 서리라고 해요. 요기 산 밑의 마을에서 올라왔는데 마을에 흉년이 아주 심했어요. 그래서 어른들이 산신님을 만나 마을을 도와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셔서 왔어요.”

 총기 어린 눈동자가 빛났다. 산신은 무어라 입을 떼어야 할까 잠시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은 아이도 언젠가는 알게 될 터였다. 산신의 푸른 눈이 느리게 끔벅였다.

 “아해야.”

 나지막한 음성에 아이는 놀란 얼굴을 하였다.

 “나는 신이 아니라 마을을 도울 수가 없다.”

 본디 하늘의 뜻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천신의 뜻이라면 산군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설령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산으로 내몰고 죽은 시체를 뜯어먹으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모습을 다 알고 있대도 못 본 체, 모르는 체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물론 산군은 애초부터 그럴 마음도 없었다. 산군에게 사람들의 마을은 그저 소란한 곳이었고 이따금 산을 헤집어놓는 이들은 곱게 보일 리가 없는 귀찮은 족속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산군의 그러한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눈썹을 팔자로 휘며 한껏 울상을 짓고는 산군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정말로요? 정말로 아니되어요? 그리 물어오는 아이의 목소리는 퍽이나 애잔한 것이었으나 그렇대도 산군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마을로 돌아가라, 아해야. 돌아가서 산신은 없었다고 말하거라. 산군은 그리 말하고는 돌아섰다. 예 있어봐야 네게 좋을 것은 없다. 산도 척박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외려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던 것보다 더 고될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 이런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전해라.

 동굴 밖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엄동설한이었다. 산군은 그 눈보라 속을 한 점의 흔들림 없이 위풍당당하게도 걸어나갔다. 서리의 시야에서 산군이 점차 멀어지다 새하얀 눈무리에 뒤섞여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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