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좋아하세요...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

소개팅이 엇갈려 우연히 만난 극작가와 연극배우가 11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

 
제 11화. 시든 꽃.
작성일 : 22-02-11 02:13     조회 : 200     추천 : 1     분량 : 771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선배님, 저 계속할 자신이 없어요. 나중에 제 커리어에 문제라도 생기면 책임질 거예요?”

 

 1년 전, 총 3회 차로 계획되어 있는 민석의 졸업 공연 ‘최악의 연애가 도사린다’의 2회 차가 끝났을 때. 한 배우가 와서 말했다. 주연 배우를 맡았던 그녀는 이판사판이라는 듯, 뒷정리를 하던 스텝들 앞에서 되려 큰 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꼭 하고 싶다고 사정사정해서 주연 맡은 거잖아. 이제 와서 안 하겠다니.”

 

 민석은 언젠가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공연이 남았을 때 이렇게 불쑥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함께 밤을 새고, 끼니를 거르며 오늘만을 위해 달려온 팀원들이었다. 무대를 꾸미고, 팀원들의 식사를 해결해주기 위해 민석은 밤에 야간 알바를 뛰면서까지 사비를 투자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함께 달려와 준 팀원들이 고마워서 그랬다.

 

 민석이 학교로부터 졸업 공연 지원을 확정을 받았을 때, 평소 친하지도 않던 사람들도 전부 찾아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오퍼했다. 그만큼 민석은 소문난 이야기꾼이었고 그와 함께 협업을 해보고 싶던 사람들이 꾸물꾸물 기어 나와 거머리 같이 달라붙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학교에서 일을 잘하기로 소문이 난 학생들도 많았다. 성실하고 우수한 실력을 갖고 있던 학생들. 그러나 민석은 그 오퍼들을 뒤로 하고 가장 친했던 측근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연이 하나 올라가기까지엔 많은 손길이 필요했다. 단순히 글 하나만 나온다고 무대가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손보고, 글을 무대 위로 옮기고. 동작 하나하나와 대사까지 전부 다시 만들어내야 했다. 배우의 말씨와 맞는 대사로 수정해야 했고, 무대에서 동선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대본의 일부분을 수정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그럼에도 민석은 최선을 다했다. 그녀를 위한 희곡이었으니까.

 

 “나 다른 남자 생겼어.”

 

 민석이 좋아하던 그 고운 목소리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민석은 무대를 만드는 것과 연애는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연인을 마음껏 그려도 막상 실제로 만나게 되면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렇게 연인의 관계는 끊임없이 손보고, 맞춰가고, 완성돼 가야했다.

 

 민석이 연극을 볼 때 초연과 막공을 굳이 따로 챙겨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연극은 수많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 나아지고 아름다워지고 배우들의 호흡도 잘 맞아 더욱 맛있어졌다.

 

 때문에 민석이 가은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끊임없이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했고 단 1분이라도 더 함께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시든 꽃 위에서 아무리 맴돈다 한들 나비는 단 한 톨의 꽃가루도 얻지 못한다.

 

 연극과 연애는 달랐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아간다고 생각할 때쯤, 점점 더 사이가 멀어지는 게 바로 연인이었다.

 

 서로에게 더 요구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기대치가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서로는 더 이상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없었다.

 

 “지금 왜 자꾸 자리가 만석인 줄 알아요? 소문 듣고 보러 왔대요. 얼마나 역겨운 작품인지, 얼마나 파렴치한지 말이에요!”

 

 후배 배우는 그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민석도 소문에 대해서 대충 들었다. 민석이 가은과 연애했던 걸 그대로 희곡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남자가 잘해줄수록 여자는 남자를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도망가 버리는 작품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여자들은 남자에게서 액기스를 빼먹으면 새 먹잇감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실은 여자를 떠나보내는 남자의 심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여자가 떠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남자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가지와 기둥과 밑동까지 내어줄 수 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관점에서 본다면 소문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 소문을 믿어?”

 

 민석이 말하자 후배 배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다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쏠려 있음을 깨달았다. 후배 배우는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믿고 말고를 떠나서 나는 이런 일에 오르내리기 싫어요.”

 

 후배 배우는 그 말을 끝으로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스텝 몇 명도 자리를 떠났다. 차마 하지 못하고 있던 말을 배우가 모두 해준 덕분에 이 괴로운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듯. 그토록 믿었던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간 작품인데.

 

 살짝 문 열린 틈으로 무대를 빠져나간 스텝들이 기분 좋은 기지개를 펴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그렇게 민석의 마지막 공연은 취소가 됐고 민석은 사람들과 전부 인연을 끊은 채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 . . . . .

 

 ‘왜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나는 거지?’

 

 극장의 돌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던 민석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조금씩 해가 기울면서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민석은 얇고 긴 그림자가 어쩌면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한없이 커 보이려고 노력한들 결국엔 점점 더 얇아지다가 이내 밤이 잠식하면 그림자는 영영 사라질 것이다.

 

 지혜와 극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다행히 철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을 뒤쫓거나 한없이 기다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지혜가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우는 동안, 민석은 돌아가려다가 차마 지혜를 혼자 둘 수 없어 이렇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지혜가 괜찮은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대로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녀 걱정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까 지혜랑 어디론가 갔던 그 친구 맞지?”

 

 그 목소리는 정말이지 갑자기 들렸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처럼, 민석은 아까 멀리 떨어져 있던 탓에 철웅의 목소리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품 구두 한 쌍이 길어진 민석의 그림자 머리를 밟고 있었다. 철웅은 걸음을 옮겨 민석의 옆에 앉았다. 민석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왜 지혜가 그 상황에 너를 데리고 갔는지는 궁금하지 않아.”

 

 마치 민석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는 듯 철웅은 가감 없이 말을 내뱉었다.

 

 “니가 지혜를 얼마나 만났고, 또 앞으로 어떤 사이가 될 건지도 궁금하지 않아.”

 

 어쩌면 아무런 감정 없는 로봇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 긴장감, 그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너는 임자가 있는 여자를 건드렸고 그건 전 세계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거야.”

 

 민석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절대로 철웅이 두렵거나 후환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놀랍도록 침착한 그의 평정심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을 뿐이다. 하얗게 질린 얼음이 더 차갑다고 했던가. 그가 몰고 온 겨울바람이 민석의 발목을 야금야금 훑었다.

 

 “보아하니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것 같은데. 가진 것도 없는 게 누굴 탐내는 건지 모르겠네……”

 

 그는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구두에 묻은 먼지를 슥슥 닦아냈다.

 

 “지혜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날 기만하는 건 좋지 않은데 말이야.”

 

 민석은 곁눈질로, 철웅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은 벌집을 건드렸을 때처럼 공포심을 유발했다.

 

 “앞으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평소엔 이렇게 침착한 사람이 아닌데. 어린 애가 실수했을 수도 있지. 내 아량은 그렇게 넓지 않다는 걸 알아줘.”

 

 철웅은 구둣소리를 크게 내며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길어지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한없이 길어진 그의 거대한 그림자는 이내 일몰과 동시에 온통 어둠으로 변했다. 그의 그림자가 어둠에 먹혀 사라진 것이 아닌, 온 세계가 그의 그림자로 덮인 것 같았다.

 

 철웅의 구둣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민석은 도저히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의 뒷모습이라고 해도 말이다.

 

 

 

 순간 가로등이 켜지며 민석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민석이 놀라 흐려졌던 초점을 맞추고는 정신을 차렸다. 방금 일어난 일이 민석의 상상인지, 실제였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뒤에서 민석의 그림자를 살포시 덮고 있었다. 민석이 뒤를 돌아보자 지혜가 거기에 서 있었다.

 

 “추운데 왜 기다렸어요. 못 볼꼴만 보였는데.”

 

 연극 속 서희가 아닌 원래의 지혜로 돌아온 그녀는 민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석은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지혜의 앞에 섰다. 그제야 내내 찬 바닥에 앉아 있던 엉덩이가 차갑다는 걸 깨달았다.

 

 “괜찮은지만 보고 싶어서요. 그럼 전 이만……”

 

 민석은 지혜의 표정이 조금은 풀린 걸 보고 안심했지만 동시에 철웅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쩌면 어디선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만난 김에 저녁이라도 같이 먹어요. 오늘 있던 일 오해 풀고 싶어요.”

 

 지혜가 용기를 냈지만 민석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임자 있는 여자를 건드렸어.’

 

 철웅의 말이 맞았다. 지혜가 철웅에 대해 어떻게 말을 했든 아직 두 사람은 완전히 정리가 끝나지 않은 연인이었다.

 

 “괜찮은 거 봤으니까 됐어요. 가 볼게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찬바람 오래 맞으면 안 좋아요.”

 

 민석은 그대로 뒤를 돌았다. 지혜는 차마 그를 붙잡지 않았다. 민석은 알고 있었다. 지혜 역시 그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이다. 민석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시든 꽃에 앉은 나비는 그저 꽃이 시든 걸 원망할 뿐이다.

 

 . . . . . .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기운 없이 집으로 돌아온 민석에게, 찬우가 대뜸 말했다. 찬우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어느새 없고 모든 걸 안다는 눈치뿐이었다. 민석은 방금 전 일을 생각하며 애써 찬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숨기긴. 내가 숨길 게 뭐가 있어.”

 

 “요 며칠 이상해. 글 한 페이지만 써도 좋다고 보여주던 애가 한 글자도 안 보여주려고 하고. 집에만 있던 애가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언제는 밖에 나가라더니……”

 

 “돌려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냥 바로 얘기할게.”

 

 “뭘?”

 

 찬우는 민석이 의자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찬우도 민석의 침대 위에 앉았다.

 

 “예슬이 말고 다른 사람 만나고 있지?”

 

 찬우의 질문은 생각보다 굵직했다. 장난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그저 민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형광등이 조금은 어둡다고 생각했다.

 

 “응.”

 

 “거짓말은 안 해서 좋네. 모른 척 했으면 별로일 뻔했어.”

 

 오히려 찬우는 안심한다는 듯 앉은 자세가 편해졌다.

 

 “요즘 좋아보이던 게 예슬이 덕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민석은 괜히 찬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민석을 어두운 방에서 꺼내기 위해 가장 노력한 건 찬우였는데 민석은 친구를 속이고 있었다.

 

 “야, 그것도 모르고 나는 괜히 예슬이만 부추겼잖아.”

 

 “미안.”

 

 “미안하긴! 얼마나 잘 됐어. 꼴통인 줄만 알았더니 어떻게 혼자서 여자를 만나냐!”

 

 찬우의 반응은 의외였다. 신이 난 아이처럼 민석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어?”

 

 “어떻게 만났어? 마음에 들어서 번호 딴 거야? 아니면 공연 보러 갔다가 먼저 들이댔냐?”

 

 “들이대긴. 사연이 좀 복잡한데 막 만나려고 했던 건 아니고……”

 

 멈칫.

 

 “잠깐. 공연이라니?”

 

 찬우도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성현 선배가 얘기해줬어. 아까 극장에서 너 봤다고. 거기 주연 배우가 남자 친구랑 싸우더니 너랑 같이 어디론가 갔다는데.”

 

 민석은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성현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그 선배가 다 봤대? 나 어떡하지……”

 

 “뭘 어떡해. 선배는 오히려 좋아하던걸. 자기가 가장 아끼는 후배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게 자기 주연 배우라고. 저번에 선배 공연 보러 갔다가 꼬신 거야? 알려줘, 궁금해 죽겠다.”

 

 찬우는 이럴 때 보면 꼭 초등학생 같았다. 한 번 꽂힌 건 비밀을 알아낼 때까지 파고드는 찬우의 ‘두더지 본능’이 살아난 것이다. 호기심이 넘쳐 문제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했다. 작가로서는 높이 사는 점이지만 괜히 찬우에게 잘못 걸렸다가는 태아였을 때의 이야기도 모조리 끄집어내야 했다.

 

 “꼬시긴! 그런 거 아니라고. 선배 공연 보러 가기 전에도 알던 사람이었어.”

 

 “어떻게 알았냐고, 그래서!”

 

 찬우는 슬슬 조바심을 느끼는 듯 앉은 자세를 계속해서 바꿨다.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소개팅 잘 잡아줘서 고맙다고.”

 

 “소개팅? 예슬이 소개팅 말하는 거야?”

 

 “그날 예슬이가 조금 늦었어. 그때 마침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다른 소개팅이 있었는데 엇갈린 거야. 내 쪽은 예슬이가 늦고, 그쪽은 남자가 늦고. 서로가 소개팅 상대인 줄 알고 만나게 된 거지.”

 

 “예슬이가 많이 늦진 않았을 거 아니야. 얼마나 알았는데?”

 

 “3분.”

 

 “뭐어? 3분?”

 

 “응. 그때는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몰랐는데 선배 공연 보러 갔다가 다시 마주치게 된 거야.”

 

 “뭔가 로맨틱한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몇 번 안 만나봤어. 이제 겨우 네 번 만났나……”

 

 “야. 3분 만에 서로한테 뿅 갔을 정도면 네 번이면 끝난 거지.”

 

 “뿅 가긴!”

 

 민석은 다시금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성현 선배는 얼마나 알고 있어?”

 

 “몰라. 주연 배우가 남자 친구랑 싸우는 거 같아서 사람들 보는 눈도 있으니까 말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널 데리고 갔다나 뭐라나. 직감이 딱 왔대. 두 사람이 평범한 사이는 아닐 거라고.”

 

 “방금 한 얘기 그 선배한테 비밀이야.”

 

 “안 그래도 너 선배 극단이랑 작업하기로 했다며. 선배도 괜히 다른 소문나는 거 싫어서 함구하겠대. 그건 걱정하지 마.”

 

 그랬던 민석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5년 지기 친구 찬우가 이를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그 남자 친구라는 사람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거지?”

 

 “응. 소개팅에 나왔길래 당연히 남자 친구가 없는 줄 알았지. 근데 헤어지자는 말은 안 한 상태로 연락만 끊었다나. 지혜 씨는 당연히 헤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 쪽은 생각이 다른가 봐.”

 

 “이름이 지혜 씨구나.”

 

 “극장 앞에서 지혜 씨 기다리는데 그 남자가 와서 그러더라. 임자 있는 여자 건드린 거라고. 보니까 돈도 잘 벌고 엄청 능력 있어 보이던데. 결국엔 이어질 수 없는 사이였나 봐.”

 

 “야. 그런 게 어딨어.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그리고 지혜 씨는 거의 헤어진 걸로 알고 있다며. 그 남자가 괜히 와서 뒷북치는 거지. 지혜 씨는 몇 살인데?”

 

 민석은 잠시 머뭇거렸다.

 

 “서른여섯.”

 

 “뭐어?”

 

 “삼십육.”

 

 “스물여섯도 아니고, 그냥 서른도 아니고. 서른여섯? ……내가 편견이 없는 편이긴 한데 나이 차가 좀 나는 거 아니냐?”

 

 “하지만 나이를 알기 전에 이미 너무 좋아져 버렸는걸.”

 

 “……”

 

 찬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잠시 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아마 열한 살의 나이 차 때문에 다른 생각을 갖게 된 건 아닐 것이다. 설령 두 사람의 나이 차가 문제가 된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이토록 지혜를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민석도 민석이지만, 남자 친구와 싸우고 나서 민석을 데리고 가버린 지혜 역시 이미 마음속에 민석을 위한 방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예슬이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민석이 적막을 깨고 말했다. 사실 찬우에게는 그 문제가 더 컸다. 예슬이 지헤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어떤 후폭풍이 일어날지 몰랐다.

 

 “예슬이는 아직 지혜 씨 모르지?”

 

 “응.”

 

 “예슬이는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잘 해볼게.”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민석아.”

 

 “응?”

 

 “미안해할 거 없어. 너 때문이 아니야. 때로는 이성보다 마음이 더 따라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나는 그게 지금이라고 본다.”

 

 그토록 천진난만한 찬우도 가끔 보면 나이가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성숙했다.

 

 ‘최악의 연애가 도사린다’ 때도 그랬다. 주변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글을 쓰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국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법. 결국 단단해지기 위해선 가면 위로 자신의 표정을 그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고맙다.”

 

 찬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민석은 노트북을 켜려다 문득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문득 자신에게 말을 걸던 철웅의 표정이 그려졌다.

 

 그의 얼굴엔 웃음기를 떠나 평온함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0 마지막 화. 좋아하세요. 2022 / 2 / 20 187 1 8381   
19 제 19화. 그리웠어요. 2022 / 2 / 19 197 1 7623   
18 제 18화. 마지막으로. 2022 / 2 / 18 179 1 4241   
17 제 17화. 진짜 이야기. 2022 / 2 / 17 192 1 4740   
16 제 16화. 돌아오세요. 2022 / 2 / 16 203 1 3099   
15 제 15화. 속마음. 2022 / 2 / 15 198 1 5619   
14 제 14화. 커튼콜. 2022 / 2 / 14 200 1 8231   
13 제 13화. 지우개. 2022 / 2 / 13 192 1 5499   
12 제 12화. 보름달. 2022 / 2 / 12 213 1 3635   
11 제 11화. 시든 꽃. 2022 / 2 / 11 201 1 7717   
10 제 10화. 변색. 2022 / 2 / 10 199 1 5527   
9 제 9화. 혼란. 2022 / 2 / 9 209 1 6311   
8 제 8화. 붕괴. 2022 / 2 / 8 208 1 6903   
7 제 7화. 질투. 2022 / 2 / 7 220 1 6651   
6 제 6화. 균열. 2022 / 2 / 6 203 1 6444   
5 제 5화. 새로운. 2022 / 2 / 5 215 1 6129   
4 제 4화. 순간을. 2022 / 2 / 4 210 1 6193   
3 제 3화. 운명을. 2022 / 2 / 3 219 1 6735   
2 제 2화. 우연히. 2022 / 2 / 2 212 1 6423   
1 제 1화. 엇갈림. 2022 / 2 / 1 354 1 711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시간의 편지
일희삼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