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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악녀가 흑막이 되어야 했던 사정
작가 : 이디별
작품등록일 : 2022.1.13

전생에 내가 죽여 버린 하녀로 환생해버렸다.
그래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내가 아닌 나.

이번 생에선 너도 나도 그렇게 살아선 안 돼. 내가 바로 잡겠어.

나의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줄 화가에게 기대고 싶어도
은백색 빛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전생의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공작이 나를 구원하여주어도
나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이 그 남주들에게 흑막을 드리운다.


뺏지 않으면 빼앗기리라.

 
18화 둘이서 뭐해
작성일 : 22-02-10 00:14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4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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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디아나는 무슨 그런 해괴망측한 부탁을 하냐는 듯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왜 제 손을 잡아요?”

 

 “아저...”

 

 

 지안은 번뇌에 사로잡혔는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며. 아저..씨는 아니지 않나? 처녀?”

 

 “어쨌든 손은 싫어요. 아저씨가 왜 내 손을 잡아요? 재수 없다고 할 땐 언제고.”

 

 “내가 언제.”

 

 “전에 헤이든한테 말한 거 다 들었어요. 뒷담화 하더니 이젠 거짓말까지 하시는군요. 처녀 손을 막 만지려고 하고.”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뭐 네가 좋아서 잡는 줄 아나?”

 

 “그럼 재수 없는 애 손은 왜 잡겠다는데요?”

 

 “내가 언제 재수 없다고 했는데? 불쾌하다고 했지!”

 

 

 그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지르자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무안해진 지안이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 켰고 디아나는 그 틈을 타 빼앗긴 잔을 자기 앞으로 돌려놨다.

 

 컵을 쾅 내려놓은 지안이 소매로 입가를 닦고는 다시 말했다.

 

 

 “잠시만 네 심장 소리 좀 들으려고 그런다.”

 

 “심장이요?”

 

 “저번에 산맥에서 쓰러졌잖아. 그때 너한테 이상 반응을 느꼈거든. 확인 좀 하게 내놔봐.”

 

 그가 신경질 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디아나 본인도 그날 쓰러진 것에 대해 궁금했기에 조심스레 손을 올려놓자 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지안은 디아나의 손목을 잡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이내 심각해진 얼굴로 그녀의 손을 깍지를 끼며 꽉 쥐었다.

 

 

 “뭐, 뭐하는 거예요?”

 

 

 당황한 디아나가 손을 빼내려 하자 그는 다른 손바닥을 들이대며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잡고 있던 그는 손을 떼어내며 자신의 잔에 남은 음료를 전부 들이켰다.

 

 기나긴 침묵 속에서 눈치를 보던 디아나의 손이 스리슬쩍 맥주에 닿으려 하자 딴생각에 빠져있을 줄 알았던 지안의 큰 손이 찰싹 내리쳤다.

 얄팍한 통증에 입이 댓발 나온 디아나가 무슨 소리를 하기도 전에 두 여인이 두 사이를 가로막았다.

 

 “지안님. 언제 오셨어요?”

 

 “이거 좀 드셔 보세요.”

 

 두 여인은 그녀들이 가져온 딸기주스와 쿠키바구니를 그의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무척 여자여자한 디저트에 살짝 당황한 지안은 이내 어색한 미소로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나. 잘지냈니?”

 

 “그럼요! 지안님 다녀가신 후로 할머니께서 몰라보게 회복되셔서 저희 집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너무 감사해요.”

 

 “난 약만 전달했을 뿐인데 뭘. 누구랑 같이 왔니? 해가 저문 것 같은데.”

 

 

 디아나는 그녀가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한 목소리에 눈을 흘기며 지안을 노려보았다.

 

 

 “혹시 돌아갈 때 지안님과 같이 가도 될까요?”

 

 “아... 미안하다. 난 누굴 좀 만나야해서.”

 

 “에잉... 너무 아쉬워요. 다음번에 소 공작님과 저희 가게 오시면 꼭 알려주세요. 식사라도 대접할게요. 네? 네? 아셨죠?”

 

 “그래. 더 늦기 전에 돌아가렴.”

 

 “꼭이에요! 소공작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녀들의 혀 짧은 목소리에 조금은 닭살이 돋는 디아나는 힐끔 쿠키바구니에 눈독을 들였다.

 

 초코가 잔뜩 박혀있는 것을 보니 꽤나 맛있을 것 같아 입맛을 다시는데 꼬르륵 뱃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테이블 위에는 땅콩과 감자튀김, 구운 소시지가 두서없이 담겨져 있었고 과일 껍질이 테이블 위에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다.

 

 허기에 조금 예민해진 그녀는 다 식은 감자튀김을 뒤적 거리며 지안에게 말을 걸었다.

 

 

 “참... 여자들에게 세~~상 친절하시네요.”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지.”

 

 

 그런 지안을 보며 ‘웩’ 토하는 시늉을 하던 디아나가 감자튀김을 하나 들어 자세히 관찰했다.

 

 ‘하... 헤이든이 요리해준 거 먹고 싶다.’

 

 그녀는 헤이든이 오면 맛있는 거 해 달래야지 다짐하는데 지안이 아까 그 딸기 주스와 쿠키를 내밀었다.

 

 

 “됐어요. 안 먹어요. 그리고 난 딸기 싫어해요.”

 

 ‘당신이 주는 거 안 먹어.’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잘 참아낸 디아나였다.

 

 

 “배고파 보이는데 먹지? 여기 음식은 좀 그래.”

 

 “쿠키 말고 그 옆에 맥...” “안 돼.”

 

 

 지안은 디아나의 말을 단박에 끊고 쉽게 닿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 맥주를 옮겨버렸다.

 

 살짝 뿔이 난 디아나가 지안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근데 왜 제가 재수 없어요?”

 

 “난 너에게 재수없다 한 적 없어.”

 

 “전에 서재에서 헤이든한테 말한 거 다 들었어요. 저에 대해 아세요?

 제대로 대화 나눠본 적도 없으면서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둥, 불쾌하다는 둥 왜 그런 거예요? 책방 앞에서도 나한테 이상한 소리로 해대고.”

 

 “그리고 나서 널 구해줬지.”

 

 

 그가 쿠키 포장을 조심스레 뜯으며 덤덤히 말하자 디아나는 아차 싶었다.

 그때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대화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후에 감사하다는 말을 아직 못 들었고.”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에 움찔한 지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시 이 동네로 올 일 없을 거예요.

 아까 저 예쁜 애들만큼은 잘 해주진 못해도 이유 없이 미워하지는 마세요.

 천한 신분이지만 그래도 미움 받으면 마음 아픈 건 똑같으니까. 며칠만 참아요. 금방 사라져 드릴 테니.”

 

 

 말 돌리기에 성공한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하자 조금 난처해진 지안은 어깨를 으쓱이며 쿠키를 그녀의 입에 쑥 밀어 넣었다.

 

 

 “미워한 적 없어.”

 

 

 디아나가 쿠키를 양 볼에 담고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그럼 재수 없다고 한 건 뭐예요?”

 “그 재수없다는 말 좀 그만하면 안 되나?”

 

 

 디아나는 쿠키를 꿀떡 삼키고 지안을 조금 노려보더니 그의 손을 덥석 잡아 자신의 손과 깍지를 끼었다.

 그에 소스라치게 놀란 지안이 몸을 뒤로 뺐다.

 

 

 “뭐, 뭐야?”

 “근데 신기하네요.”

 

 

 디아나가 그 맞잡은 손을 들어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하더니 마저 대답했다.

 

 

 “손을 잡으니까 이상한 기운이 몸에서 느껴져요. 왠지 기분이 엄청 좋아지는데요?”

 

 

 디아나가 그를 향해 해맑게 웃었다.

 

 

 “둘이서 뭐해?”

 

 

 헤이든이 다가오며 짙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든아! 어서 와!”

 

 

 헤이든을 발견한 디아나가 환하게 웃으며 벌떡 일어나 그의 팔을 잡고는 귓속말 하듯 손을 올려 그에게 속삭였다.

 

 

 “가자.”

 “어?”

 “나 너무 배고파. 소보에 가서 나 맛있는 거 만들어주면 안 돼? 네 음식 먹고 싶어.”

 “그럴까?”

 “응”

 

 

 텐션이 많이 올라와 있는 디아나의 모습이 귀여운지 헤이든이 미소 지으며 지안에게 인사했다.

 

 

 “대장. 우리 갈게요.”

 

 

 지안은 그들을 돌아보지 않고 손만 올려 인사했고 많은 인파를 뚫고 힘겹게 호프집을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밤 거리를 걸었다.

 

 헤이든은 어딘가를 보더니 갑자기 뛰어가 문을 닫으려는 가게 아저씨를 붙들어 뭐라뭐라 이야기를 했다.

 

 디아나가 가까이 다가갔을 땐 헤이든의 손에 소고기와 치즈가 들려있었다.

 

 

 “우와. 아슬아슬했어. 가게 문 닫기 전에 잘 나왔다. 집에 재료가 없을 것 같거든. 가자.”

 

 

 이젠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는 헤이든에게 이끌려 들어간 집안은 무척 어두웠다.

 

 디아나를 식탁에 조심히 앉도록 도운 그는 촛대에 불을 붙이고는 바로 자신의 방에서 마정석 2개를 가져왔다.

 

 

 “우와. 이거 어디서 났어?”

 

 “아까 시내 갔을 때 사왔지. 네가 밤에 무서워하는 거 같아서.”

 

 

 어머 세상에... 이리 섬세하다니.

 

 

 “이거 많이 비싼데.”

 

 “이건 조명용이라 별로 안 비싸. 잘 때 방에 가지고 들어가.”

 

 

 새침한 표정을 짓는 디아나가 은은한 빛을 내뿜는 마정석을 요리조리 굴리더니 촛대에 불을 더 붙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나 뭐 만들어 줄거야?”

 “볼로네제 파스타 해줄게.”

 “정말? 나 그거 진짜 좋아해.”

 “세탁하녀가 볼로네제를 알아?”

 “세탁하녀는 알면 안 돼?”

 “소고기가 들어간 거라 귀하긴 하지. 아직 오븐에 불이 남아있어서 금방 할 수 있겠다.”

 

 

 디아나가 다른 말을 안 해도 알아서 해석한 헤이든은 선반 여기저기를 부산스레 열며 재료들을 몇 개 꺼내더니 그녀에게 토마토를 건넨다.

 

 

 “이거 씻어.”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요리를 해본 적 없는 디아나는 떨떠름하게 받아드니 그도 옆에서 양파와 당근을 가져와 씻었다.

 

 자꾸 어깨를 부딪혀 의식이 되었던 디아나가 어설프게 채소를 씻자 헤이든이 손을 탁탁 털고는 그녀의 소매를 걷었다.

 

 

 “디아나, 옷 다 졌잖아.”

 

 

 이미 소매를 말아 올린 헤이든의 팔에 잔 근육들이 꿈틀거린다.

 

 번뇌에 사로잡힌 디아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 씻은 채소를 가져간 헤이든은 도마 위에서 그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진다.

 

 

 “세상에. 도끼질은 못해도 칼질은 잘하네.”

 

 “검술은 싫어해도 식칼은 좋더라.”

 

 

 그가 다진 채소를 달구어진 팬 위에 올리자 촤아 맛있는 소리가 조용한 부엌을 가득 채웠다.

 

 그 위에 소고기를 넣어 함께 볶더니 소금을 한꼬집 휘리릭 눈송이처럼 내린다.

 

 포트와인 2스푼과 허브를 넣은 헤이든이 디아나에게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기 푸실리 좀 줘봐.”

 

 

 고개를 돌려보니 손가락 크기의 회오리 면이 담겨 있는 파스타 통이 보였다.

 

 그것을 가져다주자 그는 푸실리와 물을 넣어 팔팔 끓였다.

 

 

 “여기에 후추를 넣으면 딱 인데.”

 

 “내가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꼭 후추 사줘야지. 요리는 언제 배운 거야?”

 

 “그냥... 입맛이 좀 까다로워 내 음식은 내가 해먹는 편이지. 네가 해볼래?”

 

 

 그가 조리스푼을 건네자 호기심에 금세 얼굴이 밝아진 그녀가 어설프게 휙휙 저었다.

 

 음식이 망가지고 있다 생각 드는 건 디아나만 느끼는 것일까?

 

 어떤 잔소리 없이 빙그레 웃으며 지켜보던 헤이든이 그녀가 잡고 있는 주걱 위로 자신의 손을 얹어 볶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젓다가는 재료들이 다 으깨지겠다. 하녀 아닌 거 너무 티나잖아. 디아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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