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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선천빌라 세입자들
작가 : r라
작품등록일 : 2022.2.9

선천빌라에 사는 4명의 세입자들의 평범하고 평범한 이야기.

 
5. 진솔한 술
작성일 : 22-02-09 16:51     조회 : 175     추천 : 0     분량 : 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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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동맹이긴 해도, 꼭 저녁을 여기서 먹어야 하는거예요?”

 

 한혜미씨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 그러니까요. 그냥 두 팀으로 나누어서 나비 집 앞에 보, 보초를 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적도씨가 말을 거들었다. 그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길드원들과 한탕 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간에 하루 종일을 빼앗기다니. 길드원들에게 온갖 욕을 얻어먹을 것이 눈에 훤했다.

 

 “서로를 감시하려면 적어도 밥 정도는 같이 먹어봐야죠. 다 같이 잠은 못자도. 안그래요? 내일부터 두 팀으로 나누어서 보초를 서기로 합시다.”

 “지 마음대로 구만! 우리가 여기 이러고 있을 때 댁이 그렇게 아끼는 나비한테 뭔 일 생기면 어쩌려고?”

 

 나대곤씨가 비아냥 거렸다. 방옥분씨는 익숙한 듯 입술을 앙다문 시늉을 하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를 식탁 위에 올렸다.

 

 “댁들이 여기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우리들 중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군.’ 세 사람은 조용히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범인을 잡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잡히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본인들과 무슨 상관이랴. 피곤해지고 싶지 않으니, 적당히 할머니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 뿐이었다.

 

 꽤 단조로운 밥상이었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구운 김과 파김치가 전부였다. 12첩 밥상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온기가 올라오는 차려진 밥상에 세 사람을 침을 꿀떡 삼켰다.

 

 살짝 흘겨본 방옥분씨의 집 안은 딱 봐도 혼자 사는 할머니 집 같았다. 오래된 냉장고에 세월을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은 꽃무늬 자수 이불. 스카치 테이프로 칭칭 감아 부서진 곳을 보완한 유선 청소기까지.

 

 과연 15평 남짓한 좁아터진 투룸에 개를 세 마리나 키워서인지. 신발장에서부터 개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개는 어디에 있어요? 세 마리 키우신다면서요.”

 “방에 있지.”

 “가둬나요?”

 “풀어놓으면 벽지며 신발이며 사정없이 다 물어 뜯어놔서 안돼. 배변도 여기저기 싸놓고.”

 

 저것이야 말로 학대가 아니면 뭘까. 한혜미씨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방옥분씨가 만든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맛이 좋았다. 항상 인스턴트나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들은 오랜만에 먹어 보는 ‘엄마표 밥상’ 앞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맛을 음미하는데 집중했다. 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다들 며칠씩 굶었나? 한 그릇 더 줘요?”

 

 정말 ‘엄마’ 같은 방옥분씨의 질문에 그들은 온순한 양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드님이 겨, 경찰인가봐요?”

 

 열심히 밥을 먹던 이적도씨가 툭 던지듯 물었다. ‘경찰’ 이라는 단어에 나대곤씨와 한혜미씨는 수저를 멈추고 방옥분씨를 바라보았고, 방옥분씨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적도씨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할머니가 천장에서 김 꺼내실 때 애, 액자를 봤거든요.”

 “…. 우리 아들 잘생겼지?”

 “자, 자세하게는 못봤어요. 근데 차라리 아드님한테 부, 부탁하는 게 낫지 않아요?”

 “안돼.”

 “왜요? 마, 말이라도 해보시지. 우리보다 더 낫지 않아요?”

 “죽었어.”

 

 “켁! 켁!”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옥분씨의 말에 그들은 목구멍에 열심히 넘기고 있던 밥알들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콜록거리며 간신히 밥알들을 위로 우겨 넣곤 방옥분씨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덤덤했다.

 

 “오늘 찌개 잘됐네.”

 

 그들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지만, 방옥분씨는 세 사람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단순한 사고였어.’ 라고 말했다.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비좁은 집 안에는 방옥분씨가 밥을 먹는 소리와 간간히 방 안에서 개들의 소리만 날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동정 어린 눈빛을 받고 있던 방옥분씨는 한층 밝은 톤으로 물었다.

 

 “한 잔씩 할까요?”

 

 나대곤씨는 헛기침을 두 어번 하곤 대답했다.

 

 “거, 우리 집에 좋은 인삼주가 있는데. 내가 특별히 쏘지.”

 

 

 *

 

 

 자정이 다가올 무렵. 네 사람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 올라 있었다. 인삼주는 생각보다 독했다. 충분히 취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각자의 집에서 술이란 술은 모두 가져와 끊임없이 입 안에 털어넣었다.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닌,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잠식된 취기에 흥분해 있었다.

 

 “아아니! 기성세대가 대한민국을 이따위로 망쳐놔서…. 지금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살기 힘든 거 아니냐고요. 먹고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든거죠?”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혜미씨는 30분 동안 같은 주제로 한탄을 토로하고 있었다.

 

 “쇠도 씹어 먹을 나이에 엄살은!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 아가씨, IMF 겪어 봤어? 그 시절에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나갔는지 알기나 해? 아가씨는 이 시대에 태어난 거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나대곤씨는 전형적인 기성세대의 멘트를 날리며 훈계를 시작했다.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못먹고 살았는지, 굶어 죽는 사람들과 자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자신이 왕년에 어떻게 살았었는지. 90년 대 그 시절 낭만에 대해 큰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누가 이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

 

 당사자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서로에게 완벽한 적이었다. 그런 그들은 지금 서로의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의 살에 대한 한탄과 본인만의 철학을 토해내듯 말하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상대편 술잔이 비면 누군가 잔을 따라주었고, 입으로 털어 넣기 전엔 관례처럼 서로의 잔을 부딪혔다.

 

 방옥분씨의 제안에 어쩔 수 없이 가볍게 한 잔 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살짝 맛본 나대곤씨의 인삼주는 너무나도 맛있었다. 각자의 삶이 고독했던 그들은 인삼주에게 완벽히 취해버렸다.

 

 하지만 고주망태가 된 상태에도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불신은 거두지 않았다.

 

 특히 방옥분씨가 그러했다. 그녀의 시선은 삼십분에 한 번씩 나비의 집 쪽으로 향했고, 혹여나 누군가 나갔다 왔을 때는 밖으로 나가 나비와 새끼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술도 한 잔 씩 했겠다. 솔직하게 말해 봐요. 지금 말하면 아무 것도 묻지 않을게. 우리 나비 새끼 죽인 사람은 누구야?”

 “아, 정말…. 자꾸 술맛 떨어지게 하시네. 우리 중엔 없다니까요.”

 “흥. 여기 골목에 우리 아니면 달리 누가 있으려고. 나는 꼭 우리 나비 새끼들 그렇게 만든 놈 잡을 거야. 당신네들 전부 내 용의자니까, 괜한 의심 살 짓 하지들 마셔요.”

 

 새침한 방옥분씨의 말을 다들 흘겨들었다. 그 때, 잠시 동안 들리지 않았던 강아지들의 하울링이 들려왔다. 잠시 깜빡했던 강아지들의 존재가 떠오른 한혜미씨가 물었다.

 

 “할머니. 근데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되요?”

 “뭐요? 물어봐요.”

 “재네 밥은 줬어요? 물은 갈아줬나요?”

 

 그녀의 질문에 방옥분씨는 ‘어머, 어머!’ 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손뼉을 쳤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우리 애기들 배고프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방옥분씨는 찬장으로 달려가 사료와 물을 챙겨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반기는 강아지들의 거친 숨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왔다. 한혜미씨는 멋쩍게 웃으며 나오는 방옥분씨를 향해 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드님 댁에 다섯 마리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걔네 케어는 언제 해요?”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 매일 사료랑 물 주는 건 안까먹고 잘 해주고 있다고. 방금 그건 나비 새끼 일 때문에 잠깐 깜빡한거예요.”

 “…. 전혀 잘하고 계신 거 같지 않은데요. 그거 감금… 이나 비슷한 거 아니에요? 죽은 아드님 댁에 감당도 못할 개들을 넣어두시고.”

 “내 아들 집에 내가 두는 건데, 문제가 될 게 뭐가 있어요?”

 “많죠! 밥이랑 물만 준다고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하시면 막, 막 자존감 채워지는 기분인가요? 행복해져요?”

 

 이미 인삼주에게 맛이 가버린 한혜미씨의 뇌는 필터링을 하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훅 올라는 취기와 방옥분씨의 행동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고, 한 번 터진 입은 멈추지 않고 쉴 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여기 산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한 번도 못봤거든요. 할머니가 강아지 산책시키는거. 제가 동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개들한테 산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도는 알아요. 할머니는! 키울 자격이 없어요. 할머니 딴에는 최선을 다 하신다 하더라도, 기준치에 하안참 미달이예요. 지금도 봐요! 집 안에 강아지 용품은 하나도 없는거. 할머니. 요즘 사회는 책임감없는 동정엔 돌멩이를 던지는 사회예요.”

 “좋은 일 하는데, 내가. 사회나 다른 사람 눈치까지 봐야 하는 거예요?”

 “봐야죠, 그럼.”

 “아가씨. 나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날카로운 방옥분씨의 반응에 한혜미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한 번 분출된 마음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녀는 술기운을 빌려 기어이 말을 이어갔다.

 

 “하고 싶은 말은 없는데… 음… 할머니 같은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선 ‘애니멀 호더’ 라고 불러요.”

 “애, 애니.. 뭐?”

 “한국말로 하면 ‘동물 수집가’ 라고도 하지요! 주워다 놓으면 다예요? 숨통만 붙어 있으면 다 끝난 건가? 할머니. 그건 착한 것도, 인정이 많은 것도 아니예요. 그저 자기만족이예요.”

 

 한혜미씨는 순간 방옥분씨 모습에 자신의 엄마를 투영했다.

 

 “학대나 다름 없다고요. 그거.”

 “이봐요!”

 “책임질 형편도, 여유도 안되면서. 끝까지 책임질 생각도 없으면서. 외면할수는 없고, 완전히 내칠 용기도 없는 치사한 사람.”

 

 방옥분씨는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혜미씨를 바라보았지만, 두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부정할 수가 없던 것이다. 발가벗겨진 기분에 과격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 그만하시죠.”

 

 이적도씨가 낮은 음성으로 한혜미씨에게 말했다.

 

 “그만하긴 뭘 그만해? 당신도 엄청 재수없어. 음침하고, 히키코모리.”

 “뭐, 뭐라고요?”

 “대체 말은 왜 더듬어요? 말도 제대로 못해요?”

 

 이적도씨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저 여자는 재수만 없을 뿐만 아니라, 싸가지도 너무 없다며 속으로 혀를 끌었다.

 

 “아가씨! 그렇게 술이 약해서 어떡해?”

 

 나대곤씨가 소리치자 한혜미씨는 낮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꼰대 할아버지.’ 라고 말했다. 들리게끔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말은 비좁은 집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사람한테 삿대질 좀 하지 말아요. 짜증나니까.”

 

 한혜미씨는 그렇게 말하곤 식탁에 쓰러지듯 얼굴을 박았다.

 

 그녀에게 한 마디씩 얻어 맞은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쓰러진 한혜미씨의 머리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 뒤통수 하, 한 대 칠까요?”

 

 이적도씨가 물었다. 두 사람은 묵인으로 긍정의 사인을 보냈지만, 아무도 그녀의 뒤통수에 손을 대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꼰대면 지는 뭐라고. 참나.”

 

 나대곤씨가 말하며 술을 들이켰다. 이적도씨는 골똘히 생각하다 이내 큰소리로 말했다.

 

 “페미! 페미니스트!”

 “페미? 그건 뭐야? 나쁜거야?”

 “본질이 나, 나쁜 건 아니고요. 원래는 좋은 뜻이예요. 페미니스트 정신은 굉장히 좋은 정신이지만, 저런 사람한텐 욕으로 쓰이기도 하죠. 자기 잣대로 판단하면서 자신들이 무슨 정의의 여신 디, 디케인 것 마냥 구는 사람들.”

 “디케는 또 뭐야? 요즘 젊은이들 말은 어렵다니까. 아무튼 욕이라는 거지?”

 

 이적도씨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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