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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선천빌라 세입자들
작가 : r라
작품등록일 : 2022.2.9

선천빌라에 사는 4명의 세입자들의 평범하고 평범한 이야기.

 
4. 나비를 죽인 범인
작성일 : 22-02-09 16:49     조회 : 160     추천 : 0     분량 : 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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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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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한 일이 일어나던 해는 매일 같은 시각에 뜨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비의 새끼 한 마리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지 일주일이 되던 주말이었다. 제 새끼를 잃은 나비와 방옥분씨를 제외한 세 사람은 어김없이 똑같은 토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그들의 머리 속엔 이미 죽은 새끼 고양이의 존재는 희미해진 형태였다. 그저 오늘 삼시 세끼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라는 단조로운 고민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다. 평소보다 더욱 화려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한혜미씨 입가엔 미소가 번져있었다.

 

 전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친구를 만나 거하게 술을 들이킨 한혜미씨의 속은 쓰렸지만, 컨디션만큼은 최상이었다. 비교할 것도 없이, 비참해질 것도 없이.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한 어제 저녁의 뜻깊은 만남을 곱씹었다.

 

 ‘넌 정말 재능있어. 네 그림엔 영혼이 있다고! 우리 사는 게 힘들어도 그림은 포기하기 말자.’

 

 그녀의 친구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오랜만에 들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한혜미씨는 자신의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조깅 좀 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작업해야겠어.’

 

 운동을 나가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대충 걸쳐 입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냐아옹…”

 “응?”

 

 익숙한 울음소리가 한혜미씨의 가벼운 발걸음을 잡았다. 고개를 돌아본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비였다. 나비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울고 있었고, 한 자리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한혜미씨의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나비에게 다가갔다. 나비와 눈이 마주쳤지만, 나비는 무시한 채 무언가를 열심히 핥아대기 시작했다.

 

 ‘설마….’

 

 한 발자국 더 다가서자 나비가 핥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검은색과 하얀색이 얼룩덜룩 섞여 있는 고양이.

 

 순간 비명을 내지를 뻔 했다.

 

 “세상에….”

 

 그래도 한 번 겪어봤다고, 헛구역질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당혹감에 머리 회로가 잠시동안 멈추어졌다. 처음 죽은 아이보다 더 참혹하게 죽어 있는 새끼 고양이의 죽음에 손은 절로 입으로 향했다.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있는, 누군가 고의로 자르지 않고선 불가능해 보이는 형태였다. 심지어 잘라 놓고 가지런히 놓아둔 형태가 더욱 잔혹하게 비춰졌다. 한혜미씨가 한 발자국 더 다가서자 나비는 ‘하악!’ 소리를 내며 한혜미씨를 경계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비를 본 것은 몇 번 되지는 않지만, 1층 할머니의 손이 탔던 고양이인지라 애교가 넘치는 고양이였다. 항상 순한 눈매를 가지고 있던 나비의 눈을 날카롭게 변해있었고, 온 몸에 털을 바짝 곤두세운 채 한혜미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새끼들이 죽은 모습과 나비의 행동을 보자 한혜미씨는 확신했다. 누군가가 고의로 나비의 새끼를 죽인 것이 틀림없다.

 

 *

 

 “에이, 씨! 그러니까 나는 아니라고! 왜 바쁜 사람을 붙잡고서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 놓는 거야? 밥도 못먹게! 지금이 몇 시 인지 알아? 나는 절대 아니야!”

 

 나대곤씨는 새빨개진 얼굴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은 저녁 6시.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각 층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방옥분씨에 불려 나와 ‘새끼 고양이를 죽인 범인.’ 으로 몰려 있었다.

 

 “저도 아니예요. 그나저나 지금 어,엄청 중요한 일 하다 나온 건데…. 지, 진짜 빨리 들어가봐야 한단 말이예요.”

 

 이적도씨 또한 억울하단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시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 길드원들과 던전을 돌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사가 빠진 이적도씨의 길드원들 또한 열을 내며 이적도씨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의 휴대폰은 쉬지 않고 울려대고 있었다.

 

 “할머니, 제가 범인이었으면 굳이 할머니한테 말씀 드렸겠어요? 모른 척 지나갔겠죠! 무조건 전 아니니까 뻬줘요. 빨리 집에 가서 작업 마무리 해야 한단 말이에요! 고지가 코 앞인데, 지금… 하-.”

 

 한혜미씨 또한 짜증이 솟구쳐 있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갈 걸.’ 하는 후회가 막심했다. 괜히 새끼 고양이의 죽음을 알린 탓에 살묘범인으로 몰리다니.

 

 앙칼진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방옥분씨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방옥분씨는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엔 흙투성이였고, 작은 곡괭이가 들려있었다. 목이 잘린 채 죽은 나비의 두 번째 새끼를 묻어주고 온 길이였으리라.

 

 “당신들 전부 다 용의자야. 내가 꼭 범인 찾아서 나비 앞에 석고대죄를 시킬거라고!”

 

 축 처진 눈두덩이에 반 쯤 가려진 눈엔 분노가 서려있었다. 세입자들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할머니. 제가 왜 고양이를 죽여요? 말도 안되죠. 그리고 좀 섭섭하네요! 같은 여자인데. 여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잔인한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요! 저번에 할머니랑 할아버지, 고양이 때문에 싸울 때 제가 편들어줬던 거 잊으셨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정말 제가 죽였으면 할머니한테 고양이 저렇게 됐다고 쪼르르 달려가서 말했겠냐고요.”

 “흥, 그 쪽도 나비를 탐탁치 않아 했던 것은 저 노인네랑 똑같잖아요? 그리고 여자한테 잔인한 인성이 없다니! 충분히 사람 취급 못받을 정도로 잔인하잖아. 저번주에 나비 새끼 화단에 묻는다니까, 불법 투기 어쩌니 운운하지 않았어요?”

 “와…. 진짜 대화가 안통하네.”

 

 한혜미씨는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맞는 말 한 번 했다고 이런 취급을 받다니.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방옥분씨가 저 사나운 나대곤씨와 싸우고 있을 때, 자신은 용감하게 나서 주었겄만. 자신은 지켜야 할 도리를 다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나란히 세워 놓고 있으면 누가 죽였는지 알 수가 있어?”

 

 금방이라도 손이 날아갈 것 처럼 삿대질을 하는 나대곤씨를 보며 방옥분씨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손가락 분질러 버리기 전에 치워요! 아니면 이 곡괭이로 확 절단내 버릴라니까!”

 

 기가 죽은 나대곤씨는 헛기침을 하곤 슬며시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아무튼, 나는 나비 새끼들을 저렇게 만든 놈. 반드시 잡을거야! 그런 몹쓸 놈은 천벌을 받게 할거라고!”

 “아니. 그, 그니까. 잠시만요. 팩트 좀 짚고 넘어갑시다. 지금 하, 할머니가 무슨 권리로 우리에게 이러시는거예요?”

 

 이적도씨가 물었다.

 

 “무슨 권리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기가 차다는 듯 방옥분씨는 되물었다. 이 때, 한혜미씨가 끼어들었다.

 

 “맞아! 그렇잖아요! 할머니가 보호자도 아니잖아. 밥이랑 물만 주면 보호자가 되는거에요?”

 “시끄러워! 협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범인이라고 생각할거야.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죗값 받아내게 할거라고.”

 

 곡괭이를 잡고 있던 손에 파르르 힘이 들어갔다.

 

 “자, 여기 있는 세입자들 전부 자세하게 말해봐요. 어젯밤에 뭘 했는지. 특히 4층 아가씨! 어제 보니까 밤 늦게 귀가했죠? 술에 떡이 되어서! 내가 우연히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봤어. 시치미 뗄 생각은 하지마.”

 “뭐라고요?”

 

 자신을 노골적으로 의심하고 있단 것을 깨닳은 한혜미씨는 어이없다는 듯 방옥분씨를 노려보았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 만나고 놀다가 들어왔어요! 됐어요? 제가 어제 취하긴 했지만, 저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요! 전 주사도 없는 사람이거든요? 지금 술 하나 마셨다고 사람을 이상하게 몰고 가시는거예요?”

 “아니, 왜 화는 내고 그래요? 이렇게 화내니까 더 이상하네? 아가씨가 곧장 집으로 들어갔으면 안물어봤지! 근데 한참동안 밖에서 서성거렸잖아요?”

 “기가 차서 정말! 사람을 뭘로 보고 그래요?”

 

 한혜미씨의 고함소리에 이적도씨가 방옥분씨를 보호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곤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대, 댁이 무슨 사람인지는 모르죠. 제일 늦게 이사 온 사람인데.”

 

 ‘그리고 엄청 재수없는 여자기도 하고.’ 이적도씨는 마저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읊었다.

 

 “워, 원래 범죄자들이 술 먹고 기억이 안난다느니… 시, 심신 미약이니 많이 주장하잖아요?”

 “제가 범죄자란 말씀이예요? 그렇게 따지면 당신이 제일 유력한 용의자죠!”

 “제가 뭐, 뭐를요?”

 “이거봐. 말 더듬는 거 부터 수상하지! 그 쪽은 맨날 컴퓨터 게임 하면서 담배만 피워대는 것 같은데, 그 쪽 심신은 온전하겠어요?”

 “뭐요? 컴퓨터 게임하고 다, 담배 피면 나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건 펴, 편견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죠. 현대 사회에서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니까!”

 “그 저, 정상인 범주가 뭔데? 당신처럼 사, 사람을 위 아래로 훑으면서 무시하는 게 정상적인거야?”

 “적어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면, 사회 구성원으로 멀쩡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죠. 가족들 피 빨아 먹고 살지 말고! 그리고 집에서 담배피면서 남한테 간접흡연이나 시키고.”

 “뭐라고? 내가 가, 가족들 피 빨아 먹고 사는지 아닌지 그 쪽이 봤어? 뭘 아, 안다고 막말을 해?!”

 “막말은 그 쪽이 먼저 했지!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척 보면 척이지. 행색이 완전 백수에 폐인이구만!”

 

 한혜미씨와 이적도씨의 언성이 점점 더 높아졌다. 금방이라도 몸싸움으로 번질 것 같았던 두 사람 사이에 방옥분씨가 가로막았다.

 

 “그만, 그만! 당신네들 싸우라고 부른 거 아니야! 나비 죽인 범인 찾으려고 부른 거지! 아무튼, 이 아가씨는 어제 술 먹고 바로 들어갔다 치고. 댁은 어제밤에 뭐했어요?”

 

 방옥분씨의 턱 끝이 향한 곳은 나대곤씨였다.

 

 “뭘하긴? 집에서 라디오 들으면서 한 잔 했네!”

 “댁은 우리 나비를 참 싫어했어. 그렇지?”

 “당연하지. 맨날 시끄럽게 울어대는데 누가 좋아하겠어? 설마 그것 좀 싫어했다고 내가 범인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나대곤씨는 여기 있는 셋 중에 나비와 그 새끼들을 가장 하대했던 인물이자, 가장 안하무인으로 각인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동기를 따지자면, 나대곤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아! 그, 그러고 보니… 하, 할아버지. 고양이들 죽기 전에 뭐 주지 않았어요? 새벽에.”

 

 이적도씨가 의심을 살만한 말을 덧붙였다.

 

 며칠 전, 흰색의 새끼 고양이가 죽기 전의 일이었다. 이적도씨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빌라 밖으로 나섰다. 그 때, 나비의 집이 있는 구석 쪽에서 나대곤씨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고양이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터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나대곤씨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 날 일이 퍼뜩 생각난 것이다.

 

 “뭐야? 당신. 나비한테 뭘 먹인거에요? 당신이구나!”

 “무슨 헛소리야! 난 그 때, 나비인지 뭔지 그거 꼬리 밟은 게 마음에 걸려서 삶은 달걀을 준 것 뿐이야!”

 “당신이 나비한테 삶은 달걀을 가져다 줬다고요? 꼬리 밟은 게 미안해서?”

 “뭐야? 그 눈빛은! 그것도 죄라는 거야?”

 “그렇게 동물을 하찮게 여기던 인간이 새벽에 삶은 달걀을 줬다는 게 믿음이 안가는거죠!”

 “놀고 있네. 이 여편네가! 그 때 달걀 준 게 언제적인데? 벌써 이주는 더 된 일이라고.”

 “흥. 그 시커먼 속을 누가 알겠어요? 먹을 거에 독을 탔을 수도 있는 거지.”

 “뭐야? 그렇게 따지면 당신도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는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전 나비와 새끼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 사람이예요! 지금껏 떠돌이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보필하기도 했고! 적어도 댁들보다 선량하고 깨끗하다고. 저한텐 그런 의심 자체를 하면 안되죠!”

 

 그들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언성을 높였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을 대화였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인 후, 가장 빨리 이성을 되찾은 한혜미씨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휴전을 선언했다.

 

 “우리가 이렇게 싸워봐야 끝도 안날 것 같은데, 잠시 언성을 낮추고 침착하게 생각해보죠.”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혜미씨는 관자놀이를 꾹 짓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한바탕 속 시원히 욕을 하고 집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은 ‘새끼 고양이를 잔혹하게 죽인 싸이코’ 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방옥분씨에게 한동안 시달릴 것이 눈에 훤히 보여졌다. 그녀는 침착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우리에겐 서로에 대한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어요. 그렇죠?”

 

 한혜미씨의 말에 방옥분씨가 대답했다.

 

 “그럼 경찰에 신고하면 물증도 잡을 수 있겠지.”

 “경찰이요?”

 

 경찰이라는 단어에 한혜미씨는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미친 이웃들로부터 신변 보호를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을 텐데, 고작 고양이 새끼 두 마리 죽었다고 퍽이나 그들이 움직일까? 사람도 시체로 떠올라야 움직이는 것이 이 나라의 공권력인데, 한낱 동물 좀 죽었다고 전화를 한다면 온갖 인상을 구기며 거절할 것이다.

 

 “cctv도 없고, 고작 새끼 고양이들 죽은 건데… 겨, 경찰이 움직일거라 생각해요?”

 

 이적도씨가 한혜미씨의 생각을 대신 말했다. 이 방면에선 한혜미씨와 생각이 통했던 것이다. 그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 차라리 우리끼리 범인을 잡는 게 어때요?”

 “범인을 잡아요? 어떻게?”

 “그건…”

 

 이적도씨의 생각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범인을 잡을 때까지 나비의 집을 감시하는 것. 그 뿐이었다. 별 것 아닌 계획을 마치 대단한 작전인 양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른 세입자들은 맥 빠진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범인이 나올 때 까지 나비 집 앞에서 죽치고 있자는 게… 진심이예요? 24시간 동안?”

 

 한혜미씨가 되물었다.

 

 “굳이 24시간일 필요는 없죠. 도, 돌아가면서 봐도 되는 거고…. 이를 테면 ‘동맹’ 같은 거? 서로를 감시할 수도 있고, 나비를 보호할수도 있고.”

 “멍청할 정도로 비효울적인 생각이네요. 우리도 각자의 사생활이 있는 건데. 서로를 감시할 목적으로 동맹을 맺는다니. 우리가 서로 신뢰할 무엇도 없는데, 동맹은 무슨… 차라리 나비의 집 앞에 cctv를 놓죠. 그럼 범인 잡기 쉽잖아요? 하는 김에 여기 빌라 입구에도 놓고. 안그래도 여기 치안 너무 안좋잖아요.”

 “cctv는 무슨 자금으로?”

 “각자 공평하게 돈 걷어야죠.”

 “도, 돈을 왜 걷어요?”

 “건물주한테 말해도 안해줄테니, 우리 돈으로 해결해야죠. 그런 걸로 해줄 분도 아닐 것 같고. 우리가 사는 곳인데, 신뢰도 하나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동맹이니 감시니 하는 거 보다야 cctv가 더 확실하지 않겠어요?”

 “…. 하, 하나만 설치한다고 되는 게 아니예요. 사각지대라는 게 있다고요.”

 “그러면 사각지대 안생기게 여러 방면으로 틈틈히 설치하면 되죠.”

 

 ‘저 여자 미친거 아냐?’ 이적도씨는 인상을 구겼다. 이 빌라에 들어온 거 보면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 당당하게 돈을 쓰자고 요구하다니. Cctv 한 대 값만 해도 얼마인데!

 

 이적도씨는 절대 돈을 낼 생각이 없었다. 낼 돈도 없지만 말이다. 그럴 돈이 있으면 이사가는 데 보태거나, 게임 아이템을 산다거나, 담배를 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돈이 그렇게 많으시면 그 쪽 돈으로 하는 걸로 하시죠.”

 “누가 저 돈 많대요? 그게 더 효울적이라는 거죠.”

 “하지만 cctv 확인은 말 그대로 ‘후 조치’ 잖아요? 구, 굳이 돈까지 걷어서 하는 의, 의미가 없어요.”

 “아아-. 그럼 그 쪽이 말한 동맹은 ‘선 조치’ 로 범인을 잡을 수 있고요?”

 

 한혜미씨와 이적도씨가 다시 말다툼을 시작하려는 때에 또다시 방옥분씨가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 총각이 말한대로 동맹인지 그거 합시다. 서로 범인으로 누명 쓰기 싫으면 협조하시고.”

 “할머니! 전 일하러 다녀야 한단 말이예요.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저 아저씨랑은 상황이 다르다고요!”

 

 한혜미씨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한혜미씨의 휴대폰에서 ‘띠링!’ 하는 경쾌한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하니, 발신자는 원장선생님이었다.

 

 문자의 내용은 청천벽력같은 내용이었다.

 

 [혜미쌤. 빨리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문자 보내요. 혜미쌤도 아시다시피 학원 사정이 많이 안좋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취미반은 없애고 입시반만 돌리기로 했어요. 일이 이렇게 되서 정말 미안합니다. 이 달 급여는 입금 했으니 확인해보세요.]

 

 한혜미씨가 맡고 있는 반은 취미반이었다. 한 마디로 짤린 것이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확실히 학원 사정이 좋지 않았고, 취미반 인원은 고작 두 명. 비정규직인 상황에 언젠가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문자로 해고 통보를 하다니.

 

 “하…”

 

 자연스럽게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제 그 쪽도 우리랑 비, 비슷한 상황인거죠?”

 

 이적도씨는 밉살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왜 남의 문자를 훔쳐보고 그래요?”

 “보, 보인 건데.”

 “…. 노동법에 신고할거야.”

 “그, 그럼 이제 시간이 아니라 돈이 없으실테니, 해결 방안은 추려진 셈이네요.”

 

 약 올리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남자였다. 한혜미씨는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이적도씨를 노려보았다.

 

 “나는 빼.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에 끼고 싶지 않아.”

 “그럼 자연스럽게 댁을 범인이라 확신할 수 밖에 없어요.”

 “내가 왜!”

 “혼자만 협조하지 않으니까요. 공동체 생활이잖아요?”

 

 방옥분씨와 한혜미씨. 그리고 이적도씨는 나대곤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대곤씨는 터져 나오는 윽박 대신 작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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