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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선천빌라 세입자들
작가 : r라
작품등록일 : 2022.2.9

선천빌라에 사는 4명의 세입자들의 평범하고 평범한 이야기.

 
2. 담배 냄새
작성일 : 22-02-09 16:44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8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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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화 >

 

 

 - 301호 세입자 : 이적도 씨

 

 

 “아, 씨. 정말! 이 놈의 빌라는 조용할 날이 없네. 저 노인네는 가는 귀가 막혔나, 목청이 왜 이렇게 커?”

 

 모두가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을 시간, 한 젊은 남자가 온갖 인상을 구기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길드원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느라 아침까지 꼬박 날을 샜던 그는 눈곱이 잔뜩 낀 두 눈을 억지로 비벼댔다. 길고 치열했던 거사를 마치고 안락한 침대에 몸을 맡긴 지 고작 세 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인데, 겨우 깊은 잠에 잠들은 상황에 밑층 사는 노인네의 커다란 목소리 때문에 잠이 달아나버린 것이다.

 

 그는 머리를 박박 긁어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302호 세입자, 올해로 33세가 된 이적도씨였다.

 

 그는 자칭 미래의 유명한 소설가이다. 아직까진 그저 게임만 하고 사는 백수에 불과하지만, ‘두고보라. 언젠가 거장 소설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될거야!’ 라며 그는 믿어 의심치 않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다.

 

 인터넷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깡촌에서 나고 자랐던 그는 서울에서 내놓으라 할 정도로 유명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큰 포부와 패기를 가지고 상경한 그는 졸업 후 6년 째 취업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지도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고향에선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을 뿐더러, 운 좋게 터진다고 해도 3g에 버금가는 쓰레기 같은 속도일 것이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글을 쓰는가. 감성 또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골 감성은 잔잔할 뿐, 고리타분하고 촌스럽다.

 

 ‘일도 안하고 맨날 돈이나 축내고 살거면 집으로 내려와! 월세라도 아끼게! 남들은 색시 데려와 결혼할 나이에 집에만 박혀서 뭐하고 사는 거냐!’ 이적도씨의 아버지가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럴 때 마다 이적도씨는 소리쳤다. ‘아버지 때문에 내 꿈 못이루면 책임 지실거예요?’ 라고. 철딱서니 없다는 것쯤은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전에 살던 사람이 가전이랑 가구도 다 놓고 가서 여기에 돈들인 게 없었지. 저 노인네만 아니면 평생 사는 건데.”

 

 귀하디 귀한 외동 아들. 3대 독자. 이적도씨의 말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못줄 것이 없는 그의 부모님은 다시 한 번 그를 믿어주기로 결심했다.

 

 또 한 번, 밑에 층 할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짜증을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담배를 힘껏 빨아 들였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코와 입에 모락모락 피어났다.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켜 버릇처럼 초록창에 들어갔다.

 

 그가 검색한 것은 [개과동 원룸 월세] 자주 검색해보는 검색어 중 하나였다. 이렇게 시끄러운 동네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이다. 시설도 필요 없고, 인프라나 주변 환경도 필요 없다. 조용하고 저렴하기만 하다면. 이 선천빌라를 선택한 것도 가격때문이었다. 17평 남짓한 투룸임에도 불구하고 보증 500만원에 관리비 포함한 월세 27만원. 잔혹한 서울살이에 있어서 가장 희귀하고 매력적인 숫자이다.

 라와 있는 매물에 집중했다. 봄철이라 그런지, 매물들은 많이 나와 있었다.

 

 [초! 초! 초특가 풀옵션 원룸 월세!] 라는 문구가 이적도씨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그는 블로그에 들어가 가장 중요한 숫자들을 먼저 훑어보았다. 블로그에 들어가니 [보기 힘든 초특가 월세 / 역세권 / 준신축 / 보증 1000만원 / 월세 65만원] 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참나! 이게 뭐가 초특가야?”

 

 짜증이 솟구쳤다. 결국 이 개과동 어디에도 이 빌라보다 싼 집은 없다는 소리이고, 이적도씨는 계속 이 곳에 살아야 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당장에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이고, 무직에 재산도 없어 대출도 받을 수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할까.’ 그는 구인 사이트에 들어갔지만, 이내 다시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져 놓았다.

 

 인생의 계획은 없을지언정 그에겐 커다란 목표는 있다. 당장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면, 직장 따위를 다니며 시간을 축낼 수는 없다. 다음달 생활비 또한 부모님에게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애써 외면했다.

 

 사실 이적도씨는 예전부터 타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타인이 한 발자국 다가오려 하면 불신하며 두 발자국 물러선다. 딱히 학창시절에 괴롭힘을 받지도,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어렸을 적엔 두루두루 잘 지냈던 기억이 있다. 고향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그에게도 좋은 추억은 존재했다.

 

 그의 성격이 변한 것은 대학교를 성인이 되고 입학을 위해 홀로 서울로 상경 했을 때 부터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이 힘들어졌다. 군대에 들어갔을 땐 관심병사가 될 뻔한 수치스러운 일을 겪은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다보니 제대 후 학교를 복학했을 땐 그의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취업의 난간은 높았고, 더 이상 노력하는 것이 지겨웠던 그는 취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꿈을 찾았다.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다닌 대학은 그저 종이 한 장으로 끝나버렸다. 12년을 엉덩이에 땀띠 나도록 공부한 세월은 고작 졸업장 한 장으로 끝난 것이다.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내놓아라 할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그는 아무런 경제 활동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슬프지 않다. 꿈은 있으니까. 남들이 봤을 땐 얼핏 노는 것 같아 보여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틈틈히 소재도 적고, 공모전도 꾸준히 내고 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떨어지긴 했지만…. 언젠가는 분명 될 것이다. 글을 볼 줄 아는 문학가들이라면,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줄 것이라고. 그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하루하루 버텨갔다.

 

 그렇게 6년, 고인 물처럼 되어 버린 그는 게임 속 길드원들 외엔 안부를 주고 받을 사람조차 없어졌다.

 

 ‘아, 맞다. 물 들여놔야지.’

 

 그는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여니 예상대로 배달시킨 물 500ml 30개입이 도착해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런데, 노란색 포스트잇도 함께 놓여있었다.

 

 <귀하의 집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가 너무 심합니다. 그리고 새벽에 가끔 큰소리로 욕설을 하시는데 빌라에 방음이 되지 않아 잠에서 깰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용 주택이니 자제 부탁드립니다.>

 

 또박 또박 눌러 쓴 글씨. 깔끔하고 정갈한 글씨체에 격조 있어보이는 문구를 보아하니, 몇 호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분명 저번달에 402호로 이사온 젊은 여자가 쓴 것이 분명했다. 이 빌라에 사는 사람이라곤 본인과 201호에 사는 시끄러운 할아버지, 그리고 102호에 사는 아줌마, 402호 젊은 여자가 전부이다.

 

 201호 할아버지가 이런 포스트잇을 남기실 것 같았다. 102호 아줌마 또한 마찬가지이다. 몇 번 보진 않았지만, 이런 말투를 쓰시는 분들도 아니었다.

 

 “참나.”

 

 그는 비웃음을 내뱉으며 포스트잇을 구겨 복도 계단에 던졌다. 402호 여자의 부탁이라면 더더욱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공용주택에 대한 에티켓은 알고는 있지만, 402호한테 에티켓을 지킬 의무는 없다. 그의 머리 속에 그 여자와의 첫만남이 떠올랐다. 이사온 첫 날, 담배와 소주를 사러 나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이사짐을 옮기는 402호 여자와 마주친 적 있었다. 정말 좋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딱 봐도 기가 쎄고, 별 것도 아닌 거에 유난 떨 것 같은 예민한 얼굴.

 

 아니나 다를까-. 402호 여자는 이적도씨와 눈이 마주치자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 그는 분명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따. 그런데도 그 여자는 자신을 인간 말종 쓰레기 보듯 하며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때의 표정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었다. 게다가 3주 전에 여자가 통화하는 소리를 언뜻 들린 적이 있었다.

 

 [이 빌라 사람들은 다 이상해.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는 사람들 같아. 게다가 오는 길은 얼마나 음침한지, 가로등도 입구 하나가 전부야. 밤에 퇴근하고 오면 무서워 죽겠어. 빨리 돈 벌어서 시내 쪽으로 이사가야겠어. 아! 그리고 이사했던 날에 밑에 층 아저씨랑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행색이 완전 히키코모리 폐인이 따로 없더라고. 집구석에서 게임만 하는 것 같아. 어어. 맞아, 맞아! 부모 등꼴 빼먹는 기생충! 딱 그 꼴 같더라니까!]

 

 비웃음소리는 생생하게 들려왔다. 사람을 함부로 폄하하는 저런 여자에게 무슨 에티켓을 지키라는 것인가? 매너는 서로 지키는 것이다.

 

 저런 여자는 남자처럼 군대에 들어가서 빡세게 얼차려를 받아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대체 왜 여자는 군대에 가지 않은 건지, 남녀 평등을 지향하려면 우선 군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항상 선택적 강자와 약자이길 원한다.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하려 하면서, 하기 싫은 것은 신체적인 약자라고 주장하는 모순적인 여자들의 목소리는 점차 커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남자들은 성별 자체로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살고 있지 않나. 더욱 슬픈 것은 그런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대한민국은 후진국이야. 아직도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이런 중요한 문제는 해결안하고…. 세금만 받아 처먹는 놈들이야 말로 정말 기생충이지! 지들 뱃속만 챙길 줄 아는 비열한 놈들.’

 

 요즘 들어 그가 키보드에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저 말이었다. 그는 또 한 번의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늘따라 니코틴이 많이 당기는 날이다. 그러다 문득 위층에서 붙인 포스트잇이 떠올랐다. 그는 낮은 욕설을 하며 슬리퍼를 꺼내 신고 밖으로 나갔다.

 

 여자한테 지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괜히 집에 쫓아오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게다가 선선한 초가을 날씨 아닌가. 오랜만에 바람도 쐴 겸, 소재도 생각해볼겸. 겸사겸사 오랜만에 외출을 하려는 것 뿐이다.

 

 

 - 402호 세입자 : 한혜미 씨

 

 

 “아…. 담배 냄새. 진짜 밑에 집은 왜 이렇게 매너가 없어?”

 

 402호에 사는 세입자. 한혜미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잡았다.

 

 하기사, 누구한테 매너를 찾으랴.

 

 오랜만에 집중하며 작업을 하고 있던 그녀는 한숨을 내뱉곤 붓을 내려놓았다. 올해 29세가 된 한혜미씨는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다. 미신을 믿진 않지만, 정말 아홉수라는 것이 존재 하는 건지. 올해 온갖 다사다난을 겪고 쫓겨나듯 이 곳으로 이사온 그녀의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나름 수준 높은 미대에 순수미술을 전공했던 한혜미씨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많은 휴학계를 썼고, 졸업과 동시에 험난한 사회 밑으로 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말 재수가 옴붙어 버린 건지. 가뜩이나 도움안되던 집안은 온갖 이유로 한혜미씨를 괴롭혔다.

 

 사고가 났다느니, 전세자금이 모자라다느니,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느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보다 더한 상황에 놓인 한혜미씨는 결국 원래 살던 원룸의 전세 보증금까지 빼가며 집에 돈을 보냈다.

 

 ‘정말 진절머리나는 집구석.’

 

 하지만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성공을 위해 아등바등 달려왔다. 자신은 부모의 서포트 없이 그 ‘미대’ 까지 졸업한 여자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꼭 성공하고 말 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다짐하며 붓을 꺼내들었다. 어느 새 붉게 물든 코 끝을 비비며 다시 눈 앞에 놓인 커다랗고 하얀 종이에 집중했다. 그 종이 속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낯선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색칠이 되지 않아 검은 선만이 여자의 실루엣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미소 짓는 입가가 특히나 예뻐 보여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난 언제쯤 너처럼 웃을 수 있을까….”

 

 결국 꾹 참고 있던 것이 터져버렸다. 29살, 아직 이루어낸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내일 모레면 서른인 자신이 초라했다. 꽤나 무심한 듯한 나이지만, 충분히 무거운 나이다. 벌써부터 그 숫자가 버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렸을 적엔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되면 누구나 알 법한 큰 전시회에 자신의 하나뿐인 그림이 분명 걸려 있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사회는 냉정했고, 한혜미씨의 현실은 날카로웠다. 전시회는 커녕 당장 먹고 살기도 급급했던 형편에 물감 하나 사는 것도 손이 떨렸다.

 

 ‘그림과 돈은 비례 하는 거야. 하늘이 내린 천재같은 재능이 없는 이상.’

 

 10년 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 그 말을 들었던 한혜미씨는 분명 비웃음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자신에겐 하늘이 내린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분명 그렇게 자신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말에 격한 공감 하고 있다. 그녀 또한 돈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미술학원에 취직했다. 세간에 주목을 받을 거란 자신의 포부와는 달리, 주 4일간 9시간 근무에 250만원을 받으며 지루한 월급쟁이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차라리 월급쟁이나 되면 다행이다. 언제 부당하게 짤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이 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미술로 성공하고 말 것이란 각오에 취해 시간을 짬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는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욕망은 그녀의 창작 활동을 방해했다.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9세 현실에 찌들어 버린 그녀의 작품은 탁했다. 어떤 색을 써도 그녀의 그림은 밝아지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 탁해버려서 일 것이다.

 

 순수, 미술, 순수미술. 이젠 그것의 개념마저 희미하다.

 

 그런 복잡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만에 집중이 되는 날이었다. 무엇보다 손 끝에 감기는 붓의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다. 화창한 날씨, 선선한 바람, 상쾌한 공기, 반짝이는 햇빛. 단연 최고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 쟁이에게 필요한 최적의 환경과 컨디션인 날이었다.

 

 밑에 층에 사는 개념없는 남자의 니코틴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하, 진짜. 메모지까지 남겨 놓고 왔는데. 여자라고 무시 하는 거야? 뭐야? 내려가서 악다구니 한 번 질러버려?”

 

 한혜미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내젓곤 자리에 앉았다.

 

 역시 그건 좋지 못한 생각이다. 요즘 같은 흉흉한 세상에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 놓고. 직장도, 친구도 없어 보이는 히키코모리에게 괜한 소리를 날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이 낡아빠진 빌라는 방음은 물론 보안 또한 되지 않는 곳이다. 이런 곳에 치안이 좋을리는 없다. 이런 곳에선 언제, 어떻게 변사체로 발견된다 할지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며 혹 자신이 나쁜 일을 당했다고 한들 cctv조차 없는 이 곳에서 범인을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혼자 사는 여성에게 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우리 나라 공권력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이미 많은 사례들이 그것을 증거로 삼고 있었다. 결국 힘없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고, 불편해도 참아야 하며, 제 가녀린 몸 하나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혜미씨는 슬쩍 현관 앞 신발장을 바라보았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남성 구두와 속옷을 일부로 문 쪽에 비치해 두었다. 이 곳에 산지 고작 한 달이지만, 집에만 있는 밑에 층 남자는 자신에게 애인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혜미씨는 항상 2중 잠금을 철저히 하고 있었다.

 

 이 낡아빠진 빌라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엘레베이터가 없어 불편하긴 해도, 자신의 집이 4층이라는 것과 외벽에 붙어 있는 쇠창살이 튼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 살던 세입자가 비싼 도어락을 설치 해두고 갔다는 점이다. 외관과는 달리 도어락은 지문인식도 가능한 신식이었다. 그녀는 다른 집에 붙어 있는 싸구려 도어락을 볼 때 마다 마음 한 켠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지.”

 

 한혜미씨는 그렇게 다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이민이 좋다. 대한민국은 여성이 혼자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나라다. 많이 나아졌다고 한들, 여성과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후 조치’ 에 불과하다. 단단한 보호막을 감싸고 있는 듯 하면서도 한 껍질만 벗겨 보면 그 벽은 허름하기 그지 없다.

 

 ‘지잉-.’ 협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에 진동소리가 울려 퍼졌다.

 

 [혜미!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없어! 민정이한테 들었어. 이사 갔다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나 이번에 한국 들어갈 것 같은데, 언제 시간 돼?]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동기였다. 갓 입학 했을 때 급속도로 친해져 한때는 죽마고우처럼 지냈던 사이. 이태리로 유학을 간 이 친구는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나도 가끔씩 안부 연락을 보내곤 했다.

 

 한혜미씨는 저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한혜미씨는 불편했던 것이다.

 

 ‘일부러 티나게 무시하는 건데, 왜 이렇게 연락을 하는 거야?’

 

 답장을 보낼까, 말까. 그녀는 잠시 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조용히 휴대폰을 협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좋은 친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로 지냈을 적엔 더할 나위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 만나봐야 전혀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9년 전과 달라진 것 없는 서로의 삶이라던지. 그 차이에 대한 괴리감은 벌써부터 그녀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아르바이트에 찌들어 휴학을 밥 먹듯이 했던 본인과는 달리, 부모님의 완벽한 서포트를 받으며 이태리로 유학까지 간 친구.

 

 그렇다, 가장 불편한 것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치졸한 자격지심이었다.

 

 그녀는 흩어진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자신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눈을 부릅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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