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권 마지막화
작성일 : 22-02-04 15:38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511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마지막화>

 

  정우는 결국 본사로 아예 들어가 버렸다. 개발팀에서의 실적이 워낙 좋아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어서, 정우의 추천 한 번에 바로 난 점장이 되었다. 지점을 내기 위해선 창업비용도 필요하고 본사의 허가 등 다른 절차도 필요했지만, 그런 과정이 모조리 생략되었다. 정우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듯 보였다.

  보통 점장이 나와서 일을 하면 아르바이트 직원을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지만, 난 윤희씨를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월수입 대비 인건비가 더 큰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난 금전적인 부분 이상의 것들을 얻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여기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덕분에 난 하루를 알차게 살고 있었으니까.

  윤희씨는 자신의 작품을 마무리하고 공모전에 출품했다. 경쟁률은 보통 100대 1이 넘어간다고 했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그럼에도 윤희씨는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예심만 통과해도 어느 정도 작품성은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최종 당선적이 되지 않아도 여러 출판사에 작품을 보내볼 것이라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난 꾸준히 작품 연재에 몰두하며 윤희씨가 걸어간 길을 열심히 쫓아가기로 했다.

  사실 우린 술을 마셨다. 그야말로 술을 마셨을 뿐이다. 우리의 대화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치고는 꽤 진솔했고, 또 즐거웠다. 거기까지였을 뿐. 1차로 간 이자카야에서 우린 꼬박 네 시간을 채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던 우리였지만, 2차는 가지 않았다. 그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 느껴졌었다. 이전에 느꼈던 감정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그래서 난 술이 꽤 오른 상태였음에도,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2차에 가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고 나면, 뭔가 윤희씨와 어색한 사이가 될지도 모를 실수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 윤희씨도 그걸 받아주었다. ‘딱 좋은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며칠간 우린 마치 내가 처음 출근했던 날의 모습처럼 말없이 지냈다. 손님이 오면 마치 순서를 정해놓은 것처럼 번갈아 가면서 응대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손님들은 지루할 때즈음 되면 딱 맞춰서 가게 문을 열었다. 우리 사이가 어색해졌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윤희씨는 공모전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아서, 난 연재의 압박에 의해서, 그렇게 자연스레 말이 줄어들었을 뿐.

 

  “아유, 정말! 미치겠네.”

 

  윤희씨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왜요? 발표, 발표난 거예요?”

  “아뇨. 발표가 너무 안 나와서요.”

  “아직 며칠 남지 않았어요? 어디 보자, 오늘이…….”

  “원래 정해진 날짜보다 며칠 먼저 발표해주거든요. 매년 이맘때쯤 홈페이지에 뜨는데…….”

  “좋은 소식 있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죠. 계속 보고 있으면 더 조급해질 거예요.”

 

  그때, 윤희씨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마 평소와 다르지 않았겠지만, 유독 전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뭐지. 모르는 번호인데. 이런 것 받으면 안 되겠죠?”

  “받고 스팸이면 바로 끊어요. 중요한 전화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까요……. 여, 여보세요?”

 

  윤희씨는 전화를 바로 끊지 않았다. ‘네’, ‘맞아요’와 같은 짧은 대답들을 연이어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표정은, 꽤 심각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으며 주저앉을 것 같은 모습에 난 조마조마해졌다. 전화를 끊을 때까지, 난 윤희씨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희씨,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심각해 보이던데…….”

  “그게요. 발표 났어요.”

  “발표요? 발표는 홈페이지에 난다면서요?”

  “저, 당선이래요. 저, 됐어요. 저, 이제 진짜 작가예요!”

 

  윤희씨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조금 전의 표정은 기쁨과 설렘보다 놀라움의 감정이 커서 나타난 것이었고, 이 눈물은 그간의 서러움과 서글픔이 녹아서 흘러내렸던 것. 난 가만히 윤희씨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윤희씨는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마침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오랜만입……. 뭐야. 둘이 지금 근무시간에 뭐 하는 짓……. 아니, 윤희씨 울어? 뭐야? 무슨 일이야?”

 

  정우였다. 무작정 가게를 맡기고 떠난 게 걱정되었던 정우가 찾아왔던 것. 정우는 우리에게 줄 선물까지 사왔다. 그리고 갑작스런 상황에 나처럼 당황해했다.

 

  “점장님…….”

 

  윤희씨는, 그토록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던 윤희씨는 이제는 정우에게 가서 안겼다. 당황하던 정우는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는 말을 몇 번씩 쏟아내며 윤희씨를 토닥거렸다. 난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윤희씨는 며칠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간의 설움을 한 방에 날리고,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출판사에선 선인세로 무려 이천만 원의 상금을 주었고, 윤희씨 소설에 감탄한 편집장이 차기 작품 계약까지 제안했다고 했다. 그야말로 한 방에 인생 역전이었던 셈.

  윤희씨가 그만두었다고 가게 일이 힘들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난 여전히 글을 쓰고, 손님이 오면 윤희씨가 그러했던 것처럼 반갑게 맞이하고, 다시 글을 썼다. 정우 덕분에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사실 언제까지 이곳에 있는다는 게 불가능하단 생각도 했다. 본사에서 언제든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난 그날이 오기 전 최대한 빨리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낮으로 글을 썼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성과물을 내는 게 필요했고, 그렇게 작품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2주 정도 지나고, 난 보잘것없는 작품 한 편을 완성했다. 탈고가 필요했지만, 일단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기분이었다. 윤희씨의 당선 기념, 나의 첫 집필 완성 기념, 그리고 두 작가를 키워냈다며 스스로 만족하는 정우의 뿌듯함을 기념해서 우린 조그마한 파티를 열었다. 술집 대신 가게에서, 우린 각자 안주를 준비해서 마치 포트럭 파티를 하듯 모였다. 윤희씨는 유명 체인점에서 산 피자를, 난 떡볶이와 튀김을, 정우는 역시나 통 크게 참치회를 사 왔다. 우린 가게 셔터를 내리고, 조명을 끄고, 대신 윤희씨가 고른 메리골드 캔들을 켜놓고 즐겁게 담소를 나눴다.

 

  “윤희씨, 그런데 왜 하필 메리골드에요? 저건 향이 그다지 강하지도 않고, 그냥 겉으로만 예쁘지 않아요?”

  “그러게. 본사에서도 메리골드는 약간 실패작으로 여기는 것 같던데. 저거 잘 안 팔린데. 백성, 우리 가게에도 별로 찾는 사람 없지 않아?”

  “그러니깐. 윤희씨 혹시 특별한 의미라도 있어요?”

  “메리골드가요, 저한테 늘 용기를 줬거든요.”

  “아니 윤희씨. 저 캔들이 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메리골드 꽃말이 뭔지 아세요?”

  “난 몰라. 백성, 넌 알아?”

  “나도 잘. 뭔데요?”

  “메리골드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래요. 저한테 꼭 필요한 말이었죠. 글쟁이라며 가족들조차 무시하던 날들을 버티려면, 스스로 버틸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어요. 덕분에 잘 버텼고요.”

 

  메리골드. 자체의 향이 참 매력적인 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려서 꽃차로 마시곤 한다. 본사에선 메리골드 캔들을 제작하는 것에 거의 실패한 셈이었다. 본연의 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 그렇지만, 그렇다고 메리골드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메리골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이고, 그리고 윤희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꽃이었다.

 

  “그나저나, 둘은 언제 사귈 거야?”

  “응? 둘이라니, 누구?”

  “백성. 나 다 알고 있어. 네가 윤희씨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 윤희씨도 느끼지?”

  “얌마, 너 취했냐? 뭐라는 거야, 갑자기.”

  “에이, 윤희씨 말해 봐. 백성 어떻게 생각해?”

  “음. 좀 실망인데요.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왜요, 저 별로에요?”

  “네? 아니, 그렇죠. 그렇긴 한데, 그게 갑자기…….”

 

  갑자기 둘은 폭소를 터뜨렸다. 난 몰래 엄마 지갑에 손을 대다 들킨 아이라도 된 것처럼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둘에겐 재밌어 보였던 것 같다.

 

  “뭐야? 진짜 좋아하는 것 아냐? 백성, 너 얼굴 시뻘개졌어!”

  “아 쫌! 그만 해라. 나 또 당했네.”

 

  난 민망해하며 혼자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슬며시 윤희씨를 바라보았다. 윤희씨를 보는 일은 심장이 뛸 것처럼 설레거나 하진 않았지만, 불과 몇 주 전에 만난 사람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그래서 난 윤희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가능하다면, 계속 쳐다보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이 캔들 있지. 이게 좋은 점이 뭔지 알아? 백성, 넌 아냐? 윤희씨는? 알아?”

 

  그 시선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 살짝 술기운이 올랐는지 정우가 갑자기 일어섰다. 그러더니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내 인생이 정말 완전 망가졌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어찌저찌해서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이상하게 그 양초 냄새가 너무 좋은 거야. 약간 마약같은 느낌도 들고 말야. 그래서, 매일 몸은 기계처럼 일을 하고 있었지만, 머리에선 후각을 자극하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고민을 했어. 이 캔들, 그러니까 이 향초가 사람 마음을 조종하기도 한다는 거지. 조종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데, 화난 기분을 진정시켜주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여기 매달리는 거야. 미친 듯이. 이거면 우리가 살면서 쓸데없이 감정 소비하는 순간들을 다 막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아.”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이번엔 눈이 마주친 나와 윤희씨가 폭소를 터뜨렸다.

 

  “뭐야, 둘 다 왜 웃어? 백성, 왜 웃는 건데? 윤희씨는 또 뭐야? 내가 웃긴 말 했어?”

  “너는 갑자기 왜 진지하고 난리야. 어색하게. 아오, 참느라 혼났네.”

  “아녜요. 전 감명 깊었어요. 점장님 꼭 성공하세요. 평화를 유지하는 향초 개발! 군대도 필요없겠어요, 이제.”

 

  이후에도 우린 즐겁게 떠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정우의 말은 오그라드는 이야기기는 했지만, 절대 찌질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정우는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뤄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감정을 움직이는 향기가 있다면, 감정을 움직이는 글도 충분히 쓸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찌질한 것은 없다. 정우 말대로 그건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 나온 허술함일 뿐. 경험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고, 성숙하며, 또 사랑을 쟁취해낼 수 있다. 나도 그런 인간이다. 난 치열하게 쓰고, 열렬히 사랑하며 살 것이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권 마지막화 2022 / 2 / 4 188 0 5115   
18 18화 2022 / 2 / 4 187 0 5767   
17 17화 2022 / 2 / 4 182 0 5917   
16 16화 2022 / 2 / 1 188 0 5842   
15 15화 2022 / 1 / 30 184 0 5220   
14 14화 2022 / 1 / 28 187 0 5452   
13 13화 2022 / 1 / 26 192 0 5744   
12 12화 2022 / 1 / 24 207 0 5550   
11 11화 2022 / 1 / 22 194 0 5769   
10 10화 2022 / 1 / 20 198 0 5405   
9 9화 2022 / 1 / 18 193 0 7198   
8 8화 2022 / 1 / 16 204 0 3737   
7 7화 2022 / 1 / 14 191 0 4544   
6 6화 2022 / 1 / 12 206 0 4719   
5 5화 2022 / 1 / 10 217 0 5045   
4 4화 2022 / 1 / 8 200 0 5431   
3 3화 2022 / 1 / 6 205 0 5518   
2 2화 2022 / 1 / 4 210 0 5740   
1 1화 2022 / 1 / 2 329 0 544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