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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조운 : 시드는 구름
작성일 : 22-02-03 20:12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14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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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동이 지나고 눈이 내릴 무렵이었다. 나그네는 야트막한 지붕의 초가집을 다시 찾았다. 그는 마당에서 뛰노는 다섯 살 남짓의 어린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아장아장 퍽이나 앙증맞고도 능숙한 걸음으로 마당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뉘십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그네는 고개를 돌렸다. 여인은 거기에 서 있었다.

 

 “나으리!”

 

 여인은 나그네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나그네는 그윽하게 웃으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간 무탈하시었소. 물어오는 목소리에 여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달려와 여인의 치마폭에 답싹 안기었다. 여인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나그네를 바라보았다.

 

 “안으로 드시지요.”

 

 나붓이 뱉어내는 목소리에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싸리문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마당, 야트막한 초가지붕은 세월이 무색하도록 변한 데 없이 그대로였다. 그 모든 것이 변한 데 없이 그대로인데 아이만이 그 풍경에 새로웠다. 나그네는 아이의 말간 얼굴을 보았다. 참으로 여인과 닮은 눈매였다.

 

 “아해야, 네 이름이 무어냐.”

 

 나그네가 물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자그마한 손으로 제 어미의 치맛자락을 단단히 움키며 그 뒤로 몸을 감출 뿐이었다.

 

 “운입니다.”

 

 여인이 답했다. 운, 이라. 나그네는 중얼댔다. 부러 확인하지 않는대도 어디서 따온 이름인지가 분명했다. 여인은 가만히 아이의 머리를 보듬었다.

 

 “운은 아직 말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소.”

 

 나그네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어떤 아이인가 하면 다섯 살배기 치고는 제법 영특한 얼굴을 한 아이였다. 검게 빛나는 두 눈엔 총기가 흐르며 흰 얼굴도 사대부 양반 댁 어린 도령마냥 곱상한 데가 있었고 여인의 치마폭 뒤에 숨었건만 서 있는 모양은 반듯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어여쁜 아이였다.

 

 “운이 태어난 것이…….”

 “달포를 조금 넘겼습니다.”

 

 달포를 넘겼다기엔 지나치게 빨리 자랐다. 나그네는 마른 입술을 훑으며 대청마루에 걸터앉았다. 여인이 살가운 손짓으로 아이를 떼어내며 그의 곁에 앉았다. 아이는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 어미의 곁에 달려들었고, 여인은 그런 아이를 번쩍 들어선 옆에 앉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난 뒤에야 여인은 입을 열었다.

 

 “운이 태어났을 적에, 저는 나으리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인은 오랫동안 진통을 앓았다. 그러나 아이를 받아줄 산파조차 부를 수 없었던 여인은 홀로 시간을 견뎌내며 외롭게 운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길었던 진통에 비해, 운은 일순 너무도 쉽게 울음을 뱉으며 세상에 나왔다. 여인은 아이를 안은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는 차가웠고, 품에 안지 않은 것처럼 가벼웠다. 처음 마주한 세상에 내지르는 울음소리와 품 안에서 바르작대는 그 경이로운 움직임 말고는 그 아이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차갑고, 가벼운 아이였다.

 아이는 나그네가 그리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나치게 빨리 자랐다. 몸살이 날 정도로 젖을 주기 전에 기기 시작했고, 씹는 법을 채 다 가르치기도 전에 걷기 시작했다.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눈 깜박할 새에 훌쩍 자라있었고,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성큼성큼 자라는 아이를 볼 때마다 여인은 아이가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는 참혹한 사실만이 실감이 나, 그리도 두렵고 괴로웠다.

 아이는 이름자 그대로 구름이었다. 따라갈 수 없을 만치 빠르게 몸집을 불리다 바람 부는 대로 흘러 갈 구름이었다. 여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벼운 몸이 어느 날 하늬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갈까 두려웠다.

 

 “고작 달포입니다. 달포 만에 운은 다섯 살배기만큼 자랐습니다. 이 아이의 웃는 모습, 우는 모습, 그 모든 영그는 순간을 미처 눈에 전부 담기도 전에 이리도 빨리 자라버린 것입니다. 나으리, 운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저리도 빨리 시간을 헤다 이 어미보다도 서둘러 늙어버릴까 그것이 두렵습니다.”

 

 나그네는 그저 가만히 여인을 보았다. 운은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나 조운이었다. 흐르는 구름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모양을 만들 듯이 운은 그저 우연히 사람의 모양을 하게 된 구름에 불과했다. 나그네는 아이와 여인을 번갈아 보았다.

 

 “아이의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소.”

 

 그 뿐이었다. 흐르는 구름이라도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면 여인의 앞에서만큼은 그녀의 아이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 나그네의 마음이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그네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것으로 족했다.

 시간은 매어둘 수 없이 흘렀다. 여인은 단 몇 시진이라도 더 지금의 운으로 있어주기를 바랐다. 고개를 돌리면 성큼 자랄 아이가 안타까웠다. 아비 없는 아이라도 좋다. 그저 해사하게만 웃어다오. 그것뿐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정말로 다른 것은 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오래 그 모습 그대로 곁에만 있어준다면.

 해가 기울었다. 저만치서부터 내리는 땅거미에 여인은 사랑방에 불을 지폈다.

 운은 보채지 않고 일찍 잠이 들었다. 호롱불이 이지러지며 장지문 밖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소리는 어느새 영글어 눈송이에 맺히며 하늘하늘 흩어져 내렸다. 그렇게 사박사박, 눈송이가 마당을 도탑게 덮어내는 밤이었다.

 

 “조운은, 시들어 떨어진 구름이라 하였소.”

 

 여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어찌 잊을까. 나그네가 떠난 뒤에도 여인은 하염없이 조운에 대하여만 생각했다. 시들어 떨어진 구름,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그것에 대해서만.

 

 “생명은 순환하는 법이라 말하면, 이해를 하시겠소?”

 

 나그네가 말했다. 여인과 나그네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여인은 차마 그렇다 답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나그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여인은 은연중에 짐작하고 있었다. 나그네의 입술 너머에서 흘러나올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러나 아마도 분명히 옳을 사실들을. 그러나 인지하고 있는 것과 이해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여인은 그 모든 내용을 어림잡아 가늠하고 있었음에도 이해한다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이다. 운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꼬리를 물고 따르는 감정은 가슴이 저릿해지는 만큼의 안타까움이었다. 말 못 하는 짐승조차 제 피붙이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을,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간 줄곧 보아왔던 분명한 사실임에도 운은 제 피붙이였다. 진득하게 엉겨 붙은 살과 살 사이의 정이라는 것은 떼어내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여인은 아마도 그것이 모성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본디 부모를 떠나야 성장하는 법이오. 그 시기가 조금, 일찍 찾아온다, 그리 여길 수는 없겠소?”

 “이제 달포입니다.”

 

 저 아이와 한 해도 제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여인의 목소리는 곧고도 강직했다. 나그네 또한 그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이라는 것은 본디 그러했다. 처녀일 적에는 부는 바람에도 가슴이 저려 눈물 훔치기를 일쑤이면서 한 사내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어미가 되면서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치 강해지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그간 수많은 여행길을 떠돌며 그런 여인들을 보아왔다. 눈앞에 앉은 여인은 분명히 어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본래 이물이라는 것이 사람과는 다른 시간을 사는 법이오. 더러는 너무나 빠르게 살기도 하고, 또 더러는 너무나 느리게 살기도 한다오. 어미 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오나, 분명히 그대는, 아해와 이른 이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다시 시들어 흩어진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런 것은 아니외다.”

 

 나그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들기에 저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지. 시들어버리기에는 말이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인은 미처 헤아릴 수가 없었다. 삶은 순환한다. 시들어 죽어버린 구름의 조각을 삼켜 아이를 낳고야 말았으니 다시 삶을 얻은 아이는 구름의 시간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이는 앞으로 어찌 된다는 이야기인가. 둘에게 남은 시간이 앞으로 어느 정도란 말인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만 알아두시오. 이른 이별을, 준비해야한다고.”

 

 달리 그것 말고는 아무런 말도 주지 않았다. 여인은 아랫입술을 물며 생각에 잠겼다. 이른 이별. 제 자식을 아무렇지 않게 먼저 보낼 수 있는 어미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자식이 먼저 어미를 떠나는 것은 불효라 하였다. 그렇다면 운은 분명 제게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지아비 잃은 여인에게 위로라도 되어줄 요량인 것처럼 훌쩍 찾아와놓은 것은 언제고 이제와선 본디 사람이 아니라 구름이니 별 수 없다는 양 정조차 성히 붙기도 전에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만 한다니 말이다. 허나 여인은 도무지 운을 원망할 수가 없었다. 원하는 대로 태어나 원하는 대로 살다 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운 또한 원해서 사람의 몸으로 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별이라는 것 또한, 분명이 운이 원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여인은 그렇게 믿고만 싶었다. 제 가슴이 저미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 또한 이러한 이별을 원치는 않는 것이리라, 그리 믿고 싶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법은 없었다. 되려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 것이 더욱 많은 삶이었다. 그리도 사모하던 지아비가 제 곁을 그리 훌쩍 떠난 것도, 그 뒤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아이를 밴 것도, 혼자서 고통을 참아내고 입술을 깨물어가며 운을 낳은 것도, 그리고 이제는 그 아이를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여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원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앉은 나그네는 그저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저 준비해야 한다고.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던 여인은 간신히 입술을 떼어냈다.

 

 “헤어지지 않고는, 방도가 없는 것입니까.”

 

 그러자 나그네는 느리게 두 눈을 끔벅였다. 의외의 것을 묻는다는 얼굴이었다. 그것이 실로 사실이었다. 입때껏도 조운을 삼킨 사람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대개 마주하는 것은 짐승일 뿐이라 그들에게는 말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들은 이별에 대해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냐며 되물어오는 일도 없었다. 당연했다. 물론 짐승이래도 제가 배 아파 낳은 새끼에 대한 모정은 있을 터였다. 그러나 말을 뱉을 수 없으니, 나그네는 그저 그들의 이별을 지켜보는 일 밖에는.

 

 “없소.”

 

 때문에 이리도 잔인하고 아픈 말을 제 입술로 직접 뱉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를 못했다. 부러 가슴을 헤집어 상처를 새겨놓는 말을 입 밖으로 내어놓는 일이 생길 줄은.

 추이꾼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탐구하는 자들이었다. 이승을 떠도는 온갖 이물들이나 말로는 채 설명할 수 없는 진기한 것들. 그리고 그런 것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그에 대한 대처, 그런 것들을 탐구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기실 사람의 삶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의 학문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기기묘묘한 것들의 삶이었다. 마주하는 것 또한 사람보다는 이물에 가까우며 우선해야하는 것 또한, 사람이 아닌 이물이 먼저였다. 그러나 나그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에게 모진 소리를 내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원망했다. 여인이 눈동자를 툭 떨구며 고개를 숙였다. 방도가, 없는 것이군요. 그 처연한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도리는 없다. 본디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 행세를 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본래의 삶을 살아간대도 달리 방도는 없다.

 

 “그저, 마음 가는 양껏 정을 주든 이제는 정을 떼어 낼 궁리를 하든, 모든 것은 선택하기 나름이오. 욕심내어 양껏 붙들고 있어봐야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소. 살아가는 시간 자체가 다른 존재니, 미련 두지 마시오.”

 “……어찌 미련 두지 말라 말하십니까.”

 

 나으리는 알지 못합니다. 아무렴, 알 수가 없지요. 가족을 만든다는 것이, 아이를 품는다는 것이, 여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으리께선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다. 미련 두지 말라 하심은, 정녕 미련을 두지 않을 수 있다 여겨 하시는 말씀이겠지요. 허나 나으리, 제 피붙이이고 살붙이입니다. 열 달을 이 배 안에 품어왔고, 배 아파 낳은 자식입니다. 아무도 손길 주지 않는 이 골방에서 혼자 그리 인내하고 참아내며 세상에 내어놓은 내 아이란 말입니다. 나으리, 나으리께선 영영 알지 못합니다. 제 배가 아파가며 낳은 아이를 품에 안아야만 알 것입니다. 허니 나으리는, 평생가도 이 어미 마음 짐작도 못 합니다.

 조곤조곤 뱉어내는 목소리는 언뜻 서린 처연함에 가슴이 아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어조로 그리도 무심한 양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어내었다. 나그네는 차마 아니라 답할 수 없었다. 여인의 말이 실로 옳았다. 가족을 두지도, 품에 아이를 안아보지도 않았으니 그리도 쉽게 미련 두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미련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로 그리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차마 어려웠던 것이다. 나그네는 그대로 그만 입을 다물고야 말았다. 더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한 대도 앞으로 일어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여인과 아이는 헤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떤 말로도 여인에게 위로를 할 수 없다면 때로는 침묵이 도움이 되리라. 나그네는 그리 여겼다. 그리고 그 의중을, 여인 또한 능히 알아챈 모양이었다. 여인은 가만히 입술을 달싹이며 나그네를 올려다보다가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각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만 침소에 드시지요.”

 “그리 하겠소.”

 

 여인은 그렇게 방을 나섰다. 나그네는 가만히 앉은 채로 여인이 나간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밭은 숨을 뱉으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여즉 점잖은 체 하고 앉았던 것이 좀이 쑤신 것처럼 다리를 이리저리 휘휘 저어대던 그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사람이 엮이는 일은 이토록 번거롭고 성가시다. 그 모든 감정들을 그저 외면하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이리도 골치 아프게 엉켜드는 모든 것들을 잘 어르고 달래어 풀어내야만 한다. 차라리 상대하는 것이 말 못하는 짐승이나 감정조차 가질 수 없는 물건이라면 쉽다. 그러나 이토록 두 눈을 마주하고, 음성을 얽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면…….

 

 “…미치겠군.”

 

 나그네는 짜증스레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로부터도 달포가 지났다. 나그네는 머무는 동안, 정말로 눈에 밟힐 적마다 성큼 자라있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어느새 말을 하기 시작했고, 총기로 빛나는 두 눈으로 나그네를 바라보며 제법 이것저것을 묻고 성가시게 굴기도 하였다. 그러더니 또 언젠가는 멋대로 나그네의 짐 보따리를 풀어헤쳐선 이것은 무어냐, 또 이것은 무엇이냐, 다섯 살배기 어린애처럼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되려 정말 다섯 살배기의 모습을 하였을 때는 아무런 말도 벙긋하지 않아놓고는 이제사 말문을 트기 시작한 아이를 보면서도, 나그네는 그저 순순히 아이의 물음에 답하곤 했다. 아이는 느리게 말을 떼었으나 빠르게 배워갔다. 나중에는 나그네에게 글자를 알려 달라 성화를 부리기도 하였다. 나그네는 그조차도 그러마 하고 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그와 동시에 아이의 변화를 소상히 기록해나갔다.

 

 “아재.”

 

 아이가 답잖게 진중한 얼굴로 말을 붙인 것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어느 날이었다. 나그네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아이를 보았다. 이제 아이는 열 살은 훌쩍 넘어 보일 만큼 자라있었다. 아이의 손이 나그네의 소맷부리를 붙잡았다. 슬그머니 방 한 켠으로 그 소매를 잡아끄는 아이의 손짓에 나그네는 별 수 없다는 양 얌전히 그 손을 따라 이끄는 대로 쫓았다. 아이는 한껏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러더니 제법 의젓한 품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재,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얼굴을 보자니 어린애가 할 법한 말치고는 제법 무거운 이야기가 튀어나올 성 싶어, 나그네는 또한 고개를 주억거리며 진중한 얼굴을 하고 마주앉았다. 그러자 아이는 잠시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선을 옮기다가 방 한 구석에 시선을 콕 박아놓고는 입술을 떼었다.

 

 “저는,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는 거겠지요.”

 “네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구나.”

 “아재는 다 알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운아, 아무리 나라도 모든 것을 다 알지는…….”

 “제가 사람이 아닌 것을요.”

 

 일순 나그네의 말문이 막혔다. 똘망한 눈동자를 바라보자니 그만 속내를 다 들키고 말 것 같아 더욱 말이 쉬이 나오지를 않았다. 나그네는 당혹스러웠다. 아마 이런 물음을 물어오지는 않을까 으레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정말로 직접 마주하는 상황은 원치를 않았다.

 

 “아재가 추이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추이꾼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아재가 벌써 한 달이나 여기를 떠나지 않는 것은 아직 아재가 탐구해야 할 이물이 남아있는 탓이겠지요.”

 “운아.”

 “그것이 제가 아닙니까. 아재,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독 빨리 자라는 것도, 제가 어머니나 아재와는 달리 몸이 가볍고 찬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재,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무엇입니까.”

 

 어느새 아이는 목소리에서조차 총기가 흘렀다. 따박따박 물어오는 어투에서는 이미 아이의 것이라고 여기기는 어려운 의젓함이 배어나왔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듯 했다. 아이에게 무어라 설명을 해야 좋을까. 무어라 설명해야 아이는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그네는 이미 그 모든 생각이 핑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일 성큼성큼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그리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여인을 보면서, 나그네 또한 이제는 그저 남으로만 머물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후, 하고 나그네가 숨을 뱉었다.

 

 “너는 구름이다, 운아.”

 

 아이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면 으레 놀라는 표정을 지을 법도 하건만, 아이는 그저 흔들림 없는 얼굴과 흔들림 없는 자세로 그대로 앉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조운이라, 하는 것이 있다.”

 

 나그네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구름 또한 삶을 가진 것이라,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고 지쳐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단다. 그렇게 하늘에서 죽은 구름들은 눈에 섞여 고향인 땅으로 돌아오게 된단다. 추이꾼들은 그 죽은 구름의 조각들을 조운이라 일컫는데, 네 어미는 바로 그 조운을 삼키고 만 것이다. 조운을 삼키게 되면 사람의 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 구름 조각은 여느 다른 삶들이 그러하듯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데,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너였다. 네 어미는 홀로 널 낳고 길렀으나 너는 사람의 몸에서 났어도 사람이 아닌 게지. 그저 사람의 모양을 한 구름일 뿐이라 양껏 서둘러 자라고, 바람에도 날릴 것처럼 가벼운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그저 가만히 들을 뿐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재차 확인이라도 받는 양, 덤덤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그네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후에 꺼내는 말은 덤덤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아재, 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운은 그렇게 말했다.

 

 “제 몸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언뜻 스치는 산들바람에도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몸은 이리도 커졌는데 무게는 점점 더 가볍기만 합니다. 이대로라면 곧, 어머니 곁을 떠나야만 하겠지요.”

 “……그리 되겠구나.”

 “말씀해주십시오. 조운은, 저처럼 사람의 몸을 빌어 태어난 구름은, 이렇게 가벼워지다가 결국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아이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된 아이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그네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기록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마른 입술을 혀로 훑은 나그네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 어미에겐 말하지 않았다.”

 “저 또한 어머니께는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아이에게 바투 다가갔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아이의 귓가에 속닥였다.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곧 나그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제 곧입니다.”

 

 스스로의 마지막을 예견하는 사람은 흔했다. 본디 사람은 떠날 때가 되면 어렴풋이 짐작이 된다 하였다. 아마도 그것과 흡사한 것이리라. 나그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보아도, 예정된 이별을 맞이한다는 감각은 영 생경하기만 하였다. 언제나 누구와도 선뜻 이별을 해왔던 이였음에도, 이토록 일 시진, 일각, 일 분이 가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헤어짐을 준비하는 일은 낯설기만 하였다. 달포의 시간이 마치 일 년은 된 양 아득하게 느껴지기만 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만 하는 아이의 탓에 더욱 그랬다. 나그네는 눈앞에 앉은 아이를 보았다. 이제는 제법 사내의 태가 나는 것도 같았다. 여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으리는 평생 가도 이 어미 마음 짐작도 못 합니다.

 옳다.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토록 사람이나 다를 바 없는 아이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이별을 헤아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나그네는 어쩐지 부아가 치미는 것이었다. 그렇대도, 나그네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그네는 그조차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탓에 더욱 화가 났다. 추이꾼은 그저 기록하는 이였다. 그 어떤 일에도 간섭할 수 없었다. 특히나 이런,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는.

 ‘이제 곧’이라는 것은 짐을 추려야한다는 의미였다. 여인과 아이의 이별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기록한 뒤에는 더는 지체할 것 없이 그대로 이곳을 떠나야할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고 그래야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그네는 영 착잡하였다. 특별한 마음이 든 탓은 아니었다. 허나 누구에게나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이가 있다면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그네는 뻐근한 눈을 내리감으며 손을 들어 눈두덩이 위를 꾹꾹 눌러대었다. 별 대수로운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온 몸에 피로가 밀려왔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더 지체하지 않고 떠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운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별의 순간은 곧 찾아왔다.

 

 “어째 하늘이 영 우중충한 것이 눈이라도 쏟아질 성 싶습니다.”

 

 여인은 짚단을 한 무더기 품에 안고 들어오며 말했다. 가진 것이라곤 짚신 깁는 재주 뿐인 여인은 겨울에는 그리 방구석에 콕 틀어박혀 앉아선 새끼를 꼬며 밤을 지새운다 하였다. 이따금은 나그네도 그 곁에 앉아 일을 거들곤 하였다. 여인이 방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바깥의 냉기가 훅 끼쳤다. 나그네는 잠시 여인을 바라보았다. 잔정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말을 섞고, 그렇게 한 것도 한 달이 넘었으니 그저 마냥 스치기만 하는 사람보다야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전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들이 전부.

 

 “그렇다면 꽤 고생하겠소.”

 

 나그네가 그리 말했다. 여인은 옅게 웃으며 아무래도 다니는 것이, 하고 운을 떼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나그네는 저를 곧게 응시하는 그 두 눈동자가 유달리 날카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지낼 만큼 충분히 지냈으니, 이제 떠날 채비를 하는 것뿐이라오.”

 “이리도 갑작스레 말입니까.”

 “떠돌이에게 갑작스럽고 말고가 어디 있겠소. 그저 때가 되었으니 발을 떼는 것 뿐.”

 

 그러나 나그네도 알고 있었다. 그저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기에는 머리가 좋은 여인이었다.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그 몇 마디만으로도 머릿속을 스치는 일종의 직감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본디 여인들이란 유달리 변화에 민감한 법이었다. 아마도 여인은 앞으로 나그네가 뱉을 말이 무엇인지를 예감했을 터였다.

 

 “정말로 그것 뿐입니까.”

 

 짧은 물음은 날카로웠다. 나그네는 가만히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다시금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정녕 그것 뿐입니까. 재차 캐묻는 듯한 얼굴에 나그네는 잠시 말문이 턱 막혔다. 그렇다고 어찌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머니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다, 그리 침착하게 대답하던 아이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정녕 그것 뿐이냐 물으면 아니었다. 그러나 나그네는 차마…….

 

 “어머니.”

 

 때마침 들려온 것은 운의 목소리였다. 여인과 나그네가 동시에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운의 그림자가 문가에 비쳤다. 새하얀 창호문 너머로 아롱대는 그림자는 검기도, 그러나 밝기도 하여 정말로 사람의 것은 아닌 양 하였다. 운은 거기 앉은 채였다.

 

 “어찌 아재를 곤혹스럽게 만드십니까.”

 

 물어오는 목소리는 나직하였다. 어느새 이렇게 어른스러워진 것인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여인은 괜스레 숨을 들이켰다. 나그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순간에 흐르는 공기는 어쩐지 감각에 익은 것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듯 하였다.

 

 “어머니, 달이 아름답습니다.”

 “운아, 눈이 내릴 것 같다. 고뿔에 걸리니 안으로 들거라.”

 “허나 어머니, 보세요. 달빛이 참으로 곱습니다.”

 

 그러더니 운의 그림자는 천천히 일어섰다. 어머니, 바람은 또 어찌 이리 맑은지요. 목소리가 꿈길을 헤는 듯 하여 여인은 덜컥 겁이 났다. 운의 그림자는 천천히, 천천히, 문가에서 떠나 마당 한가운데로 향하는 듯 점차 작아지고 흐려졌다. 여인은 문득,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아. 채 뱉어내지 못한 이름자가 목구멍에 걸렸다. 운아, 아니된다. 덜컥 차오르는 말은 그리도 애닳은 것이었다. 무언가가 그리도 두려웠던 것인지 여인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창호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운아. 아니된다. 그리 가면 아니된다. 말을 차마 뱉어내지는 못하고 여인은 엉금엉금 기듯이 문가로 다가갔다. 벌컥, 문이 열린 것은 그 뒤였다. 나그네가 성큼 그 열린 문 밖으로 나설 적이었다.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구름의 조각인 양 그리도 소담하게 흩어져 떨어지고 있었다.

 

 “아재.”

 

 운은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한 얼굴을 한 그 어린 것은 아재, 하고 나그네를 불렀다.

 

 “눈이 내립니다.”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는 음성이었다. 운아. 나그네는 마당 어귀에 섰다. 운은 천천히 고개를 떨구어 제 발치만 바라보다가, 그대로 다시 고개를 들어 이번에는 나그네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조운입니까.”

 “그래, 이것이 조운이다.”

 “허면, 이것은 제 형제나 다름이 없군요.”

 “그렇지 않다. 이것들은 죽은 것이고 너는 산 것이다, 운아.”

 “허면 저 위에 있는 것이 형제입니까.”

 

 하얀 손이 허공을 가리켰다. 이 머리 위, 저 하늘 위를 빼곡이 덮은 저 구름이 제 형제입니까, 아재. 나그네는 가만 입을 다문 채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운은, 얼핏 웃었다. 그렇습니까. 뱉어내는 음성은 초연하기만 하여 도리어 가슴을 저며왔다. 여인이 더듬대며 방에서 기어나와 대청 위에 앉았다. 운아.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눈동자가 여인을 향하였다.

 

 “어머니, 저 위에 제 형제들이 있습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아, 운아. 너는 내 아이다. 운아, 네 피붙이는 나 뿐이야. 그러니 어서 이리 오련. 어서 어미 곁으로 오련, 운아.”

 “어머니.”

 

 아이는 어느새, 어엿한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운은 마당 한가운데서 여인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운아, 아니된다. 뱉어내지 못하는 말이 자꾸면 혀뿌리에 엉겨 여인은 몹시도 괴롭고 숨통이 막혔다. 이리로 오련, 운아. 내 아이야, 그곳에 가지 말아주련. 그러나 아이는 매정하게도 몸을 일으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는, 가볍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마치 지상의 것이 아닌 양 붕 떠오른 아이의 가벼운 몸은 눈발이나 간신히 흩날릴 정도로 미약한 바람에 실려 점차점차 그렇게 하늘로 높아져만 갔다.

 

 “안 된다, 운아! 운아!”

 

 여인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아이는 점점 더, 점점 더, 멀어지고, 멀어지더니 이윽고 점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여인은 그대로 졸도하고 말았다. 나그네는 쓰러진 여인을 부축하여 방에 누이고 아이가 멀어진 하늘을 한참이나 그렇게 보고 서 있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여인은 며칠을 앓은 뒤에야 그렇게 말했다. 나그네는 잠시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껄끄러운 얼굴로 제 뒷목을 쓸어내렸다.

 

 “여인이 동행할 만한 길이 아니오.”

 “저도 추이꾼이 되겠다는 말입니다.”

 “그대가 무엇을 하건,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지. 허나 동행을 원한다면 그리 할 수 없소.”

 

 여인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헤아리고자 한다면 여인의 심경을 영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아비는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도통 소식이 없고, 하나 뿐이던 아이는 구름이 되어 멀리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홑몸으로 남은 여인이 더 의지하고 기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니 그렇다면 이리저리 떠돌며 이야기를 주워모으는 추이꾼이라도 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도 충동적이었으나 지극히도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그네는 순순히 그러라 할 수가 없었다. 추이꾼의 삶은 편안하지 않았으며 연고지 없이 조선 팔도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일은 여인에게는 더욱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 뿐이랴. 추이꾼이 그저 어린아이들 베갯머리맡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괄시를 받기도 일쑤였다. 직업이 아니다보니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다른 재주를 갖춰야 했으며 그조차도 간신히 한 사람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나 될까 말까였다.

 나그네는 제 목숨 하나 챙기기에도 벅찬 이였다. 그러나 그 모든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기에는 또 영 내키지가 않는 것이었다. 여인은 잠시 시선을 떨구더니 한숨을 뱉었다.

 

 “허면.”

 

 여인의 음성은 나직하고 침착하였다. 방법만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여인은 그렇게 말했다.

 

 “데려가달라 성화를 부리지 않을 터이니, 추이꾼이 되는 방법이라도 가르쳐주십시오.”

 “달리 무슨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허면 어찌 그저 추이꾼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나그네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단단히 각오라도 한 양 고집스러운 눈동자에, 나그네는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선은 몸을 추스르시오.”

 

 허면 그 뒤에, 도와줄만한 이를 찾아 데려다줄 터이니. 그제야 여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부자리에 눕는 것이었다. 약조하시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다짐을 받은 뒤에야 여인은 비로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그네는 이마를 짚었다. 얇은 창호문 바깥에서는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만이 자작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구름이 시드는 소리만이 적막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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