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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하얀 달, 메아리
작가 : r라
작품등록일 : 2022.2.2

젊은 농사꾼 수여리. 하늘에 떠 있는 붉은 달을 발견했다.

강가에 빠진 자신의 반려동물 황순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순간, 다른 세상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곳은 밤하늘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달이었다.

 
4.
작성일 : 22-02-02 16:29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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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천 년 간 이어온 저주를 풀거라는 로하의 말 한 마디는 메아리 전체에 쓰나미같은 큰 파동을 일으켰다. 로하의 걸음 걸이 하나 하나엔 ‘과연 아사베의 딸!’ 혹은 ‘역시 제느!’ 라는 감탄사가 나오기도 했다. 위태로웠던 로하 공주의 입지는 백성들에게 완벽하고 단단하게 굳어졌다. 아직 끝나지도 않은 저주지만, 그들은 이미 저주 따윈 사라진 세상을 맞이한 듯 크게 환호했다.

 

 “이상해…”

 “뭐가?”

 “너가 봐도 이상하지 않아? 저주를 풀 희망이니, 뭐니 떠들면서 온갖 허례의식에 참여 시키곤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 여긴 낮 밖에 없어서 며칠이 지났는지 감도 안오지만…. 체감상 2주일은 지난 것 같다고. 하루라도 빨리 저주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니야?”

 

 황순이의 얼굴을 쓰다듬던 여리가 첸에게 물었다.

 

 여리는 ‘체감상 2주.’ 라고 말했지만, 실제 시간으론 한 달의 시간이 흐른 후 였다. 사람이 환경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 그녀는 몸소 깨닫고 있던 중이었다. 하얀 머리에 온통 흰색 투성이인 이 세상도 여리의 망막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처음 어색하기만 했던 환한 대낮에도 몸이 저절로 적응해 숙면에 들 시간을 기가막히게 찾곤 했다.

 

 “야.”

 “왜?”

 “근데 너 왜 나한텐 반말하냐? 은근슬쩍 맞먹네. 공주한테도, 내 동생한테도 존댓말 쓰면서.”

 

 첸은 얼굴을 찌푸리며 동문서답으로 되물었다.

 

 “아, 그러게.”

 

 그 중 가장 소름끼치게 잘 적응한 것은 씻을 때 외엔 ‘감시자’ 역활 같은 거로 붙어 있는 첸의 존재였다. 여리는 언제부턴가 첸에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라는 아주 도의적이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상하게도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비센 댄’의 형이자, 비센 가문의 장남이라는 ‘비센 첸’ 이라는 이 남자가 이 곳에선 굉장히 입지가 크고 영향력 있는 고위 권력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로하를 대하는 것처럼 머리를 조아렸으니까.

 

 꽤 대단한 사람같지만, 여리의 눈엔….

 

 “야. 딴데 봐. 검은 눈동자는 재수없다니까.”

 

 재수없는 새끼. 여리는 속으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여리의 눈에 첸은 싸가지 없고, 재수없는 그저 그런 하얀 사람이었다.

 

 “야라고 하지 말라니까? 내 이름은 수여리라고.”

 

 

 [똑, 똑.]

 

 

 “수여리. 이제 곧 식사시간인데, 같이 식사하러 가실래요?”

 

 로하가 노크와 함께 밝은 얼굴로 여리의 방으로 들어왔다. 찰랑거리는 노란 웨이브 머리를 흩날리면서. 볼 때 마다 우아한 자태에 넋이 빠지곤 한다. 그간 여리가 가장 유심히 관찰했던 것은 제느 로하였다.

 

 로하는 첫인상과는 달리 꽤 조신한 스타일의 천상여자였다. 사람에게 칼을 날린 전적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여성스러웠고, 차분했으며, 작은 말 한미디, 한 마디를 나눌 때 마다 섬세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참 희한하게도, 그녀는 여리와의 식사에 집착했다. 아무리 스케줄이 바빠도 하루에 한 번, 못하면 이틀에 한 번 꼴은 꼭 여리와 식사를 하기 위해 종종 여리의 방을 찾곤 했다. 그 덕분에 이 곳에 대한 체계나 사상들. 또 그 외에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메아리’ 라는 세상은 공산당과 비슷했다. 백성들에게 세뇌를 하듯 제느에 대한 충성을 각인시키는 듯 보였다. 마치 그것이 세상의 진리인 양 말이다.

 

 하지만, 공산당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었다. 이들이 보는 제느는 신앙심에 가까웠다. ‘신이 선택한 제느.’ 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하를 신을 보듯 바라보곤 한다. 가끔 제느와 함께 이 곳의 행사를 간다거나, 낮은 계급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마주칠때면 그들의 눈엔 어김없이 같은 눈빛이었다. 그들의 눈에 제느 로하는 하느님이고, 부처님이고, 성모 마리아와 같다는 걸 깨닳았을 때 여리는 주입식 교육의 무서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알아낸 것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신체였다. 살해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이상 이들의 수명은 100년. 그 이하나 이상도 없이 일정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곳은 15살이 되면 성인이 되는데, 그 때 까진 어린아이의 모습이였다가 15살이 지나면 급속도로 성장하고,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젊은 모습을 유지하다 죽는다고 한다. 뼈나 근육이 늙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노화’ 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은 ‘노화’를 무서워하며 돈과 시간. 고통을 바꿔서 지키려 하는데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여리는 ‘이 사람들 피를 뽑아 지구로 가져가서 연구를 시도하면 돈방석에 앉겠는데?’ 라는 세속적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회를 잡아 정말 뽑아갈 심산이었다.

 

 “아직 배 안고픈가요?”

 

 저 얼굴 또한 태어난 지 40년 째 란다. 액면가는 여리 보다 어려보이는데. 로하 뿐만이 아니었다. 댄 또한 숫자로 치면 41살. 첸은 50살. 제 어머니와 같은 나이라는 첸의 얼굴을 보고 여리는 기겁을 했더랬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여리의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로하는 얼굴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도 좋아하실만한 걸로 준비했는데….”

 

 그리고 제일 희한한 것은, 여리는 본인의 식성을 말한 적이 없었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딱히 이 곳 음식이 맛 없는 것도 아니니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는 것 뿐이었다.

 

 “저주는 언제 풀려고요? 전 여기 들어누울 생각은 없는데. 빨리 돌아가서 고추밭도 손봐야 하고, 이번 농사도 망하면 나 정말 큰일인데.”

 

 여리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그들이 쥐어준 파란 망토를 주섬주섬 어깨에 둘렀다. 마침 출출해진 찰나였으니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돌아가려면 살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왠만하면 건강하게.

 

 “…. 오늘은 특별히 값진 술도 준비했어요.”

 

 오, 술? 여리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곳에 와서 처음 마셔보는 술이었다. 사실 귀농을 시작할 때 부터 알코올은 입에도 대지 못했던지라 들뜬 마음으로 여리는 식사하는 곳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가자! 황순아! 밥 먹자!”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점차 사라질 즈음, 로하는 여전히 여리의 방에서 멀뚱히 첸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하의 분위기를 감지한 첸은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술 안좋아하지 않았나?”

 “예의를 지키시죠.”

 

 축 가라앉은 톤. 무언가 달갑지 않은 소리를 하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첸은 웃으며 한 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비센 첸. 제느 로하를 뵙습니다.”

 “일어나세요.”

 “… 저 여자는 기가 막히게 적응하고 있는데. 이러다 눌러 살겠어.”

 “나쁘지 않은 결과네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이런 명령을 잘 수행해주다니. 정말 의외예요.”

 

 공주답지 않게 떠보네. 첸의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요즘 동생한테 하도 미움을 받아서 말이죠. 그나저나 계획하신 일은 잘 되가고 있는 건지 심히 걱정이 되네요.”

 

 이열치열. 첸 또한 로하의 반응을 떠보기로 했다. 로하 또한 빙긋 웃으며 첸에게 다가왔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저 초점을 볼 때면 어김없이 그녀가 떠오르고 만다. 외모도, 성격도 그녀를 닮지 않은 로하에게 유일하게 꼭 닮은 모습이 있다면 저 모습이었다. 자칫하면 빠져들 것 같은, 깊은 눈동자.

 

 로하는 첸의 옆에 창가에 기대며 답했다.

 

 “다행히 순조롭네요. 아직까지는. 이제 곧이에요.”

 

 이제 곧?

 

 “정말 저 여자가 우리의 희망인가?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거야?”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

 “비센 첸 장군,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검은 머리를 발견 즉시 다른 장군에게 보고하라.’ 라는 명령을 부하들에게 시켰다던데…. 겁대가리 없이 그런 지시를 시킨 이유가 궁금하네요. 본래 당신이라면 목을 도려내 강에 뿌리라고 했을 텐데.”

 “아아. 그거?”

 “내 계획을 방해한 저의가 뭘까요?”

 “이런. 내 부하들 사이엔 없는 줄 알았는데, 더러운 쥐새끼가 득실거렸던 모양이야.”

 

 첸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첸은 자신의 부하들 중 몇 명은 로하 쪽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서 일부러 그런 것이다. 난 당신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 난 이렇게 할건데, 넌 어떻게 나올 것이냐. 라는 메시지였다.

 

 첸의 저런 모습이 모순과 농락이라는 것을 로하가 모를 리 없었다. 부족해보여도 이 넓디 넓은 메아리의 공주이자, 통치자이다. 어렸을 때 부터 왕권에 태어나 수많은 일을 겪었던 로하를 속이기엔 그의 행동들은 너무나도 노골적이다.

 

 로하는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을 감추곤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어차피 곧 끝날 게임이지만, 훗날의 방해요소는 미리 제거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메아리를 위해서, 그를 위해서 말이다. 이 곳은 사방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곳. 최대한 평온한 자리를 만들어 놓으리라.

 

 “그건 저도 마찬가지네요. 댄이 정보를 흘렸을 리 없고, 어떻게 아셨죠? 제가 이번에 나타날 검은 머리를 필요로 했단 걸.”

 “글쎄, 나도 제느 만이 듣는다는 신의 음성을 들은걸지도.”

 “… 예전의 당신이 그립네요. 왜 이렇게 삐딱선을 타시는 건지.”

 “제느의 충견이였던?”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당신의 사지를 찢어 저주의 호수에 던지셨을텐데.”

 

 로하는 수줍게 웃어보였다. 첸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 ‘제느 아사베’ 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아사베는 첸을 유독 예뻐했다. 그 예쁨 덕에 비센 가의 위신은 더욱 높아질 수 있었다. 가장 아래에 서 있던 가문인 ‘비센’ 은 어느덧 여왕의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예뻐한 것은 그 뿐. 이렇게 제 딸을 하대하는 모습을 봤다면 분명 로하의 말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짐과 동시에 잔혹한 면이 있었고, 딸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평범한 어머니 였으니.

 

 “갑자기 왜 변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삐딱선 타진 말아요. 댄 생각도 하셔야죠.”

 

 ‘댄.’ 제 동생의 이름이 언급되자 첸의 오른쪽 눈썹이 과하게 일그러졌다.

 

 “이건 협박인가? 역시 제느의 핏줄 답군. 남의 감정 가지고 뒤흔들고, 협박하고.”

 “협력이라고 하죠. 같은 목적을 위해.”

 “….”

 “휘청이던 비센 가를 제가 지지해줬어요. 적이 많은 비센 가를. 전 어머니와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짓거리는 용서할 정도로 착하진 않죠. 다른 가문들 또한 눈이 있으니 적당히 구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비센을 대적할 가문은 이제 없을텐데. 훌륭하신 제느 덕분에.”

 “동생이 가는 길에 작은 걸림돌은 되지 말란 소리예요.”

 

 걸림돌이라-.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확실히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로하가 아사베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가 지금 어떤 곳에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 나는 너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없다. 너는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하나뿐인 딸이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옹졸함과 치졸함에 대한 화풀이를 하고 있을 뿐.

 

 가엾은 사람. 로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 했다. 이 철없는 남자가 나이 먹고 왜 저리 비뚤어 졌는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제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리라. 어렸을 적엔 그저 여왕을 향한 존경심일거라 생각했다. 아사베는 메아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왕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니까. 하지만 자신과 댄의 마음이 같아질 무렵 느낄 수 있었다. 아, 첸은 아사베를 사랑하는구나. 그저 존경심 따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간절하게 그녀를 원하는구나.

 

 

 [똑, 똑]

 

 

 또 한 번의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이번엔 댄이 모습을 비췄다.

 

 “비센 댄. 제느 로하를 뵙습니다.”

 

 댄의 시선이 제 형은 첸을 향했다. 불신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래도 형이라고 동생의 비위는 맞출 줄 안다. 첸은 양 손을 머리쪽으로 들며 말했다.

 

 “아, 오해는 하지마.”

 “어떤 오해?”

 “어떤 것이든.”

 “… 왜 자꾸 눈엣가시처럼 구는 거야?”

 “형한테 눈엣가시라니! 상처인데.”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댄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첸은 저런 행동들이 문제다. 언제, 어디서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장난스럽게 넘기는 것. 상대방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 저 방정맞은 입. 면전에 침을 뱉는 것 보다 더 악질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비센 형제의 우애는 특별했다. 그들의 부모는 블러드의 저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났고,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첸이 키우다시피 댄을 보살폈다. 둘의 성격은 배다른 형제처럼 정반대였지만, 하위 가문인 비센을 일으키고 고위 관직인 ‘제느 가의 호위무사.’ 자리를 꿰찬 첸을 댄은 진심으로 존경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덕분에 댄 또한 로하의 호위무사가 되는 건 수월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남들이 보면 신기할 정도로 깊고 끈끈했던 그들의 우애. 그런 형제 사이에 언제부터 금이 간걸까. 그것은 첸이 댄의 사랑을 탐탁치 않아 했을 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동생의 마음을 이해했다. 과연 형제는 형제인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 였다. 제느의 매력을 누구보다 첸은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 특별하고, 매혹적이다. 신에게 선택된 메아리의 왕 이라는 흔한 타이틀 때문이 아니다. 아름다운 외모는 그 누구든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다. 코 끝을 자극하는 화려한 꽃향기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우아한 몸짓 하나, 손짓 하나로 가슴을 뛰게 만들어 버린다. 감히 헤어나갈 수 없게.

 

 처음 댄의 마음을 알았을 땐, 진정으로 동생의 사랑을 응원했다. 로하도 같은 마음이란 걸 알았고, 약혼한 가문도 없었으며, 옛날과는 달리 힘이 생긴 비센은 충분히 여왕의 옆자리를 노려볼 만 했다. 자신은 이루지 못한 결실을 동생은 꼭 해내길 바랬었다.

 

 그래, 분명 그랬었다. 아사베가 죽기 전까지는…. 제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느의 서재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첸. 자리 좀 비켜줄래요?”

 

 로하가 나지막히 말했다. 여기에 버틸 이유는 없다. 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유유히 방을 빠져나가 여리에게로 향했다.

 

 “로하…”

 

 첸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로하를 끌어안았다. 이내 그는 허리를 굽혀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날카로운 눈매 속엔 근심이 가득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 걱정하지마. 다 잘될거야.”

 

 그러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놨으니까.

 로하는 뒷 말을 삼켜냈다.

 

 “걱정을 안시켜야 안하지.”

 

 거친 그의 손이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자 손 끝까지 전율이 흘러내렸다.

 

 “난 늘 당신을 걱정시키는 존재인가봐.”

 “그러게나 말이야. 넌 항상 내 속을 애태워.”

 

 그의 손길이 로하의 한쪽 어깨와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의 두꺼운 팔이 가녀린 몸을 감쌌다. 등 쪽에 고정되어 있던 끈을 풀어내자 로하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뿌리칠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괜찮을 것이다. 오늘까진 욕심내도 괜찮겠지, 내 욕심이 당신을 더 괴롭게 하겠지만. 로하의 손길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췄다. 사랑을 나눈지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금의 변함이 없었다. 떨려오는 심장, 살갗이 맞닿을 때 마다 느껴지는 전율, 안고 싶은 욕망, 서로의 품 속에 파고 들려는 본능은.

 

 로하 또한 그의 어깨로 향했다. 상반신을 가던 파란 망토를 걷어내자 흉터가 가득한, 단단하고 커다란 그의 몸이 드러났다. 둘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 하아…. 제발 무슨 생각인지 말해줘요.”

 

 애절한 그의 목소리. 마음 한 켠을 꽉 움켜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을 느끼면 돼. 댄.”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 둘은 거친 호흡을 내쉬며 더, 더욱 더 서로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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