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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6화
작성일 : 22-02-01 15:12     조회 : 188     추천 : 0     분량 : 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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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평소 같았으면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갔을 그곳, 그녀와 데이트를 했던 술집으로 걸어갔다. 한 시간쯤 걸으니 그곳이 나왔다. 하지만 이른 시간, 술집이 문을 열 리 만무했다. 가게 앞에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다.

 

  “어? 그때 왔던 손님이네. 손님, 여기서 왜 그러고 있어요?”

 

  고개를 드니 날 내려다보는 건 가게 주인이었다. 30대?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모에 턱수염을 기르고 탄탄한 몸을 가진 가게 주인. 장사를 하려면 눈썰미가 확실히 좋아야 하는 것인지, 한눈에 날 알아보고는 아는 체를 한다. 웬 사지 멀쩡한 남자 어른이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모습은 그가 분명 어떤 사연을 지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 이 정 많은 가게 주인은 날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누구 만나기로 한 사람은 있고?”

  “친구가 있는데……. 언제 올지는 몰라요…….”

  “내가 말이야, 사업을 몇 번 망했는지 알아? 다 살아져. 살기 싫어도 알아서 다 살아지는 겨. 뭔 일인지는 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그 말이 내 뇌리에 콕 하고 박히지는 않았다. 위로가 먹힐 타이밍은 아니었으니까. 가게 주인은 영업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특별히 자리를 내어주겠다며 방으로 안내한다. 그녀와 함께 앉았던 그 공간이었다. 그리고 소주 한 병과, 마른안주를 내주었다.

 

  “지금은 장사 준비 전이라 그거밖에 없구먼. 천천히 먹어요. 친구 온다며.”

 

  정우가 올까. 통화는 했지만 확답은 듣지 못했다. 정우도 나이를 먹었고, 아마 어디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디 지방에 가 있는 거라면 내일 아침이 되어도 못 올 것이다. 그래도, 실낱같은 확률이라도 정우가 올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소주를, 천천히 비웠다. 당장 내게 필요한 건 오직 정우뿐이었다. 정우가 떠난 이후 정우만큼 가까운 사이로 지낸 친구를 사귀지 못했었다. 생각해보니 정우에게 참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정우도 나처럼 세상에 버려진 존재였는데, 난 녀석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었다. 오히려 날 버리고 떠난 존재로 여겼던 것은 아니었나, 후회가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정우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모든 생각의 퍼즐을 채워나가던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수 년 만에 울리는 정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야, 나 학교 근처에 왔거든? 너 어디에 있냐?”

  “정우야. 미안하다, 내가.”

  “새꺄. 그 딴 건 만나서 얘기하고, 어디 있는지나 말해.”

 

  난 정우에게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문이 열리고 녀석이 들어왔다.

 

  “다행히 친구분이 계셨네. 저쪽 방으로 들어가요.”

 

  가게 주인의 안내를 받고 정우가 들어왔다. 학창 시절 얼굴은 남아있지만 분명 다른 분위기였다.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남자가 봐도 꽤 멋진, 그야말로 성공한 사람의 비주얼이었다.

 

  “백성. 뭔 일이야 대체. 몇 년 만에 연락해서는 왜 울고 지랄인데. 아,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랑, 지금 혹시 되는 안주 다른 거 없어요?”

 

  사장님은 특별히 준비했다며 뜨끈한 국물 요리를 내어주었다.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식어버린 나에겐 제격인 안주였다. 난 소주와 안주를 번걸아 먹으며 정우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전해주었다. 몇 시간 동안 떠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정우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걸 다 들어주었다. 빛이 들지 않는, 바깥 세상과 단절된 가게의 구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낮인지 밤인지 인지하지 못하게 된 덕분에, 정우와 둘 만의 세계에 놓인 기분이었으니까.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정우는 가장 먼저 교감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런 종류의 인간이 높은 위치에 있으면 원래 조직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한참이나 욕을 해댔다. 나보다 훨씬 감정에 이입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연이어 배남건 선생과 박혜민의 관계를 추측하기 시작했는데, 박혜민의 경우엔 무언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약자의 입장이 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 내가 사랑했던 그녀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건데. 완전 때려칠 거야?”

  “모르겠어. 지금 당장은 아무 생각도 안 나.”

  “그래, 며칠은 생각하지 말고 쉬어. 근데 그게 너무 길어져도 안 돼.”

  “넌, 넌 어떻게 살았던 거야. 얘기 좀 해 봐.”

 

  정우는 깊게 숨을 내쉬더니, 내 이야기만큼 파란만장한 삶의 단면을 꺼내주었다. 정우는 고삼 시절 학교를 떠났었다. 전학도 아니고 자퇴.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고 했다. 양아치들한테 당해낼 힘이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고.

  정우는 부모님 허락을 받고 친척 아저씨가 운영하는 공장을 다녔다. 양초 만드는 공장. 양초 만드는 일을 배우고, 저녁엔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공장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숙소 생활을 하면서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던 거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어른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늘 나가서 술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정우는 그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덕분에 매달 월급은 꾸준히 쌓였고, 틈틈이 양초 만드는 기술도 익혀나갔다.

  정우는 군대에 가지 못했다. 뜨거운 양촛물이 허벅지에 쏟아져 3도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군면제 사유보다 조금 더 심각했고, 그땐 정말 다리를 못 쓰는 줄 알았다고. 여전히 치료 중이라고 했다. 군대에 안 가는 대신 정우는 공장 업무를 줄이고 책상에 앉는 시간을 늘렸다. 양초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것이다. 정우가 일하던 공장에서는 그냥 하얗고 길쭉한 기본 양초만 만들었는데, 정우는 이것이 더는 시장가치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친척 아저씨는 양초를 취미로 사서 쓰는 사람이 어딨냐며 반대했지만, 정우의 생각은 달랐다. 1인 가구가 늘어가고 좀 더 쾌적한 웰빙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에, 분명 양초 사업의 변화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남들이 군대에 다녀오는 시간만큼 양초 개발에 공을 들였다. 워낙 냄새에 민감한 녀석이었으니, 향초 개발을 하며 자신의 실력을 맘껏 뽐낼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실패였다. 다들 알다시피, 이미 향초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기업이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국 단위로 가맹점이 늘어나 몸집을 불린 이후였다. 정우는 한발 늦었다며 아쉬워했지만, 실제로는 열 발, 스무 발 차이였다. 정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꼈지만, 그 자리에서 좌절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2년이란 시간만큼 방대한 양의 연구자료와 기술이 자신에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다짜고짜 향초 개발 회사 본점에 찾아갔다. 당연히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개발한 향초를 회사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나눠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씩 늘려갔다. 정우는 살면서 맡아왔던 냄새들에 대한 기억력이 뛰어났다. 멸시받던 자신의 능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렸던 것. 결국 정우는 회사 임원들과 대담을 나눌 수 있었고, 그렇게 그 회사에 입사했다. 정우의 능력이 크게 인정받았고. 회사에서는 아예 지점 하나를 내어주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덕분에 정우는 자신의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하며, 사람들을 만나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과의 자리가 많아서 좋다고 했다. 아무래도 향기에 민감한 여성들과 잦은 만남을 가져야 그들이 원하는 제품 공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돈도 괜찮게 벌고, 여자도 많이 만나고. 꽤 괜찮게 살고 있어, 요즘은.”

  “그랬구나. 난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교사는…….”

  “백성. 나 솔직히 네가 선생한다고 했을 때부터, 별로 너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

  “뭐? 고삼 때? 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넌, 사람들 만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잖아. 나 말고는 다른 애들이랑 별로 어울리지도 않았고. 선생들은 보면 맨날 떠들고, 사람들 상대해야 하고…….”

  “그렇긴 했지. 그럼 넌 내가 뭘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는데?”

  “그러게. 그건 좀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근데, 막 활동적인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아. 집에서 일하는 직업? 모르겠네.”

  “집에서 일하는 직업이 어딨냐. 세상 사람들 다 그 일 하겠다.”

  “이것 봐. 그게 다 성향이라니까? 넌 집에서 일하는 게 편할 것 같지? 난 아냐. 난 좀 밖을 싸돌아다녀야 비타민이 생기는 타입이라고. 넌 지금 너한테 안 맞는 옷을 입었던 거라니까.”

 

  실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만남이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십 대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던 맛나분식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꽤 친밀했고, 즐거웠다. 앞선 며칠 간의 고통이 사그라질 만큼. 정우는 학교라는 조그마한 틀에서 벗어나 세상과 직접 부딪히며 삶의 진리를 깨달은 듯 했다. 난 학창 시절에 충분히 경험한 학교라는 공간을, 또 다시 찾아간 것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다시 고등학교. 우물 안 개구리가 된 느낌이었다. 역시나 내겐, 정우가 필요했다.

 

  “고맙다, 정우야.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고.”

  “왜? 연락 안 해서? 야, 우리 나이가 젤 연락하기 힘들 때야. 먹고 살아야 하잖아. 자리 잡고 하느라 다들 그렇게 살 걸, 아마?”

  “아니, 그보다. 사실 네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 난 틀렸다고 생각했거든.”

  “마지막 말? 그게 뭔데?”

  “네가 나한테 장문으로 메시지 남겼었어.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살아야 한다고. 난 내가 절대 찌질한 놈이 아니라고, 그렇게 믿었었나봐. 그러다 이 꼴 난 것 같기도 하고.”

 

  정우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야, 백성. 그건 네가 아니라 내가 틀린 거야. 찌질하다고? 그딴 게 어딨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세상에 찌질한 사람 같은 건 없어. 그냥 서로 다 다른 거지. 나 고등학교 때려치고 공장 들어갔을 때, 우리 부모님 명절날 시골도 못 갔어. 친척들 보기 쪽팔리니까. 거기 명문대 간 내 동갑내기 사촌들이 몇 명 있거든. 근데 지금은 어떤지 알아? 걔네 공무원 시험 본다고 맨날 도서관 다녀. 부모님한테 용돈 받으면서. 어때, 찌질한 것 같애? 근데 난 걔네들 찌질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왜냐면, 걔네도 시험 붙고 공무원 돼서 언젠가 높은 사람 될 수도 있거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정우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일리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참 진리였다.

 

  “그냥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애쓰면서. 솔직히…….”

 

  정우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여자 문제도 그래. 내가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 봤거든? 근데, 여자들도 다 달라. 성향이 다 제각각이야. 나를 돈 많이 벌어서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고, 재밌다고 좋아하는 애도 있었어. 심지어 내 외모가 잘생겼다는 여자도 있었다니까?”

  “진짜? 걔 시력이 정상이었어?”

  “아이, 들어봐봐. 근데 있잖아. 반대로 내가 무지하게 들이대던 여자 한 명은 내가 어떻게 고백을 해도 늘 고민조차 안 하고 차 버리더라고. 그리고 완전 말도 안 되는 남자랑 사귀, 아니 결혼까지 했어. 그 남자가 어떤 남자였는지 알아?”

  “왜, 키 큰 훈남에 재벌 2세?”

  “그럴 것 같지? 아냐. 장애 있는 사람이었어. 키는 150초반, 직업은 목수였나.”

  “장, 장애인? 너를 차버리고? 왜 돈이 많았나?”

  “아니.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해주고 어쩌고 이런 것도 아니야. 그냥 얘기하는 게 너무 재밌었대. 같이 있으면 쿵짝이 너무 잘 맞았던 거지.”

  “쿵짝…….”

  “이게 의미하는 게 뭔지 아냐? 다 나랑 맞는 짝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는 게 필요하지.”

  “아…….”

  “그래, 이런 걸로 하자. 너도 이제 사람 많이 겪어봤지?”

 

  정우의 마지막 말은 사라졌던 내 삶이 돌아온 것처럼 반갑고, 강렬했다.

 

  “경험이 없는 게 찌질한 거야. 이제 더는, 넌 찌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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