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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세벽(世壁) - 세상의 벽 -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22.1.16

세상에 벽이 있었다. 그 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 벽 너머에서, 다른 배후를 발견했다.
그들을 막고자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

 
3부 그 너머 (6)
작성일 : 22-01-31 10:21     조회 : 168     추천 : 0     분량 : 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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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마야."

 누군가 어깨를 잡는 느낌에 흠칫 놀랐다. 돌아보니 키가 크고 우람한 아저씨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여긴 위험하단다."

 아저씨가 더 위험해보이는데요. 속에 있는 말은 삼키고서 제시는 눈을 끔뻑였다. 최대한 순진무구하게. 이 모든것을 가르쳐주는 건 마을인데도, 마을 어른들은 보이는 것만 믿는 경향이 있었다.

 제시는 손가락을 들어 적당히 가리키고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그쪽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다행이 남자는 쫓아오지 않았다.

 흙먼지를 뚫고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가까이갔다. 레시를 무시하고 션에게 말을 걸까. 아니면 재희에게?

 그들의 말소리가 들려올만큼 가까워졌을 때였다.

 "네 사정을 내가 왜 배려해줘야하는지 설명해봐."

 재희의 목소리였다.

 "하!" 레시의 눈이 단번에 매서워졌다.

 "설명이라니..너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고 하는 소리야?"

 재희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항상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어. 나 혼자서 그 대답을 찾아야했지. 레시 너는 '우리'한테 뭔가를 부탁할 자격이 없어. 적어도 네가 한 짓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두 사람의 사이가 안좋은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시가 아는 한 레시가 재희에게 무슨짓을 한 적은 없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무시하고 모른척했다. 보통은 레시가 비아냥거리고 재희는 그걸 깔끔이 무시했다. 가끔은 재희가 레시를 향해 공격할때도 있었다. 그 말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제시는 그럴수록 점점 재희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

 "캐서린 율리스.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

 레시는 잠시 멈추어섰다가 경악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녀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는게 또렷이 보일 정도였다. 레시는 션과 눈이 마주치더니 또 한번 숨을 삼켰다.

 "나는.."

 "주원은 션의 동료니까 찾을거야. 단,"

 재희가 방금보다도 더 차갑게 말했다.

 "너랑은 상관없어."

 그녀는 말을 마치며 션을 잡아 끌었다. 소매를 쥔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 손끝을 바라보다 시선을 위로 올렸더니, 션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제시를 보고 조금 놀란듯 했으나 약간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것이 허락의 의미로 느껴졌다. 레시는 충격을 받았는지 굳어있었다. 행여 그녀가 자신을 발견할까 제시는 조심스럽게-그러나 신속하게-종종걸음을 옮겼다.

 다짜고짜 물어보는데 어색함을 느꼈으나, 마지막으로 본 주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제시는 션을 붙잡자마자 주원의 이름을 꺼냈다. 다행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제시가 알려준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션이 제시를 잡아주려 했으나 재희가 제시를 안아올리는게 빨랐다.

 "빨리 가요."

 그녀는 제시가 얼마나 날렵하고 민첩한지 알고 있었지만, 그저 꼭 안아주었다. 언니라는 존재가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제시는 재희의 품안에서 잠시간 안도감을 느꼈다.

 상자더미 위에 있던 낙엽과 지푸라기가 사라져 있었을때, 이미 심장은 불온하고 뛰고 있었다. 션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었을 때, 그 안에 주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핏자국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을 때, 결국 제시는 끝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외부인의 집 내부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눈이 내리기 시작해 발길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으로 모여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주위의 고요가 좀 더 으슥하게 다가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람이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생각. 소름이 돋으면서도 어쩐지 쾌감이 들기도 하는. 민수는 얼렁뚱땅 떠오르는 잡생각을 떨쳐내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기묘한 상상만 하게 되었다.

 려상은 외부인의 집에 있다. 그건 민수의 가정이었지만 이미 기정사실에 가까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갈만한 곳은 이곳뿐이었다. 나고 자란 예고리는 속속들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어른들이 모를 법한, 작고 그늘진 공간도 알고 있었다. 그런 민수와 려상이 단 한번도 발길을 닿을리 없었던 곳. 그건 외부인의 집뿐이었다.

 아무도 없을리가 없었다.

 민수는 외부인의 집 뒷 편에서 집 테두리를 따라 벽에 바짝 붙어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눈이 하염없이 오고 있는데도 머릿속에서 김이 났다.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길고 크게 숨을 내뱉고 싶었지만 입김이 조금이라도 창가 근처로 가서, 그걸 누군가 알아채면 큰일이었다. 작고 밭은 숨을 내쉬며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사실, 정말로 아무도 없는 것 아닐까? 혼자서 쇼하는거야. 려상은 혼자서 이곳까지 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집으로 다시 돌아갔을거라고. 어떠한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고, 그건 자신 또한 마찬가지라고.

 그때 전화가 울렸다.

 따르릉거리는 소리가 두어번 이어졌다. 새하얀 세상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민수의 이마에서 땀 한방울이 도르륵 떨어졌다. 그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달칵,

 "네. 전화받았습니다."

 굵직하고 딱딱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네. 16시 D4로."

 남자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D4? 그곳이 어딘지 민수는 감도 오지 않았다.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어디로 이동한다. 지금 시간은 15시 30분이었다. D4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곧 이동할 거란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동하라고 하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나이가 좀 더 들어보였고 느긋함이 묻어났다.

 “네. 16시 D4 포인트입니다.”

 “윗대가리놈들.. 항상 이렇게 번갯불 콩구워먹듯 알려준단 말이지.”

 거만한 남자는 가래섞인 헛기침을 크게 쿰쿰거리며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지부장은?”

 “아이와 3층에서 면담중입니다.”

 “면담할 것까지 뭐가 있어. 그냥 빨리빨리 죽으라 할것이지.”

 아이..! 남자가 사무적으로 말하는 ‘아이’가 려상임을 직감했다. 민수는 저도 모르게 숨을 헛들이키다 들킬까 입을 틀어막았다.

 “지부장님의 화술은..."

 나이든 남자가 젊은 남자의 말을 가로챘다.

 "조직 최고 수준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부장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하던걸?"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난 그 점이 마음에 드는데."

 "네?"

 "아니다. 16시 이동포인트는 내가 지부장에개 전달하도록 하지."

 "네."

 거만한 남자가 결국엔 가래침을 퉤하고 뱉어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더러운 놈. 남자가 나가자 젊은 남자는 낮게 욕지기를 읊조렸다.

 

 언제 나이든 남자나, 다른 누군가 건물밖으로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새 머리에 맺힌 땀이 언것처럼 말라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한기가 서렸다. 눈은 여전히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민수는 건물 위쪽으로 치켜뜬 시선을 한껏 움직였다.

 "후우..."

 민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시간을 들여 다시 길게 내쉬었다. 숨통이 트인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젊은 남자의 기척이 여전히 벽 너머로 느껴졌다. 귀를 바짝 기울였다. 건물을 삼층. 기회는 한 번. 주머니에서 작은 거울조각 하나를 꺼냈다. 행여 눈에 반사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울였다. 젊은 남자의 정수리부터 살짝 보였다. 가르마는 사선이었다. 얼굴을 반정도 창문을 향해, 나머지 반은 문쪽인 셈이었다. 민수는 침착하게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그가 움직이는 일순간이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그건 누군가 방에 들어오는 순간과 일치하지 않아야 했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민수는 숨을 홉삼키고 허벅지와 다리에 힘을 콱 주어 도약했다. 몸이 붕 뜨며 창문 위로 튀어올랐다. 아까 본 건물 밖 쇠파이프의 이음새에 손을 뻗었다.

 아무런 도약장치가 없었지만 최근 힘이 늘어난 것에 걸었다. 불안한 만큼 자신감을 가져야했다. 녹이 슨 파이프에 손이 닿았다. 닿았으나 미끄러졌다.

 "...!!"

 민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세게 깨물며 반대편 손으로 파이프 기둥을 움켜쥐었다. 아직 얼지 않은 눈이 쌓인 기둥이 쓸리는 소음을 막아주었다. 다리 한쪽이 창문의 가장자리에 살짝 걸렸으나 바로 굽혔다.

 자리를 잡은 그는 숨도 쉬지 않았다. 터질 것 같은 심장만 쉴새없이 박동질했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는게 여실히 느껴졌다. 영원과 같은 몇초가 지났다. 아무도 창문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땀 한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민수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여전히 하늘에선 눈이 소복소복 내려오고 있었다.

 

 려상은 그 마녀가 들어온 이후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격인 셈이었지만 참으로 어린아이 같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노려보기만 할거니."

 "...."

 "여긴 우리 둘밖에 없어. CCTV도 없단다."

 "CCTV?"

 "아, 너는 모르겠구나."

 아차 싶었지만 이미 말이 나간 후였다. 그녀는 려상이 대답한게 기뻤는지 사람 좋게 웃었다.

 "네가 나를 왜그렇게 싫어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어."

 려상은 첫째로 마녀가 자신의 의중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둘쨰로 정말 그걸 몰라서 묻는건지 싶어 놀랐다.

 "....죽였으니까."

 "?"

 "죽였으니까."

 "..."

 그녀는 눈을 잠시 키웠다가 다시 평상시로 돌아갔다. 놀라기보단 감탄한 듯한 반응이었다. 려상은 그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뭘 본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말을 하는 내내 려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려상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둘은 내내 서로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셈이었다.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마녀가 언제 자신에게 해를 가할지 몰랐다. 명예롭게 죽는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마녀에게 죽임을 당하는건 본질부터가 다른 이야기였다.

 "네가 본건 모두가 환상이란다."

 "환상?!“

 삐끗한 려상의 말소리가 크게 방 안을 울렸다. 아무리 자신이 어린아이라지만 마녀는 너무했다. 되묻고나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도 모르게 씩씩거리고 있자 마녀는 그런 그를 보고 빙긋, 웃었다.

 "예고리? 그건 다 환상이야. 여기 있는 나도 어느정도는 그렇고... 내 말은 너조차도 환상에 지나지 않지."

 려상이 끝내 이를 부득 갈았다. 마녀의 이야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엉터리였다. 허술한 점 투성이었다. 그가 따지려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려상. 네가 정말 '려상'이라고 생각하니?"

 "...!"

 그 말을 듣는데 숨이 턱 막혔다. 눈과 눈이, 네 개의 눈동자가 마녀와 직면으로 맞부딪쳤다. 눈밖에 볼 수 없어, 그녀가 웃고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너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무수한 '려상'이 있단다.

 마을의 두뇌. 수뇌부를 대신할만한 인재. 아이답지 않게 분석적이고 차분하지만 그로인해 파멸할. 자존감이 높고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귀여운 아이야.

 과연 그런 아이가 너 하나일까."

 아까부터 이상한 주파수가 들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뚜뚜뚜..뚜뚜뚜.. 규칙적이면서도 묘하게 불규칙한 잡음. 언제부터 들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 모든 잡음을 헤치고 나서도 마녀가 하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의심할 여지없이 너무나 믿음직했다.

 "무슨 소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너의 부모도 서약을 했다는 이야기"

 그 말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손목이 파르르 떨렸다. 뒷목으로 한기가 실려, 소름이 돋았다. 방금 전까지 방 안은 무척 따뜻했다. 려상이 느끼기엔 그랬다. 자리 앞에 놓여진 따뜻한 김을 뿜어내던 차가 식은게 눈에 들어왔다.

 마녀가 려상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갑자기 새된 소리를 냈다.

 "이런.. 너는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았구나. 그렇다면 내 말이 무척 쓰리게 다가올텐데. 미안하네."

 "뭐라구요..?"

 "앵무새처럼 할 말이 그것 뿐이니?"

 "..네?"

 "이제 '호수의 품으로 돌아가야'할텐데, 마지막을 할 말이 그것뿐이니..?"

 "난.. 최연소로 수호자가 된다고...."

 그렇게 말했던가? 아까 어떤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근데 그는 누구였지? 여긴.. 어디지?

 려상은 일어서려 했으나 바로 주저앉았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되었다. 가자.”

 마녀가 려상을 흘겨보더니 일어서며 말했다.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어 려상을 향해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몸이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이야..’ 의식이 멀어지며 려상은 생각했다.

 서점 앞에서 마녀는 웃고 있었다.

 아직 그가 마녀를 선유라 부르던 때였다. 갈때마다 작은 초콜릿이나 과자를 쥐어주며 눈썹을 씰룩씰룩 움직이던 그녀를 아이들은 꽤 좋아했다. 지금보다 어렸던 려상의 눈에 선유의 서점은 보물창고처럼 보였다. 비밀스럽게 책장사이를 차지하고 있던 책들. 그 안에 모두 다른 이야기가 있단걸 알았을때, 아직 읽지 않았어도 려상의 세계는 몇 배나 확장되었다.

 선유 앞에서 작은 검은고양이가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어떠한 감정에-괴로움이든 안타까움이든 보기싫음이든- 얼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려상은 고양이가 불쌍했다. 바로 다가가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선유는 눈은 무감각했다. 반쯤내리깐 시선은 오히려 따분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싸늘한 냉기에 다가설 수 없었다. 가서는 안된다, 강한 본능이 그를 막아섰다.

 까무라치다 발작처럼 몸을 크게 들썩이던 고양이의 온몸에서 이내 힘이 빠졌다. 바닥에 축 늘어진 몸은 처참할 정도였다. 팔과 다리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안온한 죽음이 아니라는 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선유가 한발짝 앞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발로 고양이의 배를 툭툭 쳤다. 늘어진 고양이는 미동도 없이 발길질을 받았다. 몸이 들썩들썩 흔들릴 때마다 려상의 눈동자는 경련하듯 떨렸다.

 그리고 선유가 웃었다.

 마녀의 입꼬리가 칼로 찢은듯 위로 씨익 올라갔다. 려상이 태어나 본 것 중 가장 기괴한 얼굴이었다.

 내리뜬 눈꺼풀이 살포시 올라가 보이던 안광. 번뜩이는 눈동자는 검은 고양이의 사체만을 담고 있었다.

 이유 따위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선유는 이미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 있었다. 려상은 그녀가 무서워졌다. 강렬한 감정에 머리가 아찔했다. 평소에 선하게 웃던 이미지와 겹쳐져 더 혐오스러웠다.

 지금 려상을 내리깐 눈으로 바라보는 선유의 표정이 그러했다.

 려상은 자신이 그때의 고양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고양이도 이렇게 슬프고 화가 났을까. 들끓는 감정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몸에 야속하고 미칠 것 같았을까. 아니, 이미 죽어서 모르려나.

 마녀가 죽인 것은 정말 고양이 뿐이었을까?

 마녀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려상을 잠시 감흥없이 쳐다보다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 다시 들어올 걸 알았지만 일단은 고요가 찾아왔다. 눈앞이 어두워졌다 밝아지길 반복했다. 점점 어두움이 찾아오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툭.

 별거 아닌 소리에 가까스로 려상은 고개를 돌렸다. 말도 안되지만 민수가 보인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한껏 괴로운 표정으로 일그러져있고, 마치 곧 울것 처럼 보였다. 미안해. 려상은 그를 두고온 걸, 그의 말을 무시한 것. 그 모든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채 나오지 않았고 그걸 마지막으로 시야는 암흑에 휩싸였다.

 

 

 따지고 보면 호수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션이 보았던 예고리의 호수는 그가 살면서 두 번째로 본 호수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서서히,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알게된 사실이 있었다. 재희도 모르는 션만의 비밀이었고, 아마 그가 영원히 풀어놓지 않을 이야기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그날 깊은 밤 사이에서 천둥소리를 들었다. 번쩍이는 빛이 소리 다음으로 따라오더니 뒤이어 요란하게 비가 내렸다.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저택이 잠겨있지는 않을까, 션은 걱정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도 멀어지고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때는 이슬냄새가 났다. 물기어린 습하고 맑은 공기. 올려다본 하늘은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그 이튿날 밤에 잠에서 깬 어린 션은 갑자기 거대한 물웅덩이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은 시기였다. 그는 잠옷에 가운을 걸친채로, 잘때면 항상 안아들던-아버지는 그 인형을 매우 싫어했다-곰인형을 꼭 안고서 방문 밖을 나섰다.

 어릴 때는 눈이 많이 약했다. 조금만 강한 햇빛에도 시력이 나빠질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에, 그는 항상 양산 아래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십대 중반이 넘어서는 그런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으나 그때까지는 그랬다.

 '호수를 보면 되지요.'

 '호수?'

 비가 온 다음날, 물 웅덩이에 비친 해를 보고 넋이 나간 션을 향해 하인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아마 저택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아저씨였다. 풍채 좋은 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물웅덩이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지요 도련님. 호수는 물웅덩이보다 열배, 백배 천배는 크답니다.'

 열배 백배 천배가 어느정도 인지 모르는 션이 되묻자 아저씨는 조금 난감해하더니 다시 말해주었다.

 '이 저택이 다 잠기고도 남을 정도로 큰 호수도 있답니다.'

 '우와'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션이 떠올린건 땅에 고인 아주아주 커다란 호수였다. 그러면 하늘을 덮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해를 실제 담아버릴 수 있는건지도.

 

 아마 대여섯살이나 되었을, 그토록 작은 어린아이가 호수를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컴컴한 어둠 속을 뚫고 기어이 호수를 찾아낸건 이해불가한 일이다. 당사자인 션도 그때의 자신이 어떻게 호수를 찾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아있는 풍경은 환한 달빛이 비추고 있는 호수의 정경 뿐.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호수가 눈 앞에 있었다.

 보는 순간 션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명칭을 몰랐지만 어린 그가 생각하던 이미지는 돔 형식이었다. 땅위로 불쑥 솟아오른 물웅덩이. 저택을 담을 정도라면 들어가서 구경할수도 있을거라 생각한 것 또한 어린아이다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아름답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날따라 유달리 맑은 하늘하래, 반달이 되지 못한 초승달이 은은하게 걸려있었다. 호수는 반사판처럼 달을 비추는 중이었다. 고요한 물표면에 그린듯 담겨있는 달을 보고있노라면, 그것이 물이 아니라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선명했다. 호수가 조심스레 흔들릴때마다 소리없이 달이 차르르 웃는 것만 같았다. 하늘에 걸린 달보다 호수의 달이 더 아름다웠다. 션은 홀린듯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션은 그 호수에 '홀렸다'. 당시에도, 그 후에도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눈 앞에 그토록 선명하게 어머니가 보일리 없었으니까.

 "엄마."

 아버지는 항상 엄마를 어머니라 부르라고 했다. 하지만 션은 보란듯이 아버지가 없을 때면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 부름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머니는 션이 두 돌을 맞이 하기 전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힘도 없었다. 늘 그늘처럼 웃는 사람이었다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들었다. 어린 션이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할리 없었다. 그림으로만 본 어머니의 얼굴은 실제 사람들의 얼굴과는 달랐고, 그저 낯설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눈앞의 이는 어머니였다. 정말로 그늘처럼 웃고 있었다. 은은하고 잔잔하게. 그리고 무척이나 쓸쓸하게.

 그녀는 호수에 있었다. 달빛 위에 우아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어린 션의 기분은 몽롱했고, 꿈과 현실의 언저리에 있었다. 그는 그녀 곁으로 가고 싶었다.

 션은 안고 있던 인형을 바닥에 떨어뜨린 줄도 모른채 발을 내딛었다. 작은 발목이 호수에 잠기는 순간이었다.

 허리를 휘어잡는 힘에 아이의 몸이 새우처럼 말렸다. 그 단단한 힘에 잠시 숨이 막혔다. 사방의 고요가 무너졌다. 서늘한 밤공기가 그제야 션의 폐부로 들어왔다. 호수에 잠겼던 오른쪽 발목이 온몸을 부르르 떨릴 정도로 시리고 차가웠다.

 션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잡아챈 이를 보았다.

 "..노자?"

 "로자예요, 도련님."

 그는 잠시 로자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두 사람은 거의 눕다시피 바닥에 앉아 있었다. 로자의 한 팔은 션의 허리통을 꽉 감싸 안고 있었다. 로자의 체온은 따뜻하고 팔에는 살집이 있어 부드러웠다. 션은 두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로자는 손을 풀고 션을 돌려 앉혔다. 그의 눈곱을 떼어주고, 흙먼지 속에 뒹굴고 있던 인형을 툭툭 털어 그의 품에 쥐어 주었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하지만 안그래보이도록 노력하며-웃어보였다. 그녀의 머리는 부스스했다. 치마도 잔뜩 구겨져 있었다. 션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로자의 머리를 매만지고, 치마를 꾹꾹 펴주었다.

 그러는 동안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던 로자의 얼굴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했다.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보고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션은 로자의 품에 안겨 천천히 저택으로 돌아왔다. 왜인지 한참 걸렸던 기억이 난다. 오는 내내 로자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흘깃 쳐다본 로자의 얼굴은 깜깜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올려 그녀를 보면 마주보고 안심하라는 듯 웃어주었기에, 션은 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그녀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그래서 묻지 못했다.

 왜. 로자에게서 아버지의 향수 냄새가 났는지.

 왜. 로자는 그 늦은 밤 호수 근처에 있어야만 했는지.

 커가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유추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아마도 묻지 못할.

 왜. 아버지는 로자와 함께 나를 구하러 달려 나오지 않았는지.

 

 

 

 호수에 갔을 때, '그들'이 오고 있었다.

 하얀 눈에서 얼핏 비린내를 맡은 것 같았다. 착각이 아니었단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호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그림자들. 그 중에서 가장 호수가 잘 보이는 어귀에 서있는 무리에 그들이 있었다.

 아까 확성기 옆에 서있던 남자, 그리고..

 "선유.."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름이 낯설었다. 순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화려한 차림이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이 저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일까.

 수수한 인상이었던 서점 주인 선유는 몸에 달라붙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퍼로 목을 두르고 장갑을 낀 손은 이따금 옆에 있는 남자의 어깨를 다독였다. 남자는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에스코드 하듯 이끌었다. 그럴때마다 선유의 얼굴은 당당하게 빛났다. 아무리 보아도 선유의 직급이 가장 높아보였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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