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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5화
작성일 : 22-01-30 15:47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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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배남건 선생은 미소를 지우고는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교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후로 절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무언가 야무지게 준비한 것 같았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사실, 참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교사로서 학생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움? 입이 굳어 말을 못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각 자체가 굳어버렸다. 난 식물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떨림까지 멈춘 채 배남건 선생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박혜민 학생이 제게 저기 백성현 선생님의 어떤, 음……. 입에 담기가 참 거북합니다만, 그래도 말씀드려야겠죠. 백성현 선생님이 여학생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부도덕한 행동을…….”

  “저기요, 선생님. 말씀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어허, 백 선생님. 가만히 좀 계세요! 지금 배 선생님께서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끝까지 듣고 발언권을 드리면 그때 말씀하세요!”

 

  ‘부도덕’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굳어있던 몸과 정신이 풀리고 아예 흥분 상태가 되었다. 교감의 제지로 금세 다시 멈춰야 했지만. 사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흥분해서 날뛰는 건 나에겐 마이너스가 될 뿐, 도움 될 게 없었다. 참아야 했다.

 

  “백성현 선생님은 평소 박혜민 학생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줄곧 해왔다고 합니다. 학생을 이성으로 생각해서 연애를 시도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혜민 학생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끊임없이 연락해서 괴롭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짓을 해온 겁니다, 저 사람이! 박혜민 학생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눈치챈 저는, 도움을 주기 위해 박혜민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물어보았고 그 정황을 듣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 또 다른 학생에게 그런 짓을 하고 계시다고……. 뭐, 제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는 아예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괴롭힘의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말하지 못했다. 괴롭히지 않았으니까. 그야말로 ‘카더라’식으로 아무 말이나 내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카더라’로 인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 분명했고, 더군다나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라며 날 비난할 것이 예상되었다. 계속 지켜보다 보니 전체적인 상황이 짐작되었다.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배남건 선생이 박혜민과 모의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박혜민이 이렇게 거짓과 확대 해석이 가득한 배남건 선생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박혜민은 ‘저게 다 사실이니?’라고 묻는 교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날 물어뜯고자 달려드는데,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교감은 나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고, 위원회의 논의 후 결과를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난 더 이상의 변명도 할 수 없었고, 쫓겨나듯 자리에서 나와야 했다. 배남건 선생의 멱살을 잡을지 박혜민에게 따질지 잠시, 아주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금방 포기했다. 박혜민의 남자친구라는 학생이 날 앞서가며 던진 말을 고스란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찌질한 새끼가 어딜!”

 

  박혜민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무엇을 약속받은 것인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배신감도 들지 않았다. 그냥 내가 찌질해서라는, 그런 생각만 들었다.

  교무실에 올라갔을 때 분위기는 더 심각했다. 내가 교무실 문을 열자 갑자기 모든 소리를 멈추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내 이야기를 떠벌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난 홀린 듯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에게 꼭 묻고 싶었다.

 

  ‘선생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답장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녀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의외로, 그녀는 빠르게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국어 교사 회의실로 지금 빨리 와줄래?’

 

  고개를 드니 그녀가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회의실에서 무언가 내게 해 줄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그래, 그녀라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절대 내가 처한 난관을 그냥 못 본 채 지나가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2개 층을 올라가 복도 끝 국어 교사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나를 안으로 들이고는 주변을 살피며 누가 오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급히 문을 닫았다.

 

  “성현쌤, 괜찮아?”

  “선생님. 뭔가 들으신 거죠? 사람들이 뭐라고 해요?”

  “네가 박혜민이란 학생이랑, 아니 걔한테 네가…….”

  “선생님, 그거 사실이 아녜요. 그냥 저는 순수하게 도움을 주려고…….”

  “근데, 너 궁금한 게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

  “아, 그건요. 사실 이 문제랑 별개인데…….”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해봐. 뭔데?”

  “선생님, 선생님도 저한테 마음 있으신 것 맞죠?”

  “뭐? 갑자기?”

  “갑자기라뇨? 이번에, 아니 예전에 저 군대 가기 전부터 제가 선생님 좋아한 것 알고 계셨잖아요. 맞죠?”

  “그래……. 그거야, 알고 있었지. 네가 날 선생님이 아니라 여자로 본다는 거, 느꼈었어.”

  “선생님은요? 선생님도 그러신 것 아녜요?”

  “성현쌤. 아니, 성현아.”

  “혹시, 제가 국어 선생님 되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저랑 연락도 하고, 만나주고 그러셨던 거예요?”

  “성현아. 너 박혜민이란 애, 여자로서 좋아하는 거야?”

  “그거 아니라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건요, 정말 오해라니…….”

  “지금 네가, 네 입으로 말했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방금 물었잖아. 내가 널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 그래요, 그땐 학생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쳐요. 지금은요? 엊그제 우리 함께 보낸 그 시간은요? 그건 뭔데요?”

  “성현아! 나 남편이랑 다시 같이 지내기로 했어. 힘들었던 것 잘 이겨내기로, 그렇게 약속했어. 미안한데, 그날 일은 좀 잊어줄래? 그날 우리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들어갔다가, 넌, 금, 금방 잠들었고, 나는, 그거 보고 바로 나왔어. 그러니까 그런 얘기 어디 가서 절대 하지 마. 이 말 하려고 너 부른 거야.”

 

  그녀는 날 위로하거나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생길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나에게 입막음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배남건 선생이나 박혜민의 반응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난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정말로 한 번도, 저를 남자로 생각하셨던 적은 없는 건가요?”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갈 참이었다가, 잠시 문손잡이를 잡은 채 멈춰 섰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뒷모습만 보인 채로.

 

  “넌 참……. 좋은 학생이었어. 그게 다야.”

 

  마지막 배려라도 되는 양 그녀는 문을 닫아주고는 회의실을 떠나버렸다. 수업 종이 울렸지만,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차피 날 찾는 이도 없을 것이고, 이 상태로 교실로 들어가봤자 아이들의 불편한 시선만 느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이미 온 학교에 소문은 퍼져있을 테니까.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머리를 쥐어뜯다가,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학교 옥상으로 향했다.

 

  그래서 난, 지금 옥상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떨어져야 할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내가 떨어지면, 그녀는 슬퍼할까? 아까 그녀의 말은 절대 진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당황해서 괜히 그러는 게 분명하다고, 난 그렇게 생각했다.

 

  ‘너나 나나 찌질한 거 맞아. 찌질한 대로 사는 게 맞아.’

 

  언젠가 정우가 내게 말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찌질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반장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교사가 되어도 내 찌질함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죽어 아예 없애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기를 각오하니까, 지난 시간들이 스치듯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수업 도우미가 되기 위해 반장 선거에 나갔던 그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매일 같이 교무실에 들락거렸던 그때, 그녀와의 데이트, 술자리……. 군대에 다녀와서 알게 된 그녀의 결혼 소식, 복학하자마자 김준수 남매에게 당했던 치욕, 실패했던 대학 생활, 날 좋아해 준 수많은 학생들, 그리고 길진 않았지만 다시 그녀와 함께한 행복했던 시간까지. 모두 거짓이었다. 내 삶은 거짓으로 포장된, 아니 포장지만 존재하고 알맹이가 없는 무가치한 시간이란 생각이 나를 학교 건물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이 분명했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여러 번 들렸으니. 결국 난 뛰어내리지 못했다. 아래로 당기는 힘만큼 날 붙잡고 있는 무언가도 힘이 무척 셌다. 아니면 뛰어내리기 위한 마지막 버튼인 용기가, 나에겐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선 ‘유서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와 같은 쓸데없는 고민, 부모님 걱정 같은 제대로 된 고민들이 뒤섞여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난 결국 조심스레 뒤로 물러섰다. 누가 날 보고 있었다면, 저게 방금까지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찌질한 나에게, 자살같은 우아하고 낭만적인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곧장 교감실로 갔다. 내가 지나가자 눈을 흘기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게 학생인지, 교사인지 알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내겐 의미 없는 존재들이니까. 그리고 난 노크도 없이 교감실 문을 왈칵 열고 외쳤다.

 

  “내가 그만두면 되는 겁니까!”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도 없었다. 이 장면이 나름 굉장히 멋질 거로 생각했는데, 그 멋짐은 어디 갔는지 민망함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마도, 점심시간인 것 같았다.

  교무실에도 역시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그들에게 주어진 평범한 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을 맞이하여, 늘 그랬듯 자신의 친한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하루 일과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중일 것이다. 나 따위가, 그들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난 짐을 싸서 학교 밖으로 나갔다.

  갈 곳이 없었다. 집으로 곧장 들어가기도 애매했고, 이 시간에 누굴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문득 옥상에서 떠올랐던 목소리 하나가 다시 한번 귓가에 맴돌았다. 난 휴대폰 연락처를 뒤져보았고, 다행히 번호가 남아있었다. 바뀌었을지도 모를 그 번호를 간절함을 담아 하나하나 꾸욱 누르고, 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통화 연결음만이 반복해서 들려왔고, 포기한 채로 귀에서 휴대폰을 떼자마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백성? 너 백성현 맞아?”

 

  난 녀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철없는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맞아! 나, 백성! 정우야! 나 좀, 나 좀 제발 살려주라!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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